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58화 (58/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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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1:. 용병과 주술사 (1)

Episode 21:. 용병과 주술사 (1)

예상 대로였다.

12시 50분이 되었지만, 공격대는 아직도 이견조율 중이었다.

이준기는 수풀 뒤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무슨 말이 오가는지 듣기 시작했다.

김나리가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이준기 씨를 포함해서 10명인 공격대잖아요. 그러니까 10명 풀로 채워서, 그 전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대하는 쪽은 이도협이 제일 완강했다.

“아니 그 자식은 원래 공격대도 아니고, 우리 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게다가 23레벨입니다. 무슨 전력이 되겠어요. 그 녀석은 우리를 도울 의사도 없고, 능력도 안 돼요.”

아시카가는 고성하에게 무슨 의견이 오가는 것인지 물었다.

고성하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짧게 요약해서 통역을 대신했다.

“김나리 힐러님은 이준기를 포함해서 10명으로 공략해야 한다는 주장이고, 이도협은 이준기가 공격대에 도움이 될 의사도 능력도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김나리와 이도협의 공방이 계속되었다.

“이준기 씨가 공격대와 함께할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는 물어봐야 알죠. 그리고 능력이 없다는 얘기에 대해서는,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23레벨이 도움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는 거죠?”

“레벨로 모든 걸 따질 문제가 아니라는 거, 이준기 구원자를 보니까 그걸 알겠더라고요. 저도 예전 같았으면 23레벨이 C급 던전에, 그것도 혼자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를 믿지 않았을 겁니다.”

“무슨 인터넷 찌라시라도 읽고 이러시는 거예요?”

“네. 공부를 좀 했어요. 이준기 기사가 하도 많이 나서요.”

“기사는 무슨 기사가 났다는 겁니까? 이준기 그놈은 기자들 피해 다니느라 인터뷰도 안 한다는데.”

“본인 인터뷰가 꼭 필요합니까? 뉴스를 좀 보세요. 20레벨도 되기 전에 C급 던전에 드나든 게 이준기가 처음도 아니랍니다.”

“그래요?”

“조슈아 테일러라고, 아시죠? 하긴 모르면 간첩이지만.”

“조슈아 테일러가 그랬다는 거군요? 그 사람이라면 그럴 만도 하네요. 워낙 엄청난 천재니까. 하지만 이준기는 다른 얘기죠.”

“글쎄요? 이준기가 조슈아 테일러급 천재가 아니라고 단정하시는 근거는 뭔가요?”

“아니! 이준기 그놈이 무슨! 말도 안 돼요.”

“근거를 들어주셔야죠. 이도협 회장님이 이준기 씨를 싫어한다는 건 이제 충분히 알았으니, 그런 감정 표현은 더 안 하셔도 됩니다.”

말문이 막힌 이도협이 씩씩거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고성하가 아시카가에게 다시 요약 설명을 들려주었다.

아시카가가 말했다.

“아, 그런 사람이라면 일본에도 있습니다. 조슈아 테일러나 이준기 같은 사람이요.”

“정말입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기 저 사람이에요. 다케다 상이요.”

“아, 그래요?”

“20레벨도 되기 전에 C급 던전 공격대에 참여했고, 일본 최초의 B급 던전에 들어갔을 때도 20레벨대 중반 정도였어요.”

그 정도의 일본어는 이해를 했는지, 김나리가 아시카가에게 일본어로 말했다.

“그래도 이준기 씨보다는 좀 약하시네요. 이준기 씨는 한국 최초의 B급 던전에 들어갔을 때 20레벨이었거든요.”

“네? 그게 사실입니까?”

“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죠? 한국은 개인 의사를 존중하는 문화인가요? 20레벨이 B급 던전에 들어가겠다는데도, 그걸 허락했단 말입니까?”

“정찰대였거든요. 보고만 나오는 거라고 생각하고 허락한 거죠.”

“아, 정찰대요. 그렇다면 좀 이해가 되는군요. 그래도 20레벨에 B급 던전 정찰대라면 대단하기는 합니다만.”

“아, 제가 드리는 말씀은요, 들어갈 때는 정찰대였다는 말씀입니다. 이준기 씨는 정찰대로 들어가서 B급 던전을 깨고 나왔어요.”

“네?”

아시카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본 사람에게 한 방 먹인 것 같아, 김나리는 속으로 시원하다고 생각했다.

이도협이 어느새 돌아와서 고성하에게 물었다.

“무슨 얘기를 하는 겁니까? 김나리 씨가 아시카가 상한테 저 욕하는 거 아녜요?”

“하하, 무슨 말씀을. 이준기 얘기하는 중입니다.”

“무슨 얘기요? 아시카가 상도 이준기 그 자식이 개자식이라는 건 인정하는 거죠? 던전 스틸러.”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고요. 약간의 자기 나라 자랑 같은 거네요.”

김나리가 이도협에게 말했다.

“일본에도 이준기 같은 사람이 있다고 아시카가 상이 그러길래. 비교할 걸 비교하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무슨 얘기예요, 그게?”

“저기 다케다 상이 B급 던전에 처음 들어갔을 때, 20레벨대 중반이었다고 하길래, 이준기는 20레벨에 B급 던전 깨고 나왔다고, 사실대로 얘기해준 것뿐이에요.”

“나, 참. 결국 그거예요? 나리 씨, 이준기 팬이에요? 그래서 지금 이러는 거예요?”

“이도협 회장님, 왜 그렇게 유치하세요? 저는 공격대 화력 얘기하는 거지, 누가 누구 팬이고 이런 얘기 하는 게 아니잖아요!”

“뭐, 유치? 유치한 김에 한마디만 더 합시다. 이준기 주변에 여자 많아요. 김나리 씨 낄 자리가 있을런가 모르겠네.”

고성하가 이도협을 말렸다.

“이 회장, 왜 이래. 말싸움하려고 들어온 거 아니잖아.”

“아니, 귀한 시간 들여서 던전에 들어왔으면 진행을 해야 할 거 아녜요? 이준기 기다릴 거였으면 제가 이 공격대에 들어왔을 거 같아요?”

전용택도 한마디 했다.

“아침에 제대로 논의가 안 돼서 그런 거 아닙니까. 애초에 작전 회의를 던전 바깥에서 제대로 끝내고, 던전 안에서 상황을 봐서 약간 수정하는 방향으로 해야지. 이게 뭡니까. 일단 들어와서 작전 회의도 제대로 안 하고 진행을 하려니 이렇게 되는 거잖아요. 이상덕 협회장이 자기만 스포트라이트 받으려고 연합 공격대를 서둘러 만들어서 이렇게 된 거라구요.”

고성하가 대답했다.

“전 회장님도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전 회장님이 연합 공격대에 들어오는 건 벌써 몇 주 전에 결정된 일이잖아요?”

“저는 그래도 일본 사람들 앞에서 우리나라 망신은 안 당하게 하려고, 최대한 이상덕 협회장한테 협조하는데. 이렇게 주먹구구로 일을 처리하다니 실망입니다.”

“아무래도 첫 번째 연합 공격대이다 보니까···”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거. 진리네요.”

“아니, 전 회장 그건 좀 심하지 않습니까? 전 회장님 말대로 일본 사람들 앞에서 이게 웬 나라 망신입니까?”

“아무튼, 제 입장도 이참에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네. 말씀하시죠.”

“저도 이준기 구원자를 찾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

말싸움하느라 출발도 하지 못한 공격대를 보니, 고블린 용병대를 괜히 고용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이준기는 다시금 공격대의 동향을 살폈다.

일본팀은 처음부터 한마음 한뜻이었으니까 한국팀의 말싸움을 지켜보기만 하고 있다.

일본팀의 여성 구원자 세 명은 자기들끼리 잡담이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결국, 한국팀이 입장을 정해서 일본 측에 전달해야 하는 상황.

고성하와 김나리가 대화를 주고받았다.

“김나리 힐러님 생각에는, 아홉 명으로 안 될 것 같아요?”

“고성하 회장님도 그렇겠지만, 저도 이런 포맷의 던전은 처음이에요. 조심하는 게 당연하죠.”

“우리는 처음이지만, 다케다 상하고 아시카가 상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들을 믿고 따르면 안 되겠습니까?”

“고 회장님, 저도 비겁하게 보이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목숨은 하나뿐이잖아요. 한국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처음 보는 일본 사람에게 제 목숨을 맡깁니까?”

전용택이 거들었다.

“김나리 힐러님 말이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제 목숨을 맡겨요? 더구나 우리나라 사람도 아니고···”

이도협이 끼어들었다.

“전용택 회장님, 우리나라 구원자 랭킹 3위이십니다. 목숨을 맡기다뇨? 전 회장님 실력이면 이 던전 메인 탱커 하셔도 됩니다.”

“이도협 회장님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저도 이번 던전은 자신이 없습니다. 처음이기도 하고요.”

“전 회장님, 겸손이 지나치시네!”

“겸손이 아니고 조심하는 거죠. 만약 제가 주도하는 공격대였다면, 저는 철저히 사전 준비하고,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전략회의도 여러 번 했을 겁니다. 이렇게 소풍 오듯이 일단 진입 후에 대책 회의를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요.”

“일본 애들이 다 준비했어요! 아시카가 공격대장이 하자는 대로 따라만 하면 된다고요.”

“그게 바로, 생전 처음 보는 타인에게 목숨을 맡기는 거죠.”

옆에서 듣고 있던 고성하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여러분들. 일단 저는 저쪽에 가서 아시카가 상에게 우리 상황을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에서 계속 의견 나누고 있어 주세요.”

김나리가 대꾸했다.

“계속 평행선인데요. 이야기를 계속해도 입만 아플 것 같아요.”

고성하가 다시 부탁하면서, 이도협에게도 한마디 했다.

“그래도 의견을 좀 모아보세요. 이도협 회장, 알지? 최대한 접점을 좀 찾아봐. 할 일은 해야지.”

“알긴 뭘 알아요? 고성하 회장님, 뭐 이야기가 진행된 것도 없는데 아시카가 상한테 가서 뭐라고 하시려고요?”

“우리끼리 너무 오래 시간을 끌고 있잖아요. 저쪽 얘기도 들어봐야죠. 잠깐 다녀올게요.”

그렇게 고성하가 건너편 나무 쪽으로 다가가자, 이도협이 아까와는 다르게 생글생글 웃으면서 김나리에게 다가왔다.

우락부락한 얼굴의 이도협이 웃으니 오히려 무서워 보였다.

저들의 꿍꿍이는 뻔하다.

고성하가 아시카가와 일을 꾸미는 동안, 김나리가 엿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봐, 나리 씨. 올해 몇 살이지?”

“갑자기 왜 이러세요? 저도 먹을 만큼 먹었어요.”

“아, 그래? 보기에는 그냥 대학생 같은데, 아니란 말야?”

이도협의 어쭙잖은 농담에 김나리가 실소를 터뜨렸다.

“하하. 무슨 얘기 하시는 거예요. 제가 회사 생활을 한 게 몇 년인데.”

“그래? 그렇게 안 보이는데. 그래도 이준기보다는 나이가 어리잖아?”

“조금요.”

“이준기에 대해서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처음에 이준기가 우리 길드에 들어올 때도, 내가 면접을 봤었다고. 몰랐지?”

“아, 그래요? 그건 몰랐네요.”

말은 퉁명스럽게 했지만, 김나리의 표정이 풀어졌다.

“웬 어리버리한 남자가 길드에 가입하겠다고 해서, 이것저것 가르쳐 줬었지.”

“어리버리요?”

“어떻게 6레벨이 돼서 찾아왔는데, 기본도 안 돼 있더라구. 그래서 이것저것 가르쳐 주고. 아 맞다! 차가 없다고 해서 차도 줬었지.”

“차를 주셨다고요?”

“그랬다니까. 포르쉐였는지 마세라티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네.”

“이준기 구원자는 지하철 타고 다니는 걸로 유명한데.”

“차를 나중에 처분한 모양이야. 이것저것 필요한 아이템을 샀다고 들었어. 나도 한참 나중에 알았다고. 내가 준 차를 처분한 게 미안해서 그런지 오랫동안 말을 안 해서.”

“아하, 그러시구나. 같이 식사도 많이 하셨어요?”

“그럼. 신입 회원한테는 내가 밥을 많이 사거든.”

“뭘 좋아하던가요, 음식은?”

“아, 그게··· 고기! 고기 좋아하더라구.”

“그래요? 제가 아는 거랑은 좀 다르군요.”

“아, 그게 아니고 해물이던가?”

“알겠습니다. 이도협 회장님.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이 던전, 어떻게 할 건지 그거 얘기해야 하는데요.”

“아차차, 그렇지.”

숨어 있는 위치상, 이준기는 남쪽에서 이야기 중인 김나리와 이도협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을 뿐이다.

아시카가와 고성하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서는 북쪽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공격대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큰길 건너편을 우회해야 해서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김나리와 이도협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인데, 별 도움이 되는 내용이 없었다.

그렇게 시답잖은 대화가 조금 더 지속되고 나서, 고성하가 돌아왔다.

“여러분, 아시카가 공격대장과 논의한 내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다수결로 소수의견을 묵살해봤자 팀워크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행동을 나눠서 하기로 했어요.”

“네? 어떻게요? 한국, 일본 팀으로 나눈다는 얘긴가요?”

“아뇨. 당장 오크 사냥에 나설 분들만 합류해 주세요. 나머지 분들은 여기에서 쉬고 계시면 됩니다.”

“네?”

“저랑 이도협 회장은 일본 팀과 함께 오크를 잡으러 갑니다. 전용택 회장님과 김나리 힐러님은 반대의견인 거죠? 그러니까 여기 남아 계시면 됩니다. 어차피 해가 지면 돌아올 거니까, 그때까지 쉬고 계세요.”

전용택이 말했다.

“이것 참. 사람 곤란하게 만드네요. 탱커 하나로 되겠어요?”

“어떻게든 되겠죠. 하기 싫다는 사람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제 말이 아니고 아시카가 공격대장 말입니다.”

“한국 팀에서 저랑 김나리 힐러가 빠지면 모양새가··· 탱커랑 힐러가 강짜 부리는 것 같잖아요?”

“두 분 의견이 그러신데, 어쩔 수 없죠.”

“휴··· 이걸 어떻게 하나.”

“저희는 바빠서. 이만 가겠습니다. 이따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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