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58화 (158/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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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2: 교차로 (5)

Episode 42: 교차로 (5)

콰쾅!

“꺄아악!”

“뭐··· 뭐야!”

“포··· 폭탄?”

새벽녘의 갑작스러운 폭발음에, 국경의 작은 마을 사람들은 전부 잠에서 깼다.

몇몇은 대담하게 커튼을 열어젖혔고, 몇몇은 조심스럽게 커튼 사이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마을의 서쪽 입구, 그곳 하늘에서 거대한 불덩이가 타올랐다.

마치 불꽃놀이처럼, 잠깐 동안 마을 전체를 환하게 비추다가 사라졌다.

후두두둑.

폭발물 잔해가 비처럼 바닥으로 내렸다.

얼어붙은 길바닥에 바짝 웅크린 채, 남자는 여전히 부들부들 떨고 있다.

어느새 그의 앞으로 다가온 남자가 그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알렉스, 일어나요. 감기 걸려요.”

남자는 아직도 자기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손을 내민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키 큰 동양인.

희미한 가로등이지만, 그걸 등 지고 서 있으니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자, 어서!”

남자는 주춤주춤,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제야 그의 얼굴이 보인다.

팽팽히 당겨져 있던 긴장의 끈이 풀린 그의 얼굴에는 정말로 어린아이 같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사람들이 달려왔다.

아까 보았던 사람들이지만, 알렉스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이다.

“주··· 준기 씨!”

“대장!”

바실리사는 자기도 모르게 이준기의 본명을 불러버렸다.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준기가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바실리사, 세르게이!”

셋은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알렉스의 감각이 현실로 돌아왔다.

엉거주춤하던 자세에서 허리를 펴면서 그는 이준기에게 다가왔다.

“고··· 고맙습니다, 구원자님!”

*****

알렉스를 보살펴 달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부탁한 뒤, 그들은 원래 예정되어 있던 작전 브리핑을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 달라고 부탁했지만, 마을 사람들 몇 명은 아직도 건물 바깥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파벨이 자신의 직함을 내세우며 군 기밀이라고 이야기했건만, 별 효과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부하를 좀 데려올 걸 그랬군.”

“어쩔 수 없죠, 중령님. 마을 사람들은 우리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진행하시죠.”

“그렇게 하지.”

작은 컴퓨터 화면에 구출 작전 대상자의 이름과 소속이 표시되었다.

- 펠릭스 코왈스키.

- 남자. 37세. 폴란드인.

-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지지하는 자유 폴란드인’ 대표.

- 길드 ‘미스트랄’ 부대표.

- 38레벨.

사진을 빼면, 별로 중요한 정보는 아니었다.

정말 필요한 것은 그의 위치지만, 현재까지 그 정보는 입수하지 못하고 있다.

“그라옌코에 억류되어 있다는 것까지는 사실이겠죠.”

“그렇다고 봐야지. 현재 러시아군이 중요한 포로를 억류할 만한 장소라면, 거기뿐이니까.”

“이미 러시아로 빼돌린 거면 어떡하죠?”

“우리도 나름대로 국경을 감시하고 있다. 코왈스키가 국경을 넘어갔다는 첩보는 아직 없어.”

가만히 듣고 있던 세르게이가 물었다.

“그런데 아까 그 남자, 도대체 왜 우리에게 보낸 거죠?”

“그··· 글쎄.”

바로 그 점 때문에 파벨도 머리가 아픈 상황이었다.

며칠 전, 그라옌코에 대한 점령을 확고히 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민병대에 공식으로 통첩을 보내왔다.

- 폴란드인 펠릭스 코왈스키, 현재 그라옌코에 억류 중. 찾아가기 바람. 단, 바실리사 엘리셰프가 직접 와야 함.

‘마지막 부분은··· 얘기하지 않았지. 미겔에게 둘러대느라 정말 힘들었지만.’

통첩 형태로 날아온 도발.

함정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펠릭스 코왈스키는 구출해야 한다.

“미겔, 이번에 널 도와줬다는 그 러시아인들 말야.”

“네? 바실리사 일행 말예요?”

“그래, 바실리사.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안 될까?”

“어···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그들은 이미 우크라이나에서 나갔고···”

“뛰어난 실력의 구원자들이라면서!”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우리 일을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죠.”

“이미, 우크라이나를 위해 싸워준 전력이 있잖아! 그 일의 연장이란 말야!”

“그래도··· 이미 한 번 저를 위해 목숨을 걸어준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또 그런 부탁을 합니까? 염치가 없는 것도 정도가 있지···”

“코왈스키는 정말 중요한 사람이야. 그 사람을 구출하지 못하면, 폴란드가 전선에서 이탈할 거야. 그다음에는 리투아니아가 빠지겠지. 그다음엔?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전부 우리에게 등을 돌릴 거야!”

“그 정도인가요···?”

“제발 부탁하네!”

그 정도로 설득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미겔의 이성보다는 감성에, 그의 착한 성정에 호소하려고 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외국 세력이 썰물처럼 빠져버린다면, 남는 것은 피점령 국민들의 비극뿐이다.

그렇게까지 생각이 미치자, 미겔은 염치 불고하고 이준기 일행에게 큰 부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미겔과의 대화를 회상하던 파벨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대화에 참여했다.

세르게이가 말하고 있었다.

“코왈스키를 한번 구출해 봐라··· 이것도 러시아군이 통보해 온 거죠. 뭘 숨겨놨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가 그라옌코에 가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그 남자··· 알렉스를 우리에게 보낸 것도 마찬가지 메시지예요. 왜 같은 내용을 두 번이나 전달한 거죠?”

“게다가, 우리가 이 시각에 여기 있을 걸 어떻게 알았냐는 것도 문제지.”

이준기의 말에 퍼뜩 정신이 난 파벨은 서둘러 말했다.

“그··· 그래! 어떻게 내 위치가! 키예프 서부 사령관 위치가 바··· 발각된 거지!”

말을 마치자, 파벨은 너무 과장스럽게 반응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아무도 그의 말을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겔이 여전히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러시아가 운영하는 감시 위성이 몇 개나 되는데요. 그 정도 정보는 아마 훤히 꿰뚫고 있을 겁니다.”

이준기가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어두운 새벽 시간에 이동했는데.”

이쯤 되자, 파벨은 다시 당황했다.

“내··· 내 차에 혹시 추적 장치라도 달려 있는 건가?”

이준기가 평온한 어조로 대답했다.

“설마··· 그렇게까지는 아닐 겁니다. 중령님이 어제 벨라루스에 도착한 것은 낮 시간대였으니까, 그 이후의 동선만 예측하면 됩니다. 코왈스키에 대한 구출 기한을 러시아군이 오늘로 못 박았다고 하셨잖아요?”

“그··· 그래.”

“그러니까 어제 중령님이 벨라루스에 있었다면 오늘 새벽쯤 국경을 다시 넘어올 것이라는 정도는 추측할 수 있겠죠.”

“아··· 그런가?”

“그리고 어쩌면··· 국경 검문 초소··· 거기에 첩자가 있었을 수도 있고요.”

“그··· 그렇군!”

파벨은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은 사람들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세르게이, 바실리사, 미겔··· 모두 이준기의 말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하··· 하지만! 내 차에 추적 장치나 도청 장치가 없는지, 한 번 확인해 봐야겠군. 기계공들을 불러서 말야.”

말을 끝마치고 파벨은 다시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너무 오버했나? 아니, 괜찮겠지?’

회의가 끝났다.

직접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다는, 지극히 대책 없는 결론이었다.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이준기가 파벨에게 물었다.

“코왈스키 얼굴, 직접 보신 적 있어요?”

“으.. 으응.”

“저 사진, 정확합니까?”

“그래, 꽤 정확해. 아마, 면도를 하지 못했을 테니 수염이 좀 자랐겠지?”

“알겠습니다. 저 사진이 믿을 만하다는 거죠? 사람 얼굴은 나이 들면서 조금씩 변하니까요.”

“저 사진이면 꽤 정확해. 저걸 토대로 코왈스키를 찾아야 해.”

“알겠습니다.”

이준기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코트의 깃을 세웠다.

“생각보다 춥군요.”

*****

파벨은 마을에 남았다.

다른 네 명은 도보로 이동 중이다.

그라옌코까지는 15킬로미터 남짓.

구원자라면 걸어서도 두 시간이면 가는 거리다.

마을에서 충분히 떨어지자, 이준기가 입을 뗐다.

“모두들, 알아챘지?”

미겔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래. 미안해. 내가··· 미리 알았어야 하는 건데.”

넌 사람을 너무 잘 믿어.

이준기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예전에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세르게이가 말했다.

“흐음. 이대로 가는 거야? 그라옌코에?”

“거기에 코왈스키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지.”

이준기의 말에, 바실리사가 대답했다.

“그 마을 사람들, 3백여 명이 러시아군의 포로라는 것.”

세르게이가 앞을 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렇담, 결론은 그대로군.”

*****

“오늘 작전, 누가 또 알고 있지?”

이준기의 물음에, 미겔은 잠깐 생각하고 대답했다.

“우리 지부에서는 파벨과 나뿐이야. 하지만 파벨이 어디까지 보고했을지는, 미안하지만 나도 몰라.”

“하지만, 그가 스파이라는 사실을 더해서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하면, 파벨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겠지. 사지로 직접 걸어 들어간 우리만 전부 죽으면, 진상을 아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어야 하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우크라이나 민병대 내부에 러시아 첩자가 파벨 하나뿐이라는 보장도 없지.”

“하지만···”

“하지만, 러시아 쪽이 스파이들끼리 서로 연락하도록 놔두었을 가능성은 적기는 하겠지.”

“그래. 내가 하려던 얘기가 그거야.”

“우크라이나 민병대 내부에 다른 스파이가 있고, 또 그 사람이 안다고 해도 결론은 바뀌지 않아. 우리는 지금 우리 발로 적지로 걸어 들어가고 있어. 그 이상 무슨 공작을 했을 가능성은 없겠지.”

“그··· 그래. 미안하다, 정말.”

미겔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준기는 그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그라옌코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뉴스에서 본 시점부터, 나는 이렇게 하고 싶었어. 이건 원래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야.”

“그··· 그래도···”

“나는, 바실리사와 세르게이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바실리사와 세르게이가 즉각 반응했다.

“아, 아니야, 대장!”

“저도 마찬가지예요, 준기 씨.”

이준기가 말을 이었다.

“나라고··· 늘 이길 수는 없어. 그걸 모르겠어?”

바실리사와 세르게이가 대답했다.

“난, 후회 없어요. 그라옌코를 구하는 것, 그게 푸가초프의 대의예요. 아니, 우리 팀의 대의죠.”

“이런 말 하기 쑥스럽지만, 대장은 날 구원해 준 거잖아? 언젠가부터, 어깨 문신이 아무렇지도 않아. 가렵지 않다고.”

세르게이의 어깨 문신.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제1형 당뇨 합병증으로 죽은 여동생 두냐의 이름.

세르게이의 양심이다.

이준기가 둘을 보며 말했다.

“정말 고마워, 세르게이, 바실리사.”

둘에게 눈을 맞추고 잠시 쳐다보던 이준기는 돌아서서 미겔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미겔, 너야말로 이번 작전에서 빠져도 좋다. 이건, 우리가 선택한 일이니까.”

미겔의 얼굴에 형용하기 힘든 표정이 떠올랐다.

“나··· 나도 이 팀에 끼고 싶다. 너희들이··· 허락해 준다면.”

*****

이제 네 명이 된 용병대는 천천히 나선형을 그리며 이동했다.

주위에는 소규모 경작지가 몇 군데 흩어져 있고, 나머지는 숲이다.

그라옌코를 요새화한 러시아군이, 주변 지역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그래서 그들은, 천천히 나선형을 그리며 그라옌코와의 거리를 좁혀 갔다.

답답하지만 신중한 성격을 유지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쓸데없이 나선형의 기나긴 동선을 타고 그라옌코에 도착했다 해도, 그래서 그 모든 것이 다 뻘짓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도, 이준기를 책망할 멤버는 용병대에 없었다.

그러나, 신중함은 이번에 대어를 낚았다.

그라옌코 북서쪽의 숲 한가운데를 지날 때였다.

이준기가 천천히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먼 곳을 가리켰다.

나무 위에서, 잔뜩 긴장한 채 주위를 둘러보는 스나이퍼의 모습이 보였다.

‘일반인인가.’

이준기의 손동작에 맞추어, 넷은 천천히 지면을 향해 몸을 낮췄다.

핍!

소음기가 장착된 AK-74M이 가볍게 가스를 내뿜었다.

털썩.

여자가 나무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그로부터 5초도 지나지 않아,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아침 해가 뜨는 숲속을 갈랐다.

“바실리사!”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바실리사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이리나 보로비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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