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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139화 (139/182)

139화

데스티나는 데미안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역시 필사적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데미안이 요구하는 이 억지스러운 대련은 데스티나로서는 거절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데스티나는 평소와 다르게 억지를 써서라도 그녀를 붙잡고 싶어 하는 데미안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에 그 요구를 거절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 받아들이도록 하지.”

“정말이십니까?”

“자네도 아직 기사도 정신이 남아있다면 자네가 내뱉은 말을 지킬 수 있겠나?”

“지킬 수 있습니다.”

데미안은 자신이 있었다.

데미안과 데스티나는 기사 학교 시절 서로 수도 없이 대련을 해온 사이였다.

그리고 데미안의 실력이 일취월장한 이후로 그는 데스티나와의 대련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그가 전설의 검사라고 불리던 시점에서는 데스티나 역시 인정할 정도로 두 사람 실력의 격차는 상당히 벌어진 상태였다.

데스티나 역시 강했지만, 데미안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데미안은 자신에게 최대한 불리한 조건을 건다고 하더라도 질 거란 생각을 단 1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데미안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데스티나 역시 왠지 모를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녀가 새로이 얻게 된 오른팔.

데스티나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이 이전과는 달라진 상태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데스티나가 보이는 자신감의 근원이 무엇인지 데미안은 여전히 알지 못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나누고 있는 대화를 뒤에서 듣고 있던 아르테어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 * *

“드디어 도착한 건가.”

나이츠 빌리지의 도착을 눈앞에 둔 이온은 그렇게 말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브와 타마두크의 손에 의해 깨어난 이온은 두 사람에게서 미가동 상태 이후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은 후 곧장 주환을 찾기 위해서 검은 탑을 떠났다.

나이츠 빌리지를 향해서 걷고 있는 이온의 모습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는데, 그녀는 베이지색의 기다란 외투를 걸치고 있었으며 등에는 가방을 메고 있었다.

이온이 검은 탑을 떠나기 직전, 이브는 그녀에게 베이지색의 외투를 건네주면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지금 당신의 옷차림은 너무 눈에 띄어요.]

이온은 이브의 의견을 수용하여 그녀가 준 외투를 입었으며, 이브가 겸사겸사 주환에게 전달해 달라고 한 물건들이 그녀가 메고 있는 가방에 들어 있었다.

타마두크의 안내를 받아서 이온이 이브를 만났을 때, 이브는 이온을 퍽 마음에 들어 했었다.

이온이 인간이 아니라 안드로이드였기에 더욱더 부담 없이 대했을지도 모른다.

이온 역시 자신에게 잘 대해 주는 이브가 좋았다.

이브는 주환은 언젠가는 검은 탑에 들를 것이니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고 하면서 그녀가 검은 탑에 계속해서 머물기를 권했다.

이온으로서도 이브는 자신이 다시 깨어날 수 있게 만들어 준 은인이기도 했기에 그녀의 권유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렇지만 이온은 한시라도 빨리 주환을 만나고 싶었기에 검은 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이브는 이온에게 나이츠 빌리지의 위치를 알려 주었고, 이온은 이브에게 받은 물건들을 들고 그곳에 방문하게 된 것이었다.

이윽고 이온이 나이츠 빌리지에 도착했을 때, 빌리지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성전 기사단원들이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이온이 미가동 상태에 들어갔을 때 검은 탑으로 옮겨지기 전까지는 나이츠 빌리지에 있는 아르테어의 치료소에 있었기에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 단원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온은 단원들의 안내를 받아서 나이츠 빌리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온이 나이츠 빌리지의 한가운데로 들어갔을 때, 그녀는 그곳에서 구름처럼 몰려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대체 지금 무슨 생각들을 하고 계신 겁니까!”

그렇게 외치는 사람은 바로 성전 기사단의 싱클레어였다.

그의 앞에는 데미안과 데스티나가 서 있었으며 그들의 주변에는 소문을 듣고 모여든 성전 기사단원들과 정착민들이 빼곡히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온은 모여 있는 구경꾼들의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를 확인했다.

지금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데스티나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데미안을 질책하는 것에 가까웠다.

“부단장님. 대체 왜 지금 단장님과 대련을 하시려는 겁니까? 단장님은 지금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신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이시라고요. 이런 상황에서 단장님이 몸을 회복하고 계셔도 모자랄 판에 왜 이런 일을 벌이시는 거냔 말입니다.”

싱클레어의 말에도 데미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단장님께서도 받아들이신 일입니다.”

“단장님은 지금 방금 깨어나셔서 정상적인 판단이 아직은 무리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내 정신은 멀쩡하다.”

싱클레어의 말을 듣고 있던 데스티나는 단박에 그의 말을 부정했다.

지금 데스티나는 군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그녀가 애용하던 툴레오의 무구는 사라져 버린 뒤였으며, 어차피 데미안과 검을 나누는 것은 대련의 영역이었기에 굳이 갑옷을 착용하지는 않았다.

그들을 둘러싼 군중 사이에서도 웅성거림이 더욱더 커졌다.

데스티나와 데미안이 서로 대련을 위해서 검을 섞었던 것은 대부분은 기사 학교 때의 일로, 두 사람이 단장과 부단장이라는 직책을 맡게 된 이후로 두 사람이 직접 대련을 하면서 실력을 피력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성전 기사단의 단장과 부단장이 작정하고 대련을 펼치는 자리였으니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흥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데미안은 지금 나에게 관철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 거야. 그리고 나는 그의 친구이자 전우로서 온 마음을 다하여 그것을 받아 주어야 할 의무가 있네.”

데스티나의 말에 싱클레어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지금 무슨 이야기들을 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건 어린애들이나 할 짓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 자고로 기사라면 검으로 말해야 하는 법. 싱클레어 목검을 가져다주게.”

데스티나의 요구에 싱클레어는 하는 수 없이 다른 성전 기사단원이 가져온 목검을 데스티나에게 내밀었다.

목검을 받아 든 데스티나는 한쪽 팔로 그 목검을 휘둘러보았다.

지금 그녀는 자신의 오른팔의 컨디션 상태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데미안 역시 싱클레어에게서 목검을 받아들었다.

데미안은 데스티나를 보면서 말했다.

“조건에 대해서 다시금 말씀드리도록 하죠. 저와 단장님은 도합 10회를 싸웁니다. 한 사람의 목검이 상대방의 몸에 닿거나 상대에게서 항복 선언이 나오면 1회가 끝납니다.”

“잘 알고 있네. 기사 학교 시절에는 자주 그런 식으로 대련했으니까.”

“이 10회 중에서 제가 몇 번을 이기든 단장님이 단 1회라도 승리를 가져가신다면 이 대련은 단장님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명백하게 모욕적인 규칙이었지만 데스티나는 굳이 그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녀와 데미안의 실력 차는 분명했다.

“이 대련에 걸려 있는 목적에 대해서 약속은 지켜 주게나.”

“반드시 지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데미안에게서 확답을 받아 내자 데스티나는 싱클레어를 바라보았다.

“싱클레어. 자네가 심판을 봐주게.”

“제가 말씀이십니까?”

“그래. 여기서는 자네가 제일 적격이로군.”

“아,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이 대련이 너무나 과열된다면 제 재량으로 대련을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알겠네.”

“상관없습니다.”

데미안과 데스티나는 동시에 그렇게 말했다.

싱클레어가 물러나면서 자리를 만들어 주자 데스티나와 데미안은 서로 마주 보면서 적당한 거리를 잡았다.

두 사람은 서로 향해서 목검을 겨누었다.

데미안과 데스티나의 대련이 막 시작이 되려는 무렵, 아르테어 역시 군중들의 틈에 섞여서 두 사람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었던 것은 역시나 데스티나의 몸 상태였다.

데스티나는 아르테어가 만든 시약의 가장 첫 번째 실험체 역할을 해주고 있던 것이다.

“그럼 시작하십쇼!”

싱클레어의 말이 떨어지자 10회 대련의 첫 회가 시작되었다.

데스티나는 목검을 양손으로 거머쥐고 조금씩 데미안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그녀의 검끝과 데미안의 검끝이 거의 맞닿을 수준이 되자 데스티나는 목검을 단숨에 찔러 들어갔다.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던 성전 기사단원들을 감탄사를 내뱉었다.

성전 기사단의 단장다운, 교과서적이면서도 깔끔한 찌르기.

뻑!

그 순간, 위험을 느낀 데스티나는 반사적으로 목검을 들었다.

데미안이 한 손으로 휘두른 목검이 그녀의 목검에 명중하였는데 너무나 빠른 공격이었기에 공격을 겨우 받아 낸 데스티나는 견디지 못하고 비틀거리면서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툭.

그리고 데미안의 목검이 데스티나의 어깨에 닿았다.

단 한 합 만에 데미안이 첫 회를 가져간 것이다.

“아직도 다리에 힘이 없으신 겁니까?”

데미안이 묻자 데스티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훌륭한 공격이었다. 새삼 자네의 무서움을 다시 느끼게 되는군.”

그다음 두 번째 회차.

데스티나는 두 손으로 목검을 잡고 있었지만, 데미안은 여전히 한 손으로 목검을 거머쥔 채였다.

이번에 데스티나는 데미안의 첫 공격을 유도한 후, 그의 움직임이 흐트러진 틈을 타 반격을 가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데미안은 그녀의 계획에 맞추어서 먼저 움직임으로써 데스티나가 반격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데스티나의 계획은 맞아떨어졌으나 문제가 있었다.

바로 데미안의 첫 공격이 너무나 빨랐다는 것.

데스티나가 공격을 피하고 반격을 가하기 전에 이미 데미안의 목검의 끝은 데스티나의 목 앞에 있었다.

허무하게도 또다시 데미안이 가져가 버리는 두 번째 회차.

그 이후의 회차들도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주변의 군중들은 그 일방적인 싸움을 보면서 데미안이 얼마나 천재적인 검사인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대련은 후반으로 치닫고 있었다.

대련이면서도 데미안이 온 힘을 다해서 데스티나를 상대하는 것은 그녀를 모욕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데미안은 10회의 모든 대련을 다 소화해야 할 필요조차 없기를 바랐다.

데미안이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 주어 그녀가 아예 대련 자체를 포기하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데스티나는 아무리 굴욕적으로 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대련을 이어 나갔다.

‘단장님은 그렇게나 내 곁을 떠나고 싶으신 건가?’

데미안의 마음속에서는 데스티나에게 버림받았다는 분노와 절망감이 겹겹이 쌓여 갔다.

9회차 대련이 끝나기 직전 데스티나와 데미안의 목검이 부딪치면서 데스티나의 목검이 박살이 나고 말았다.

그러면서 데스티나가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없게 되자 데미안의 검이 또다시 데스티나의 목덜미에 닿았다.

목검으로 데스티나의 목을 겨누고 있던 데미안은 입을 열었다.

“방금은 목검이 부러지면서 제가 기회를 잡은 것이니 무효로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데스티나는 손을 들어 목검을 치우면서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

데스티나의 목검이 부러지자 싱클레어는 단원 중 한 명을 시켜서 다른 목검을 가져오도록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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