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그래. 당신. 그럼 내가 누구랑 싸울 거로 생각한 거야?”
안토니오의 말에 루카는 주환을 제지하면서 연병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잠깐만. 너는 내가 상대해 주겠다고 했었잖아.”
루카의 말에 안토니오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뭐야. 내가 진짜로 너를 상대해 줄 리가 없잖아. 너 같은 어린애랑 싸우면 주변에 웃음거리가 된다고.”
“내가 무서워서 빼는 건 아니고?”
루카의 도발에 안토니오는 코웃음을 쳤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내가 너랑 붙어 줄게. 저기 있는 저 녀석보다는 내가 훨씬 더 세거든. 강한 사람이랑 붙어 보고 싶다고 했으니까. 이런 기회는 날마다 오는 게 아니야.”
저기 있는 저 녀석은 물론 주환을 가리키는 것이다.
안토니오는 기가 찬 듯했지만 어쩔 수 없이 루카의 뒤쪽을 가리켰다.
“그럼 저기 가서 목검을 가져오든지 적당한 무기를 가지고 와.”
“그럴 필요 없어.”
루카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마디를 뚜둑 하고 꺾었다.
“맨손이면 충분해.”
“뭐?”
자존심이 상한 안토니오가 연병장의 바깥쪽에 서 있는 갈레오스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좋아. 알았어. 그럼 나도 맨손으로 해주지.”
안토니오는 권투 선수처럼 양손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시작 신호는 필요 없지?”
루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안토니오는 거리를 단숨에 좁히면서 루카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매일매일 단련한다는 그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거리를 좁히는 보법. 일직선에 가깝게 내뻗는 주먹.
분명 안토니오는 싸움에 능숙했으며, 어설픈 상대였다면 단박에 쓰러뜨렸을 것이다.
문제는 상대가 루카라는 것.
탁!
루카는 안토니오의 주먹을 슬쩍 피하더니 다리로 안토니오의 뒷다리를 슬쩍 걷어찼다.
“어엇!”
그러자 안토니오는 공중으로 뜨면서 연방장의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연병장에 누운 채로 얼이 빠져 있는 안토니오를 내려다보면서 루카는 물었다.
“계속할래?”
“크윽.”
넘어지긴 했지만 아무런 대미지도 입지 않았기에 안토니오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은 자신도 모르게 차고 있는 단검의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잠깐. 안토니오. 그게 뭐 하는 거냐!”
갈레오스가 그렇게 외치자 멈칫 한 안토니오였지만 그는 잡고 있는 손잡이를 놓지 않았다.
“네가 정말로 괴물 사냥꾼이라면 이런 단검 정도는 무리 없이 상대할 수 있겠지?”
안토니오가 묻자 루카는 손을 앞으로 내밀고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얼마든지.”
그러자 안토니오는 단검을 뽑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단검은 직도가 아니라 희한할 정도로 굽어 있는 곡도로, 안토니오는 그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쉭!
안토니오는 루카를 향해서 단검을 휘둘렀다.
그것은 진심으로 상대를 해하려고 하는 의도가 담긴 움직임이었다.
루카는 그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한 다음 옆차기로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컥!”
루카가 힘을 조절하였기에 안토니오는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금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몇 번을 해도 소용없어.”
루카는 단검을 잡고 있는 안토니오의 팔을 붙잡은 다음 바깥쪽으로 돌려서 꺾었다.
손목 관절이 꺾이자 안토니오는 신음만 흘리면서 겨우겨우 버틸 뿐이었다.
그러자 루카는 반대쪽 손바닥으로 안토니오의 가슴을 밀면서 바닥으로 쓰러뜨렸다.
원래 실전이었다면 루카가 엄지손가락과 검지 사이의 부분으로 안토니오의 목을 쳐서 목뼈를 분질렀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었기에 가볍게 가슴팍을 친 것이었다.
안토니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하자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던 경비대원들 사이에서 술렁거림이 일어났다.
“젠장!”
자존심이 상한 안토니오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내가 왜 너 같은 어린애한테!”
안토니오는 포기하지 않고 루카에게 단검을 휘둘렀다.
루카는 살짝 뒤로 물러섰다가 날카로운 돌려차기를 날렸다.
루카의 발뒤꿈치가 단검의 옆면에 명중하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단검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단검은 회전하며 연병장의 바닥으로 떨어졌다.
“네가 왜 나 같은 어린애한테 지는 건지 알아?”
루카의 물음에 안토니오는 얼얼한 손목을 붙잡고는 그녀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건 그냥 네가 약하기 때문이야.”
* * *
어둠이 가라앉은 새벽.
주환과 루카는 다락방에 앉아 창밖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들이 감시하고 있는 곳은 양들이 쉬고 있는 마구간으로, 두 사람이 그곳을 감시하고 있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연병장에서의 소동 이후 주환과 루카가 다시 식당으로 돌아가 식사를 할 때, 갈레오스는 완전히 두 사람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물론, 루카가 단지 안토니오를 제압한 그 대련만으로 두 사람을 신뢰하는 것은 아니었다.
인간 대 인간의 싸움에서 강하다고 해서 괴물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환은 안토니오와의 대련이 끝난 후 자신의 권총을 가져와 멀리 있는 채소들을 하나하나씩 박살 내는 시범을 보여 주었다.
그로써 두 사람의 실력에 대한 검증은 완전히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 *
“두 사람 다 대단한 실력을 갖췄더군.”
주환과 루카가 다락방에 자리 잡기 몇 시간 전의 갈레오스의 집.
하인들이 부엌에서 음식을 가져와 식탁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의 앞에 세팅하고 있을 때 갈레오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루카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내 아들이라서 감싸고 도는 거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안토니오는 제법 실력이 좋은 아이이오. 만약에 나라가 멀쩡했다면 수도로 보내서 기사를 시킬 생각이었으니까. 그런데 안토니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라니. 감탄했소.”
주환은 원래 안토니오가 있어야 할 자리를 바라보았다.
루카와의 대련에서 허무하게 진 것이 창피했는지 안토니오는 지금 식사 자리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주환,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무기라면 능히 그 괴물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오. 그만한 실력이 있는데도 그 실력에 의심하였으니 이 무례를 용서해 주기 바라오.”
갈레오스가 그렇게 말하자 오히려 주환 쪽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영주님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하오. 아까도 안토니오가 말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곳을 방문한 괴물 사냥꾼은 두 분이 처음이 아니오.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여러 곳에 연락을 취했으니까. 그렇기에 두 분이 오기 얼마 전에 괴물 사냥꾼이 우리 마을에 방문하였소.”
“아까 들으니까 괴물 사냥꾼도 당하고 말았다고 하던데.”
“사실이오. 가장 최근에 당한 인간 희생자가 바로 그 사냥꾼이니까. 그러므로 안토니오가 괴물 사냥꾼에 대해서 의심을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그러니 그 일은 너그럽게 넘어가 주시길 바라겠소.”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드님도 다 이 마을을 걱정해서 그랬던 것일 테니까요.”
이어지는 식사 시간. 식사가 끝난 다음 갈레오스는 하인들에게 후식을 주문한 뒤 두 사람에게 물었다.
“그럼 일에는 언제 착수할 예정인지 묻고 싶군.”
“오늘부터 바로 시작할 생각이에요.”
루카의 대답에 갈레오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럼 필요한 게 있소? 우리 쪽에서 제공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제공하도록 하지. 경비대원들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뽑아내도록 해줄 수도 있고.”
경비대의 이야기가 나오자 루카가 그에게 질문했다.
“경비대원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경비대원들은 밤마다 경비를 서고 있는 건가요?”
“밤뿐만 아니라 24시간 최소한의 교대 횟수로 근무하고 있소. 경비대원들이 과로로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들 모두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심각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힘을 내서 열심히 해주고 있지.”
“효과는?”
“효과가 있다고 해야 할지……. 경비대원들의 순찰 빈도를 늘린 이후로는 확실히 놈이 나타나는 빈도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오. 그렇지만 워낙 신출귀몰한 놈이라서 아까 이야기했던 단 두 번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모습조차 본 일이 없었소. 놈이 조심성이 늘어나면서 확실한 대상만을 사냥한다는 이야기일 지도 모르지.”
“가축들이 사는 마구간은 확실히 지키고 있는 거죠?”
“마구간들은 빈틈없이 지키고 있소. 경비대가 가장 많이 투입된 곳이지.”
갈레오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루카를 보며 주환은 생각을 정리하더니 그에게 본격적인 계획을 설명했다.
“우선은 마구간 중 한 곳을 골라서 경비대원들을 물려 주세요.”
“어째서 그런?”
거기까지 말한 갈레오스는 곧 주환의 생각을 읽은 듯 표정이 변했다.
“놈을 한곳으로 몰아넣자는 계획인 것 같군.”
“네. 늑대 인간은 감각이 예민하여서 경비대원들이 숨어 있다고 하더라도 기척이나 냄새로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비대원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은 자연스럽게 피하게 되고 오히려 사냥의 위험도가 좀 더 낮아진 인간을 노리는 걸 테고요. 그렇기에 마구간 중 하나의 경비를 느슨하게 만들면 그는 인간이 아니라 다시 사냥하기 쉬운 마굿간을 노릴 겁니다.”
주환의 이야기를 듣던 루카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늑대 인간에게 그대로 가축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잖아?”
주환은 루카의 의문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갈레오스를 보면서 물었다.
“혹시 여기 칼데브 마을 전체 지도가 있습니까?”
* * *
갈레오스에게 지도를 받은 주환은 그 지도를 통해서 늑대 인간을 몰아넣을 수 있는 최적의 마구간을 고른 후 멀리서도 그 마구간을 잘 감시할 수 있는 빈 건물을 선택했다.
그것이 두 사람이 새벽에도 잠을 자지 않고 건물의 다락방에서 버티고 있는 이유였다.
그들이 있는 다락방은 늑대 인간이 방심할 수 있을 만큼 마구간과의 거리가 떨어져 있으면서도 마구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확실히 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물론, 보통의 인간이라면 위와 같은 감시가 불가능할 정도의 거리이긴 했다.
그렇지만 루카의 시력이라면 그 정도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특히나 루카의 눈은 어둠 속에서는 고양이의 그것과 비슷하게 변하기 때문에 캄캄한 밤이라도 어느 정도 밝게 볼 수가 있었다.
갈레오스의 명령대로 마구간을 지키고 있던 경비대원들은 현재 전부 철수한 상황.
지금의 밤은 오로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오늘 놈이 올까?”
루카는 다락방의 창밖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주환에게 물었다.
“모르지. 놈은 불규칙하게 나타난다고 했으니까. 당분간은 낮에 자고 이렇게 밤에 깨어 있는 생활을 계속할 수밖에 없어. 나타나는 날은 정확하게 알 수 없어도 놈이 새벽을 틈타서 나타나는 것은 확실하니까.”
다락방의 한쪽에 기댄 채로 주환은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루카 너, 안토니오에게 좀 너무한 거 아니야?”
“뭐가? 상대는 칼을 들고 있었고 나는 맨손이었어. 조금만 힘을 더 주었다면 뼈를 부러뜨릴 수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아무 곳도 다친 곳이 없이 끝났잖아.”
“몸은 다치지 않았지만, 마음은 상처를 입었겠지.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영주의 아들인데 너무 모욕을 준 것 같단 말이지.”
“그런 면에서는 내가 좀 섬세함이 없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나도 안토니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
“어째서?”
루카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우리의 실력을 시험해 본다는 것은 이 마을 위해 사기꾼을 걸러내겠다는 의도일 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저 자기의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거든. 누가 봐도 우리를 얕보고 있기도 했고. 그런 생각이 드니 좀 욱하더라고.”
“그런 건 철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
“철이 없어서 미안하군.”
주환은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다락방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다락방의 입구가 살짝 열려 있었는데, 그 틈으로 안토니오의 얼굴이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