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62화 (16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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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3: 아브람의 탑 (2)

Episode 43: 아브람의 탑 (2)

열 명, 스무 명이나 되는 공격대원들에게 성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도협 같은 성격이었다면 누가 먼저 묻지 않아도 으스대며 이야기했겠지.

하지만, 이준기가 이번에 선택한 성흔 ‘이르헬의 눈’은 그렇게 떳떳한 성흔도 아니다.

소현배의 ‘그래엄의 축복’이나 조슈아 테일러의 ‘카인의 징표’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정보를 읽는 능력이 찝찝하게 느껴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적뿐 아니라 구원자의 상태창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문제다.

구원자 최대의 적은 결국 구원자라는 사실을 예고하는 듯하다.

이미 많은 구원자들이 경험해서 알고 있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네 명에 불과한 작은 팀이어서 이준기는 제한적이나마 자신의 성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음 방에서 만날 위험에 대해 납득할 만한 경고도 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사무실 창고 선반이 이어지는 미로였다.

그 안을 헤매다가 막다른 구석에서 기다리던 샐러맨더(salamander)의 기습을 받았다.

샐러맨더가 이준기를 보고 즉각 입에서 불꽃을 뿜어냈지만, 이준기는 여유 있게 피했다.

경계 상태로 이동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공간을 충분히 확보했기 때문에 더 수월했다.

적어도, 이준기의 바로 뒤에 바짝 붙기를 좋아하는 세르게이와 엉켜 바닥에 넘어지는 일은 피했다.

“엎드려요!”

그렇게 외치며 바실리사가 선반을 향해 방패를 내던졌다.

선반에 맞고 튕긴 방패가 샐러맨더의 이마를 강타했다.

샐러맨더가 바닥으로 쓰러지면서 으르렁거렸다.

그의 입에서 나온 화염 덩어리가 천장을 그을렸다.

4미터, 아니 5미터는 되는 천장이다.

세르게이가 외쳤다.

“이거, 보스야?”

“아니. 그냥 정예몹.”

“뭐 이렇게 세. 입에서 내뿜는 화염이 5미터가 넘게 날아가네.”

“화염 속성만 조심하면 어려울 것 없어. 체력은 좀 많은 편이기는 하지만.”

미겔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화염 속성이라··· 그렇다면 제가 한번 상대해 보겠습니다.”

선반과 선반 사이를 이동하면서 엄폐를 유지하던 미겔이 적의 화염 공격 사이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외쳤다.

“검은 창!”

그의 손끝에서 굵고 긴 검은 색의 빔이 뿜어져 나왔다.

창의 형태가 되어 날아간 그것이 샐러맨더를 직격했다.

“꾸엑!”

선반 뒤로 재빨리 숨으면서, 미겔이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무속성 대미지죠.”

*****

“이 던전··· 닫고 나가야겠지?”

아브람의 질문에 메인 힐러, 콜랴 투르네포프가 대답했다.

“이 마을은 이제 전략적 가치가 없습니다. 당연히 닫으시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게다가 퇴각 페널티로 레벨이 깎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렇습니다. 저희들이라면 몰라도, 보스 레벨이 깎이는 건 문제죠.”

“문 100개를 열어라. 그게 클리어 조건이지?”

“네. 정확합니다.”

“다섯 명으로 가능할까?”

“그··· 글쎄요.”

콜랴가 우물쭈물하자, 듣고 있던 칭퉁 야우가 나섰다.

“충분할 겁니다.”

“오오··· 야우 선생,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뭡니까?”

“우리 다섯으로도 화력은 충분합니다. 이 던전 포맷은 몬스터보다는 방의 구조가 중요한 던전이기도 하고요.”

“아, 그래요? 이 던전 포맷에 대해 좀 아시나 보군요.”

“쉬넨코 회장님은 그렇지 않다는 말씀이신지?”

“처음 보는 던전 포맷이오. 어떻게 안단 말이오?”

“저도 직접 와본 것은 처음입니다만,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공부는 충분히 해뒀죠.”

“데이터베이스?”

“차원문은 전략 자원입니다. DB로 관리하는 건 당연한 얘기 아닙니까?”

“아··· 잠깐. DB라는 게 그냥 표에다 정리해 놨다는 걸 거창하게 표현한 거 아니오? 그런 거라면 우리 조직에도 있지.”

“맞습니다. 하지만··· 그냥 써 놓은 게 아니라, 표에 정리했다는 게 중요하죠.”

“어··· 하긴 그렇지. 나도 사업가요. 표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지.”

“모스크바 마피아 DB에는 이 던전 포맷에 관한 체계적인 기록이 없다··· 그렇게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칭퉁 야우의 말투는 도발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으나, 아브람은 의외로 깔끔하게 인정했다.

“사실이오. 이 던전 포맷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소.”

“하긴 그렇겠군요. 모스크바 마피아가 관리하는 차원문이라고 해봤자 개수가···”

“40개 정도요.”

“생각보다 많군요. 하하하. 차원문을 일부러 닫지 않고 놔두시는군요?”

“차원문은 열려 있어야 돈이 되는 거니까.”

“그런 상황을 고려하면··· 회장님은 꽤 레벨이 높으시군요.”

“경험치를 독식하니까 그런 거요. 다 알면서 굳이 그렇게까지 말할 건 뭐요?”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상황을 파악하려는 겁니다. 컨설팅을 제대로 하려면, 컨설팅 대상 조직에 대해 좀 알아야 하니까요.”

“흐흐흐. 맞는 말이오. 그리고, 나는 그런 정도로 기분 상하는 좀팽이는 아니오.”

“하하하, 그렇죠.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차원문 봉쇄 속도는 느린데 회장님과 간부들은 고레벨입니다. 추측하건대, 모스크바 마피아에는 중위 레벨 구원자가 별로 없겠군요?”

“정확히 봤소.”

“크흠···”

칭퉁 야우가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짓자, 아브람은 조금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중국 사람, 즉 외부인이다.

꼬치꼬치 캐묻는 데 대해 너무 친절하게 대답해준 것이 아닌가, 약간 후회도 든다.

‘이 자, 언제까지나 우리 편은 아닐 거다.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그런 거겠지. 너무 많은 정보는 주지 말아야 해.’

“그래서, 야우 선생. 이 던전에 관해서 얘기를 좀 해주시겠소?”

“아, 물론이죠.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모두 몇 개의 문을 열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으하하. 나를 너무 우습게 보는군. 열네 개 열었지.”

“그렇습니다. 보스이자 공격대장이신데도 세심하시군요. 칭찬입니다.”

“하하, 고맙소. 이야기를 계속하시오.”

“이 던전 소멸 조건은 아시다시피···”

“문을 100개 여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 하나 드리죠. 뒷문이 열릴까요, 안 열릴까요?”

“뒷문이라면, 우리가 지나온 문?”

“네.”

“글쎄··· 안 열리지 않을까?”

“이 던전 포맷을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죠.”

“틀렸다는 겁니까?”

“열리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뒷문이 열리기는 합니다만, 아까 지나온 그 방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음··· 그렇다면, 뒷문의 용도는 퇴각이겠군?”

“그렇습니다. 훌륭하십니다.”

“46레벨이 되도록 던전을 드나들었는데, 그 정도 추측은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소?”

“그래도, 던전의 기본 원리를 잘 이해하시는 겁니다. 그 정도면 말이죠.”

“알겠소. 그래서, 다음 이야기는 뭐요?”

“제가 드리려는 말씀은 이겁니다. 뒷문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즉, 이 던전은 일방성을 띠고 있습니다. 한 방향으로만 진행이 가능하죠.”

“한 방향으로만 진행이 가능한 것은, 별로 대단한 특징은 아닌 것 같은데. 탑 형식에도 그런 게 있지 않소?”

“맞습니다. 이 던전 포맷의 특이성이라면, 문을 열었을 때 다음 방에 뭐가 나올지, 대략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아브람 쉬넨코를 비롯한 마피아 멤버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오오오! 그게 사실입니까!”

“야우 선생은 그걸 아신다는 거죠?”

“알려주세요!”

보스 아브람 쉬넨코, 그리고 중국에서 온 용병 칭퉁 야우.

현재 그들과 함께 있는 모스크바 마피아 멤버들은 다음과 같다.

모스크바 마피아 서열 4위이자 메인 힐러인 콜랴 투르네포프.

서열 6위의 딜러 니키타 예세닌.

그리고, 서열 10위의 딜러 툐마 부브카다.

그들을 돌아보며, 칭퉁 야우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방의 유형은 모두 8개가 있습니다. 몬스터가 있는 유형이 6개, 없는 유형이 2개입니다.”

“오오, 그렇군. 계속하시오.”

“몬스터가 없다면 방은 미로 아니면 퍼즐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몬스터가 있는 경우에도 미로나 퍼즐이 함께 있는 경우가 있고, 그냥 몬스터만 있는 경우도 있죠.”

“으음··· 복잡하군.”

“말로만 설명해 드리려니 복잡하게 들리는 겁니다. 이렇게 표를 만들어 보죠.”

칭퉁 야우는 방의 한쪽에 놓인 화이트보드를 끌고 왔다.

던전 안에서 뭘 쓰려면 땅바닥에 나무 막대로 쓰는 것이 고작인데, 이 던전은 사무실 형태로 되어 있어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화이트보드 위에 칭퉁 야우는 원을 그렸다.

그리고 그것을 피자 조각처럼 여덟 개로 나누었다.

“이 던전에서 다음번 방의 포맷은 이 회전판을 기준으로 결정됩니다.”

*****

- 지금까지 20개의 문을 열었습니다.

“어? 메시지가 출력되네?”

“쉬잇!”

상태창 메시지를 보고 세르게이가 한마디 하자, 바실리사가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냈다.

이준기가 둘을 돌아보며 말했다.

“괜찮을 것 같아요, 바실리사. 이번 방은 퍼즐뿐이라서, 몬스터가 없어요.”

세르게이가 웃으며 물었다.

“아, 그래? 그렇다면 마음을 좀 놔도 되는 건가?”

“몬스터는 없지만, 함정이 있지.”

“헉.”

바실리사가 말했다.

“20번째 문을 열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건, 적어도 스무 개마다 카운트를 해준다고 보면 되는 거겠죠?”

“그렇습니다.”

“게다가, 이 메시지는 아브람도 받았겠죠.”

“네. 물론이죠.”

“또, 아브람이 열네 개의 문을 열었다는 얘기기도 하고요.”

“네. 우리는 지금까지 정확하게 여섯 개의 문을 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14 마이너스 6은 8. 앞으로 여덟 개의 문을 더 열면 그놈들을 만나겠군요.”

“네. 맞아요. 다만···”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가정이 필요하겠죠.”

“그렇습니다.”

미겔이 물었다.

“그들이··· 움직일까요?”

“그들의 입장에서, 상상을 한번 해보죠.”

“네? 그게 말은 쉽지만···”

“우리들이 던전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들은 이미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즉, 우리가 네 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죠.”

“그렇죠.”

“네 명이라는 정보를 얻었으니, 그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네? 왜 그렇죠?”

“그들은 바실리사를 쫓고 있습니다. 바실리사와 우리 둘이 함께 다닌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미 파악하고 있어요. 우리 둘의 신상명세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팀이 바실리사와 남자 둘의 3인조라는 사실은 원래부터 알고 있었죠.”

세르게이가 끼어들었다.

“뉴스에도 나왔으니.”

놀란 눈으로 미겔이 물었다.

“뉴스에 나왔다고요?”

“네. 저녁 뉴스에 화려하게 나왔죠. 눈에 띄는 미녀, 키 큰 동양인, 그리고 별 특징 없는 저. 이렇게 세 명이라고.”

이준기가 말을 받았다.

“난 동양인이니까 눈에 띈 것이고, 바실리사는 여자니까 눈에 띈 거지. 그렇게 이야기할 건 없잖아, 세르게이.”

“뉴스 진행자가 한 얘기도 아니고, 목격자들이 인터뷰한 건데?”

“하하. 재미있으라고 그렇게 얘기하는 거지?”

“팀 분위기를 위해서라면, 이 한 몸 기꺼이 희생해 주지. 마음껏 비웃으라고. 하하하.”

세르게이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이준기가 미겔에게 설명했다.

“모스크바 차원문을 닫을 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관광지 한복판에 있던 차원문이라서. 목격자도 많았고, 결국 뉴스에도 나왔죠.”

“아··· 그렇겠군요. 이준기 씨도 그렇고 바실리사도 눈에 띄는··· 아니, 세르게이도 눈에 띄는 미남이니까.”

세르게이가 대답했다.

“미겔, 고맙기는 한데 굳이 그런 말 하실 필요 없어요.”

“세르게이가 어때서요? 저처럼 흉악하게 생긴 사람도 잘사는데.”

이준기는 미겔과의 대화를 다시 이었다.

“미겔에 대해서는, 안된 얘기지만 파벨 아킨페프를 통해 이미 새어나갔다고 봐야겠죠.”

“아··· 그랬죠. 파벨이 배신자일 줄이야.”

“네 명이 입장했다는 메시지를 받은 시점에서, 그들은 우리 팀 구성을 파악했을 겁니다. 바실리사 일행 세 명, 그리고 미겔.”

“그렇겠군요.”

“보리스와 파벨을 통해 얻은 정보가 있으니, 바실리사와 미겔의 경우에는 레벨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고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가 네 명이고, 레벨이 대략 어떻다는 것까지 아는 셈이죠.”

“네.”

“그들은 다섯 명. 아브람 본인이 들어와 있다면, 나머지 멤버들도 레벨이 낮지는 않겠죠.”

“그렇다는 건?”

“그들은 자신 있을 겁니다. 움직이지 않고 기다릴 거예요. 기습도 하지 않을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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