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돈주머니로 가슴을 맞자 안토니오는 비틀린 웃음을 지으면서 손을 들어 가슴팍을 털어 냈다.
“이건 정말로 무례한 짓이로군.”
둘 사이의 신경전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루카는 안토니오에게 회심을 일격을 날렸다.
“혹시 오늘 마을 정문의 경비를 담당했던 사람이 누구죠?”
루카의 말에 광장에 있던 경비대원 중 두 사람이 손을 들었다.
“저희입니다.”
“오늘 안토니오가 외출했나요?”
루카의 물음에 경비대원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오늘 분명히 점심때쯤 외출을 하셨습니다.”
“언제 돌아왔죠?”
“돌아오신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대답이 돌아오자 루카는 안토니오에게 따졌다.
“우리가 움집에서 로렌조가 살해당하는 것을 보았을 그 시점은 네가 외출을 했던 시간대에 겹쳐져 있어. 그것도 우연이라고 할 수 있나?”
“그건 우연일 뿐이야.”
“그럼 외출을 해서 무엇을 했지? 산에 올라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있어?”
안토니오는 큭큭 대며 웃었다.
“하지 않은 것을 증명하라니 어이가 없군. 그렇지만 어울려 주도록 하지. 나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으니까.”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나는 혼자서 외출한 게 아니야. 나와 동행을 한 사람이 있거든.”
그의 말에 루카와 주환은 반사적으로 정문 경비대원을 바라보았다.
“사실입니다. 단지 외출을 했느냐만을 물어보셔서 말씀을 드리지 않았는데 안토니오 도련님은 동행자가 있으셨습니다.”
안토니오가 손가락을 튕기자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던 마을 주민들의 속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그는 마을의 장의사로, 안토니오가 화장을 주장하기 전에는 마을에서 장례식을 담당하던 인물이었다.
“제, 제가 안토니오 도련님과 같이 외출했습니다.”
안토니오는 장의사를 보면서 물었다.
“같이 외출했을 때 내가 산으로 올라간 적이 있었나?”
안토니오의 물음에서 장의사는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부, 분명 도련님은 저와 계속 같이 있으셨습니다. 제 곁을 한 번도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루카와 주환은 장의사가 자신들과 눈을 마주치지를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그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대체 밖에서 뭘 했다는 거야?”
주환이 장의사에게 묻자 그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그, 그저 다음에 합동 장례식이 있을 때 더 좋은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서 돌아다녔을 뿐입니다. 당신들이 그때 장례식을 망쳐 놓았기 때문에 땅에 나쁜 기운이 깃들어서 다른 좋은 기운이 서린 땅을 찾아다니고 있었던 거라고요. 이제 저희를 그만 괴롭히십시오!”
장의사는 안토니오에게 매수당한 꼭두각시일 것이다.
장의사의 말이 끝나자 안토니오는 의기양양하게 다시 돈주머니를 주워서 루카의 얼굴에 던졌다.
퍽!
루카의 얼굴에 부딪힌 돈주머니가 열리면서 그 안에 있는 돈들이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이 자식!”
그때, 안토니오의 행동을 도저히 참지 못한 루카의 손에서 손톱이 길게 솟아났다.
손톱에 이어 그녀의 머리에서 귀가 솟아오르자 그것을 목격한 마을 주민들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저 아이도 괴물이야!”
“괴물이 나타났어! 저 녀석도 늑대 인간이야!”
고함과 공포에 질린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고 근처에 있던 경비대원들이 재빨리 갈레오스에게 다가와 그를 막아섰다.
“영주님 놈들에게서 떨어지십시오!”
그리고 다른 경비대원들이 루카와 주환의 주변을 포위했다.
경비대원들이 안토니오 역시 보호하려고 했지만, 안토니오는 귀찮다는 듯 그들의 팔을 밀치고는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런 세상에.”
안토니오의 목소리에는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사실은 너희가 진짜배기 괴물이었군그래!”
주환은 루카를 붙잡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루카. 이제 본 모습으로 돌아와!”
그러나 루카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그녀는 심장이 터질 듯이 뛰면서 온몸의 세포들이 들끓어 오르는 감각이 온몸을 조여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이상의 변이가 일어나려는 징조였다.
루카는 그제야 극도의 흥분 상태가 자신을 진짜 늑대 인간의 모습으로 몰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다시 되돌리려고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할 수가 없었다.
그사이 경비대원들은 두 사람을 제압하기 위해서 사방에서 조여 오고 있었다.
경비대원들이 주환과 루카를 둘러싸고 점점 거리를 좁혀오자 주환은 돌격 소총의 탄을 비살상탄으로 교체하면서 루카에게 말했다.
“루카 우선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그럴 필요 없어. 여기 있는 놈들을 다 제압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루카의 말에 주환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루카는 필요 이상의 흥분 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늑대 인간의 피가 루카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건가?’
이런 상황에서 대립이 더 격화된다면 불필요한 폭력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직감한 주환은 양쪽으로 루카의 볼을 꼬집었다.
“아야야! 뭐 하는 거야!”
흥분 상태에 빠져 있던 루카가 깜짝 놀라면서 주환을 바라보았다.
지금 루카를 지배하고 있는 심리 상태의 흐름을 끊어 놓은 주환은 루카에게 얼굴을 바짝 대고 소리쳤다.
“지금 여기서 싸우면 될 것도 안 돼!”
“그렇지만 저런 놈을 그냥 놔둘 순 없어!”
“나도 알아! 저들이 네가 늑대 인간인 것을 안 이상 우리말을 듣지 않을 거야. 우선 후퇴하고 다음 기회를 노리자고!”
주환의 설득에 루카의 몸에서 늑대 인간의 피 탓인 흥분감이 조금 사라져 갔다.
루카는 마지못해 뒤로 물러섰다.
“알았어. 그럼 빨리 여기서…….”
그때, 그들을 조여 오던 경비대원 중 몇 명이 주환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주환은 반사적으로 그들의 공격을 피했다.
푹!
그때, 주환은 허벅지를 지나가는 뜨거운 고통을 느꼈다.
경비대원의 창이 그의 다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다리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주환은 돌격 소총을 들어서 가장 가까이 다가온 경비대원에게 발사했다.
비살상탄이 그의 가슴팍에 명중하자 경비대원은 충격을 받으며 뒤쪽으로 넘어져 버렸다.
“아앗! 놈들이 반격한다!”
“살인자다!”
자신의 동료가 바닥에 쓰러져서 기절하자 경비대원들은 고함을 지르며 주환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잠깐! 저 사람은 죽은 게 아니야! 그냥 기절한 거라고!”
주환은 그렇게 외쳤지만 그의 목소리는 그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경비대원들이 주환이 자신의 무기를 가지고 무서운 파괴력을 자랑하는 것을 이미 보았기 때문이었다.
“네놈들!”
주환의 다리에서 흐르는 피를 보자 주환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루카는 다시 흥분 상태로 돌입했다.
마치 완전한 변신 상태를 향해서 가듯 그녀의 머리칼이 더욱더 풍성해졌으며 얼굴의 이목구비가 점점 늑대 인간의 그것과 가까워져 갔다.
“루카! 나는 괜찮으니까 빨리 여기서 나가! 빨리!”
주환은 루카의 앞을 막아서면서 달려드는 경비대원들을 향해서 총을 발사했다.
총을 맞은 경비대원들이 바닥에 쓰러졌지만, 그들은 두 사람을 향해서 다가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주환은 지금 동료를 죽이는 불구대천의 원수인 것이다.
주환의 외침에 루카는 으르렁거리면서 갈레오스의 뒤에 숨어 있는 안토니오를 바라보았다.
안토니오는 루카를 비웃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검이 들려 있다.
뻔뻔한 안토니오의 모습을 보면서 루카는 피가 끓어 올랐지만, 그녀는 안토니오에게 달려들 수가 없었다.
갈레오스는 모르고 있었지만, 안토니오가 명백하게 갈레오스를 방패막이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루카가 안토니오를 공격하면 안토니오는 어떻게든 갈레오스가 거기에 휘말리게 할 것이다.
아직까지 이성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던 루카는 안토니오를 상대하는 것을 우선 포기하고 주환을 말대로 칼데브 마을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몸을 돌렸다.
“주환! 여기를 빠져나가자! 빨리 따라와!”
“알겠어! 먼저 가! 바로 따라갈 테니까!”
경비대원들이 마구잡이로 달려들고 있었기에 주환은 쉽사리 몸을 돌릴 수 없었다.
총을 발사하던 주환은 탄환이 떨어진 것을 느끼고는 곧바로 예비탄창으로 교환하려 하였다.
그렇지만 경비대원들을 지휘하는 경비대장은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거대한 그물을 위쪽으로 빙빙 돌리더니 주환을 향해서 던졌다.
경비대장의 손을 벗어난 그물을 공중에서 펼쳐지면서 주환을 덮쳤다.
주환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었지만, 그물에 갇히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주환이 그물을 자르기 위해서 나이프를 꺼내려고 했지만, 경비대원들이 그물의 양쪽을 잡고 거세게 당겼다.
그러자 주환이 그물 안에서 넘어지면서 경비대원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끌려 들어갔다.
마치 개구리의 혀에 잡힌 파리가 끌려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주환!”
루카가 당황하고 있을 때 주환은 끌려가면서도 루카가 들을 수 있게끔 크게 소리쳤다.
“나는 걱정하지 마! 우선 너라도 빠져나가! 다음 기회를 노리는 거야!”
“그렇지만!”
“나는 괜찮으니까! 어서 가라고!”
주환의 외침에 루카는 하는 수 없이 몸을 돌리며 주환을 향해 당부했다.
“죽지 마!”
그 말만을 남긴 채 루카는 우선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루카를 보면서 경비대원들이 석궁을 쏘고 창을 던져 댔지만 루카에게는 닿지 않았다.
루카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공중으로 뛰어올라 근처에 있는 건물 위에 올라선 뒤 고개를 돌려 붙잡힌 주환을 바라보았다.
주환이 그물의 바깥으로 손을 내밀어서 어서 가라고 손짓을 하자 루카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다른 건물로 몸을 날렸다.
“저 괴물을 잡아!”
경비대장이 명령을 내리자 경비대원들의 일부가 루카를 잡기 위해 추격을 시작했다.
그리고 경비대장은 롱소드를 뽑아 들고는 그물 안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주환에게로 다가갔다.
“우리 대원들을 저렇게 나 죽이다니.”
“아무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너 같은 괴물의 하수인은 즉결 심판이다!”
경비대장이 검을 들어서 그물의 안에 갇힌 주환을 찌르려고 했다.
그리고 그가 검을 내리찍으려고 하는 그 순간.
“멈추게!”
경비대장을 막아선 목소리는 바로 갈레오스의 목소리였다.
갈레오스는 경비대장을 막으며 주환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영주님. 이런 놈은 살려 주어서는 안 됩니다.”
“거길 보게.”
갈레오스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경비대원들을 가리켰다.
주환의 비살상탄을 맞고 충격에 기절했던 그들은 시간이 지나자 신음을 흘리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