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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7: 오사카로 가는 길 (1)
Episode 17: 오사카로 가는 길 (1)
미션 ‘멋진 신세계’가 완료되었다.
주석이 쓰러지면서, 3라운드 시작 시점에 살아있던 다섯 명의 공격대원 중 세 명이 죽었다.
‘절반 이상 죽음’이라는 요건이 충족된 것이다.
- 미션 ‘멋진 신세계’를 완료했습니다.
- 던전을 종료하고 안전지대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오크 대사제만 더 잡으면 되니까, 다른 미션도 하고 나가자.”
“좋아요.”
둘은 ‘아니오’를 클릭했다.
미션 완료에 대한 보상으로, 둘은 모두 레벨업 했다.
이준기는 22레벨, 문아린은 24레벨이 되었다.
2층으로 올라가서 그들은 신관실을 찾았다.
가는 길에 로밍 몹 두 무리를 가볍게 정리했다.
신관실의 두꺼운 돌문을 어떻게 열어야 하나 어리둥절해 하는 문아린.
이준기가 문 옆의 버튼을 누르자, 문이 자동으로 밀려 들어갔다.
신관실 안에는, 진지하고 무섭게 생긴 오크 대사제가 양팔을 들고 주문을 외고 있었다.
오크 대사제는 문을 열고 들이닥친 이준기와 문아린을 바라보면서도,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았다.
사원이 무너지는 것을 주문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이준기와 문아린이 무기를 들고 달려들자, 오크 대사제는 땀을 뻘뻘 흘리며 뭐라고 소리쳤다.
어차피 오크어. 뭐라고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다.
사원의 붕괴를 막는 주문을 외면서 공격대를 상대하는 오크 대사제.
안쓰러운 그의 저항을 칼날과 도끼날로 잠재웠다.
오크 대사제의 주문이 끊길 때마다 잠깐씩 흔들리던 사원 건물이, 그의 죽음과 함께 본격적으로 발작을 일으켰다.
벽이 갈라지고, 바닥이 흔들렸다.
“와아, 무섭게 흔들리네요. 괜찮겠죠?”
“그렇겠지.”
- 미션 ‘고공 침투’를 완료했습니다.
- 던전을 종료하고 안전지대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이번에는 예스?”
“응.”
*****
9월 25일 정오.
하루 전 오전 11시에 들어갔던 공격대가 차원문을 빠져나왔다.
이준기와 문아린의 등 뒤에서 차원문이 소용돌이치면서 작아졌다.
대기 중이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두, 두 명입니까? 다른 분들은요?”
“오크 사원이 붕괴된 건가요? 보스는 강했습니까?”
“6명이나 사망한 건가요? 피해가 큰 이유는 뭡니까?”
행정 서포트를 위해 대기 중이던 협회 직원 한 명과 충무공-탑픽 연합길드 직원 한 명이 다가와서 기자들에게 대답했다.
“구원자분들이 많이 다치신 것 같습니다. 나중에 보도자료 드리겠습니다.”
문아린 쪽은 몬스터 피가 조금 묻었을 뿐, 깔끔한 편이었지만, 이준기 쪽은 피투성이였다.
협회와 길드 직원들은 기겁을 하면서 병원에서나 쓰는 하얀 천을 이준기에게 둘렀다.
힐링 포션으로 체력을 회복했기 때문에 상처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피곤한 것은 사실이었다.
사람을 죽인 이준기는 물론, 동료들과 데스매치를 벌이며 신경전을 벌여야 했던 문아린도 마찬가지.
차원문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 뒷좌석에 앉아, 둘은 물을 마셨다.
“준기 오빠, 내 차 타고 갈래요? 오빠, 차 없다면서요?”
“그럴까? 지하철역까지 걸어갈 힘도 없다.”
“광주, 가볼래요? 맛집도 많은데.”
“광주? 얼마나 걸릴까?”
“밟으면 두 시간 정도 걸릴걸요.”
“밟으면?”
“다들 과속 정도는 해요.”
“배 안 고파?”
“고파요. 아침도 못 먹었으니.”
“그럼 가까운 데 가자. 오피스텔 지하에 맛있는 스파게티집 있거든.”
*****
오피스텔 건물 지하 1층의 스파게티집.
이준기는 메뉴를 앞뒤로 펼쳐 보이며 웨이터에게 여러 가지 음식을 동시에 주문했다.
“알리오 올리오 하나, 좀 맵게 해 주시고요. 마르게리타 피자 미디엄 사이즈로 하나, 그리고 일단 브루스케타 좀 가져다주세요. 혹시 빵 있으면 빵도 좀 주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어, 잠깐만요. 아린아, 주문해야지.”
“엇. 두 분 드실 거 주문하신 거 아니셨어요?”
“저 혼자 먹을 건데요.”
문아린은 해산물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웨이터가 테이블을 뜨자, 문아린이 말했다.
“헐. 저도 오빠가 그냥 다 시켜주시는 건 줄 알았네요.”
“던전에서 나오면 탄수화물이 엄청 땡겨서 말야.”
“하긴, 저도 좀 그런 거 같아요. 던전 식량, 그거 며칠 먹다 보면.”
식당 한복판 기둥에 설치된 벽걸이 TV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어제 오전 11시에 8명의 공격대가 진입했고요, 조금 전에 차원문이 소멸됐다는 말씀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오늘 정오경에, 생존자들이 밖으로 나왔고요, 차원문이 소멸했습니다.”
“생존자라고 말씀하셨는데, 정확히 몇 명입니까?”
“네. 정확히 두 명이 살아나왔습니다. 구원자 길드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생존자는 신선자 길드의 문아린, 그리고 충무공-탑픽 연합길드의 이준기라고 합니다.”
“구원자 뉴스 챙겨보시는 분들은 기억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두 분, 불과 얼마 전에 부산 해운대 차원문 공격대에도 참여했던 분들이죠?”
“네. 맞습니다. 팬덤에서 요즘 한참 주가를 올리는 이준기 구원자가 이번 차원문에도 관여했습니다.”
“이준기 구원자에 대해서 좀 알려진 사실이 있나요?”
“네. 제가 좀 조사를 해봤는데요, 28세 남성으로 현재 광화문에 살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알려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각성한 지 한 달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한 달이요? 이번 종각 던전은 대한민국 사상 최초 B급 던전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이준기 구원자의 현재 레벨은 어떻게 됩니까?”
“이준기 구원자는 던전 입장 시에 20레벨이었다고 합니다. 이번 던전을 클리어했으니, 현재는 그 이상일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한 달 사이에 20레벨을 달성한 구원자가 있나요?”
“협회 측에 질의를 해봤는데요, 아마 세계적으로도 그런 사례는 거의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대답을 들었습니다.”
뉴스를 지켜보던 문아린이 이준기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빠, 유명인사 됐는데요. 그런데 정말 각성한 지 한 달 됐어요?”
*****
던전 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 살아 나온 둘은 협회에 나가서 증언해야 했다.
협회로서도 B급 던전이나 FFA 포맷의 차원문에 대해서 정보를 얻어야 했다.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 듣고 협회 사무직원은 놀라는 표정을 지었으나, 예상을 어느 정도 한 눈치였다.
“결국 FFA는 ‘프리포올’이었군요. 다들 그렇게 예상은 했으면서도 아니기를 바랬건만.”
“몬스터는 C급 던전 수준이었습니다. 실제로 문아린 구원자와 저, 둘이 공략이 가능했으니까요.”
“이준기 구원자님 말씀은, 이 던전이 B급인 이유가···”
“서로 죽이는 포맷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협력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는 말씀이죠?”
“첫 번째 미션 완료 조건이, 한 명이 죽는 것이었으니까요.”
“이거이거, 회장님이 정부와 던전 공략 조건 재협상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겠는데요. 구원자 생명을 갈아 넣어야 하는 던전이라니.”
던전에 20레벨 중반대의 고급 인력을 투입한 길드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두 명이 사망한 탑픽 길드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해운대’에서 촉망받던 탱커 성나린이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탑픽 멤버들의 분위기는 더 어수선했다.
그러나 더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은 문경새재 길드 마스터 박충기와 코리아 길드 마스터 고성하였다.
소현배는 문경새재 길드의 넘버 쓰리이기도 했지만, 박충기의 수족이었다.
박충기의 지시가 아니라 소현배의 자원에 의해 들어간 던전에서 벌어진 일이라서 박충기는 더 속이 쓰렸다.
‘현배 정도의 직속 부하를 다시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한데, 어떡하지? 길드 명부를 보고 연구를 좀 해야겠군. 이준기 같은 놈이 부하로 있음 딱 좋을 텐데···’
고성하 역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돈을 매개로 하는 관계였지만, 고성하와 김형채는 손발이 잘 맞는 사업 파트너였다.
이상덕 협회장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서 쏠쏠한 이득을 챙기고 있었는데, 김형채를 대신할 해결사를 다시 발굴하려면 머리 좀 아프게 생겼다.
‘김형채 만한 고레벨 구원자를 또 어디에서 구한다? 하지만 돈이 필요한 녀석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이상덕 협회장도 손익계산에 바빴다.
반협회장 파벌이었던 권영호가 ‘해운대’에서 죽은 것은 큰 수확이었다.
이번 던전에서 박충기의 수족이라는 소현배가 죽었으니 이제 박충기의 주위에는 별 인물이 남아있지 않다.
그것은 큰 이득.
그러나 협회장 파벌인 코리아 길드의 김형채도 죽었다.
돈 몇 푼만 쥐여주면 이것저것 궂은 일도 마다 않던 김형채.
이상덕에게는 꽤 중요한 장기 말이었다.
언젠가는 던져주게 되는 것이 장기 말이었지만, 하필 지금이라니.
10월에 큰 건을 계획 중이었는데, 약간 손을 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상덕의 책상 위에는 체스판이 펼쳐져 있었다.
양쪽 진영에서 나이트를 하나씩 제거한 이상덕.
그건 물론, 소현배와 김형채를 의미했다.
이상덕 진영이 박충기 진영에 비해 절대적으로 우위인 상황.
그러나 박충기에게도 아직 저항할 병력은 남아있다.
숨통을 끊어야 한다.
체스 말을 만지작거리면서 생각에 잠겨 있는 이상덕.
노크와 함께 신학길 사무총장이 들어왔다.
신학길은 일반인이지만, 이상덕의 고향 친구라는 이유로 협회의 사무총장 역할을 맡고 있었다.
협회가 굴리는 돈이 한 달에 수백억 원이라는 걸 생각하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원시적인 인사 행정이다.
그러나 협회 직원은 전부 해서 열 명도 되지 않는다.
더 많은 일반인 인력을 고용하면, 이상덕이 뒤로 챙길 수 있는 이권이 얼마든지 있는데, 박충기를 중심으로 하는 반협회장 파 사람들이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 중이다.
신학길 사무총장이 아부용 미소를 얼굴에 가득 머금고 이상덕에게 말했다.
“회장님, 이번 던전에서 소현배가 죽었으니 큰 근심거리 하나가 또 사라졌습니다.”
“그래, 뭐. 이번 일에 학길이 네가 한 건 없지만, 축하는 해야지.”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상덕은 잠깐 책상 위의 체스판을 쳐다 보았다.
“포럼 준비는 잘 돼가나?”
“그럼요. 회장님이 참석자만 점지해 주시면 됩니다.”
“대표단에 박충기나 전용택 중에 하나는 넣어야겠지. 사람들 보는 눈도 있으니까.”
“네. 누구로 할까요?”
“아무나 상관없어.”
“공격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건 구라모토 협회장 얘기를 들어봐야지.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상황은 아니니까.”
“하긴 그렇군요. 목표는 누군가요? 홍세희나 선우결?”
이상덕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평소처럼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는 체스판 위의 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아니. 측근은 이미 잡았으니, 이제는 왕을 잡아야지. 아니면 퀸이라도.”
“박충기··· 회장을요?”
“퀸도 좋아. 신선자 전용택 회장을 처리하면, 박충기 주위에 쓸만한 놈은 아무도 없게 되지.”
*****
이준기는 방송국 인터뷰를 한사코 사양했다.
현재 시점에서 유명해지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각성 한 달 만에 23레벨.
게다가 아주 껄끄러운 던전 여러 개를 클리어한 그를 미디어가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일반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은 어쩌면 감내해야 한다.
구원자들이 셀럽이 된 세상에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러나 다른 구원자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다른 문제다.
‘원래대로라면 내년 1월에 길드 내전, 그리고 2월에 한일 전쟁인데.’
한일 간 갈등의 발단이 되었던 ‘세종고 사건’을 이준기가 원천 차단해 버렸다.
문제의 발단이 된 광평교 차원문을 이준기가 닫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한국 침략을 그만둘 리가 없다.
뭔가 다른 핑계로 한국에 간섭을 할 것이다.
이상덕 협회장부터가 거의 일본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친일 인물이니, 일본 입장에서도 그가 협회장으로 있는 중에 일을 벌이려고 할 것이다.
협회장 대 반협회장 파벌 간 갈등으로 분열된 한국의 구원자 계와는 달리, 일본의 구원자 계는 잘 단합되어 있다.
일본 구원자협회, 그 단체의 노선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극적 반대가 아니라 무관심한 방관에 가깝다.
일반 대중의 무관심을 배경으로 후진적 행태를 이어가는 일본 정치판과 판박이다.
“안녕하세요, 이준기 구원자님.”
“안녕하세요, 최 과장님.”
“아유, 과장이라고 불리니 쑥스럽네요.”
“아무튼 승진 축하드려요.”
“승진보다는, 정규직 된 게 좋네요. 감사합니다.”
9월 30일 목요일 아침 8시.
이준기는 오피스텔 1층 커피숍에서 최정윤을 만났다.
엄청나게 비싼 가격표를 붙여두고, 충무공 길드 사람들 위주인 오피스텔 입주자들에게만 할인을 해주는 커피숍.
그래서 사람들이 별로 없다.
“부탁하신 일본 관련 자료, 가져왔어요. 간단히 설명을 좀 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