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isode 35: 푸가초프의 반란 (6)
Episode 35: 푸가초프의 반란 (6)
- 34레벨.
- 전문화: 빛 6, 바람 10, 흙 8, 마나 10.
- 힘 50. 민첩 80. 체력 60. 정신력 10. 물리 저항 15. 마력 저항 20.
- 성흔: 포켓 유니버스.
- 획득 스킬: 공성타, 저지, 블러.
- 인벤토리: 북해의 바람, 매머드 터스크, 들꽃 써클릿, 숲지기 장갑, 상형문갑, 코자크 경갑 바지, 윈드 서퍼, 아름다운 바실리사의 해골 랜턴, 상급 힐링 포션 2개, 중급 힐링 포션 5개, 기본 식량 팩 4개.
바실리사는 성흔 보유자였다.
전체 구원자의 겨우 2%가 보유하고 있다는 성흔.
한국에서도 거의 만나지 못했던 성흔 보유자를, 러시아 땅에서 만난 것이다.
그것도 흔한 레어 등급 성흔이 아니라, 무려 에픽 등급의 성흔이다.
포켓 유니버스.
심각한 수준의 대미지가 들어올 경우, 자동으로 방어 스킬이 발동하는 성흔.
지금까지 바실리사가 마피아의 습격을 피해 다닐 수 있게 한 원동력이다.
“시간이 없어요. 일단 상황을 설명할게요.”
이준기는 그렇게 말하고 바실리사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극동 마피아는 현재 바실리사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으며, 바로 조금 전, 보스 블라디미르 아쉬코프가 구원자들을 소집했다는 것, 5명이 모이는 대로 차원문 안으로 들어올 예정이라는 것까지 설명했다.
“블라디미르는 저를 용병으로 고용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저를 차원문 안으로 들여보냈죠. 바실리사 당신이 오두막을 통해 바깥으로 다시 나오지 못하도록 감시하라는 겁니다.”
“네?”
“물론, 저는 마피아도 아니고, 마피아에 고용된 용병도 아닙니다. 사실 저는, 러시아 마피아에 최대한 피해를 입히고 이 나라를 뜰 생각입니다.”
“왜죠? 그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요?”
“그건 또 이야기가 깁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저는 지금 쫓기는 몸입니다. 그래서 러시아에 잠깐 숨어 있어야 하는 상황이죠. 숨어 있는 동안 뭔가 할 게 없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구원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한정되어 있죠.”
“그래서요?”
“러시아 구원자들은 대개 마피아에 고용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마피아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죠. 구원자들이 권력을 쥐고 얼마나 나쁜 짓을 할 수 있는지, 그걸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죠.”
“맞아요!”
“그런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는데, 그냥 참고 지나치기 어렵더라고요.”
바실리사가 이준기의 손을 덥석 붙잡고 말했다.
“역시, 제가 상상했던 그런 분이군요! 이준기 씨는!”
“제 동기도 결국에는 이기적인 겁니다. 제가 분통이 터져서, 참지 못하는 거니까요.”
“그런 일에 분노를 느끼는 대신 눈을 감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제 목표는 블라디미르 아쉬코프와 부하들을 없애버리는 겁니다. 바로 이 차원문 안에서요. 저와 함께하시겠습니까?”
*****
차원문 바깥, 페르보레첸스키 구의 큰길가에는 여섯 명의 남녀가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온갖 고급 상표의 코트와 점퍼를 차려입은 남녀 다섯을 앞에 두고, 셔츠, 청바지 차림에 목도리만 두른 남자가 명령했다.
“너희들부터 먼저 들어가라. 스즈키가 입구를 막고 있을 거야. 일단 들어가서 스즈키와 합류해. 아직은 바실리를 쫓아가지 마라. 나는 맨 마지막에 따라 들어가겠다.”
“보스도 들어오시는 거죠?”
“알았다고 말했다. 두 번 말 시키지 마라.”
“알겠습니다, 보스.”
급한 대로 모인 극동 마피아 소속 구원자 다섯 명이 차례로 차원문 앞에서 사라졌다.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블라디미르 아쉬코프도 차원문을 클릭했다.
빛이 주변을 감싸는 통로를 지난다.
눈이 부시는 느낌이지만, 정말 잠깐 동안이니까 괜찮다.
던전 입구의 오두막에는 먼저 진입한 부하 다섯 명이 기립한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다섯 명 중에서 레벨은 두 번째지만, 마피아 경력은 최고참인 올레그가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보스!”
“몇 초 전에 봤잖아. 뭔 인사를 또 해.”
머쓱해 하는 올레그에게 블라디미르가 물었다.
“스즈키는?”
“스즈키 상? 못 봤는데요?”
“문밖에도 살펴봤어?”
부하들 중 하나가 문을 열고 바깥을 양편으로 둘러보지만, 곧바로 다시 들어온다.
“보스, 아무도 없습니다.”
“뭐야, 이 야쿠자 놈! 내가 분명히 오두막을 지키고 있으라고 했는데! 바실리 녀석이 다시 도망 나올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불러볼까요? 근처 수풀 속에 매복해 있는지도 모르잖습니까?”
“그래··· 그렇게 하자. 일단 나가서.”
“보급품을 일단··· 좀 챙기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몇 명인데 보급품을 챙겨. 스즈키까지 해서 7대1이다. 힐링 포션 한두 개는 내가 나눠줄 테니, 빨리 따라와.”
“네! 알겠습니다!”
그들은 서둘러 오두막의 던전쪽 출입구를 열었다.
*****
몇 번을 연속으로 목청껏 소리를 지른 올레그가 목이 아프다는 듯 목에 손을 짚었다.
보스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그가 물었다.
“대답이 없는데요, 보스. 더 큰 소리로 불러볼까요?”
“더 큰 소리라니? 이제껏 목소리를 작게 조정이라도 했단 말이냐?”
“아··· 아닙니다, 보스. 몇 번이나 더 불러봐야 하나 해서요.”
“아니. 그만두자고. 일회용으로 간편하게 써먹고 버릴까 했는데 뜻대로 안 되었군.”
“도대체 어디를 간 걸까요? 배신···한 걸까요?”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아무래도 그거지. 마피아 생활 10년 하면서 배운 것 중에 지금까지 제일 잘 써먹고 있는 게 바로 그 깨달음이지. 어떤 놈이라도 믿지 말아야 한다는 거.”
“혼자 바실리를 추격하는 걸지도 모르잖습니까? 들어오자마자 바실리가 눈에 보여서 곧바로 쫓아갔다든가.”
보스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 차원문 바로 바깥에 바실리 그놈이 서 있었는데, 마침 스즈키 그놈도 근처에 있더라구. 바로 옆은 아니고 10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였지만. 아무튼 내가 곧바로 저놈이 바실리라고, 쫓아가라고 소리쳤는데, 스즈키 그놈이 콧방귀를 뀌더라고.”
“정말입니까?”
“목숨이 위험한 임무라면 그냥 포기하겠다고 하더군. 아주 개자식이야.”
목숨이 위험한 임무라면 당연히 포기해야지.
누구라도 자신을 위해 목숨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보스의 말을 들으면서,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블라디미르가 말을 이었다.
“그런 녀석이다. 밖에서도 바실리를 추격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놈이, 안에 들어와서 아무도 시키지 않는 일을 자진해서 했을 리가 없지.”
“하지만 바실리가 먼저 습격을 해왔을 수도 있죠. 그렇게 되면 스즈키로서도 일단 맞서 싸울 수밖에···”
“올레그, 네놈 귀에는 싸우는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는 거냐?”
“아, 아닙니다. 보스. 죄송합니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끼리 바실리를 잡을 수밖에 없어.”
“명령을 내려 주십쇼.”
“바실리 그 녀석의 레벨이 어떻게 되지?”
“게릴라 놈들 레벨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그러니까, 추정 레벨이 어떻게 되냐고!”
“모스크바 쪽에서는 대략 35레벨 정도로 추정하고 있더군요.”
“뭐가 그렇게 높아! 올레그, 네놈은 몇 레벨이지?”
“전 29레벨입니다.”
“상대도 안 되겠군.”
“죄, 죄송합니다.”
우물쭈물하는 올레그를 보면서, 아니 그 뒤로 넓게 펼쳐진 숲을 바라보면서, 보스는 여섯 명의 팀을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 열심히 생각했다.
“아드리안!”
“넵!”
“나 빼고는 네놈이 현재 최고레벨이다. 네가 여기를 지켜라. 오두막 문을 막고 서 있든, 근처에 숨어 있든, 아예 오두막 안에서 기다리든 상관없어. 바실리가 바깥으로 나가는 걸 막는 게 네 임무다.”
“바실리는 35레벨이라면서요, 보스!”
“너도 33레벨씩이나 되잖아! 2레벨이나 낮으니 싸우면 절대 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이길 자신이 없다면, 최대한 시끄럽게 싸우면서 맵 가운데 쪽으로 이동해! 우리가 듣고 달려와서 도와줄 테니.”
“그, 그게 말처럼 쉬울까요?”
“쉬운지 안 쉬운지 연습이라도 해볼까? 화염구 한 방 먹여주랴?”
“아, 아닙니다. 보스.”
“너무 겁먹지 마라, 아드리안. 넌 할 수 있다!”
“네, 넷! 보스.”
“나머지는 나와 함께 그놈을 잡으러 간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여기에 두 명을 놔두는 건 전력 낭비가 너무 커. 오두막을 지키는 녀석이 바실리를 만날 가능성보다는, 아무래도 추격대가 바실리를 만날 가능성이 크지. 최대한 여러 명이 한꺼번에 공격해서 단숨에 끝장내야 해.”
혼자 퇴로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아드리안을 제외하고는, 모두 보스의 논리에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주변을 부하들로 둘러싸고 싶은 것이 보스의 본심이라는 것을 다들 알지만,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다.
“잘 지켜라.”
블라디미르가 아드리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보스를 따라 움직이면서, 올레그도 아드리안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드리안, 잘 지켜라. 넌 할 수 있어.”
아드리안이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얼굴에 가득 올리면서 맞받아쳤다.
“네 앞가림이나 잘해라, 올레그.”
올레그와 아드리안 사이에는 언제나 서열 문제가 걸려 있었다.
구원자로서는 33레벨인 아드리안이 월등히 레벨이 높다.
하지만 마피아 경력을 따지면 올레그는 아드리안에게 넘사벽이다.
아드리안은 구원자 각성 후 마피아 생활을 시작했지만, 올레그는 각성 전부터 마피아였다.
그래서 둘은 늘 으르렁거렸다.
올레그가 앞장을 섰다.
수풀을 가르며 보스가 갈 길을 열었다.
보스 뒤를 나머지 세 명의 구원자가 따라 걸었다.
앞뒤로 부하들을 배치하는, 전형적인 마피아 보스의 행차 진형.
나무들 사이로 보스와 일행의 모습이 사라지자, 아드리안은 오두막 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바깥에서 멍하니 있는 것보다는, 자판기 구경이라도 하는 게 덜 심심하겠지.’
아드리안은 화면을 여기저기 클릭하면서 메뉴를 여닫았다.
화살, 물약, 무기 및 장비에 이어 식량 패키지를 모아 놓은 화면까지 아드리안은 하나하나 꼼꼼히 구경했다.
중간중간, 메뉴에 나오는 물건들에 대한 논평도 했다.
“화살도 종류가 더럽게 많구만. 총알이나 있으면 좋겠구만.”
“오오, 이건 자판기에서 파는 것 치고는 꽤 괜찮은데?”
“식량 패키지가 가장 큰 문제야. 이렇게 맛이 없는 식품이 세상에 존재한다니.”
오두막 문이 몇 차례 덜그럭거렸다.
처음에는 바실리인가 싶어 재빨리 휙 뒤를 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
문을 꽉 닫아 둘까 생각도 했지만 그렇게 하면 공기가 답답해질 것 같아 그냥 놔두었다.
다시 또 문에서 덜그럭 소리가 났다.
“문··· 역시 닫아둘까.”
아드리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
숲길을 따라 움직이며 보스를 위해 길을 열던 올레그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보스, 이런 말씀 지금 드려도 될지···”
우물쭈물하며 말을 흐리는 올레그.
블라디미르가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그친다.
“뭔데, 말해봐! 질질 끄는 거, 딱 질색이라고.”
“아드리안과 저, 둘 사이에 서열을 확실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도 그 소리냐?”
“집사 영감님은 구원자도 아닌데 서열 2위 아닙니까. 같은 논리로 아드리안과 저 사이에도 서열을 정해야죠.”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
“예전 같았으면 꿈도 못 꿀 일입니다. 제가 아드리안보다 조직 경력이 12년이 더 많습니다. 하늘 같은 선배한테 감히···”
“휴우. 나도 네 불만은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말야, 올레그.”
“네, 보스.”
“그런 식이라면 나는 어떻게 하냐? 네가 나보다 조직 경력이 3년은 더 길잖아. 나도 널 형님으로 모셔야 하는 거냐?”
“아··· 아닙니다, 보스!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니까 좀 닥쳐.”
“네··· 네에, 알겠습니다, 보스.”
“극동 마피아에는 서열 같은 거 없다. 5인방이 있을 뿐이야. 너, 나, 집사 영감, 아드리안, 마리아. 이렇게 다섯이다.”
“프로코포프와 로스코비츠는요?”
“갑자기 사할린 녀석들 이야기는 왜 해?”
“프로코포프는 구원자도 아닌데 로스코비츠보다 서열이 높지 않습니까? 그 이유가···”
“그놈들은 사할린 애들이잖아! 거기는 지들끼리 서열 정하라고 그냥 11위, 12위라고 붙여준 거다. 너희들은 절대 10위권이 아니니까, 맘대로 하라는 그런 뜻이라고. 두 자리 던져줬더니 자기들끼리 정한 거지, 내가 정해준 서열이 아냐.”
“같은 방식으로 서열을 정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해서 말씀드려본 겁니다, 보스.”
“아, 그래? 너 말 참 잘했다. 로스코비츠 그놈은 너보다 레벨도 높고, 아드리안보다 조직 생활도 오래 했는데 왜 너희들보다 서열이 낮냐?”
“그건···”
“그건 그놈이 사할린 지부에서 썩고 있기 때문이지. 너도 사할린 갈래? 로스코비츠랑 자리 바꿔줄까?”
“아··· 아닙니다, 보스!”
“그럼 서열 따위 신경 쓰지 말고 일이나 똑바로 해. 알겠냐?”
“알겠습니다.”
뭔가가 수풀을 가르며 오른쪽에서부터 다가왔다.
무서운 속도로.
수풀을 가르는 그 움직임은 일행 중 한 명을 강타하고 왼쪽으로 사라졌다.
“뭐, 뭐야!”
“바, 바람인가?”
“저렇게 빨리 움직이는 동물은 있을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