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10화 (11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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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6: 모스크바의 이방인 (1)

Episode 36: 모스크바의 이방인 (1)

‘붉은 광장에 다시 왔군.’

택시에서 내리면서 이준기는 회상했다.

조슈아 대 이준기 전쟁 당시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 중 하나다.

조슈아의 샌프란시스코 선언, 즉 구원자가 통치 계급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가장 열렬하게 환영한 세력 중 하나가 러시아 마피아다.

러시아 마피아는 조슈아 테일러를 환영하는 대대적인 행사를 붉은 광장에서 개최했다.

조슈아 테일러의 핵심 세력과 러시아 마피아를 일거에 소탕할 기회.

반조슈아 세력은 행사가 개최되는 붉은 광장을 기습했다.

‘도대체 몇 명을 죽였는지, 기억도 할 수 없을 정도다.’

“붉은 광장은 처음이죠?”

바실리사의 물음에,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 건지 이준기는 잠깐 갈등했다.

누군가가 말했다, ‘지난주’라는 것이 존재했다는 증거는 내 기억뿐이라고.

그렇다면 그가 기억하는 붉은 광장 전투는 실존한 것인가.

이준기의 침략 당시, 길 안내를 맡은 것이 마피아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 구원자들이었다.

거의 소탕당했지만, 적은 수의 생존자들이 있었다.

바실리사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사진에서나 보던 곳을 드디어 와보네요. 정말 예쁜데요.”

이준기의 대답에, 바실리사가 웃으며 말했다.

“와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그렇게 오래 생각해요?”

세르게이도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알료샤?”

이준기가 말했다.

“적진 한복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여긴 참 깔끔하게 관리되는 느낌이군요. 관광객도 많고요.”

“마피아한테도 관광객은 중요하죠. 여러 가지로 돈이 되니까요. 그게 아니더라도 마피아가 세력권을 잘 관리하는 것은 당연하고요.”

“그렇군요. 블라디보스토크나 유즈노사할린스크와는 또 다른 것 같아서요.”

“여러 가지로 다르죠. 차원문과 상관없이,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는 전혀 다른 세계니까요.”

“이제 뭘 하죠?”

“식사라도 할까요? 저녁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커피를 마셔도 좋고요.”

“카페인은 언제든지 환영이죠.”

조금 걸어 그들은 붉은 광장 근처의 커피매니아(Coffeemania)로 갔다.

바실리사가 해설했다.

“이름이 좀 유치하기는 하지만, 커피는 맛있어요. 적어도 스타벅스보다는 나아요. 적어도 저는 그래요.”

바실리사가 어떤 명제를 그렇게 자신 없는 투로 말하는 것은 처음 들었다.

그래서 이준기는 말했다.

“바실리사가 맛있다고 말한다면 저는 믿어요. 왜 그렇게 조심스럽게 말해요?”

“이준기 씨는 커피 전문가잖아요. 저는 그냥 아무거나 먹는 입맛이라. 자신이 없는 게 당연하죠.”

“제가 그렇게 까다롭게 굴었나요? 세르게이, 내가 그랬나?”

세르게이가 대답했다.

“그럼. 대장 커피 입맛은 까다롭고말고.”

“난 아무거나 잘 마시는데?”

“흠.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대장은 커피를 남길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지. 그것만으로도 대강 알 수 있다고.”

“아··· 그렇구나.”

셋은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누가 본다면, 느긋한 오후를 즐기는 젊은이 셋이다.

교환학생 이준기가 현지 대학생 둘과 함께 카페를 찾은 모습 정도로 보이겠지.

“숙소는 언제 정해지죠?”

“피곤하죠?”

“모스크바까지 열 시간이 넘게 걸릴 줄은 몰랐어요.”

“비행기가 늦게 출발했으니까요. 제시간에 출발을 했어도 아홉 시간은 걸리는 길이에요.”

“그렇군요.”

대답하면서 하품을 하는 이준기를 보고, 바실리사가 말했다.

“보리스가 숙소를 잡아 연락할 거예요. 생각보다 조금 늦네요.”

“보리스가 직접 숙소를 찾는 것도 아니라고 하셨죠?”

“모스크바 마피아는 막강하니까요. 저는 이름도 모르는 다른 멤버가 숙소를 찾을 거예요. 그걸 보리스가 받아서 저한테 전달하는 거죠.”

“보안이 철저하군요.”

“점조직이 아니었다면, 우리··· 훨씬 힘들었을 거예요. 다 죽었겠죠, 아마도.”

“점조직이라··· 자신이 속한 단체를 제대로 알 수도 없군요.”

“약자가 조직을 지키려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마피아가 점조직이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그들을 피해 다녀야 하는 우리 쪽이 점조직이죠.”

*****

이준기와 일행이 찾아간 곳은 낡은 아파트였다.

할머니 혼자 사는 아파트.

방 세 개 중에 둘을 공유숙박으로 내놓은 것이다.

바실리사가 하나를 쓰고, 세르게이와 이준기가 다른 한 개의 방을 쓰게 되었다.

바실리사와 집주인 할머니는 빨리 친해진 모양이었다.

“나 정도의 나이에 연금 생활하는 맘 편한 늙은이는 흔치 않지.”

“비결이 뭐예요, 할머니?”

“자본주의로 바뀔 때, 약삭빠르게 대응한 덕분이지. 나보다는 영감이 그렇게 한 거지만.”

“정말 대단하세요.”

“남편도 나도, 그냥 과학자였어. 그게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돈이 된다는 사실을 빨리 알아챈 거지.”

“과학자요?”

“남편은 화학, 나는 생명공학. 나중에는 내가 돈을 더 많이 벌었지.”

다음 날 아침, 커피숍에서 아침을 먹으며 바실리사가 둘에게 말했다.

“할머니는, 그냥 공유숙박업에 등록한 보통 사람인 것 같아요. 보리스가 그렇게 말했지만 다시 한 번 확인했죠.”

“수고했어요, 바실리사. 할머니와 밤새 얘기한 건 아니죠?”

“아뇨. 저도 피곤해서 일찍 잤어요. 할머니는 얘기를 더 하고 싶어 하는 눈치기는 했는데.”

“그냥 편한 마음으로 자도 되는 거죠?”

“그렇다고 생각해요.”

숙소는 안심해도 될 것 같아, 이준기는 화제를 돌렸다.

“이제 작전 회의를 하죠. 예브게니 영감이 말했던 우크라이나 이야기, 혹시 교차검증이 되나요?”

“그렇지 않아도 어제 보리스와 통화할 때 살짝 물어봤어요. 사실인 것 같아요.”

“흠··· 그렇단 말이죠.”

이틀 전, 블라디보스토크.

차원문 안에서 극동 마피아 보스 블라디미르 아쉬코프를 처치한 후, 이준기와 바실리사, 그리고 세르게이는 그들의 아지트를 기습했다.

총 든 구원자가 얼마나 막기 힘든 존재인지, 그들은 증명했다.

30분 만에 저항을 제압하고, 이준기는 극동 마피아의 2인자, 예브게니를 대면했다.

손목이 묶였지만, 의자에 앉은 예브게니는 고개를 꼿꼿이 하고 물었다.

“알겠다. 시키는 대로 하면 죽이지는 않겠다는 말이지?”

“그렇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소대로 행동하면 된다. 극동 마피아가 괴멸적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러시아의 다른 마피아 조직들이 모르게만 하면 되는 거다.”

“언제까지?”

“물론, 우리가 그들을 박살 낼 때까지다.”

“그다음엔? 우릴 가만히 놔둔다고 약속할 수 있나?”

“가만히 놔둔다고? 너희는 범죄자들인데?”

“아니, 그러니까, 다른 마피아를 소탕한 다음에도 우릴 살려줄 거냐고?”

“당연하다. 죽이지는 않겠다. 약속을 하지. 법적인 처벌은 받겠지만.”

“그렇다면 선택의 여지는 없군. 시키는 대로 하겠다.”

예브게니와 대화 중에, 우크라이나 이야기가 나왔다.

서열 5위권의 극동 마피아 중 유일하게 만나지 못한,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마리아는 지금 여기에 없다. 모스크바, 아니 더 서쪽 어딘가에 있을 거야.”

“왜지?”

“모스크바 마피아를 도우러 갔다. 우크라이나 쪽에 문제가 생겼다.”

“우크라이나?”

의아해하는 이준기에게 바실리사가 설명했다.

“우크라이나에도 모스크바 마피아 세력이 침투해 있어요. 우크라이나 마피아는 친러시아 파벌과 반러시아 파벌로 나뉘어 있죠. 친러시아 파벌을 지원하려고 러시아인 구원자들이 많이 나가 있어요. 대부분은 모스크바 마피아 출신이지만, 다른 지역 마피아들도 가담하고 있죠.”

“내부적으로는 알력이 있다고 들었는데, 대외적으로는 협력하는군요?”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러시아니까요.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이권 때문이죠. 나중에 우크라이나를 제압하게 되면, 모스크바가 몽땅 다 차지하게 놔둘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우크라이나에 무슨 일이 있는지도 파악해야겠군요. 모스크바, 아니, 러시아 마피아에게 중요한 일이니까.”

“그렇죠.”

“예브게니, 우크라이나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말해봐라.”

예브게니가 대답했다.

“크림반도에 대해서 알고 있나?”

“대략적인 것은.”

“그래? 그런 걸 알고 있다니 뜻밖이군.”

한국인 이준기가 크림반도 사태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 예브게니에게는 뜻밖의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준기는 세계지도 전체를 놓고 조슈아 일파와 대립했다.

각지에서 전투를 벌이면서, 해당 지역의 사정에 대해 알아야 했고, 알 수밖에 없었다.

예브게니가 말을 이었다.

“알다시피, 크림반도는 현재 러시아 땅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땅에 딱 붙어 있지.”

“한때 우크라이나 땅이기도 했고.”

“그래, 잘 알고 있군. 바로 그래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크림반도를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건 구원자들도 마찬가지고, 마피아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전황이 바뀌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렇다. 우크라이나 본토에서 계속 밀리고 있는 반러시아 마피아가 국면 전환을 위해 크림반도에서 공세에 나선 거다.”

“본토에서도 밀리는데 크림반도에서 공세를 강화했다?”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역사에도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격일 수도 있고.”

“그건 나중 문제다. 수세에 몰리는 쪽은 여러 가지 문제를 겪게 되지. 대외적으로도 밀리는데, 대내적 결속도 약해진다. 내우외환이지.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 효과가 좋은 것 중 하나가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민족주의야말로 이데올로기의 끝판왕이지.”

“그렇군.”

“크림반도에 대한 공격은 꽤 세심하게 준비된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언제나 수세에 있던 반러시아 마피아가 그 정도로 성공을 거둔 것을 보면 말이다.”

“얼마나 성공을 거두었는데?”

“세바스토폴을 포함한 주요 거점을 전부 장악했다. 세바스토폴, 심페로폴, 얄타, 케르치··· 주요 도시들이 전부 점령되는 데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어.”

“그게 언제 일어난 일이지?”

“바로 지난 연말에 일어난 일이다. 아직 2주일도 되지 않은 사건이지.”

“점령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말인가?”

“믿기지 않지만, 그렇다. 모스크바 마피아가 연합에 도움을 요청할 정도란 말이다.”

“우크라이나 본토는?”

“거긴 여전히 산발적 전투가 진행 중이다.”

“이해할 수가 없군.”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도대체 크림반도를 공격할 여력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극동 마피아 서열 제2위, 예브게니 영감의 이야기였다.

이틀 전, 1월 11일 밤에 나누었던 대화다.

바실리사가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에서 역공에 나설 수 있었던 힘, 그게 어디에서 왔는지 알 것 같아요.”

“그래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죠. 유럽 사람들. 폴란드나 체코와 같은 동유럽 국가는 물론, 서유럽에도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팽배하니까요. 크림반도에 대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죠. 크림반도 병합을 인정할 수 없다는 나라들이 대부분이니까요.”

“외국인 구원자들이 우크라이나를 도우러 왔다?”

“네. 저도 보리스도 그렇게 생각해요. 세르게이, 어떻게 생각해?”

“일리가 있는 얘기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아귀가 맞아떨어지는군.”

이준기는 종이 냅킨을 펴고 볼펜으로 지도를 그렸다.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카테린부르크, 그리고 우크라이나 본토와 크림반도. 상황이 복잡해지기는 했지만, 원래 계획했던 대로 모스크바를 치기로 하겠습니다.”

세르게이가 의견을 말했다.

“괜찮겠어? 그렇게 되면 모스크바-극동 연합이 완전히 와해될 텐데? 상트페테르부르크-예카테린부르크 연합이 러시아 전체를 장악하게 될 거라고.”

“푸가초프가 러시아를 장악한다면 그렇게 되지도 않겠지. 어떻게 생각해요, 바실리사?”

“푸가초프가 단독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예카테린부르크 연합에 맞설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건 연합이 유지될 경우의 이야기죠.”

“맞아요. 저도 그걸 지적하고 싶었어요. 일단 세력균형이 무너지면,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예카테린부르크 사이에서도 잠자고 있던 갈등 요인들이 표면으로 떠오를 겁니다.”

“동의합니다.”

세르게이도 말했다.

“나도, 동의해, 대장. 그때쯤 되면 나는 우크라이나, 아니면 아예 동유럽으로 도망가 버릴 거니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고.”

도망가겠다는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세르게이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준기가 정리했다.

“우크라이나에 외국인들까지 가세해서 상황이 복잡해진 건 맞지만, 우리에게는 오히려 좋은 기회일 수 있어요. 일단 모스크바는 전력을 한 곳에 집중하기 어려워졌으니까요.”

“그래요. 기회라고 생각해요.”

“모스크바는 푸가초프와의 전쟁에 전념하기도, 극동 마피아의 일에 개입하기도 어려워진 상태죠. 지금이야말로 모스크바 마피아를 공격하기에 최적의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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