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 * *
주점을 나선 데스티나는 황급히 앞서 나간 낯선 이를 찾았다.
다행히 그는 항구의 길을 따라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
데스티나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의 뒤를 따랐다.
곧장 붙잡고 정체를 물어보는 방법도 있었지만 지금 상대의 정체가 확실하지 않은 이상, 데스티나는 상대의 정체가 확실해진 다음에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미행을 당하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대는 데스티나가 쫓아올 수 있을 정도로 여유 있는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는 아까 주환 일행이 프란시스의 안내를 받아서 도착했던 해변 쪽으로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데스티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해변에는 건물이 없어서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 없다. 이대로 따라가면 미행하고 있는 것을 다 드러내는 꼴인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데스티나는 문득 상대 역시 이미 데스티나가 따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어떤 방식으로든 상대와 접촉을 해야 하니까.’
데스티나 역시 상대의 뒤를 쫓아 해변으로 내려갔다.
데스티나는 상대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 뒤를 쫓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상대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데스티나 역시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유 없이 해변 가운데서 걸음을 멈추고 있을 이유가 없었기에 데스티나는 상대가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군.’
상대는 멈추었지만 데스티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상대와의 거리를 좁혔다.
데스티나가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갔을 때, 상대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여기에서는 방해할 사람도 없겠지.”
상대의 목소리는 여성의 것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그때, 상대가 몸을 돌리면서 데스티나를 향해서 손을 뻗었다.
데스티나는 그 행동에 반응하려고 했지만, 곧 당황하고야 말았다.
처음에 그녀는 상대가 암기나 마법을 사용하려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상대의 손에서 날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데스티나의 기사로서의 감은 계속해서 그녀에게 위험 신호를 날렸다.
그 모든 판단이 아주 잠깐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데스티나는 자신의 감을 믿고 옆쪽으로 빠르게 몸을 이동시켰다.
스윽.
그리고 동시에 데스티나의 머리칼 일부가 잘려 나갔다.
‘뭐지?’
놀란 데스티나는 처음에는 그것이 엘리나가 사용하는 바람의 정령을 이용한 진공 칼날 공격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진공의 칼날은 그 공격이 대상에게 명중하는 순간까지 바람을 동반하기 마련이었다.
지금의 공격은 바람을 동반하지 않았다.
데스티나는 재빨리 등 뒤로 손을 뻗어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그걸 피하다니, 확실히 평범한 녀석은 아니로군.”
상대 역시 데스티나의 실력에 놀란 듯 그렇게 말을 이었다.
“잠깐.”
데스티나는 상대를 멈추려고 했지만, 상대 쪽의 반응이 더 빨랐다.
상대는 다시금 자신의 손을 휘둘렀다.
그것은 마치 허공에 손짓하는 것처럼 무의미해 보였지만 데스티나는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공격인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상대의 공격은 데스티나의 눈으로는 피할 수 없었다.
오로지 감으로 피해야 할 뿐이었다.
데스티나는 상대가 첫 번째 공격을 할 때 상대가 손을 뻗을 때부터 자신의 머리칼이 잘릴 때까지의 시간을 세고 있었다.
아주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한 번 공격을 당했던 데스티나로서는 그 타이밍을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데스티나의 계산에 의하면 두 번째 공격 역시 그와 흡사한 시간에 데스티나에게 닿을 것이 분명했다.
데스티나는 마구잡이로 상대의 공격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두 번째로 손을 휘둘렀을 때 그 시간을 계산하여 동시에 롱소드를 휘둘렀다.
보이지 않는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 자신의 감각을 믿으며 날린 공격이었다.
키잉!
순간, 금속이 깎여 나가는 소리와 함께 데스티나가 들고 있는 롱소드의 검신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상대의 공격은 데스티나가 휘두른 롱소드에 튕겨서 다시금 데스티나를 명중시키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제법인데.”
상대가 감탄하고 있을 때 데스티나는 자신의 앞에 떨어져 있는 나무토막을 상대 쪽으로 강하게 걷어찼다.
데스티나는 동시에 자신의 롱소드를 방패처럼 앞세운 뒤에 달렸다.
상대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모래와 나무토막을 보더니 재빨리 반대쪽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날아가던 나무토막은 절반으로 잘려 나가더니 두 조각이 되어서 양쪽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나무토막이 잘려 나가는 모습은 데스티나에게 그 공격을 피할 수 있는 타이밍을 만들어 주었다.
데스티나는 몸을 나무토막의 아래쪽으로 몸을 굴리면서 순식간에 상대에게 접근했다.
데스티나가 롱소드를 휘두르자 상대는 그 공격을 막기 위해서 팔을 들었다.
상대는 양손에 두꺼운 건틀릿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건틀릿은 기사들이 사용하는 건틀릿과는 달랐다.
그 건틀릿에는 용도를 알 수가 없는 기계 장치들이 부착되어 있었다.
키깅!
상대를 향해서 휘둘러진 롱소드는 허공에서 멈추었다.
데스티나는 계속해서 검을 밀려고 했지만, 그녀의 검은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막혀 있었다.
상대는 검을 내리치고 있는 데스티나의 앞에서 그저 양손을 앞쪽으로 내밀고 있을 뿐이었다.
‘방어막?’
데스티나는 그것을 방어막이라고 생각했지만, 곧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상대는 거미줄만큼이나 얇은 금속 와이어를 양쪽으로 쭉 늘려서 잡고 있었다.
상대가 착용하고 있는 건틀릿의 엄지손가락 끝에는 작은 구멍이 나 있었으며, 그 구멍 안에서 와이어가 나오는 구조였다.
지금 데스티나의 롱소드는 그 얇은 와이어 한 줄에 막혀서 검을 내리치지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데스티나는 지금까지 상대가 그 와이어를 날려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을 그녀에게 시도했음을 깨달았다.
건틀릿의 엄지손가락 안에는 훨씬 많은 양의 와이어가 감겨 있어 마치 낚시꾼이 낚싯줄을 멀리 날려 보내는 것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상대에게도 와이어 공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두 사람의 힘 싸움이었다. 데스티나는 기사로서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근력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지만, 상대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내 말을 들어. 나는 당신과 싸울 생각이 없다.”
싸움이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을 때 데스티나는 상대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믿으라고?”
“그래. 난 단지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등에 메고 있는 그 무기에 대해서 설명해 보시지?”
“무기?”
데스티나는 자신의 등 쪽으로 주의를 돌렸다.
롱소드는 그녀의 손에 들려 있기에 지금 그녀가 매고 있는 무기는 오로지 은 말뚝 발사기뿐이었다.
“이건.”
데스티나는 그것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데스티나의 주의가 흐트러진 것을 상대는 놓치지 않았다.
상대는 와이어의 길이를 좀 더 늘인 다음 손을 움직여서 올가미처럼 만들어 데스티나의 목에 감으려고 했다.
그것을 눈치챈 데스티나는 재빨리 허리춤에 걸려 있는 은 말뚝 보관 통에서 은 말뚝 하나를 꺼내 롱소드와 그 은 말뚝을 와이어 올가미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데스티나가 힘으로 버티자 와이어는 데스티나의 목에 닿지 않았다.
상대는 점점 더 와이어를 강하게 당기면서 데스티나에게 말했다.
“테오를 죽이고 그 무기를 빼앗은 거야? 이제 나까지 죽이려고 한 모양이지만 그렇게 쉽게 당해 줄 순 없지.”
“그건 오해다.”
“그럼 어째서 당신이 테오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 거지?”
데스티나는 상대가 말하는 테오가 누구인지 곧바로 떠올릴 수가 없었지만, 어느 순간 그 은 말뚝을 원래 가지고 있었던 이가 바로 루카의 아빠였으며, 루카의 아빠의 이름이 테오였다는 사실까지 생각해 냈다.
“그것은 설명하자면 길다. 우선 이걸 풀어 주고 이야기를 하면 좋겠군.”
“역시 설명하지 못하네.”
상대가 풀어 줄 생각이 없자 데스티나는 자신의 롱소드에 마나를 실었다.
그녀는 원래 무기에 마나를 실을 수 있는 실력이 되지 않았지만, 툴레오의 무구를 사용하면서 마나를 다루는 법을 어느 정도 깨우친 상태였기 때문에 이제는 미약하게나마 롱소드에 마나를 입힐 수 있었다.
그 상태에서 데스티나가 롱소드를 누르자 얇은 와이어가 여러 가닥으로 잘려 나갔다.
“이런!”
몸이 자유로워진 데스티나는 왼손에 들고 있던 은 말뚝을 상대에게 던졌다.
은 말뚝은 상대의 오른손 건틀릿에 스치듯이 명중했는데, 그러면서 은 말뚝은 건틀릿의 기계 부분을 망가뜨려 버렸다.
“제길.”
상대의 양손 중 오른손 건틀릿은 무력화되었다. 상대는 왼손으로 다시금 와이어를 뽑아내려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지금은 데스티나와의 거리가 너무나 가까웠다.
데스티나는 롱소드를 휘둘렀다.
그리고 상대 역시 건틀릿을 낀 손을 휘둘렀다.
두 사람의 공격이 교차하는 순간 서로의 손은 멈추었다.
데스티나의 롱소드는 상대의 목 부분 바로 앞에서 멈춰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건틀릿의 숨겨진 공간에서 튀어나온 길쭉한 날붙이가 역시나 데스티나의 목 앞에서 닿기 일보 직전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서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서로만을 노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 * *
주점의 주인에게서 실마리를 잡은 주환과 이온은 주점을 나선 뒤 주점 주인이 말한 하마스 교단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주점 주인이 알려 준 대로라면 하마스 교단의 사무실은 도빌 워터의 정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그곳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마스 교단의 사무실로 보이는 건물을 찾아낸 주환과 이온은 고개를 들어서 교단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교단의 건물은 그 규모가 상당히 컸지만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었다.
단지 그 건물로 오를 수 있는 계단들이 높은 편이었다.
“건물이 꽤 높은 곳에 있네요.”
“그러게. 마치 주변에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려는 것 같아.”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하며 계단을 올랐다.
주환은 교단 건물의 위에 달린 금속 풍향계를 발견했는데, 보통의 풍향계에는 금속으로 된 닭이 달려 있지만, 그 풍향계는 닭이 아니라 바로 고래를 본떠 만든 형태를 하고 있었다.
‘항구 도시라서 그런 건가?’
주환과 이온은 계단을 다 오른 뒤에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나무 문의 앞에 섰다.
주환은 고리로 된 문손잡이를 잡고 밀었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건물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건물의 안쪽은 어두웠다.
안쪽으로는 넓은 공간이 있었으며 주변으로는 그리스의 신전처럼 커다란 기둥들이 세워져 천장을 받치고 있었다. 그리고 기둥들의 뒤쪽으로는 여러 개의 문이 있었는데 그 문들은 모두 닫혀 있었기 때문에 그 너머를 볼 수는 없었다.
주환과 이온은 걸음을 옮겨 건물의 가운데로 나아갔다.
바닥은 하얀색의 타일과 검은색의 타일이 서로 다른 색끼리 붙어 있는 체크 무늬를 이루고 있었는데, 건물의 가운데에는 커다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검은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거대한 고래의 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