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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9: 던전 스틸러 (3)
Episode 19: 던전 스틸러 (3)
이번 공격대에 포함된 10인의 명단을 보면, 일본을 배후에 업은 이상덕 협회장이 노리는 것은 뻔하다.
충무공 길드 마스터, 권영호가 죽은 이후, 이상덕 협회장의 장기집권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사람은 둘.
문경새재 길드 마스터 박충기, 그리고 신선자 길드 마스터 전용택이다.
공격대 명단에 한국인은 모두 네 사람.
이도협과 고성하는 이상덕 협회장 파벌이고, 전용택은 반협회장 파벌.
힐러 김나리는 중립 성향인 브릴리언트 길드 사람이다.
이상덕 협회장이 개입해서 짠 공격대 로스터에 들어간 일본인 구원자들은 전원 이상덕 편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따라서 김나리 한 명을 제외한 여덟 명이 공모해서 전용택을 사고사로 위장해 죽이면 그만이다.
나중에 박충기도 비슷한 방식으로 보내버리면, 협회에서 이상덕의 위치를 위협할 인물은 없다.
차원문 관리에 대한 주권을 일본에 넘겨버리고 조선 총독으로 부임하는 것이 아마 이상덕의 최종목표일 것이다.
선거에 목매지 않아도 되는 종신 협회장 자리, 바로 그것이다.
새벽에 몰래 던전으로 숨어들어서 이준기가 노린 첫 번째 효과는 당연히 로스터를 흩트려 놓는 것이다.
10명 입장 제한이 있는 던전에 한 명이 들어가 버렸으니, 공격대원 중 한 명은 빠져야 한다.
최선의 시나리오는 전용택이 빠지는 것, 그러나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전용택 제거가 목표인 공격대에서 그를 빼버릴 리도 없고, 탱커 전용택을 딜러 이준기로 대체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따라서 실제적으로 이준기가 노리는 것은 그들이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
김나리와 이준기, 두 명이나 되는 외부인 앞에서 사고를 위장해 전용택을 죽이는 것은 쉽지 않을 터.
공모하지 않은 외부인을 죽여 후환을 없애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일 수도 있다.
그런 경우, 김나리 한 명만을 더 죽이는 것에 비해 이준기까지 두 명을 죽이는 것은 일이 훨씬 커지게 된다.
더구나 공격대와 함께 움직이는 김나리와는 달리, 이준기는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다.
‘11시가 되고 공격대가 진입하면, 그들은 곧바로 오크 도시에 대한 공격에 나설까?’
공격대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이준기도 대응 방법을 바꿔야 한다.
공격대 진입 전에 이준기가 던전을 클리어해 버린다면 최선의 시나리오.
공격대가 진입한 이후라도, 놀 주술사를 이용해서 던전을 빠르게 깨버리면 연합 공격대는 비밀 미션을 성공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전용택을 죽이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면, 그들은 9인 공격대로라도 오크 경비 초소를 공격하자고 주장할 것이 분명하다.
김나리가 그 의견에 반대해준다면, 각본이 진행되는 것을 어느 정도 지연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사고사로 위장하는 것도 너무나 간단하다.
오크 무리를 공격하고 나서, 오크들에게 둘러싸인 전용택을 놔두고 도망가버리면 된다.
탱커가 적에게 둘러싸이는 일은 당연한 것이니까.
서둘러 진행한다면 10분 만에도 해치울 수 있는 일.
갑자기 벌어진 사고에, 김나리는 의심을 품을 겨를조차 갖지 못할 것이다.
*****
10시 41분.
44번째로 잡은 땅쥐의 소굴에서 ‘번개 맞은 나뭇가지’를 찾았다.
주술사가 부탁한 번개 주술의 재료를 모두 모았다.
이준기는 지도를 확인했다.
일단 고블린 용병대를 들르고, 곧바로 놀 주술사의 오두막으로 가야 한다.
‘동선도 문제지만, 양쪽 다 생각대로 얘기가 돼야 하는데. 11시까지라면, 꽤 빠듯하다.’
서둘러 달려 고블린 오두막에 도착했다.
식사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러 마리의 고블린들이 있었다.
야외 테이블에 접시, 포크 따위의 식사 도구, 그리고 뭔가 정체불명의 먹을거리가 담긴 커다란 그릇이 놓였다.
“어이구, 인간 친구. 하필 식사 시간에 왔네 그려.”
“점심 먹는 거야? 이른 점심이네.”
“이르긴 뭐가 일러. 이제 한 끼 먹고 해지면 한 끼 더 먹는 건데. 인간들은 식사를 여러 번 하나 봐?”
“우리? 세 번 먹는데? 아침, 점심, 저녁.”
“어이구, 이런. 그러니까 못 사는 거야! 우린 하루에 두 끼만 먹는다구. 한 끼만 먹는 고블린도 있어. 아껴야 잘 살지.”
“잘 살려면 잘 먹어야 하는 건 아니고?”
“어, 그런가? 그 말도 일리가 있군. 재미있어. 그건 그렇고, 찾았나? 보석함 말야.”
실용주의에 죽고 사는 고블린은 시답잖은 잡담을 끊고 곧바로 용건을 말했다.
이준기는 인벤토리에서 보석함을 꺼내 보였다.
“여기 있어.”
고블린은 보석함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실망하는 티를 팍팍 내면서 말했다.
“이런, 이건 아니잖아! 잘 보라구. 내가 그려준 그림을. 여기 밖으로 튀어나온 돌기가 세 개 있잖아? 그런데 자네가 가져온 건 돌기가 네 개야.”
“어? 정말 그렇네. 네 기억이 잘못된 건 아니고?”
“아니, 이게 얼마나 중요한 보석함인데 내가 그걸 기억 못 하겠나? 아무튼, 이건 아니야. 아니라고.”
“내가 보기에는 정말 비슷하게 보이는데, 이런.”
“그건 아냐. 내가 찾던 건, 보석함 같이 생기기는 했지만 사실은 ‘폭약 연성의 도가니’란 말야. 고블린 폭약을 만드는 신비의 물건이지.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건 아냐.”
“쩝. 헛수고를 했군.”
헛수고 정도가 아니라 전체적인 그림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다.
정규 공격대가 진입하기 전에 놀 주술사의 퀘스트를 끝내서 변수를 만들려고 한 것이다.
그런 변수가 없다면, 혼자인 이준기가 공격대를 훼방 놓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보석함을 다시 인벤토리에 넣던 이준기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적 장치의 도움까지 받아 의뢰받은 물건을 찾아다녔는데, 이건 뭔가 이상하다.
그래서 고블린에게 물었다.
“혹시 말이야. 그 ‘폭약 연성의 도가니’는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그런 건 잘 모르나?”
“잘 모르긴, 이런. 나를 뭘로 보고. 내가 이래 봬도 폭약 장인이야. 아까는 고관대작이라고 대강 얼버무렸지만 사실 그건 우리 집안 가보라고. 내가 그 사용법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그래? 그럼 설명 좀 해줘 봐.”
“왜? 찾지도 못한 물건인데.”
“찾으면 그게 맞는지 확인하고 가져오려고.”
“가지고 내빼려는 건 아니고?”
던전 안에서 총기류를 본 적도 없지만, 고블린 폭약 따위, 인류의 폭발 무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핵무기도 가지고 있는 인간이 그깟 폭약 만드는 기구를 가지고 내뺀다는 게 말이 되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그리고 지금 필요한 것은 고블린 폭약이지, 핵폭탄이 아니다.
“그럼, 그만두지 뭐. 저항도 하지 않는 땅쥐 죽이는 것도 양심에 찔려서 더 이상 못하겠어. 자네 가문 가보도 물 건너갔군.”
“그래, 그래, 알았다고! 자네 입담도 만만치 않군, 인간 친구. 내가 가르쳐 주지. 아까 그거 줘봐.”
“뭘?”
“아까 자네가 가져온 그거. 보석함 같이 생긴 거 말야.”
이준기는 인벤토리를 쳐다보았다.
이준기가 생각하는 대로, 이게 생긴 것은 달라도 같은 기능을 하는 도구라면, 고블린이 빼앗아 가려고 할 수도 있다.
인벤토리에서 꺼낸 물건을, 이준기는 손에 쥔 채로 고블린에게 말했다.
“이건 내가 들고 있을 테니, 한 번 설명을 해줘 봐.”
“날 못 믿는 거야?”
“그건 피차 마찬가지 아닌가?”
“하하, 이것 참. 아까도 보고 돌려줬잖아. 우리 집안 가보가 아니라면 나한테는 필요 없는 물건이야.”
“하긴, 그 말도 맞군.”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준기였지만, 고블린에게 도가니 사용법을 배워야 했다.
만약 이 물건이 폭약 제조 도가니가 아니라 하더라도, 나중에 그걸 발견하면 즉석에서 폭약을 만들어 낼 수도 있으니까.
이준기는 목소리를 낮추어 고블린에게 말했다.
“저쪽, 나무 뒤로 가서 사용법을 보여주는 건 어때? 다른 동료들이 훔쳐볼지도 모르니까.”
“흠··· 그것도 맞는 말이군. 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이니까 말야.”
둘은 오두막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 뒤로 왔다.
이준기가 인벤토리에서 꺼낸 보석함을 들고, 고블린에게 말했다.
“일단 이건 내 물건이니까, 같이 들고 있자고.”
“그것참 쩨쩨한 친구로군. 알았어!”
“시작해 보라구.”
“이게 뭐 진짜 ‘폭약 연성의 도가니’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자, 일단 뚜껑을 열고, 모래나 흙을 한 줌 쥐어서 여기다 넣으라고.”
“아무거나 괜찮아?”
“비교적 균일한 크기의 작은 알갱이라면 아무거나 다 돼. 모래든 곡식이든 말야.”
“그거 신기하군.”
“고블린 비법인데 신기하고말고. 자, 그다음에 뚜껑을 닫고, 여기 돌기 있잖아? 아까 말했던 거. 요기 옆에 작은 바늘이 보이지?”
“응.”
“그걸 이렇게 돌려서 돌기에 맞추면··· 가만!”
고블린이 뭔가 깨달은 것처럼 동작을 멈췄다.
“뭐야?”
“아니. 혹시 이게 정말로···”
“돌기에 맞추고 그다음은 뭐야?”
“손에 쥐고 몇 번 흔들면 되는데··· 혹시 이게 정말···”
이준기는 둘이 함께 들고 있던 보석함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걸 위아래로 몇 차례 흔들었다.
펑!
갑자기 폭발음이 들리자, 이준기는 깜짝 놀라면서 손에 든 물건을 놔버렸다.
땅에 떨어진 보석함의 뚜껑이 열리고, 안에서 회색 가루가 쏟아져 나왔다.
“헉, 뭐야?”
“아니, 폭약이잖아! 이게 정말 같은 종류의 물건이란 말야?”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고블린.
이준기는 떨어뜨렸던 물건을 재빨리 주워 올렸다.
“하하. 고마워, 고맙다고. 고블린 친구!”
“이런!”
이준기는 달려가다가 손목에서 ‘멸종 위기 보호종 추적 장치’를 손목에서 풀었다.
뒤에 멍하니 서 있는 고블린에게 그걸 던져주면서, 이준기는 다시 말했다.
“정말 고맙다구, 친구! 복 받을 거야!”
*****
돈 한 푼 안 들이고 고블린 폭약을 잔뜩 만든 이준기는 놀 주술사의 오두막에 도착했다.
놀 주술사는 이준기가 오는 걸 미리 알아차렸는지, 오두막 바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재료를 다 모았느냐?”
“여기 가져왔습니다.”
“흠··· 좋아. 아주 상태가 좋은 ‘벼락 맞은 나뭇가지’로군. 그리고 어디 보자, 오크 애뮬릿도 보존 상태가 훌륭하군. 깨진 데가 없군. 그리고 고블린 폭약은···”
“어떻습니까?”
“폭약이 종류가 조금씩 다르군. 왜 이렇게 다른 종류를 가져왔나?”
“어떤 종류가 필요한지 말씀을 안 하셔서.”
‘폭약 연성의 도가니’에 돌기 네 개가 있는 것은 아무래도 조절 장치라고 생각할 밖에 없었다.
이준기는 네 가지 세팅을 다 이용해서 서로 다른 네 종류의 폭약을 만들었다.
네 줌의 폭약은 놀 주술사가 보기에도 등급이 전혀 달라 보였다.
놀 주술사는 폭약의 굵기가 다른 것을 지적하며 설명했다.
“고블린 폭약은 여기 이렇게 고운 것이 좋다. 다른 것들도 쓸 수 있기는 하지만, 아마 정밀도가 떨어질 거야. 정확하게 놈들의 탑을 맞춰야 하는데, 그게 어려워질 수 있단 말이지. 그냥 이대로 진행할까? 아니면, 혹시 고운 것으로 더 구해올 수 있겠느냐?”
“문제없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깐만?”
“5분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이준기는 놀 주술사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갔다.
나무 뒤에서, 모래를 다시 ‘폭약 연성의 도가니’에 넣고 가장 미세한 세팅으로 돌렸다.
고운 폭약 가루가 쏟아졌다.
그걸 들고 이준기는 다시 놀 주술사에게 갔다.
그는 매우 흡족해 하며 웃었다.
“좋아. 아주 좋다. 이걸로 당장 시작할 수 있겠구나.”
시계를 보니 이미 11시를 지나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다. 신령의 힘을 빌어야 하는 주술이라서, 예측이 힘들단 말이지. 5분 만에 응답이 올 수도 있고, 열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할 수도 있지.”
“어떻게 빨리 안 되겠습니까?”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한 번에 목표물을 맞춘다면, 그게 더 좋지 않느냐?”
“하긴 그렇군요. 잘 부탁합니다.”
“너는 여기에서 기다려라.”
“예.”
놀 주술사가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고 얼마 안 있어, 상태창에 메시지가 떴다.
- 누군가가 던전에 진입했습니다.
같은 메시지가 아홉 번 떴다.
정규 공격대가 차원문을 들어온 것이다.
현재 시각 11시 7분.
공격대는 한 명이 모자라는 상태로 일단 차원문을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