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갑작스럽게 루드비히의 공격이 멈추자 그의 공격을 막고 있던 툴레오의 방어막 역시 소멸했다.
그러면서 하늘에 떠 있던 툴레오의 갑옷은 마치 글라이더처럼 바람을 타고선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단장님!”
방어막이 사라지면서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데스티나는 뒤쪽으로 힘없이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데미안은 단숨에 데스티나에게 달려가서 쓰러지는 그녀는 받아 냈다.
“단장님…….”
데미안은 제대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데스티나는 지금 완전히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그녀의 오른팔은 어깨까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녀의 오른쪽 어깨가 있어야 할 부분과 겨드랑이의 사이는 아예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깨끗했다.
그리고 데스티나의 머리칼 일부가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다.
데미안은 데스티나의 맥을 짚었다.
‘맥이 약해.’
데스티나의 맥은 언제 끊어질지 알 수가 없을 만큼 약하게 뛰고 있었다.
데미안은 데스티나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주환을 바라보았다.
“저는 이곳을 이탈합니다.”
“뭐라고요?”
주환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루드비히와 클레이브에게 밀리기는 했지만, 데미안이 이곳에서 가장 큰 전력 중 하나라는 것은 분명 사실이었다.
그런데 아직 일이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자리를 이탈하겠다는 데미안의 말에 주환은 어안이 벙벙해졌던 것이다.
“잠깐만요! 당신이 빠진다면!”
“지금 단장님은 죽음의 문턱에 계십니다. 당장 치료를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되실지 모릅니다.”
주환은 데스티나가 그렇게 심각한 상황에 부닥쳐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로서는 쉽게 자리를 뜨겠다고 말하는 데미안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함선의 안에는 이온과 엘레나 그리고 루시아가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저희의 원래 계획은 이곳에 끌려온 사람들을 구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정말로 운 좋게 공격이 멈추었지만 언제 공격을 재개할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그 전에 저희 단원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최대한 빨리 저들을 대피시키는 것이 급선무겠죠.”
데미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환은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함선의 안에는 이온과 엘레나, 루시아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의 목숨과 데스티나의 목숨을 저울질하였을 때 데미안의 처지에서 나머지 세 명의 생명은 비교할 가치 자체를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데미안은 이온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고 엘레나와 루시아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
지금 데미안이 신경을 쓸 만한 동료는 전부 절벽의 아래에 있었다.
[데미안은 데스티나를 숭배하고 있어.]
그렇게 말했던 엘레나의 말이 떠올랐다.
“안 돼. 당신이 가버리면!”
주환은 데미안을 말리기 위해서 그렇게 외쳤다.
“뒤는 맡기도록 하지요.”
데미안은 그 말만을 남긴 채 데스티나를 안은 채로 함선의 아래쪽으로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놀랍게도 맨몸으로 절벽의 아래쪽으로 단숨에 몸을 날렸다.
“저럴 수가.”
주환은 허탈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사라져 버린 데미안의 뒷모습을 좇던 주환은 지금 다시 루카와 자신에게 다가오는 살덩이 괴물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만약 그가 동료를 버리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도망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주환은 도망가지 않았다.
그에게 동료를 버리고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그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동료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동료를 배신할 수가 없었다.
주환은 끝까지 저항하기로 마음먹고 돌격 소총을 들어서 방아쇠를 당겼다.
어느 정도 발사되던 돌격 소총의 탄환이 떨어지자 주환은 새로운 탄창을 찾았다.
그러나 손에 잡히는 탄창이 없었다.
‘이제 남은 탄창이 없는 건가?’
주환은 들고 있던 돌격 소총를 내려놓고 권총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권총을 살덩이 괴물들에게 발사하면서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루카! 걱정하지 마! 내가 끝까지 지켜 줄 테니까!”
* * *
부유체에 연결된 이온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연산 능력을 이용해서 부유체를 다루기 위해서 노력했다.
함선 오르페우스가 가지고 있는 거대한 연산 능력의 보조를 받을 수가 없는 상황.
그렇지만 이온은 그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아까 전 적합한 수준의 차원에 대한 위치를 특정해 놓은 상태였기에 해야 하는 연산량을 대폭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빨리. 더 빨리.’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연산의 양이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계산이 끝나고 난 뒤에 남아 있었다.
그것은 부유체가 차원 이동을 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충전하는 일이었다.
‘내가 그 정도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고민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가 없었기에 이온은 부유체를 조종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한편, 그러한 이온을 기다리고 있는 엘레나 역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주변에서 점멸하는 차원의 문들이 그들을 향해서 좁혀져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엘레나는 눈을 감은 채로 앉아 있는 이온의 양쪽 겨드랑이에 손을 넣으면서 루시아를 불렀다.
“루시아.”
“응?”
“우선 이 자리를 피해야겠어. 너도 페드로를 데리고 나를 따라와.”
“알겠어.”
두 사람은 각자 이온과 페드로를 부축하면서 차원의 문들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자리 쪽으로 끌고 갔다.
“엄청나게 무겁네.”
이온을 끌고 가고 있는 엘레나는 이온이 날씬한 몸을 가지고 있지만, 덩치 큰 성인 남성과 비슷한 무게를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두 사람이 페드로와 이온을 겨우겨우 안전한 곳까지 옮겼을 때 갑자기 이온이 눈을 떴다.
“성공했어요!”
이온이 소리를 지르자 그녀를 잡고 있던 엘레나가 깜짝 놀라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놀랐잖아!”
엘레나가 타박하자 이온은 부유체에서 자신의 코드를 뽑고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을 이었다.
“중요한 것들은 전부 세팅해 두었어요. 이제 이것에 에너지를 충전하면 돼요. 그럼 위험할 수가 있으니까 저에게서 조금만 물러서 주세요.”
이온의 권유에 루시아와 엘레나는 그녀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두 사람이 떨어진 것을 확인하자 이온은 다시 파괴자 모드로 들어간 다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부유체에 에너지를 주입하기 시작하였다.
파직!
이온의 손을 통해 엄청난 양의 전류가 부유체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그녀의 머리에 나 있는 뿔의 사이에서도 푸른색의 번개가 튀었으며 이온의 주변에서도 번개들이 번쩍거렸다.
‘저것 때문에 자기에게서 물러나라고 한 건가?’
이온이 부유체를 충천하면 충전할수록 부유체의 이음새에서 새어 나오는 주황색의 빛이 점점 강해졌다.
그렇지만 무엇인가 문제가 생겼는지 이온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며 부유체의 빛도 일정 이상 강해지지 않았다.
“에너지가…… 에너지가 부족해요! 이대로 가다간 차원 이동을 실행할 수가 없어요.”
이제는 더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차원의 문들은 이제 코앞까지 와 있었으며 열려 있는 엔진실의 문 안쪽으로 살덩이 괴물들이 우르르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페드로가 몸을 일으켰다.
“페드로!”
“괜찮은 거야? 너.”
루시아와 엘레나가 동시에 외쳤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을 뒤로하고 기어가듯이 이온에게 접근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직 온전히 회복하진 못한 상황인 모양이었다.
“잠깐!”
루시아가 페드로를 말리려고 할 때 엘레나가 손을 들어서 제지했다.
“기다려 봐. 페드로가 뭔가를 할 생각인 것 같아.”
페드로가 이온에게 가까이 가자 이온이 페드로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주입하고 있는 에너지.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것과 성질이 비슷해.”
그렇게 말하면서 페드로는 자신의 등에 나 있는 벌레의 다리들을 펴 보였다.
“그 에너지를 어디에 주입할 수 있는지 알려 주면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
이온은 페드로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했다.
그녀가 페드로에게 에너지의 충전 지점을 알려 주자 페드로는 자신의 벌레 다리들을 움직여서 그 지점들에 다리 끝에 달린 수정을 가져다 댔다.
“시작할게.”
그 말과 함께 페드로의 몸에서 발사되는 하얀색의 번개가 부유체의 안에 흡수되기 시작하였다.
푸른색의 번개와 하얀색의 번개.
그 두 가지 색의 번개가 만들어 내는 어지러운 움직임이 두 사람의 주변을 가득 채웠다.
“크윽!”
페드로의 얼굴 역시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 역시 지금까지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수준의 번개를 부유체에 주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페드로의 노력이 도움이 되는 듯 정체되어 있던 부유체의 빛이 점차 더욱더 밝아져 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온은 페드로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페드로는 이온의 얼굴을 보더니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순간 그 빛이 최대치가 되면서 주변을 삼킬 듯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윽!”
여러 개의 서치라이트를 동시에 켠 것과도 같은 밝기에 엘레나는 손을 들어서 얼굴을 가렸다.
위잉.
수천, 수만 마리의 벌레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소리.
그들 주변에 다가오고 있던 수많은 차원의 문들이 점차 사라져 갔다.
“성공한 건가?”
엘레나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녀는 바닥이 크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엘레나! 엄청나게 흔들리고 있어!”
루시아가 그렇게 외치자 엘레나는 그녀가 쓰러지지 않도록 손을 잡아 주었다.
엘레나는 처음에는 배의 안쪽을 점거한 가스파르가 사방을 두드리기에 생겨난 진동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지금 오르페우스호는 공중으로 떠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떠 오르는 방식이 거칠었기에 선체가 요동을 치고 있었으며, 함선의 안에 있는 이들은 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오르페우스호는 자체적인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그들은 볼 수가 없었으나 오르페우스호의 바깥에는 거대한 차원문이 열려 있었으며 부유체의 조종을 통하여 차원문이 오르페우스호를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었다.
“이봐! 이온! 지금 이거 괜찮은 거야?”
엘레나가 이온을 불렀지만, 이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온은 계속해서 부유체의 안에 에너지를 주입하고 있었지만, 몸의 움직임은 완전히 멎어 있었다.
이온은 안드로이드였지만 가동되고 있을 때에는 눈빛에 인간과 비슷한 생동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의 눈에 그러한 생동감은 완전히 사라진 채였다.
“이온…….”
그때, 그들을 감싸고 있는 오르페우스호의 내부가 전체적으로 조각나기 시작했다.
“아앗!”
“꽉 잡아!”
엘레나는 루시아가 떨어지지 않도록 그녀를 껴안고 버텼다.
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오르페우스호는 지금 점점 잘려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