소설리스트

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74화 (74/182)

74화

* * *

“얼마나 남은 거지?”

데스티나는 앞장서서 말을 몰고 있는 가스파르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가스파르는 묶여 있는 양손을 들어서 앞쪽을 가리켰다.

“저 멀리 있는 협곡이 보이나?”

가스파르의 말에 데스티나 일행은 그가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스파르가 말한 대로 그곳에는 마치 관문처럼 떡하니 버티고 있는 협곡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 데스티나 일행은 자신들이 타고 온 말과 정착지의 마구간에 있던 당나귀를 몰고 가스파르의 안내를 받으며 비를 쫓는 자들의 은신처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네 필의 말에는 각각 데스티나, 데미안, 가스파르, 아르테어가 타고 있었으며 당나귀 두 마리에는 각각 루카와 루시아가 타고 있었다.

엘레나는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바람의 정령의 힘을 빌려 그들의 뒤쪽에서 낮은 고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갈로스는 로즈버드 빌리지에 남겨 두고 온 상태였다.

그 역시 데스티나 일행과 동행하고 싶어 했지만, 루카는 후발대에게 소식을 전달한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갈로스를 설득했다.

비를 쫓는 자들의 은거지에 대한 위치를 갈로스에게 알리는 것은 청동 피리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은거지에 도착하고 청동 피리를 불면 갈로스가 그 소리를 듣고 위치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루카는 갈로스가 곧바로 올 수 있도록 지속해서 청동 피리를 불어서 그에게 자신들의 위치를 알려 주고 있었다.

가스파르는 얌전히 데스티나 일행을 자신의 은거지로 안내하는 중이었다.

그는 양손을 포박당한 상태였는데 말의 목줄을 잡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저 협곡을 통과하면 금방이야.”

가스파르는 데스티나 일행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들이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을 때 루카가 가스파르에게 물었다.

“당신이 정착지 사람들을 조종해서 데리고 갔다면 다시 조종해서 데리고 올 수는 없는 거야?”

“그건 불가능해.”

가스파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딱히 너희를 속이려는 게 아니야. 원래는 어떤 방식으로든 실험체들을 아지트로 데려가면 그곳에서 벌레를 주입하고 그 벌레를 영양액으로 배양시켜서 완전한 노예로 만드는 거야. 그런 다음 여러 명의 마법사가 그들의 정신을 조종해서 마음대로 부리는 거지. 꽤 과정이 복잡하고 힘든 일이야.”

“그렇지만 너는 이번에 벌레를 이용해서 아지트까지 사람들을 조종하는 것을 성공했지. 그럼 그것은 원래는 불가능한 일이었단 말인가?”

데스티나가 묻자 가스파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벌레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단체로 조종하는 것이 가능해졌지. 그러한 단체 이동을 실험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그런 폭발적인 기술의 향상이 가능해진 것은 근래에 우리의 수장이 데려온 한 소년 때문이었어.”

“소년?”

그때 루시아가 가스파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당신, 그 소년의 이름을 알고 있나요?”

루시아가 그렇게 물었지만 가스파르는 그것까지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몰라. 단지 수장이 그 아이를 꽤나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지. 보통은 벌레를 주입하고 그 벌레를 키워서 감염자로 만드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수장은 그 아이를 바로 실험에 투입하라고 했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지만, 실험은 진행되었지.”

“어떻게 되었지? 실험은 성공이었나?”

“아. 성공이다마다. 성공 수준이 아니야. 그 아이는 신인류에 가장 가까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 거야. 그 아이는 자신의 능력으로 벌레들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였어. 그래서 그 벌레들을 맡은 내가 그런 강력한 조종 능력을 얻을 수 있었던 거고. 그렇기에 근래부터는 은신처로 끌려간 실험체들 중 벌레에 감염된 감염자들의 정신은 그 아이가 관리하고 있어. 그래서 내가 다시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없지.”

“이제는 너의 손에서 벗어났다는 말이로군.”

“그 소년의 능력은 어느 정도나 되는 겁니까?”

데미안은 소년의 능력에 관심이 있는 듯 가스파르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수준이야. 그 능력에 한계가 없지. 만약 기반만 갖추어진다면 그 아이 혼자서 수천 명의 정신을 한 번에 조종할 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

가스파르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데미안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루시아를 바라보았다.

“루시아. 그 아이가 혹시 동생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는 거니?”

데미안은 루시아에게 그렇게 물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닐 거예요. 아닌 게 확실해요. 저희의 부모님은 비를 쫓는 자들에게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동생이 돕고 있다니.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요.”

그들이 대화하는 사이 어느덧 가스파르가 말한 협곡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협곡의 앞에 모인 데스티나 일행을 반기듯 그들의 양쪽에는 두 개의 높은 절벽이 마주 보듯이 서 있었으며 절벽의 높이는 수십 미터에 달했다.

비를 쫓는 자들이 숨어 있는 은거지로 들어가려면 바로 그 협곡의 사이를 통과해야 한다.

“매복의 가능성이 있겠군.”

데스티나가 데미안에게 말하자 데미안은 그녀의 뜻에 동의했다.

“위에서 매복하고 활과 돌을 굴리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지형이로군요.”

“매복은 없어.”

가스파르가 그렇게 말했지만, 그들 중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엘레나! 위에 매복한 적이 있는지 봐주겠어?”

데스티나가 공중에 떠 있는 엘레나에게 묻자 그녀는 데스티나에게 대답했다.

“바람의 정령으로는 저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는 없어.”

그러자 데스티나는 루카에게 말했다.

“루카. 저 절벽으로 올라갈 수 있겠어? 그때 오크 좀비들의 뒤를 쳤을 때처럼.”

그렇지만 루카 역시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로 가파른 절벽은 나로서도 오르는 게 무리야.”

“그렇다면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건가.”

데스티나와 엘레나, 루카의 대화를 듣고 있던 데미안은 말을 몰아서 가스파르의 옆으로 다가갔다.

“당신이 먼저 앞장서서 협곡을 통과해 주시죠.”

“어차피 그러려고 했어.”

“그렇지만 지금 저희는 조금 더 멀찍이서 따라갈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말에서 내리시죠.”

“뭐라고?”

“저희가 거리를 벌리면 곧장 말을 달려서 같은 편에게 도망갈 수도 있으니까요. 어차피 여기서부터는 저희도 천천히 나아갈 예정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말에서 내려서 협곡 안쪽으로 걸어가면 됩니다.”

“이봐. 잠깐만 나는 도망치지 않을 거야.”

“그 말을 믿을 것 같습니까?”

데미안의 압박에 가스파르는 다른 이들을 둘러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어떻게 안 거지?”

“이 협곡 안에는 살기가 가득 차 있습니다.”

데미안의 말에 데스티나 일행은 곧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극한으로 단련된 오감.

그것이 성전 기사단 부단장, 데미안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무기 중 하나였다.

“이 협곡 안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물론 당신 같은 경우 무사히 빠져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겠죠. 그 방법은 당신 혼자만 지키는 방법은 아닐 겁니다. 당신은 로즈버드 빌리지의 사람들을 협곡 안쪽으로 통과시켜 은신처까지 데려갔을 테니까요.”

가스파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을 앞장세웠다고 하더라도 같이 들어가는 순간 저희는 함정에 걸려들게 될 겁니다. 그러면 당신은 곧장 말을 달려서 우리의 손에서 벗어날 셈이었겠죠. 그렇지만 말에서 내려서 걸어가는 순간 당신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데미안은 자신의 마검인 하르페를 꺼내 들었다.

“제 검 솜씨를 익히 들어서 알고 계시겠죠. 뛰는 정도로는 제 검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말을 타고 도망치는 것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겠지만 사실 말을 탔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어차피 너희는 이곳을 지나가지 못해.”

가스파르는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어차피 저쪽에서도 너희가 오는 것을 알고 준비를 해두고 있을 테니까.”

“우리의 움직임이 이미 노출되었다는 말이군요.”

“그래.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우리의 은신처에는 이 협곡을 감시할 수 있는 장치가 있지. 같은 비를 쫓는 자들과 포로들이 온다면 이 ‘협곡의 파수꾼’이 움직이지 않도록 은신처 쪽에서 조처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이 들어오면 곧장 파수꾼이 움직이는 거지. 파수꾼이 움직인다면 나조차도 어쩔 수가 없어.”

“어쩐지 순순히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해 준다고 했지.”

엘레나가 하늘에서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오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 파수꾼이라는 것은 뭐지?”

“놈은 땅속에서 살고 있어.”

가스파르는 손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놈은 우리가 짐승을 실험체로 해서 만들어 낸 어마어마한 괴물이다. 땅으로 특수한 진동을 흘려보내는 것으로 조종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 두었지. 이미 은신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테니 이곳을 억지로 넘어가려 하면 바로 파수꾼을 움직이게 할 거다. 내가 같이 있다고 하더라도 의미 없어. 저쪽에서는 반드시 파수꾼을 부를 거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우리들은 조직을 위해서 희생하도록 맹세를 하거든.”

데스티나가 데미안에게 말했다.

“저자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나?”

“아까도 말씀드렸듯 허풍이 아닙니다. 저 안에는 분명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우회하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데스티나의 말에 데미안이 대답했다.

“어차피 나중에 후발대가 통과하기도 해야 하고 또한 납치당한 포로들을 데리고 나올 때에도 그 협곡을 이용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위험의 싹을 미리 제거해 놔야 합니다.”

“그래. 알았다. 그럼 안전하게 진입을 할 수 있도록 나름의 진형을 갖추도록 하지.”

“아뇨. 제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자네 혼자서?”

혼자서 나서겠다는 데미안의 말에 거기 있는 모두는 물론 가스파르까지 놀라고 말았다.

“분명히 이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대단히 위협적입니다. 느낌으로 알 수가 있죠. 그렇지만 넘어서지 못할 만한 것도 아닙니다. 이 정도의 장애물은 저 혼자 해결하고 나머지 분들은 전력을 보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무모하다고 말렸겠지만, 데미안의 실력을 잘 알고 있던 데스티나는 그것이 절대로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알았다. 그럼 부탁하지.”

데스티나의 담백한 부탁에 데미안은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천천히 말을 몰면서 앞으로 나섰다.

마치 가볍게 산책하러 나가는 것 같은 데미안의 행동과 그를 쉽게 보내주는 데스티나의 믿음.

데미안의 실력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던 이들은 지금이야말로 전설적인 검객인 데미안의 실력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직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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