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 * *
저벅저벅.
두 명의 경비대원은 밤거리를 순찰하기 위하여 손에는 작은 등불을 든 채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벌써 이렇게 쌀쌀해졌네.”
“그러게.”
잡담을 나누면서 걷고 있던 두 사람은 어느덧 항구 쪽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들이 부둣가 쪽으로 나갔을 때 한 명의 경비대원이 자신의 동료에게 말했다.
“오늘은 낚시를 안 하나 보군.”
“지금은 그 유령선을 찾으러 갔을지도 모르지.”
동료의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벌써 여기까지 냄새를 맡고 찾아오다니.”
“이제 숨기는 것도 더는 무리라는 이야기겠지.”
“그래도 좋은 사람이었어.”
“그러니까. 고맙게도 그날 술값이 굳었잖아.”
“그리고 미인이기도 하고.”
“그 머리스타일은 바꾸는 게 낫겠지만.”
“그러네.”
두 사람이 그날 밤 목격했던 카미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이 무언가 물살을 세차게 가르는 소리가 두 사람에게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글쎄. 지금 나가 있는 배가 있던가?”
두 경비대원은 호기심에 부두 쪽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두 사람은 부두의 끝에 서서 밤바다를 관찰했다.
“뭔가 보여?”
“아니.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돌고래라도 나타난 건가?”
“아님 상어라거나?”
촤악!
두 사람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떠한 존재가 바다에서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점점 소리가 커지는데?”
“저걸 봐!”
경비대원 중 한 명이 부두의 앞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덩어리진 정체불명의 물체가 하얀색의 긴 물거품을 일으키면서 부두 쪽으로 몹시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
풍덩!
그리고 부두에 충돌할 듯이 다가온 정체불명의 물체는 부두의 위쪽으로 단숨에 솟구쳤다.
떠오른 물체에 놀란 경비대원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섰으며 분수처럼 솟아오른 바닷물이 부두의 위쪽에서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위로 떠오른 정체불명의 물체는 4개의 조각으로 변하더니 부두에 떨어져 내렸다.
쿵!
“아야야!”
“딱딱하잖아!”
나누어진 정체불명의 조각들은 서로 입을 열고 불평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로 주환과 데스티나, 이온, 카미유였다.
부두의 위로 떨어진 네 사람은 온몸이 바닷물로 흠뻑 젖어 있는 상태였다.
“춥네. 아주 추워.”
카미유는 저체온증 때문인지 오들오들 떨면서 품에서 술병을 꺼냈다.
“그렇지만 술을 한잔하면 곧 나아지겠지.”
데스티나는 롱소드로 지탱하면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이 정도는 끄떡없다.”
데스티나는 태연한 척을 했지만, 바닷물은 많이 마신 것인지 곧장 부두의 끝으로 달려가 마신 바닷물을 게워내었다.
데스티나가 바닷물을 게워내자 주환이 그녀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려 주었다.
“아. 힘드네요.”
이온은 부두에 누워 얼굴을 아래쪽에 처박은 채 그렇게 말했다.
하얀 가면이 석문으로 안쪽으로 도망가 버린 뒤 네 사람은 그 문을 다시 열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이온은 다시 비밀 부두의 아래쪽으로 들어가서 석제 손잡이를 잡고 돌리려고 해 보았지만, 손잡이는 단단하게 잠겨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얀 가면을 쫓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주환 일행은 다시 항구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가 않은 일이었다.
그들이 타고 왔던 낚싯배는 벨루드가 타고 항구로 돌아갔고 그사이 범선은 불타 버린 상황.
그 상황에서 그들이 취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어떻게든 동굴의 입구까지 헤엄쳐 가 카미유와 함께 로프를 사용해서 절벽을 오르는 것.
두 번째는 모두가 헤엄치는 이온에게 매달려서 항구까지 끌려가는 것.
첫 번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불가능했다.
카미유의 건틀릿 중 하나가 부서졌기 때문이었다.
그 건틀릿은 카미유와 데스티나가 결투를 벌일 때 데스티나가 망가뜨렸던 건틀릿으로, 카미유가 임시로 수리하기는 했지만 하얀 가면과의 격렬한 싸움 때문에 다시 망가져 버린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선택한 것은 바로 두 번째 방법.
이온의 능력이라면 바다를 빠르게 나아갈 수 있었지만, 그거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서 따라가야 하는 세 사람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부두에 도착했을 때 모두가 기진맥진해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부두 위에 늘어져 있는 주환 일행에게 다가온 경비대원들은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다가와 등불을 비추었다.
“어? 당신은?”
경비대원들은 덜덜 떨면서 술을 마시고 있는 카미유를 바라보았다.
“어. 안녕하신가.”
카미유는 그 와중에도 미소를 지으면서 경비대원들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여기서 다들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거지?”
“야간 수영?”
카미유가 훌쩍거리면서 그렇게 대답하자 경비대원 중 한 사람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들. 지금까지 어디에 있다가 온 거지?”
그때 바닷물을 게워낸 데스티나가 몸을 일으키고는 경비대원들을 향해서 걸어왔다.
“인명구조를 하고 있었다.”
“인명구조?”
“그래. 우윽.”
데스티나는 갑자기 다시 부두로 달려서 남은 바닷물까지 게워내었다.
“그러니까 갑자기 움직이지 마라니까.”
주환은 그렇게 말하면서 계속해서 데스티나를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데스티나가 완전히 진정이 되자 데스티나와 주환은 같이 경비대원에게 다가갔다.
“아까 이곳으로 스무 명 정도의 납치 피해자들이 왔을 텐데. 그들은 다 어디에 있는 거지?”
데스티나의 물음에 경비대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한 명의 경비대원이 다른 한 명에게 귓속말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동 경비를 서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것은 잘 모르지만, 이곳에 나타난 사람들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 경비대가 출동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신변보호를 위해서 경비대가 출동했다면 지금 그들은 경비대가 보호하고 있다는 이야기인가?”
“아마도 그렇겠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정말 당신이 말한 대로 납치 피해자라면 경비대에서 알아서 처리하겠지. 일이 잘 해결되면 당신들에게 상금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경비대원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주환 일행으로서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 납치 피해자들을 인솔하고 있던 사람이 벨루드인데 그럼 벨루드는 어떻게 된 겁니까?”
이번에는 주환이 그들을 향해 물었다.
“벨루드라면.”
“루퍼트 씨의 아들인 벨루드 말입니다.”
주환이 벨루드에 대해서 묻자 두 경비대원의 사이에서는 미묘한 눈빛 교환이 이루어졌다.
“거기까지는 우리도 알 수 없어. 어차피 벨루드는 이 도시의 사람이니 지금쯤이면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안 그래?”
그렇게 대답한 경비대원은 동의를 구하듯 자신의 옆에 있는 동료를 팔꿈치로 툭 쳤다.
“으, 응. 그렇지.”
부두에 앉아서 술을 홀짝이며 추위를 이겨내고 있던 카미유는 방금 대답한 경비대원의 얼굴을 관찰했다.
그는 카미유에게 비밀 부두가 있다는 암시를 주었던 바로 그 경비대원으로, 그는 표정에 불안감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이제 우리는 가자.”
“그래. 가야지.”
경비대원들이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데스티나는 그들을 불러 세웠다.
“잠깐.”
“또 무슨 볼일이라도?”
“경비대의 위치가 어디지?”
데스티나의 물음에 머뭇거리던 경비대원들은 그녀에게 겨우 경비대의 위치를 알려주고는 곧 그 자리를 떴다.
“수상하군.”
경비대원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데스티나는 동료에게 그렇게 말했다.
“왠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던데?”
주환이 말하는 사이에 카미유는 부두에서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확실하게 뭔가 숨기고 있는 모습이었어. 경비대가 사람들을 데려간 것은 확실한 것 같지만 어째서인지 벨루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꺼리는군.”
“혹시 벨루드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닐까?”
주환이 그렇게 말하자 카미유는 다 마신 술병을 바다에 던지면서 물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
데스티나는 거침없이 다음 계획을 이야기했다.
“우선 서로 팀을 나누어서 움직여야 할 것 같다. 한 팀은 루퍼트 씨의 저택으로 가야 해. 이온이 말한 것처럼 그 햐안 가면을 쓰고 있던 괴물이 사라 아가씨와 연관이 되어있다면 당장 조처를 해야만 하니까.”
“두 번째는?”
“경비대로 찾아가서 정말로 그곳에서 납치되었던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는지 그리고 벨루드는 어디로 간 것인지를 알아봐야 해.”
“그럼 그 일은 내가 하도록 할게.”
카미유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사람들을 구하는 일은 원래 내 일이었으니까. 그들을 끝까지 집으로 돌려보내 주어야지.”
“그래. 그럼 루퍼트 씨의 저택은 주환과 이온이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하얀 가면의 얼굴을 직접 본 것은 이온뿐이니까. 그리고.”
데스티나는 주환을 바라보았다.
“사라 아가씨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간다면 더 쉽게 입을 열어줄지도 모르지.”
“데스티나. 그 일을 제발 잊어버려.”
주환은 데스티나를 향해 손사래를 쳤다.
“주환. 너에게 호감을 보인 여자라고 해서 어물쩍 넘어가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없잖아.”
“아무튼. 그럼 나는 카미유를 서포트해 주어야겠군.”
“알았어. 데스티나는 그쪽을 부탁해. 이온. 이제 이동하자.”
“알겠어요. 바로 이동하죠.”
주환의 부름에 부두에 엎드려 있던 이온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쿵!
그때 몸을 어느 정도 일으키던 이온의 팔에서 힘이 빠지면서 이온은 다시 부두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온!”
놀란 주환은 바로 이온에게 달려갔다.
“괜찮은 거야?”
“네. 괜찮아요.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온은 괜찮다는 듯 말했지만, 그녀는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그냥……. 지금 일어날 수가 없을 뿐이에요.”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인데.”
주환은 무거운 이온의 몸을 뒤집은 다음 양반다리를 하고는 이온의 머리를 자신의 다리 위로 올렸다.
이어서 주환은 반사적으로 이온의 이마에 손을 대었다.
“저기. 저는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 식으로는 알 수 없는데요.”
“아참. 그렇지.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인 거야? 짚이는 거라도 있어?”
“짚이는 거라면 없진 않아요. 부두의 밑에서 괴물 문어가 저를 들이받았을 때 충격이 좀 컸거든요. 그리고 바닷물에서 계속 잠수를 했던 것도 원인인 것 같네요.”
“너. 방수라고 하지 않았어?”
“물론 방수 기능은 탑재하고 있지만 저는 수중 기동용이 아니니 때문에 정말 기본적인 기능 수준만 탑재하고 있는 거라고 보시면 돼요.”
“그럼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그냥 놔두시면 돼요.”
“그냥 놔두다니?”
“전자제품 중에 물에 빠져도 다시 말리면 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있죠? 그거랑 비슷한 원리라고 생각하면 돼요.”
“비유가 이상하긴 하지만 아무튼 좀 쉬면 괜찮아진다는 거지?”
“네. 내부적인 부상을 나노머신으로 수복을 해야 해서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요.”
주환과 이온의 대화를 듣고 있던 데스티나와 카미유가 두 사람에게로 다가왔다.
“지금 이온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인 거지?”
카미유의 물음에 주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우선은 쉬게 해 줘야겠어.”
“그럼 이온을 숙소로 옮기도록 하지. 잠깐은 우리 셋이서 움직여야 할 것 같군.”
“죄송해요. 제가 더 도와드려야 하는데.”
이온이 미안해하자 주환은 웃으면서 다시 이온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우리 걱정은 하지 마. 지금은 네 몸이나 생각을 해. 우리들 실력은 너도 잘 알잖아.”
“그렇지만 저는 언제나 주인님께 도움이 되고 싶은 걸요.”
“네가 나를 주인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너는 내 친구이기도 해. 친구끼리는 서로 돕는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