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주환은 그가 어떻게 혼자서 마을 사람들을 다 죽일 것인지 머릿속에서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
주환은 그것을 그저 허풍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안토니오는 진짜 연쇄 살인범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모든 마을 사람들을 다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화풀이로 몇 명의 희생자를 만들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주환은 황급히 감옥의 문으로 다가갔다.
손으로 문을 당겨 보았지만, 당연히 열릴 리는 없었다.
주환은 총을 들어서 개머리판으로 감옥의 문을 때리기 시작했다.
쾅! 쾅!
주환은 잠금장치가 걸려 있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개머리판으로 강타했다.
그가 계속 문을 때리고 있을 때, 복도 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무슨 소란이야?”
다른 곳에 있던 경비대원이 그가 문을 때리는 소리를 듣고 확인 목적으로 오는 모양이었다.
주환이 때리는 것을 멈추고 총을 옆쪽으로 내려놓자 경비대원이 복도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주환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그러자 주환은 그 경비대원에게 외쳤다.
“빨리 이 문을 열어 줘!”
“뭐?”
경비대원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주환을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 빨리 나가지 않으면 살인범이 거리를 돌아다니게 된다고!”
“살인범? 누구?”
“안토니오.”
주환의 말에 경비대원을 헛웃음을 터뜨렸다.
“안토니오 도련님이?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하고 있군.”
“진짜라니까! 지금 안토니오는 오늘 밤 모든 마을 사람들을 다 죽일 생각이야!”
“허풍 좀 적당히 쳐!”
경비대원은 되레 주환에게 화를 내면서 그를 훈계하기 시작했다.
“안토니오 도련님이 이상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기 형까지 죽일 인물은 아니야. 모함해도 적당히 해야지.”
경비대원의 말에 반박하려던 주환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입씨름을 하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나중에 영주님이 오실 테니까 억울한 게 있으면 그때 말하도록 해. 솔직히 나도 너희가 그렇게 나쁜 녀석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뭔가 오해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네 말만 듣고 문을 열어 줄 수 있는 권한 따위 나한테는 없다고.”
경비대원의 말을 듣고 있던 주환은 꾀를 내었다.
“증거가 있어.”
“뭐?”
“안토니오가 살인범이고 로렌조를 죽였다는 증거가 있다니까.”
“그런 증거가 있으면 왜 말하지 않았어?”
경비대원의 날카로운 지적에 주환은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빠르게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잠깐 잊어버리고 있었어. 그리고 내가 제대로 변론을 할 기회도 주질 않았잖아?”
주환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주머니에 증거를 넣어 놨었어. 이걸 줄 테니까 영주님에게 가져다줘. 그럼 바로 이곳으로 달려올 테니까.
주환이 주머니를 뒤지는 시늉을 하자 경비대원도 궁금해진 듯 감옥 문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 순간, 주환은 다른 쪽 손을 뻗어 경비대원의 눈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 세워져 있던 돌격 소총을 들어서 경비대원을 겨누었다.
갑자기 주환이 총을 겨누자 경비대원은 깜짝 놀라서 손을 들었다.
“이게 뭔지 알고 있지?”
주환의 말에 경비대원은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1초도 안 돼서 죽일 수가 있어. 그러니까 빨리 이 문을 열어. 빨리!”
주환의 협박에 경비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춤에서 감옥 열쇠를 꺼내 감옥의 문을 열어 주었다.
감옥에서 나오면서도 주환은 경비대원에게서 총구를 거두지 않았다.
상대 역시 손에 들고 있지만 않을 뿐 검과 단검으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시키는 대로 했잖아. 나를 죽이거나 하지는 않을 거지?”
경비대원이 그렇게 물었지만 주환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내 나머지 짐 어디 있어?”
* * *
안토니오는 갈레오스와 루카를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았다.
그는 모든 상황을 이해한 듯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눈을 감았다.
“네 방에서 이런 것들을 찾아냈다.”
갈레오스는 안토니오에게 들고 있는 무기들을 내밀었다.
“정말로 네가 한 짓이냐?”
안토니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로렌조를 죽인 게 너냐고 묻고 있지 않으냐!”
갈레오스가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일갈하자 안토니오는 겁을 집어먹은 듯 뒤로 물러섰다.
“화내지 마세요, 아버지.”
“화를 내지 말라고? 네가 한 짓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아직도 모르겠느냐? 너는 나와 마을 사람들을 속였고 죄 없는 사람들을 죽였다. 그리고…… 그리고 네 형까지도 살해했지. 똑바로 대답해 봐라. 정말 그 모든 것들을 네가 벌인 것이냐!”
고개를 떨구고 있던 안토니오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아버지. 모두 제가 한 일입니다…….”
안토니오의 대답에 갈레오스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듯 잠시 주춤거렸다가 겨우겨우 정신을 가다듬었다.
“대체 어찌하여 이 지경까지 왔단 말이냐? 왜? 어째서? 어째서 그런 일을 벌인 거냐!”
안토니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갈레오스와 안토니오가 대화하는 동안 루카는 계속해서 안토니오의 동태를 감시했다.
그가 무슨 짓을 벌일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안토니오는 갈레오스에게 물었다.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몰라서 묻는 것이냐? 너는…… 너는 나의 아들이지만 너의 죄는 감싸줄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너는 마을 재판에 넘겨질 것이고 그곳에서 너의 처분이 결정되겠지.”
“하지만 아버지.”
안토니오는 애원하는 목소리로 갈레오스에게 외쳤다.
“그들은 분명 저를 죽일 겁니다. 저를 기둥에 묶어 두고 광장에 세워 돌을 던져대겠지요. 아버지는 그것을 견디실 수 있으십니까?”
안토니오가 감정에 호소했지만 갈레오스는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자식의 죽음을 바라는 아비가 어디 있겠느냐.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이건…… 이 아비가 정말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하는 말이라는 것으로 너도 깨달아야 한다. 알겠느냐?”
갈레오스의 말에 안토니오는 더는 빠져나갈 수가 없음을 느낀 듯 고개를 숙여서 갈레오스에게 인사를 했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저 역시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지금 바로 경비대를 부를 것이다. 이제부터 네가 있을 곳은 그곳일 테니까.”
“그렇다면 아버지.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습니까?”
“무엇이냐?”
“잡혀가기 전에 잠시 마음의 준비를 해도 되겠습니까?”
“어떤 마음의 준비를 말하는 것이냐?”
갈레오스의 물음에 안토니오는 자신의 방을 둘러보았다.
“이제는 더 이상 이 방에서 무기를 손질할 일도, 잠을 잘 일도 없겠지요. 잠시 이 방에서 혼자 저의 수집품들을 보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습니다.”
루카는 안토니오의 말에서 모종의 의도를 느꼈기에 갈레오스가 그것을 허락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갈레오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가 이 방의 물건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럼 잠깐 작별의 시간을 주도록 하마.”
“잠깐만요.”
루카는 갈레오스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러다가 도망치기라도 하면요?”
“그럴지도 모르오.”
그렇게 말하며 갈레오스는 안토니오에게 들리게끔 말을 이었다.
“저 녀석이 명예를 모르는 녀석이라면 말이오.”
정곡을 찔린 것인지 안토니오의 얼굴이 굳어졌다.
“안토니오는 기사를 동경하던 아이였지. 기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명예. 만약 안토니오가 조금이라도 기사의 도를 기억하고 있다면 최후의 순간에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반드시 지킬 거라고 믿소.”
“절대 도망치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루카는 갈레오스를 말리고 싶었지만 더 이상 갈레오스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지금 갈레오스는 자기 아들이 죽을지도 모르는 선택을 하고 있다.
아무리 망나니 아들이라고 하더라도 갈레오스에게는 소중한 혈육.
그는 아무리 터무니없는 부탁이라고 하더라도 안토니오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고 싶은 것이다.
루카는 하는 수 없이 갈레오스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알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바로 문의 근처에서 지키고 있도록 할게요. 저는 귀가 밝기 때문에 안쪽에서 수상한 행동을 하면 알아챌 수 있으니까요.”
루카는 안토니오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엄포를 놓았다.
* * *
갈레오스와 루카는 안토니오의 방문 근처에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갈레오스는 이미 하인을 시켜 경비대원들이 안토니오를 연행할 수 있게 자신의 집에 오게끔 명령을 내려둔 상태였다.
이제 안토니오는 죗값을 치르는 것을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루카는 계속해서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오래 걸리네요.”
루카가 갈레오스에게 말하자 갈레오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큰 죗값을 치러야 하니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소.”
갈레오스의 말을 듣던 루카는 문득 자신이 찾아냈던 괴물 사냥꾼의 일기를 떠올렸다.
그 일기가 쓰여 있는 작은 수첩은 지금 루카의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루카는 주머니에서 그 수첩을 꺼냈다.
빛이 바랜 낡은 수첩.
루카는 문득 그것이 뭔가 낯이 익은 수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루카는 황급히 수첩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수첩을 읽고 있는 루카의 눈동자가 점점 흔들려 갔다.
“아아…….”
루카가 탄식을 내뱉자 그 모습을 보던 갈레오스는 의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오?”
루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흐윽…….”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루카는 들고 있던 수첩을 완전히 구겨질 정도로 꽉 쥐었다.
“이! 개자식아!”
루카는 엄청난 분노를 표출하면서 고함을 내질렀다.
엄청난 살기에 갈레오스는 루카에게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루카는 변신하기 시작했다.
바로 늑대 인간의 모습으로.
반수인(獸人) 형태로 변신한 루카는 당장에라도 안토니오의 방문을 부술 기세로 달려들었다.
슉!
그때, 갑자기 푸른색의 투명한 검날이 안토니오의 방문을 통과하면서 튀어나왔다.
푹!
그 검날은 루카의 몸을 베어 버렸다.
루카가 순간 위험을 느끼고 뒤로 몸을 빼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대로 두 동강이 났을 것이다.
푸른 검날이 문을 통과하자 안토니오의 방문은 마치 뜨거운 칼이 지나간 버터처럼 잘려 나가며 앞쪽으로 쓰러졌다.
그러자 문의 뒤에 있던 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버지. 괴물 사냥은 이렇게 하는 거예요.”
안토니오는 그렇게 말하며 절반만 남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