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03화 (103/248)

────────────────────────────────────

Episode 35: 푸가초프의 반란 (4)

Episode 35: 푸가초프의 반란 (4)

“소냐. 이게 얼마 만이야. 정말 반갑군.”

디마가 묶여 있는 여자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벌벌 떨기만 할 뿐.

“사랑의 도피라··· 난 그런 건 영화에나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지 뭐야. 그런데 그런 게 정말 있었군!”

“사··· 살려주세요.”

“그런데 이걸 어쩌나? 영화와는 조금 다른 전개인걸? 백마 탄 왕자가 저 꼴이 뭐냐?”

문장 끝을 길게 늘이며 소냐를 조롱하던 디마는 부하에게 소리를 질렀다.

“저 자식, 죽은 건 아니지?”

“아, 아닙니다. 기절한 겁니다. 깨울까요?”

“그래. 둘을 한꺼번에 괴롭히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다.”

부하는 고무호스를 들어 옆 의자에 묶인 남자에게 물을 뿌렸다.

깨어난 남자는 물을 뱉어 내려고 쿨럭거렸다.

“이 새끼 이름이 뭐라고 했지?”

“미하일입니다. 디마 님.”

“그래, 미하일. 하늘에서 내려오신 성천사님이시군. 그래서 우리 불쌍한 소냐를 구하러 온 건가? 그런데 이걸 어째?”

입에서 물을 토해내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남자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곧, 자신이 어떤 상황에 부닥쳐 있었는지 기억해 냈다.

그리고 눈앞의 권력자에게 비굴한 목소리로 외쳤다.

“사, 살려주십쇼!”

디마가 대꾸했다.

“살려줘? 애초에 잘못을 하지 말아야지. 너무 늦은 회개라고 생각하지 않나?”

“사, 살려주세요. 돈을 드리겠습니다! 은행예금을 모두 인출해 드리겠습니다. 모자란 금액은 은행에서 대출이라도 하겠습니다!”

“그래? 구미가 좀 당기는걸.”

“가, 감사합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휴대폰으로 이체를 해드릴 수 있습니다!”

“살려달라며? 살려달라는 말은, 누굴?”

“네?”

“너만 살려주면 되나? 소냐는? 사랑한다며?”

“소··· 소냐! 그녀도 살려주신다면, 제가 평생 그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소냐··· 이쁘긴 하지. 아니, 정말 이쁘지. 그래서 당신 같은 월급쟁이 나부랭이가 반한 거고. 그렇지?”

“네, 그녀를 사랑합니다!”

“이렇게 떡이 되게 얻어맞고도, 사랑이 아직 그대로 있나 봐? 신기한데?”

“그, 그녀를 저와 함께 놓아주신다면, 더 얻어맞아도 좋습니다! 정말입니다!”

옆에서 흐느끼던 소냐가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미하일!”

“소··· 소냐! 내, 내가 구해줄게.”

“미하일···”

디마가 기지개를 켰다.

이어서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하고 나서, 그는 둘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신파야. 재미없다고. 네놈들이 재미를 만들지 않으면 내가 만드는 수밖에.”

“사, 살려주세요!”

“제··· 제발··· 자비를···”

디마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서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둘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불이 좋더라구. 이 겨울에 따뜻한 불장난을 좀 해주지. 이 기술의 이름은 ‘스파크’다. 불이 붙고, 화염 낙인이 남는다는 설명인데··· 나는 맞아본 적이 없어서 모르지. 어떤 느낌인지.”

디마는 공중에서 손을 휘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맞고 나서 어떤 느낌인지 말해줘. 부탁이야.”

미하일은 이를 악물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소냐가 울부짖었다.

“미하일!”

*****

“러시아에는 깡패가 많군. 강약약강.”

바닥에 쓰러진 디마의 옆구리에 발을 올린 채, 이준기가 말했다.

“너! 이놈 손목을 뒤로해서 좀 묶어. 여기 이걸로.”

마피아 조무래기에게, 이준기는 사할린에서 100개들이 묶음으로 샀던 플라스틱 줄을 내밀었다.

“알지? 구멍으로 줄을 넣은 다음 죽 밀면 그대로 잠기는 거야. 거꾸로는 가지 않지. 저놈 손모가지가 부러져도 좋으니까 끝까지 죽 당기라고.”

자기 부하가 손목을 잡자, 디마가 다급하게 소리 질렀다.

“무, 무슨 짓이야! 알료샤! 너 미쳤어?”

못 들은 척하면서, 이준기는 부하에게 말했다.

“꼴에 구원자니까, 다섯 개쯤 묶어라. 끊어질 수도 있으니.”

디마가 다시 소리쳤다.

“알료샤! 뭐 하는 거야? 미쳤어?”

“미친 건 네놈이지. 21세기에 고문 기술자 놈을 만나게 될 줄이야. 지옥에나 가라.”

“알료샤! 너··· 너 지금 실수하는 거야! 여긴 우리 아지트 한복판이라구!”

“상관없어. 난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악을 응징하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 빡돌 것 같아서, 못 참겠어.”

“우린 초··· 총이 있다! 야, 표도르! 이 새끼 쏴버려! 빨리!”

“총? 이거 말이냐?”

이준기는 표도르에게 빼앗은 권총을 디마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디마는 침을 삼키고 나서 다시 말을 뱉었다.

“내, 내가 소리 지르면!”

“철문이 2중으로 되어 있는데, 소리가 빠져나갈까?”

“저··· 절대로 이대로 빠져나가지 못한다! 이 야쿠자 새끼!”

“죽을 놈이니 별 상관이 없을 수도 있지만, 역시 야쿠자라고 불리는 건 대단히 불쾌하군.”

“여, 역시! 뭔가 수상했어! 넌 야쿠자도 아닌 거군! 네 정체는 뭐냐?”

“지나가던 사람이다. 정말로, 그냥 지나가려고 했던 건데, 네놈의 악행이 너무 역겨워서 결국 참견을 하게 되는군. 처음 봤을 때부터, 네놈의 그 역겨운 미소가 거슬렸어. 그거 아냐? 넌, 나쁜 짓을 하려고 할 때 아주 역겨운 미소를 짓는다는 걸. 한 번도 그걸 억제하지 못하더군.”

“알료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 나를 풀어주면, 없었던 일로 해주겠다. 극동 마피아 서열 17위인 내가, 디마 호로비코프가 약속한다.”

“디마 호로비코프는, 오늘 2022년 1월 10일, 사망한다. 향년··· 26세. 맞지? 생일 아직 안 지났지?”

디마가 입에 게거품을 물며 소리쳤다.

“야, 이 새꺄!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게 재밌냐!”

“응. 재미있군. 악인을 응징하는 게 이렇게 통쾌할 줄은 몰랐다.”

“너··· 너 정체가 뭐야? 설마 예카테린부르크 쪽이냐? 아니면 푸가초프?”

“푸가초프? 그건 뭐지?”

“그쪽은 아닌 모양이군. 푸가초프가 뭔지 궁금하다면 나를 풀어줘라!”

“아니. 정보는 스스로 구해야지. 네놈 보스 말대로.”

“푸가초프는 아주 중요한 정보다! 네놈이 당분간이라도 러시아에 있을 생각이라면, 마피아 세력 관계에 대해서는 알아야 할 거 아니냐!”

“아니. 관심 없어. 차차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으니까.”

“알료샤! 이런 짓을 해서 네게 무슨 이득이 있지? 나를 살려주면 널 다른 곳으로 보내주겠다. 안전한 곳으로 말이야!”

“아주 꿀 제안이군. 하지만, 거절한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 너, 정체가 뭐야?”

“궁금한 게 많은 놈이군. 하지만 네놈에게는 별로 관대해지고 싶지가 않다. 그냥 궁금한 채로 죽어라.”

“사, 살려줘!”

“넌, 소냐와 미하일을 살려주지 않았잖아?”

“무슨 말이냐! 살아 있잖아!”

“그건 네가 저들을 죽이기 직전에 내가 들어왔기 때문인 거고.”

“아, 아냐. 나는 그저 겁을 주려고 한 거야! 소냐는 내 관할이다! 그런데 미하일인가 하는 저놈이 창녀를 보고 반해버린 거야! 그래서 둘이 도망치려고 하는 걸 내가 잡은 거라고. 소냐는 내 재산이다! 난 도둑을 잡은 거야!”

“고칠 수도 없이 비뚤어진 사고방식이군.”

“소냐는! 저년은 내 거다! 내 소유물이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준기는 소리를 내지르는 디마를 무시하고 그의 부하, 표도르에게 말했다.

“차가 있나?”

“차, 차요?”

“그래, 자동차. 소냐와 미하일이 타고 갈 차를 내놔라.”

“네, 넵! 여기 열쇠가 있습니다.”

“차 번호는? 어디에 있지?”

“4974입니다. 문밖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복도를 끝까지 가시면 주차장에서 쉽게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안내해라. 다 같이 차까지 간다.”

“디, 디마는요?”

“아, 그렇지. 어떻게 해줄까, 저 녀석은?”

이준기가 다시 눈길을 던지자, 디마가 울부짖었다.

“왜 그래! 살려줘! 난 너한테 잘해줬잖아!”

고문실 안을 둘러보자, 이준기의 눈에 휘발유 통이 보였다.

그는 표도르에게 물었다.

“저건, 휘발유?”

“네!”

“디마 이놈 몸에 휘발유를 골고루 뿌려라. 푹 적셔지도록.”

“넵!”

표도르가 디마의 몸에 휘발유를 부었다.

디마가 반항하자, 표도르는 디마의 입에 휘발유를 들이부었다.

디마는 온 힘을 다해 기침을 해서 휘발유를 뱉어내려고 버둥거렸다.

“사··· 사··· 살려···!”

휘발유 한 통을 전부 들이붓고 나서, 표도르는 디마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디마의 입안에 헝겊 조각을 잔뜩 채우고 나서, 표도르는 일어나서 이준기에게 말했다.

“준비 끝났습니다.”

“재갈은 잘 물렸다. 시키지도 않은 일까지 해주다니, 고맙군.”

“별말씀을요.”

“튼튼한 철문이니, 문을 닫으면 불이 방 바깥으로 번지지는 않겠지?”

“그렇습니다. 예전에도 여기에서 여러 명 그렇게 죽였으니까요.”

역시, 이 방은 그런 용도였던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역겨워서 구토가 나려고 할 지경이었다.

이준기는 소냐와 미하일을 먼저 방 바깥으로 내보내고, 자신도 문이 열린 틈에 섰다.

“표도르, 저놈에게 불을 붙여라.”

표도르는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켜고 디마에게 던졌다.

순식간에, 디마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번졌다.

“쓰레기.”

이준기는 그렇게 말하면서, 표도르를 발로 차서 방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찰나, 표도르의 새된 목소리가 문틈을 새어 나왔다.

“사, 살려줘! 이 나쁜 놈아!”

디마와 표도르, 둘이 엉키면서 거대한 불덩어리가 타올랐다.

*****

숙소로 돌아와서, 이준기는 세르게이에게 물었다.

“정보는 좀 알아봤어? 내가 알아야 할 것들만 얘기해줘.”

“내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정보를 모으려니까 쉽지 않아. 하지만 일단 알아낸 데까지 얘기할게.”

“그래, 좋아.”

“북쪽 시가지 차원문에 드나드는 녀석은 바실리 엘리셰프(Vasily Elyshev). 푸가초프 소속이다.”

“푸가초프? 그게 뭐야?”

“아, 그렇지. 배경 설명이 필요하겠군.”

“긴 얘기야?”

“조금 길겠지? 하지만 모스크바까지 갈 생각이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할 거야.”

“그래, 그럼. 얘기해봐.”

이준기는 의자에 앉은 채로 팔짱을 꼈다.

“러시아에는 네 개의 거대한 마피아 조직이 있다. 각각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카테린부르크,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가 거점이지. 이들 네 개 조직의 보스들이 러시아 마피아 연합 4인방을 이루고 있고. 여기까지는 아는 내용이지?”

“응.”

“서로 싸우지 말자고 만든 연합이지만, 대략 두 개의 연합 세력이 균형을 이룬다고 보면 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예카테린부르크가 한 팀이고, 우리 블라디보스토크와 모스크바가 한 팀이지.”

“항쟁 중이거나 한 건 아니잖아?”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네 개의 조직 중 하나라도 힘이 빠지면, 서로 으르렁거리는 건 순식간일걸.”

“넷 중 가장 센 조직은 어디지?”

“당연히, 모스크바다.”

“그럼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 연합 쪽이 아무래도 유리하겠군?”

“아니, 그렇지 않다. 바로 이 부분에서 푸가초프가 등장하지.”

“푸가초프가 왜?”

“푸가초프는 마피아를 제외하면 가장 큰 러시아 구원자 조직이다. 다른 나라에 흔히들 있는 길드라고 생각해도 좋아. 그러니까, 러시아 구원자는 마피아 소속이거나, 아니면 단 하나밖에 없는 길드, 푸가초프 소속이다. 무소속 구원자들도 소수 있지만, 정말로 극히 소수다.”

“아하. 푸가초프가 그런 거군.”

“그 푸가초프의 본거지가 모스크바다. 그러니까, 푸가초프 때문에 전력이 누수되는 것은 어느 마피아나 마찬가지지만, 모스크바 마피아가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푸가초프는 전국 조직이라며?”

“하지만 본거지가 모스크바니까, 아무래도 모스크바 출신이 많을 수밖에 없지. 그리고 푸가초프가 지향한다는 대의를 생각하면, 모스크바는 그들에게 성지 같은 곳이라고 할 수밖에.”

“푸가초프의 대의?”

“약자를 구한다는 게 그들의 대의다. 푸가초프는 18세기 제정 러시아 때 농민반란을 일으켰던 사람의 이름이다. 모스크바에서 공개처형 되었지.”

“아하! 그래서 모스크바가 그들에게 성지가 되는 거군?”

“그렇지. 그런데 마침 푸가초프 소속 구원자 중 한 녀석이 이곳 블라디보스토크 북쪽 시가지에 있는 차원문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녀석을 처리하는 것은 모스크바 마피아에도 극동 마피아에도 득이 되는 일이지.”

“반대로, 그냥 방치한다면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예카테린부르크 연합에만 좋은 일이겠고.”

“바로 그렇다. 그래서 바실리 엘리셰프, 그놈을 잡게 된다면, 블라디보스토크는 물론 모스크바 마피아에게도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