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62화 (6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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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2:. 불청객의 기자회견 (2)

Episode 22:. 불청객의 기자회견 (2)

헬렌 카자크가 멀어지자, 같은 테이블 사람들이 모두 이준기를 쳐다보았다.

“워어! 헬렌 카자크 전번 따낸 거야? 나도 좀 보여줘.”

“동직이 형님, 왜 이러십니까. 체통을 지켜 주세요.”

“뭐야. 남은 못 주겠다 이거냐. 입이 귀에 걸렸네, 걸렸어.”

전용택이 다리를 꼬집자, 윤동직이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문아린의 표정이 왠지 싸늘해 보였다.

이준기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말했다.

“기자회견에서 말 한마디 했더니 파장이 크네. 실검 1위도 해보고, 이젠 헬렌 카자크까지.”

“준기 오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녜요?”

“좋아하긴 내가 뭘 좋아해. 아린아, 밥은 더 안 먹어? 라멘 계속 먹는 거 좀 꺼려하는 것 같아서 여기 온 건데.”

“으이구, 신경 써 줘서 고맙네요.”

“나는 조금 더 가져다 먹어야겠다. 포럼에 밥이 잘 나오네.”

이준기가 자리를 뜨자, 문아린과 김나리가 번갈아 가며 이야기했다.

“와아, 헬렌 카자크 엄청 예쁘네요. 이건 뭐 요정이네.”

“남자분들, 침 좀 닦으시죠. 예쁜 여자가 나타나니 정신을 못 차리시네.”

“키도 크네요. 170은 되겠어요. 운동화 신고 왔던데. 유전자 몰빵 심각하네.”

“윤동직 탱커님은 헬렌 카자크 전번 따서 뭐 하시려고요? 전화라도 하시게요?”

“그러게 말예요. 그건 그렇고, 준기 씨는 영어도 잘하네요.”

“저도 놀랐어요. 오빠가 영어 하는 걸 볼 기회가 없었으니.”

이준기는 참치 대뱃살을 잔뜩 담은 접시에 오이와 가지 츠케모노를 집어 담았다.

문아린이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 이준기도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굴 좋아하는 감정을 즐기기에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길수연도 헬렌 카자크도, 조슈아 테일러에 대항하기 위해 뭉친 동료였을 뿐이다.

지금에 와서 그것이 달라질 이유도 없다.

조슈아 테일러를 막지 못하면, 미래라는 것 자체가 없으니까.

길드에서 나와 무소속이 된 이준기로서는, 기자회견에서 소신 발언을 해서 잃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차원문을 길드와 협회가 독점하는 것에 대해 쓴소리를 한 것이다.

그런데 그 행동이 헬렌 카자크를 일찍 만나게 해주는 행운을 불러왔다.

‘헬렌과는 어차피 나중에 만나리라 생각해서, 아무런 계획이 없었는데. 이젠 어떻게 할지 생각을 좀 정해야 하나.’

조슈아가 독니를 드러내면, 헬렌과는 자연스럽게 같은 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전에 만날 방법도 없으니, 헬렌 카자크, 그리고 다른 동료들과의 만남은 운명에 맡겼다.

그러나 다른 누구도 아닌 헬렌 카자크를 이렇게 일찍 만나게 되다니.

일본까지 건너와서 얻은 뜻밖의 수확이었다.

*****

다음날인 10월 13일 목요일 아침 10시.

전용택, 문아린, 김나리, 그리고 이준기가 호텔 2층 커피숍에 모였다.

“준기 씨, 생각 좀 해봤어?”

“네. 하지만···”

“잠깐, 잠깐. 그렇게 대답을 빨리하려고 하지 말고, 얘기를 좀 해보자구.”

“네, 그러시죠.”

“준기 씨, 지금 길드 없잖아?”

“네.”

“길드 없으면 힘들다는 거, 준기 씨도 알고.”

“그렇죠.”

“어제 기자회견에서 한 말의 골자도 그거잖아.”

“네.”

“그래서 정부가 차원문 관리를 한다면 또 몰라도, 지금은 아니잖아.”

“아니죠.”

“그럼 길드가 필요한 거 맞네. 집도 없다고 하지 않았어?”

“그건 그렇죠.”

“그러니까 몸만 오면 되는 거잖아. 광주로 와. 신선자 길드에서 스타 한 명 스카우트 좀 해보자.”

“하하, 농담도 참.”

“농담은 무슨! 계약금 조로 아파트 하나 마련해 줄게. 지방이라서 아파트 비싸지 않으니까, 부담은 갖지 말고.”

문아린이 옆에서 도왔다.

“그래요, 오빠. 서울에 집도 절도 없다면서요. 우리 길드에 들어와요.”

김나리가 툭 던지듯이 가볍게 말했다.

“서울 떠나기가 싫으신 거면, 우리 길드에 들어오세요. 준기 씨라면 대환영일걸요.”

이준기가 세 사람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길마님, 아린아, 그리고 나리 씨. 고맙습니다만, 전 이제 용병으로 뛰려고 합니다. 용병으로는 얼마든지 불러주세요.”

전용택이 팔짱을 끼고 뒤로 기대면서 말했다.

“참, 황소고집일세.”

“길드에 소속되면 협회에 소속되는 거잖아요. 그게 싫어요.”

“일본처럼 구원자협회가 아니고 길드협회니까, 형식상으로는 그렇기는 하지.”

“개인 자격으로 협회에 소속된 사람도 없잖아요. 그러고 싶지도 않지만.”

“모든 게 다 길드 중심으로 돌아가니까.”

“이익단체는 필요하죠. 하지만 지금의 협회는 너무 권력 지향적이에요. 그건 일본도 마찬가지고요.”

“일본도 그런가?”

“어딘 안 그렇겠어요. 구원자들에게 특권이 너무 많아요.”

“준기 씨도 구원자잖아.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

“구원자에게도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잖아요.”

“그렇지. 맞는 말이기는 한데···”

“그건 그렇고, 전 회장님은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생각 같아서는 이상덕 그 자식을 갈아 마셔버리고 싶지만, 어떻게 방법이 없으니 일단 상황을 좀 봐야겠지. 던전 안에서 일어난 일을, 뭐 어쩌겠어.”

“맞습니다. 그래서 아시카가에게 증언 대신 입단속을 시킨 겁니다. 항복했을 그 당시야 뭐든 하겠다고 약속하겠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리가 없죠.”

“맞아. 나도 준기 씨가 잘했다고 생각해. 밖에 나가서 죄를 자백해라, 이랬다면 던전 안에서는 그러마 했다가 나와서 입을 싹 씻었겠지.”

“현재로서는 우리가 조금이나마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요. 아시카가가 구라모토 협회장에게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털어놓을 가능성도 있기는 하죠. 하지만 그래도 그 정보가 이상덕한테까지 오지는 않을 겁니다.”

“이상덕도 구라모토에게는 장기 말에 불과하니까.”

“그렇죠. 먹이만 잘 챙겨주면 시키는 대로 일을 하는 개에 불과하죠. 개한테 지시는 할지언정 왜 그런 지시를 하는지 설명까지 해주지는 않을 테니까요.”

김나리가 물었다.

“그러면 앞으로 달라지는 건 없는 건가요? 저나 전 회장님이나 엄한 데서 죽을 뻔했는데.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면, 좀 억울할 것 같아요.”

“이상덕 협회장은 반협회장 파를 계속해서 견제하려고 할 겁니다. 이제 우리는 그 사실을 아니까, 모르고 있을 때보다는 대응을 좀 더 잘할 수 있겠죠.”

커피잔을 쳐다보던 문아린도 고개를 들고 이준기에게 물었다.

“오빠는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하는 거예요? 차원문에는 어떻게 들어가려고요?”

“용병이니까, 여기저기 길드에 영업을 해서 고용을 부탁해야겠지. 그것도 안 되면 이번처럼 슬쩍 들어가기라도 해야 할까?”

전용택이 말했다.

“좋아, 그럼. 일단 우리 길드 관할 던전에 붙여줄게. 문아린 회원님도 찬성하시는 거죠?”

“당근이죠. 그럼 일단 우리 셋에, 두 명 정도만 더해서 어디 가볼까요?”

김나리가 끼어들었다.

“저도 끼워주세요. 준기 씨 가는 곳이라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

포럼에 계속 참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이준기는 일찍 귀국을 서둘렀다.

전용택, 문아린도 이준기가 일찍 귀국한다는 말을 듣고 같은 비행기를 끊었다.

“어? 오빠 옆자리는 예약이 돼 있네요? 에이.”

“그래? 아까 좌석 지정할 때는 비어 있었는데. 그 사이에 누가 표를 샀나 보네.”

“아직 빈 자리도 많은데 무슨 가운데 자리를 지정했대요? 성격 이상한 사람이네.”

“그러게. 어차피 꽉 찬다 이건가?”

“일단 그 복도 자리로 끊고, 비행기 타서 바꿔 달라고 해야지.”

목요일 아침, 세 사람은 아침 일찍 공항에 도착했다.

이준기가 어디에 좀 다녀오겠다고 하니, 문아린이 물었다.

“또 어딜 가려고요? 같이 가요.”

“그래, 괜찮겠어? 라멘 먹으려고 하는데.”

“와아, 오빠는 라멘 광인가 봐요. 같이 가요.”

“나도 할 일 없으니까, 같이 가도 되지?”

“그럼요, 전 회장님.”

공항에 가마쿠라 분점이 나와 있었다.

공항에 입점한 식당에 많은 것을 바라면 안 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이준기는 이름값을 하리라 기대하면서 차슈를 추가한 곱빼기를 주문했다.

가마쿠라 본점에서 보던 것과 같은 플라스틱 그릇을 보자 기대감이 커졌다.

차슈를 낼름 집어먹고 고개를 갸우뚱하던 이준기는 면을 한 젓가락 가득 흡입하고 나서, 실망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으으. 이럴 수가. 역시 공항에서는.”

“왜, 맛없어요?”

“그냥 흔한 프랜차이즈 라멘 맛이네. 텐류 같은 거.”

“텐류는 또 뭐예요?”

“그냥, 오사카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라멘집. 잘은 몰라도 오사카 전체에 지점이 한 5천 개 정도 있지 않을까?”

“5천 개요? 농담이죠?”

“농담이지. 슬픈 농담이기는 하지만.”

시간이 되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준기가 먼저 창가 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전용택은 아예 다른 자리에 앉았지만, 문아린은 이준기의 자리에서 하나 건너뛴 복도 자리.

“일단, 오빠 옆에 앉을래요. 나중에 사람 오면 바꿔 달라고 하죠, 뭐. 가운데 자리보다는 복도 자리가 더 좋잖아요?”

“그렇긴 한데, 일부러 가운데 자리를 찍어서 예약한 사람이 자리를 바꿔줄까?”

“우리, 일행이라고, 사정 좀 봐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하긴, 그런가.”

그러나 그렇지가 않았다.

수트를 갖춰 입은 통통한 체격의 안경남이 등장해서, 문아린에게 거기는 자기 자리라고 말했다.

문아린이 대답했다.

“저, 죄송한데요. 저희가 일행이라서 그런데 자리 좀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여기 복도 자리예요. 화장실 가기도 편하시고.”

“아, 죄송합니다만, 그 자리에 꼭 앉아야 해서요.”

“네? 왜요?”

“저, 이준기 구원자님 인터뷰 좀 따려고요.”

“네?”

“제가 안경을 껴서 못 알아보시는 건가 봐요, 문아린 구원자님.”

“헐. 저를 아세요? 누구세요?”

안경남이 안경을 벗었다.

“저, 김대기 기잡니다. 평소에는 렌즈를 낍니다.”

*****

“오늘 운수 대통했네요. 요즘 한참 잘 나가시는 두 분을 모두 인터뷰할 수 있다니.”

“제가 준기 오빠 대변인이 됐네요. 아무튼 자리 바꿔주셔서 감사해요.”

“이준기 구원자님이 자리 안 바꾸면 인터뷰 안 하겠다고 하시니··· 아니, 아닙니다. 제가 바꿔드린 걸로 해주세요. 그게 좋잖아요?”

“그럼요. 좋은 게 좋은 거죠.”

김대기 기자는 이륙 전, 아직 비행기 엔진 소음이 없을 때 인터뷰를 시작하려고 했지만, 안전 사항을 전달하던 승무원에게 제지당했다.

그걸 보고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면서, 이준기는 김대기에게 말했다.

“저는 일단 조금 자겠습니다. 간밤에 잠을 잘 못 자서요.”

“네, 그러시죠. 비행기가 이륙하면, 염치 불고하고 깨우겠습니다.”

“김 기자님 직업 정신 정말 투철하시네요. 그럼 딱 한 시간만 자겠습니다.”

김포 공항까지 세 시간. 그중 한 시간은 일단 확보했지만, 나머지 두 시간은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도 아린이가 옆에 있으니까, 질문이 좀 분산되기는 하겠지.’

눈을 감고 등받이에 기대고 보니, 정말로 잠이 들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다음, 이준기는 비행기의 흔들림을 느끼면서 잠을 깼다.

문아린과 김대기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비행기 엔진의 소음과 섞여 들렸다.

“호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 건 기사에 쓰지도 못하겠네요.”

“오프 더 레코드로 말씀드린 거니까, 절대 그러지 마세요. 김대기 기자님 믿고 말씀드린 거니까.”

“그런 얘기를 쓰면 다들 저보고 미쳤다고 하겠죠. 신문이나 르포 방송도 아니고, 저녁 뉴스 기자는 그런 기사 내보내지도 못해요.”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들어가시는 거예요? 포럼 취재하시러 온 거 아녜요?”

“포럼에는 후배 들여보냈고요. 아무래도 포럼보다는 두 분 취재하는 게 수지맞는 장사일 것 같아서요.”

“저는 그냥 우연히 걸린 거잖아요. 그런데 준기 오빠 이 비행기 예약한 거는 어떻게 아신 거예요? 원래 계획에 있던 것도 아니고 어제 갑자기 끊은 건데.”

“그건, 영업비밀이라서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훗. 네, 알겠어요. 김대기 기자님 엄청난 인맥이겠죠?”

“노코멘트로 하겠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을게요.”

“하하, 제가 촉이 좀 좋죠?”

“어, 이준기 구원자님 깨신 것 같아요.”

“어? 오빠!”

다시 눈을 감아도 속지 않을 것 같아, 이준기는 눈을 비비면서 허리를 세웠다.

마침 스튜어디스가 커피를 들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식사는 하지 않았지만, 뭐라도 마시고 싶어 이준기는 커피를 받았다.

지옥에서 방금 전 공수해온 것 같은, 쓰디쓴 구정물이 혀에 닿자, 이준기는 성급한 행동을 후회했다.

“웩.”

저도 모르게 표정을 찡그리면서 감탄사까지 내뱉은 걸 보고, 김대기 기자가 말했다.

“이준기 구원자님. 비행기 커피를 싫어한다. 이렇게 써도 될까요?”

“하하. 그거 재밌네요. 준기 오빠가 커피 취향이 좀 세긴 하죠.”

“아, 그래요? 역시 문아린 구원자님은 이준기 구원자님에 대해서 아시는 게 많네요.”

“두 번이나 공격대를 같이 했잖아요. 같은 길드도 아닌데.”

“기막힌 우연이네요. 아니, 그 정도면 인연이라고 봐야 하나요? 하하하.”

“김 기자님 농담을 참 마음에 들게 하시네요.”

김대기 기자가 이준기에게 물었다.

“한일 연합 공격대가 도대체 어떻게 던전을 클리어한 겁니까? 던전 설명하고는 도저히 맞지 않는 것 같아서요.”

예상된 질문. 그러나 준비했던 대답을 그냥 던져 준다고 해서 받아먹을 김대기 기자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차원문 관련해서 최고 수준의 전문가로 통하는 사람이다.

도톤보리 던전과 같은 유형이 한국에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는 나름대로의 조사를 통해 결론을 내린 것이다.

다케다 시게히데의 던전 클리어 브리핑 내용이 앞뒤가 안 맞는다고.

이준기는 잠깐 뜸을 들였다.

머뭇거린다는 느낌이 김대기 기자에게 충분히 전달되었다고 생각하자, 그는 천천히 대답했다.

“하아, 김대기 기자님은 역시 대단하시네요. 그렇죠. 다케다 씨의 설명은 아무래도 좀 미심쩍죠.”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건가요?”

이준기는 한숨을 쉬었다.

너무 자주 하면 연기하는 것이 들통날 테니, 이번까지만 하기로 했다.

처음에 말을 떼기가 어렵다는 인상을 주는 게 목적이니까.

“다케다 씨의 설명은, 지루하게 계속 같은 공격 패턴을 반복하다 보니 사소한 실수가 있었고, 그래서 과도하게 많은 오크 병력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바람에 인명 손실이 있었다는 거였죠. 어쩔 수 없이 몰아 잡게 되어서 던전을 더 빨리 클리어하게 된 것은 좋았지만, 그동안 일본에서 하던 방식과는 달랐다는 거였습니다.”

“네. 차원문을 방치하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성급하게 접근하는 것도 문제이긴 하죠. 저는 일본 측 입장에 동의합니다. 구원자라는 자원은 희소하니까, 소중히 다뤄야죠. 뭐, 인간 생명은 소중하다는, 더 이전 차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만.”

“다케다 씨가 빼놓은 부분은 이겁니다.”

“네. 궁금합니다. 빨리 좀 말씀해 주세요.”

“제가 던전에 다섯 시간 정도 먼저 진입해서 정찰을 했죠. 던전에서 일본 사람들이 모르던 요소를 찾아냈습니다.”

“그게 뭔가요?”

“고블린 용병대가 던전 안에 존재하더라고요.”

“고블린··· 용병대요?”

“말 그대로, 고블린 용병을 고용해서 쓸 수 있는 겁니다. 던전을 빨리 클리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많은 인명 피해를 발생시킨 것이 바로 고블린 용병대였습니다.”

김대기 기자가 빠르게 메모를 하고 나서 안경을 고쳐 쓰면서 이준기를 쳐다보았다.

“고블린 용병대가 공격대를 습격한 겁니까?”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고 그럴듯한 거짓말이지만, 어려운 싸움을 도와주면서 많은 피해를 입은 고블린 용병대를 나쁘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준기는 원래 생각했던 대로 말하기로 했다.

“아뇨. 그건 아닙니다. 용병들은 우리를 잘 도와줬죠. 너무 잘 도와줘서 문제가 된 거죠.”

“아! 그러니까 고블린 용병대가 도와줘서 전투가 너무 쉬워지다 보니까, 정신 집중이 흐트러져서 애드가 발생한 거군요.”

“네. 바로 그 부분을, 다케다 씨가 빼놓은 겁니다. 하지만, 기사로 내지는 말아 주세요.”

“흠··· 하긴 그런가요.”

“다케다 씨의 명예도 있고, 또 죽어간 동료들의 명예도 있으니까요.”

“하긴 그렇군요. 누가 애드를 냈는지는 얘기해 주실 수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그건 사자의 명예에 관련된 문제라서.”

“생환자들 중 누군가의 실수는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말이 실감 나네요.”

“하하. 그건 정말 뼈 있는 농담이군요. 이준기 구원자님은 뭐랄까, 아주 신중하신 성격인 것 같습니다.”

듣고 있던 문아린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오빠가 어렸을 때, 아마 애늙은이라는 말을 들었을 거 같지 않아요?”

“하하. 저도 바로 그렇게 느꼈습니다.”

이준기는 속으로, 이번에야말로 진짜 한숨을 쉬었다.

촉이 좋은 김대기 기자에게 적당한 이야기를 믿게 한 것이다.

한일 어느 쪽에서든, 양국 간에 국민감정이 상하게 할 기사가 나는 것이 좋지 않다.

앞으로 그럴 일은 넘치도록 일어날 텐데, 미리부터 긴장 조성해서 이득 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아니, 누가 이득을 보더라도 문제다.

양국 국민들 사이에 감정의 골이 생기는 데에서 이득을 보는 건 전쟁광뿐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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