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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3: 아브람의 탑 (5)
Episode 43: 아브람의 탑 (5)
“이런, 개자식!”
바실리사가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뛰어 나가려고 했다.
세르게이와 이준기가 그녀의 양팔을 잡고 말렸다.
“바실리사··· 도발일 뿐이에요. 아브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준기의 말에 바실리사는 제자리에 섰다.
그러나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분노로 인해 빨라진 그녀의 심장 박동이 들릴 지경이었다.
아브람이 말했다.
“원래는 바실리사 너에게만 얘기해 주려고 한 거야. 물론, 말해주고 나서는 죽일 생각이었지만. 그런데 너희들도 듣게 되었으니, 영광인 줄 알아라. 콜랴, 니키타, 툐마··· 너희들도. 그리고 야우 선생··· 이건 최고급 기밀정보란 말이오.”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준기와 미겔이 가장 덜 놀란 표정이었다.
미겔은 푸가초프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 것이지만, 이준기는 그 가능성에 대해 한 조각 의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칭퉁 야우가 말했다.
“쉬넨코 회장··· 그게 정말입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당신은 대단한 책략가요!”
“으하하하. 고맙소, 야우 선생. 지금까지 야우 선생이 나에게 한 칭찬 중에 최고라고 생각되는군.”
“무··· 물론입니다. 당신은 마치 제갈량 같은 사람이었군요!”
“제갈량? 그게 누군지는 몰라도 칭찬이겠지요?”
이준기가 대신 대답했다.
“제갈량? 이봐, 칭퉁 야우. 그건 좀 과장이 심한 것 아닌가?”
“그래? 넌 이걸 예상이라도 했단 말이냐?”
“조금 의심은 했다. 하지만 나로서도 예상 밖이라고 말해야겠지. 하지만··· 제갈량은 아니지. 비유를 굳이 하겠다면, 뱀은 어떤가?”
아브람이 말했다.
“저놈이 저렇게 펄쩍 뛰는 걸 보면, 제갈량이라는 거, 꽤 괜찮은 칭찬인가 보군. 마음에 드는걸.”
바실리사가 외쳤다.
“아브람··· 설명해라. 네 말이··· 허무맹랑한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설명해 보란 말이다.”
“좋아, 바실리사. 차근차근 설명해주지. 우선, 생각해봐라. 푸가초프라는 조직에서 네가 아는 사람이 누구인지.”
“보리스 라비노비치, 그리고 이리나 보로비예프.”
“정확하다. 왜 그렇게 적은 수의 사람만을 알고 있는지, 생각해봤나?”
“푸가초프는 점조직이다. 당연한 것 아니냐!”
“그래. 그 말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왜 푸가초프를 점조직으로 만들었을까?”
“네가 만들었다는 증거를 대란 말이다!”
“내가 푸가초프를 점조직으로 만든 이유는 간단해. 그렇게 해야 조직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으니까. 외부에는 물론이고, 내부 사람들에게도 말이지.”
“그건··· 점조직의 정의일 뿐이잖아!”
“바실리사. 네가 그 증거다. 넌 겨우 두 사람의 말을 믿고 푸가초프라는 조직에 자신이 속해 있다고 믿은 것 아니냐. 으하하하!”
바실리사의 몸이 떨렸다.
이준기는 그녀의 오른손을 잡았다.
아브람이 말을 계속했다.
“나훔 빌렌스카야(Nahum Billenskaya)라는 사람이 있다. 바실리사 너는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이지. 그 사람이 최초의 푸가초프다. 아니, 나 다음이니까 푸가초프의 두 번째 멤버라고 해야겠지.”
“···”
“바실리사, 너도 변장에는 꽤 재능이 있지만··· 나만큼은 아니지. 나훔 그 녀석은 죽을 때까지도 내가 그 아브람 쉬넨코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텔레비전에 매일 나오는 내 얼굴을, 그 녀석은 끝까지 알아보지 못했단 말이다. 으하하하!”
“웃는 건 집어치워. 계속해라.”
“이제 흥미가 생겼군? 하긴,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흔치 않으니까. 영화나 소설의 반전도 이 정도는 아니잖아. 안 그래? 흐흐흐.”
“계속해라.”
“그래, 그래. 나훔을 이용해서 나는 조직원을 모집했다. 나훔이 직접 모집한 조직원 중 하나가 바로 보리스다. 너도 예상했겠지만, 푸가초프에는 너나 이리나와는 달리 여러 사람과 접점을 가진 멤버들이 있다. 나훔도 보리스도 그런 핵심 멤버였던 것이지.”
“나를··· 입회시킨 건 누구 생각이었던 거지? 보리스냐, 너냐?”
“당연히 보리스다. 내가 너 따위를 어떻게 알고, 입회를 시키겠나. 하지만 너는, 인터넷이나 지하철역, 공중화장실 광고로 모은 다른 멤버와는 다르다. 너도 알겠지만, 보리스는 원래부터 네가 살았던 보육원의 후원회 멤버였지. 그래서 너와 보리스는 오래전부터 서로 알던 사이고. 내 말이 맞지?”
“그렇다. 보리스는 후원자 중에서도 열심인 사람이었어. 구원자로 각성하고 나서 고민 상담도 못 받던 나를 푸가초프로 이끌어줬지.”
“으하하. 역시 재미있어. 양민들 사는 모습은 말야. 너는 그렇게 생각하겠지? 보리스는 천성이 워낙 착한 사람이라서, 자기도 별로 잘 살지 못하는데 보육원 아이들을 후원했다고. 그렇지 않나?”
“그게 사실이잖아···!”
“으하하하. 순진해 빠졌군. 보리스가 전직 경찰인 건 알고 있지?”
“그래.”
“정확하게 얘기해주지. 그놈의 직업은 전직 경찰 겸 마약상이다. 나나 보리스 둘 다 그냥 일반인이었던 시절부터, 우리는 사업 파트너였단 말이다. 물론 보리스는 마약 공급책 윗선에 내가 있다는 걸 몰랐지. 하지만 그 녀석이 내가 공급한 마약을 팔고 다닌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보리스는 그 일을 나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아주 오랫동안 해왔지. 그가 너희 보육원 후원회 멤버가 되기 전부터 말이다. 무슨 얘기인지 알겠나? 보육원 후원회 활동은, 자신의 더러운 실체를 감추기 위한 위장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거··· 거짓말!”
“현직 경찰 신분으로 마약을 판매하면서, 그놈도 양심의 가책을 조금은 느꼈겠지. 그래서 후원회에 가입한 이유도 조금은 있을 거다. 그래도 사실은 바뀌지 않아. 보리스가 쓰레기였다는 사실 말이다. 최고급 스포츠카를 사설 차고에 맡겨 놓고 주말마다 타고 다녔지. 매주 여자를 바꿔가면서 말야! 그러면서 집에서는 가난한 경찰 행세를 하고··· 돈이 없다면서 자기 아이들에게는 외식도 잘 시켜주지 않는··· 그런 놈이었단 말이다.”
“거짓말이야···”
“아무튼, 나는 그렇게 보리스를 오랫동안 부하로 부려왔다. 그런데 작년 말이었지, 아마? 푸가초프 멤버 중 하나가 우리 쪽으로 넘어오겠다고 해서 부하를 보내 만나게 했는데, 그게 보리스였단 말이다! 얼마나 웃었는지··· 내 부하가 나의 한 조직을 배신하고 다른 조직으로 들어오겠다고 했단 말이다. 으하하하! 그놈이 씀씀이가 너무 헤프니까, 경찰도 그만두고 마약만 파는 데도 감당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돈을 조건으로 우리에게 정보를 넘기겠다고 했지. 그놈은 푸가초프의 나름 간부라서, 넘기는 조직원 숫자가 다섯 명이나 됐지. 그중 하나는 물론··· 너였다. 바실리사.”
“보리스가··· 직접 나를 팔았다고?”
“그래. 바실리사 엘리셰프. 너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네 얼굴을 보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사진을 보니까 구미가 좀 당기더군. 하지만 내게 여자는 얼마든지 넘치는 자원이다. 네 사진을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네가 이렇게까지 매력이 통통 튀는 여자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 그저 예쁘장하게 생겼다고만 생각했다. 네 진면목을 알았다면··· 우린 더 일찍 만났을 텐데 말이다. 네가··· 나의 하렘에 들어오는 형태였겠지.”
“개··· 개소리 집어치워!”
“흐흐흐. 역시 매력이 철철 넘치는군. 안심하라구. 나는 욕정에 미친 그런 동물은 아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내 모습이 작위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사실 그 모습이 가장 나다운 나다. 나는 사업가야. 돈 되는 물건에는 손대지 않는다. 그래서, 네가 푸가초프에서 실력 있는 멤버로 성장하고 있을 때도, 너에게 손을 대지 않은 거다. 물론 그때 나는 너의 이름과 실력 정도만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널 여러 작전에 동원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지. 너는 내 사업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여러 가지 공을 세워줬으니까.”
“뭐··· 뭐라고!”
이준기가 잡은 바실리사의 손목에서 맥박이 빨라졌다.
이준기는 그녀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녀의 맥박이 조금이나마 안정되었다.
“잘 생각해 봐라, 바실리사. 구원자로서 너는, 주로 어디에서 활동했었는지.”
“블라디보스토크··· 극동 연방 관구···”
“그래, 맞아. 내 눈엣가시였던 극동 마피아 놈들의 나와바리에서 너는 주로 활동했지. 너를 잡겠다고 눈에 불을 켜던 블라디미르 그 녀석을 생각하면 웃음밖에 안 나와. 네 성별도 모르면서 널 잡겠다고 설치던 꼴이라니···”
“네··· 네가··· 극동 마피아에 피해를 주기 위해 나를 이용했다고?”
“바로 그거다. 극동 마피아가 개판이 된 것, 이미 알고 있다. 예브게니 그 영감이 어떻게든 실상을 감춰보려고 정말 애를 쓰더군. 하지만 그게 어디 그렇게 맘대로 되나. 집이 그렇게 풍비박산이 났는데, 앞문만 바꿔 단다고 해서 그게 가려지냔 말이다. 아무튼, 정말 수고했다. 바실리사. 내 예상을 뛰어넘는, 정말 훌륭한 실적이야. 보너스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그런데 그런 일을 모두 무보수로 해주다니. 푸가초프는 내가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도 아주 많이 남는 장사가 됐어!”
“거짓말··· 거짓말 마라!”
바실리사의 눈에 고여있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지 마, 바실리사. 울지 말라고. 난 아직 이야기의 반쪽만을 얘기한 거니까. 극동 마피아에 막대한 피해를 줄 때까지만 해도, 넌 나의 보물이었어. 그래서 보리스가 널 팔아먹었을 때조차, 나는 너를 여전히 전사로 활용했지. 네 미모가 아깝기는 했지만, 네가 빠지면 푸가초프의 극동 프로젝트는 완전히 망가지는 그림이었거든. 거기까지는 정말 좋았어. 우리 관계의 황금기라고나 할까.”
“그딴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더 할 얘기가 있나?”
“물론이다. 이제부터가 비극이야. 극동 마피아를 거의 괴멸까지 몰고 갔던 네가··· 나에게 피해를 입히기 시작했거든.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가 시작이었지. 내 부하 중에서도 서열이 높은, 이반 클리츠비치를 죽인 것이 바로 너였잖아?”
“그래. 그렇다.”
“서열 5위나 되는 놈이었다! 재능도 뛰어났지. 언젠가는 내 오른팔이 될 수도 있는, 그런 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냥 죽어버린 거야. 그런데 놀라움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더군. 그 이반 놈을 죽인 게 바로 너라는 거야! 보리스가 거의 실시간으로 우리 조직에 보고를 올렸지. 너한테 정보를 얻을 때마다 말이다.”
“그래서···”
“그래서 널 더 이상 놔둘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난, 죽일 대상을 능욕하는 그런 양아치는 아니다. 바실리사, 넌 전사야. 그래서 전사의 예우에 맞는 장례를 치러주기로 결정했지. 그런데 너는··· 하하하··· 정말 대단하더군. 두 번씩이나··· 내 함정을 벗어나다니.”
“···”
“다 내 실수다. 내 잘못이야. 내가 널 너무 과소평가했어. 극동 마피아를 부술 정도의 너를, 겨우 저격이나 매복으로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 건 분명한 실수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직접 나서기로 했다. 어때, 마음에 드나?”
이준기가 앞으로 나섰다.
“꽤나 설득력 있는 소설이군.”
“소설? 네놈은 나서지 마라. 이건 나와 바실리사 사이의 이야기야. 슬픈 로맨스지. 아니··· 나쁜 로맨스인가?”
“훗. 미안하지만 이반 클리츠비치를 죽인 건 나다. 일대일이었지. 바실리사는 상관없어.”
“뭐? 날 도발하려는 거냐? 네놈 실력은 아까 충분히 봤다. 거짓말까지 하지 않아도, 죽여줄 거니까 기다리란 말이다.”
“이반뿐만이 아니다. 알렉세이··· 아니 알료샤 믈라디노프를 감옥에 보낸 것도, 벨라루스 국경 근처 차원문에서 막심 안드레예프와 안톤 키리옌코를 죽인 것도 나란 말이다. 이래도 재미가 없나? 흥미가 생기지 않느냐고.”
“흐흐흐. 그놈 실력도 괜찮고 도발도 잘하는구나. 네놈 이름이 알료샤라고?”
“알료샤 스즈키라는 이름을 썼었지. 극동에서는 말야.”
“그래서, 네놈의 진짜 이름은 뭐지?”
“이준기다. 한국에서 온, 이준기.”
“이준기?”
칭퉁 야우가 끼어들었다.
“이준기라고! 살아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