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30화 (13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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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9: 디스 민즈 워 (3)

Episode 39: 디스 민즈 워 (3)

두 손이 뒤로 묶인 채로, 이준기는 골목을 향해 걸었다.

바실리사와 세르게이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기는 했지만, 상황이 복잡해졌다.

손목을 묶은 끈이야 힘만 조금 주면 끊어버릴 수 있지만, 일행이 나뉘는 것이 문제다.

지휘관 남자가 맨 앞을 걷고, 이준기가 그 뒤에, 그리고 맨 뒤에 부하가 걸었다.

부하는 소총 총구를 이준기를 향해 치켜들고 걸었는데, 가끔씩 등을 찌르는 것이 거슬렸다.

골목을 향해 걸으면서, 이준기는 여유롭게 ‘이르헬의 눈’을 발동했다.

- 39레벨.

- 전문화: 빛 20, 흙 15, 물 4.

- 힘 80. 민첩 50. 체력 95. 정신력 20. 물리 저항 20. 마력 저항 20.

- 성흔: 없음.

- 획득 스킬: 저지, 신성 망치, 바크스킨.

- 인벤토리: 성전사 쯔바이핸더, 쿠나이, 해골왕의 면갑, 성전사 건틀릿, 성전사 판금 경갑, 마상창시합 바지, 행군 장화, 상급 힐링 포션 5개, 중급 힐링 포션 3개, 기본 식량 팩 2개.

‘39레벨··· 서열 5위였던 이반 클리츠비치가 42레벨이었으니까, 모스크바 마피아라면 10위권 정도의 상위 랭커겠군.’

우크라이나 민병대를 공격한다고 해서, 모스크바 마피아 쪽 인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마냐’, 즉 마리아라는 이름의 저격수에게 지시를 했고, 39레벨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종합하면 거의 그렇다고 추정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뒤를 따라오던 부하가 총구로 이준기의 등을 다시 한 번 찌르며 말했다.

“알료샤, 어떻게 할까요?”

알료사··· 알렉세이···

뉴스에까지 나온 마피아, 알렉세이 믈라디노프일 가능성이 있다.

지휘관이 대답했다.

“흐흐흐. 넌 그냥 지켜보기만 하면 되지. 그 자식을 벽에 기대 세워.”

“네.”

부하는 이준기의 어깨를 거칠게 밀어붙였다.

이준기는 힘을 빼고 가볍게 벽에 부딪혔다.

“자··· 잠깐.”

“뭐냐, 한국인 새끼.”

“나··· 난, 과··· 관광객이다.”

이준기는 여전히 서투른 러시아어를 흉내 냈다.

“넌 감히 나를 노려봤잖아··· 그걸로 죽을 이유는 충분하고도 넘친다. 오늘 저녁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해주지. 이름이 뭐냐?”

“뭐··· 뭐? 조금··· 처··· 천천히 말해라.”

이준기가 계속해서 버벅대니, 지친 상대방이 영어로 말했다.

“영어는 좀 알아듣냐?”

“그래. 훨씬 낫다.”

“네놈이 지금 이 자리에서 죽는 이유는, 감히 나를 노려봤기 때문이다. 오늘 밤 방송에서 톱뉴스로 나오게 해주겠다. 그 정도면 분에 넘치는 영광 아닌가? 이름은 듣고 죽여주겠다. 이름이 뭐냐?”

“러시아에 관광을 오면서 러시아 이름을 지었지. 내 이름은 알료샤다.”

옆에 서 있던 부하가 웃으면서 지휘관에게 말했다.

“하! 알료샤? 대장님, 이 자식··· 아주 웃기는데요? 지가 알료샤랍니다.”

“정말 웃기는 놈이군. 알료샤? 알료샤는 나다. 알료샤가 알료샤를 죽였다고 뉴스에 나게 해달라는 거군? 원래 한국 이름이 뭐냐고, 새꺄.”

이준기가 대답했다.

“네가 내 이름을 들으면 발음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 무시하지 마라. 내가 이래 봬도 일본어도 할 줄 아는 몸이다.”

“그래? 나는 일본 이름도 만들었거든. 스즈키다.”

“스즈키? 그건 일본어를 몰라도 둘러댈 만한 이름이군. 그런데 일본 이름은 왜 만들었냐?”

“물어봐 줘서 고맙군. 러시아에 여행 오기 전에 일본에도 들렀다.”

“훗. 세계여행 중이냐?”

“의도치 않게 그렇게 됐군.”

“제법 재미있는 녀석이군.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아까운걸.”

“그렇다면 나를 살려주면 되지.”

“하하하! 이거 정말 재미있는 놈이군. 넌 지금 네가 어떤 상황에 있는 건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건 네 얘기 같은데.”

“뭐? 무슨 말이냐?”

“상황을 오판하는 것은 너다. 내가 아니지.”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볼까 했는데, 당장 죽여야겠군. 아무래도 불치병에 걸린 것 같으니.”

“잠깐.”

“뭐냐?”

“내 이름을 아직 듣지 않았잖아? 그리고 난 네 이름도 알고 싶다.”

“그렇군. 네 이름이 뭐냐? 한국 이름 말이다.”

“난 이(Lee)다.”

“이? 풀네임을 말해봐.”

“동양 문화에 대해 아주 무식하지는 않은 모양이군.”

“그 이름은 중국에도 한국에도 많은 이름이 아니냐?”

“이런··· 정말 계속 놀래키는군. 러시아 마피아에 이 정도 인재가 있다니.”

“뭐라고?”

“네 이름을 맞춰볼까? 네 이름은 알렉세이···”

“부하들이 날 부르는 걸 들었나 본데···”

“···믈라디노프.”

“뭐?”

“놀라는 걸 보니 맞군. 100% 확신한 건 아니었는데.”

“너··· 넌 뭐냐?”

“난 이준기다. 너만큼은 아니지만 뉴스에 몇 번 이름이 나왔지.”

“이··· 준기?”

어디에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이다.

기억을 떠올리려고 믈라디노프는 인상을 찡그리며 오른쪽 위로 눈알을 굴렸다.

순간, 그의 이마에 차가운 금속의 촉감이 느껴졌다.

소총의 총구가 그의 이마를 가볍게 누르고 있었다.

아무도 들고 있지 않은 소총이 공중에 뜬 채로 그를 향하고 있었다.

그 총의 주인인 부하는 벽에 기댄 채로 나자빠져 있었다.

이준기가 텔레키네시스로 총을 빼앗고 그를 뒷발 차기로 날려버린 것이다.

“너··· 구원자구나.”

“아니면 내가 락스타라도 돼 보이냐? 구원자가 아니라면 내가 어떻게 뉴스에 나겠나?”

“밖에 내 부하들이 아주 많이 있다.”

“그놈들은 달려와서 네 시체를 발견하겠지. 나는 멀리멀리 달아난 뒤일 테고.”

“살려줘.”

“재미있는 놈은 너였구나? 상황 판단과 태세 전환이 정말 빠른걸?”

*****

“우선, 저놈 손목을 묶어라.”

“살려주는 거냐?”

믈라디노프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목숨을 구걸하는 목소리라고 보기에는 너무 중후하다.

이준기는 손에 든 소총을 상대에게 들어 보이며 말했다.

“당장 죽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글쎄. 최대한 저항하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지.”

“이건 어때? 내가 시키는 대로 할 때마다 네 목숨을 연장해 주지. 일단 저놈을 묶어. 목숨을 5분 연장해 주마.”

“그다음에도 할 일이 있는 거냐? 겨우 5분 더 살려고 네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건 수지에 맞지 않는 것 같은데.”

“글쎄, 지금 생각나는 것만 해도 한 시간 분량 정도는 된다.”

“좋아. 아주 나쁘지는 않군. 시키는 대로 하지. 그런데 뭘로 손목을 묶으란 말이냐?”

“넌 테러리스트잖아. 손목 묶을 도구가 없다고?”

“난, 지휘관이다.”

“그렇다면 저놈 주머니라도 뒤져봐라. 아까 내 손목을 묶은 노끈이라도 있겠지.”

“알았다.”

믈라디노프는 기절한 부하의 주머니를 뒤져 플라스틱 묶음줄을 찾아냈다.

부하의 손목을 뒤로 돌리고, 양손을 모아 묶고 줄을 당겼다.

“이 정도면 만족하나? 나, 5분 번 거야?”

“좋아. 5분 인정한다.”

“난 살고 싶다. 다음에 할 일을 말해라.”

“내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게 다음 미션이다. 한 시간짜리지. 나쁘지 않지?”

“무슨 질문이냐에 따라 다르겠지. 내 목숨이 걸린 정보라도 내놓으라고 할지, 내가 어떻게 아나?”

“네 목숨과 바꿔야 할 무게의 질문이라 하더라도, 지금 이 자리에서 죽는 것보다는 대답을 하는 쪽이 오래 사는 길이겠지.”

“그렇군. 당신, 꽤 설득력이 있군.”

“알렉세이 믈라디노프. 듣던 것과는 달리 꽤 재미있는 사람이군.”

“다들 그렇게 얘기하더구만. 난 유쾌한 남자다. 그리고, 알료샤라고 불러줘. 알렉세이는 무슨 로봇 모델명 같지 않아?”

“훗. 알겠다. 알료샤 대 알료샤군.”

“넌 왜 알료샤인데?”

“외국 이름 정도는 내 마음 가는 대로 지어도 되지 않아?”

“알료샤라는 이름을 왜 골랐냐는 거다. 외국인이 흔하게 접하는 이름이 아닐 텐데.”

“난 러시아 문학을··· 아니 도스토예프스키를 대단히 좋아하거든.”

“아하. <카라마조프네 형제들>의 알료샤?”

“오오, 인상적이다. 넌 정말··· 알렉세이, 아니 알료샤 믈라디노프.”

“나도 대학 나온 사람이다. 러시아 사람이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

“너와 마찬가지로 대학 나온 러시아 남자는 전혀 모르던데.”

세르게이, 귀가 간지럽지는 않을까.

이준기는 살짝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믈라디노프가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지금 네 마음속에서 러시아 남자에 대한 평균점수가 조금은 올라갔겠군? 그건 점수를 좀 받을 만한 거리 아닌가? 5분이나 10분이라도 말야.”

“너도 설득력이 꽤 되는군. 좋다. 10분 주마.”

“하하. 고맙군.”

“그래서, 거래는 할 거야? 질답 시간과 1시간 사이의 거래다.”

“그래, 받아들이지. 어차피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으니.”

“거래 성립이군. 일단 편하게 앉아라. 벽에 기대도 좋고.”

“추워죽겠는데 바닥에 앉으라니, 사양하겠다. 벽에 기대는 것도 마찬가지야.”

“그래? 맘대로 해라.”

*****

이준기는 팔짱을 끼면서 상대방에게 말했다.

팔짱을 끼지는 않았지만, 믈라디노프 역시 당당한 자세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누가 본다면, 대등한 자격의 두 명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저격수의 이름은? 아까 마냐라고 부르던 그 여자 말이다.”

“마냐··· 마리아 보로닌이다.”

“역시 구원자겠군? 마피아이기도 하겠고.”

“그래.”

“믿어도 되는 거겠지?”

“그 정도는 하찮은 정보니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

“그래?”

“그렇다.”

“그녀가 마피아라는 정보가, 하찮은 정보라고?”

“구원자가 마피아인 게 뭐 대단한가? 네 나라에서는 몰라도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에서는 흔한 일이야. 아니, 당연한 일이지.”

“마리아의 현재 위치는?”

“그건 나도 모른다.”

“아까 네가 철수 지시를 내리는 걸 분명히 들었다. 그런데 상사인 네가 그녀의 위치를 모른다고?”

“난 그녀의 상사가 아냐. 마리아는 극동 마피아 소속이다. 나와 소속이 달라.”

“지시를 내렸잖아? 전체적으로 팀을 지휘하려면, 당연히 위치를 알아야 할 거 아냐?”

“그녀는 이번 건에 한해서 저격을 맡아준 것뿐이다. 난 마리아에게 지시를 하는 입장이 아냐. 말했지만, 우린 소속이 다르다. 극동 마피아는 우리의 형제 조직이라서 도와준 것뿐이야.”

이준기는 비꼬는 말투로 그의 말을 반복했다.

“형제?”

“형제 조직이다. 서로 아껴주고, 존중하는 관계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냐고? 생각이 아니고 사실이 그렇다. 모스크바 마피아와 극동 마피아는 형제와 같은 조직이다. 마피아에게는 의리가 생명이다. 마피아라고 너무 우습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의 말을 들으며 이준기는 생각했다.

범죄자에게 신념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조금 의외의 인물이라고.

의리라는 가치에 상당한 비중을 두는 것 같다.

“좋아. 다음 질문이다. 너, 구원자 레벨은 어떻게 되나?”

“30대 후반이다.”

“정확하게 말해.”

“39레벨이다. 이게 중요한 정보인가?”

“질문을 하는 것은 나다. 대답이나 제대로 하도록. 잊지 마라, 이건 네 목숨 한 시간과 맞바꾼 귀중한 시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중요한 정보인지 아닌지는 네가 판단할 일이니, 내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기는 하지.”

“다음 질문. 네 스킬 트리를 말해라.”

“그런 게 왜 궁금하냐? 이게 뭐, 아이스 브레이킹 시간이라도 되냐? 지금 이거 친목 모임이었어?”

“네 조직에 대해 모든 걸 말해라··· 그런 질문보다는 낫지 않아?”

“이런 시답잖은 질문과 내 목숨 한 시간을 바꾼 것은 아닐 텐데? 이런 농담 따먹기 같은 질문은 우리 둘 모두의 시간을 낭비하는 일 아닐까?”

이준기는 믈라디노프의 눈을 쳐다보았다.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그의 눈은 진지했다.

더 중요한 대화를 하고 싶다, 시시한 대화는 싫다는 뜻이 그의 눈동자에 담겨 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더 중요한 질문을 하도록 하지. 하지만 조금 전 그 질문은 답해야 해. 내게 그 정보는 중요하다.”

“곧 죽을 놈의 스킬 트리가 중요하다고?”

“나에게 최대한 협력해 준다면, 죽는 대신 감옥에 갈 수 있도록 노력해주겠다. 진심이야. 물론, 보장은 못 한다. 내가 사법기관도 아니고, 사법 거래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건, 대단히 구미에 당기는 제안이군. 하지만, 너도 인정하는 것처럼 너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지.”

“너는 자꾸 잊는 것 같군. 내게 사법 권한은 없지만 널 당장 죽일 힘은 있다는 사실을.”

“그래. 미안하다. 살려줘.”

살려달라는 말을 마치 명령하듯이 하는 믈라디노프.

상대에게 너무 흥미가 생겨 정이라도 생겨버릴까, 이준기는 자신을 경계해야 했다.

이준기는 최대한 드라이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답해라. 스킬 트리.”

“빛, 흙, 물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빛 20, 흙 15, 물 4. 합계 39. 이상 무.”

“무기는 뭐야?”

믈라디노프는 포기했다는 듯이 한숨을 길게 내쉰 다음 대답했다.

“성전사의 쯔바이핸더라는 무기다. 양손검이지. 던전 안이 아니라서 꺼내 보여줄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군. 갑옷도 말해줘?”

“아니, 됐어. 그만하면 됐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 너는 모스크바 마피아 소속이지?”

“그렇다.”

“서열은?”

“서열 9위다. 아직 승진했다는 통보는 받지 못했으니.”

“황금문을 빼앗겼으면서 승진? 강등이 아니고?”

“황금문을 조금 전에 다시 빼앗았잖아. 그리고 적지 한가운데서 이 정도 하는 게 쉬운 줄 아냐?”

“하하하. 정말 말로는 못 당하겠군.”

“칭찬으로 듣겠다. 다음 질문은 뭐지?”

“서열 1위 아브람, 그리고 서열 2위 헤라클레스는 지금 어디 있나?”

“대단히 미안하지만, 그건 나도 모른다.”

이준기가 상대의 거짓을 간파하는 방법은, ‘이르헬의 눈’으로 알아낸 사실과 대조해 보는 것뿐이다.

말하자면 해답지와 비교해 보는 것.

반면, 바실리사의 해골 펜던트는 곧바로 진실과 거짓을 가려낸다.

던전 안이었다면, 바실리사와 함께였다면, 일이 더 수월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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