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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0: 승패가 갈리는 지점 (6)
Episode 40: 승패가 갈리는 지점 (6)
차진철과 운전사를 차에서 내리게 한 뒤, 길수연은 방탄 차량을 몰고 골목길로 들어갔다.
적당한 위치에 차를 세우고 큰길로 나온 길수연은 택시를 잡아탔다.
“광화문이요.”
“광화문 말씀이세요? 거기 지금 차원문 있는 것 아시죠? 근처까지만 갈 수 있어요.”
“저, 구원자 길수연입니다. 차원문 공격대죠.”
길수연이 들이민 구원자 신분증을 보고, 택시 운전사는 침을 삼켰다.
“과··· 광화문 가겠습니다.”
서울 시내, 그것도 주로 교차로에 열려 있는 차원문들 때문에 택시는 여기저기를 우회해야 했다.
그건 다른 차량들도 마찬가지여서, 도로정체가 심했다.
‘그러나 지금 광화문으로 돌아가서 도대체 뭘 한단 말인가?’
길수연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럴 때, 준기 씨가 있었다면··· 준기 씨는 언제나 과감하게 행동했지. 마치 미래를 알고 있다는 듯이.’
신호등을 통과하지 못하고 차가 또 멈추어 섰다.
길수연은 가볍게 한숨을 뱉으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죄··· 죄송합니다. 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뀌어서.”
꼬리잡기라도 해줬으면 하고 바랐던 것이 사실이지만, 길수연은 곧 부끄러워졌다.
신호가 바뀌어서 정차했다는 말을 핑계로 대야 한다니,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당연한 걸 왜 말씀하고 그러세요. 신호는 당연히 지켜야죠.”
“바쁘신 것 같아서요. 자꾸 막혀서 죄송하네요.”
“기사님 잘못이 아니잖아요. 너무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게는 말했지만, 그녀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에 줄을 지어 영업 중인 커피가게들이 들어왔다.
‘문아린···!’
그녀는 휴대폰을 꺼냈다.
*****
결국 한상태와 거리를 다시 벌리는 데 성공했지만, 이상덕은 큰 상처를 입었다.
여러 가지 마법에 의해 온몸에 독이 퍼진 한상태도 숨을 거칠게 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상덕도 한상태도 힐링 포션을 꺼내 마셨다.
유리병 안의 내용물을 들이키면서 둘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이상덕은 마법 막대를 공중에 저으면서 주문을 뇌까렸다.
이때라고 생각했는지, 한상태도 마찬가지로 긴 시간이 걸리는 스킬을 시전했다.
던전의 흙바닥이 꾸물거리더니, 이상덕의 발밑으로 나무뿌리 같은 검은 물체가 나타났다.
검은 흙손들이 이상덕의 발을 묶었으나, 이상덕은 주문 외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한상태는 땅을 박차고 거리를 좁혔다.
“죽어라!”
바닥에 묶인 이상덕의 다리를 향해 한상태가 검을 휘둘렀다.
검이 무언가에 부딪히면서 바깥으로 튕겼다.
이상덕이 목에 두른 펜던트의 발동 효과다.
‘그걸 이제까지 아껴두고 있었다니.’
김범규는 그 아이템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지금까지 아껴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왠지 꺼림직하게 느껴졌다.
아스트라아제의 도발에 걸려 한상태에게 두들겨 맞을 때조차 쓰지 않았던 보호막을 지금 쓰다니.
그 이유를 김범규는 곧 알게 되었다.
보호막에 튕겨 나간 한상태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는 사이, 이상덕이 묶여 있던 땅 바로 앞이 검은색으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검은 구름 덩어리 같은 모양이 드러났다.
야스다가 신난다는 어조로 외쳤다.
“어둠의 정령! 이상덕이 어둠의 정령을 소환했습니다!”
한상태가 이상덕을 향해 검을 치켜들고 덤볐다.
어둠의 정령이 그를 향해 검게 소용돌이치는 팔을 들었다.
한상태의 몸이 그쪽으로 딸려갔다.
그걸 바라보던 김범규의 얼굴에 그림자 드리워졌다.
‘한상태 이 멍청한 놈··· 어떻게 10초나 걸리는 소환 마법을 쓰게 놔둘 수가 있냐.’
야스다의 외침이 사람들 사이를 가르고 지나갔다.
“상황은 다시 역전되는 것입니까! 어둠의 정령의 도발에 끌려가는 한상태! 2대1의 싸움이 되는 것인가!”
*****
문아린과 길수연은 광화문에서 만났다.
KT 빌딩 1층의 커피숍.
세종문화회관 바로 앞 큰길에 위치한 차원문에서는 멀찍이 떨어진 위치.
그러나 충분히 관찰이 가능한 위치다.
군경이 다섯 겹으로 둘러싸고 있어 접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람의 키를 두 배 이상 뛰어넘는 크기 때문에 차원문은 잘 보인다.
문아린이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건가요.”
“저희 20인 공격대가 진입한 다음에, 일본인 구원자 10명이 들어왔어요.”
“그··· 그게 가능해요?”
“인원 제한이 없으니까요.”
“그렇군요. 20인 공격대라서 사람들은 막연히 20명 제한이라고 생각한 것인데, 그렇군요. 인원 제한이 없었죠.”
“그런데 그 일본인 구원자 10명이 이상덕 대 한상태, 일대일 대결을 강요했어요.”
“네? 어떻게 10명이···”
“아··· 죄송해요. 제 말이 두서가 없죠. 일본인 구원자들이 들어오기 전부터, 공격대가 둘로 갈라져 있었어요.”
“과연···”
“정확하게 말하면, 진입하자마자 한상태 회장이 이상덕 회장에게 일대일 대결을 하자고 소리쳤어요.”
“이상덕은 응하지 않았겠죠.”
“맞아요. 하지만 그것이, 일본인들이 들어오고 나서 바뀌었죠.”
“그건 또 왜 그렇죠? 일본인 구원자들이라면 이상덕을 지원하러 온 것 아닌가요?”
“저도··· 그 대목에서 가장 놀랐어요. 한상태 회장이, 일본인들과 미리 만났더라고요.”
“한상태가 일본인들과 짰다고요?”
“네. 일본인들을 불러들인 것은 이상덕이지만, 한상태도 그들과 만난 거죠. 일본인들이 지금 우리들을 상대로 이간질을 하고 있는 셈이죠.”
“그래서, 수연 씨는 그냥 밖으로 나와버린 거예요? 강등 페널티를 받고?”
“네. 하지만 저도 간신히 나왔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일본인 구원자들의 대장 격인 하시바라는 사람이, 공격대 멤버들에게 선택을 강요했어요. 이상덕과 한상태 중 한 명에게 베팅을 해야 한다고. 출입구를 막고 그렇게 강요했죠.”
“그런데 수연 씨는 어떻게 빠져나온 거예요?”
“어떻게 하다 보니 간신히 빠져나왔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이제 어떻게 하느냐는 거죠.”
문아린은 심호흡을 한 차례 하고 나서 길수연을 바라보았다.
“공격대 19명이, 일본인 구원자 10명에게 강요당해서 지금 던전 안에 갇혀 있고, 이상덕과 한상태는 결투를 벌이고 있다는 말씀이죠?”
“네. 공격대 멤버들은 이상덕 또는 한상태에게 베팅을 해야 했어요. 진 쪽에 베팅한 사람들은 다 죽는 거예요. 일본인들이 이긴 쪽 사람들을 도와 그렇게 하겠죠.”
“어떻게 그런···”
“간신히 빠져나왔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준기 씨라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은데··· 아니, 말하는 대신 해결책을 행동으로 제시하겠죠.”
“현재 상위 랭커 전원이 공격대에 들어가 있잖아요. 아무리 많은 인원을 모아서 들어간다 하더라도, 결투에서 이긴 쪽을 말리기는 어려울 거예요. 일본인 구원자들이 그들을 돕는다면 더욱더 그렇겠죠.”
“그렇겠죠?”
“게다가 누가 그런 곳에 들어가려고 할까요? 아무런 이득도 없고, 오히려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는 일인데··· 다른 사람들 목숨을 구하겠다고 자기 목숨을 내던지려고 할까요? 그럴 사람이 있을까요?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은.”
길수연의 생각도 같았다.
그나마 자신과 생각을 같이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문아린에게 연락한 것이지만, 길수연의 리스트는 거기에서 끝이었다.
이준기가 있었다면 아마 이준기까지 두 명.
그래도 짧은 리스트임에는 변함이 없다.
게다가 이준기는 지금 여기에 없다.
“학살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면 학살을 벌인 사람들에 대해 법의 심판을 내릴 수는 있을까요?”
“아뇨. 저는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수연 씨도 사실은 저와 마찬가지 생각인 거죠?”
“맞아요··· 누가 구원자들 사이의 싸움에 끼려고 하겠어요.”
그때, 창밖으로 조그맣게 보이는 차원문의 색깔이 일렁였다.
*****
“한상태의 대역전극입니까! 한상태가 2대1의 싸움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야스다가 열광하며 외쳤다.
과연, 한상태의 무용은 놀라웠다.
한상태는 도발 면역이 될 때까지 어둠의 정령을 두들기고 나서, 이제는 이상덕을 뒤쫓고 있었다.
스킬에 걸려 움직임이 굼떠진 어둠의 정령은 한상태의 뒤를 느릿느릿 따라가고 있었다.
“이상덕, 거기 서라!”
“닥쳐라, 한상태!”
한상태의 추격을 받으며, 이상덕은 결투 장소를 빙빙 돌았다.
이상덕이 외쳤다.
“다들 비켜! 결투장이 너무 좁다! 공간을 만들어라! 아니, 그게 아니라···”
이상덕은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하시바 상!”
“말씀하시오.”
“이 좁은 공간 안에서만 싸우라는 법은 없잖소! 그런 규정은 없었지. 나는 저 숲속으로 한상태를 끌고 들어가서 싸우고 싶소. 그러니까 구경꾼들에게 길을 비키게 해주시오!”
하시바는 의외로 곧바로 대답했다.
“맞는 말이오. 이상덕 회장. 그렇게 하리다.”
하시바가 야스다에게 눈짓을 보내자, 야스다는 전체 관중들을 향해 외쳤다.
“다들 흩어지세요. 결투장은 이 던전 전체입니다! 이상덕이 도망칠 수 있게 길을 터주세요!”
이상덕이 외쳤다.
“도망치는 게 아니다! 유인하는 거야!”
한상태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유인하는 대로 따라가 주마. 이상덕! 넌 내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들이 비켜서자, 이상덕은 숲이 우거진 쪽을 향해 달렸다.
그 뒤를 한상태가 쫓아가고, 그 한상태를 따라 움직임이 느려진 어둠의 정령이 따라갔다.
*****
던전 바깥으로 통하는 출구를 막기 위해, 일본인 구원자 대부분은 오두막 안팎에 진을 치고 있었다.
야스다와 하시바만이 다른 한국인 공격대원들과 함께 이상덕과 한상태를 쫓아갔다.
스탯 배분에 따라 뛰는 속도는 조금씩 달랐지만, 다들 어렵지 않게 결투자들을 따라가며 구경했다.
이상덕은 숲길을 따라 일직선으로 달리다가 다시 폐곡선을 그리면서 한상태를 따돌렸다.
둔화 효과가 끝나자, 어둠의 정령은 어느새 이상덕과 합류했다.
야스다가 외쳤다.
“역시 이상덕! 어둠의 정령의 이동 속도가 정상으로 돌아올 때를 기다린 거군요! 이제 다시 정면 대결을 할 것인가!”
김범규는 김나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과연 그것뿐일까?”
“네?”
“어둠의 정령에게 걸린 둔화 효과가 끝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 좋은 전략이지. 하지만 과연 그것뿐일까?”
“숲의 지형지물을 이용하려고 한 건가요?”
“아까부터··· 한 가지가 자꾸 마음에 걸리는데···”
“뭐가요?”
“이 던전, 사대천왕을 제외하고 다른 몬스터는 없다고 했잖아.”
“일본 측에서 받은 자료에 분명히 그렇게 나와 있었죠.”
“그런데 만약 몬스터가 있다면···”
“그렇다면 변수가 되겠죠.”
“아니. 단지 그런 얘기가 아냐.”
김범규는 결투 장면을 다시 쳐다보았다.
이상덕과 어둠의 정령이, 한상태의 공격을 번갈아 가며 받아내고 있었다.
상대방을 모두 파악했다는 듯이, 한상태가 무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2대1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밀리는 쪽은 이상덕과 어둠의 정령 쪽이었다.
그러나 이상덕의 얼굴에서 절망은 읽을 수 없었다.
한상태의 공격을, 때로는 회피하고 때로는 쳐내는 이상덕.
명백하게 밀리는 상황에도, 그의 표정은 죽음을 앞둔 사람의 그것이라 할 수 없었다.
김범규가 김나리에게 물었다.
“어둠의 정령에 대해서 좀 알아?”
“아뇨. 잘은 몰라요. 지난번 던전에서 싸워본 게 다죠. 원형경기장에서.”
“나도 그런데··· 어둠의 정령 소환할 줄 아는 사람, 여기 있던가?”
“이상덕뿐일걸요.”
“그래···”
이상덕의 얼굴에 긴장감이 팽팽하게 떠올랐다.
죽음의 공포에 질려있는 그런 얼굴은 아니지만, 뭔가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는 듯한 얼굴.
한상태가 이상덕을 향해 도약했다.
그 둘 사이를 가로막기라도 할 것처럼 어둠의 정령이 움직였다.
셋이 거의 한 공간에 모였을 때, 이상덕이 외쳤다.
“에그지티움(Exitium)!”
구름 같은, 솜사탕 같은 재질이었던 어둠의 정령의 외피가 석회처럼 쩍쩍 갈라졌다.
그리고, 굉음과 함께 정령이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