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92화 (19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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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7: 압도적인 힘 (1)

Episode 47: 압도적인 힘 (1)

‘하시바 세이이치로. 자신만만한 인물이니만큼, 비겁한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위기에 몰리면 쥐라도 고양이를 물게 되어 있다. 어느 쪽이든, 쿠사나기를 내 편으로 만들려면 선공은 하지 말아야겠지.’

이준기는 하시바의 방문을 두드렸다.

하시바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문 건너편에서 들려 왔다.

“뭐야?”

쿠사나기 린이 대답했다.

“하시바 님.”

“쿠사나기로군. 들어와.”

쿠사나기와 함께 들어오는 이준기를 보며 하시바는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쿠사나기··· 이게 뭔가? 무슨 장난이야?”

“하시바 님···”

이준기가 말했다.

“하시바 세이이치로. 경고부터 하겠다. 비겁한 짓을 한다면, 아주 괴로운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정정당당하게 싸우자.”

“아주 훌륭한 일본어군. 그래서, 네 이름은?”

“이준기다.”

“이준기··· 건방진 말투로 예상은 했지만 정말 뜻밖이군. 제 발로 내 앞에 나타나다니. 죽으려고 여기 러시아 땅까지 나를 쫓아온 거야?”

“미안하지만, 러시아에는 내가 먼저 왔다.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건가?”

“무슨 제안? 감히 나한테 덤비겠다는 네놈의 그 가당찮은 도발 말하는 건가?”

“뭐라고 불러도 결과는 같다. 그래, 맞아. 일대일로 함 뜨자.”

“난 부하가 수십 명인데, 내가 왜 너의 그 무리한 부탁을 들어줘야 하지?”

“왜, 자신이 없나?”

“내가 그따위 도발에 넘어갈 정도로 멍청해 보이나?”

“좋아. 다른 이유를 얘기해주지. 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고 싶다. 그러니까, 너만 죽이면 되는 거지.”

“내가 부하들을 시켜서 너를 죽여도 그건 마찬가진데? 너 하나만 죽으니까 말이다.”

“난 진심이다. 꼭 죽여야 하는 범죄자는 이 건물에 너밖에 남아 있지 않아. 연쇄살인마 아마쿠사는 이미 처단했으니까.”

처음으로 하시바가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목소리의 떨림을 억누르면서, 하시바는 쿠사나기에게 물었다.

“쿠사나기, 이준기의 말이 맞나?”

“네··· 하시바 님. 아마쿠사 님의 죽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런 쓸모없는 년! 그 망나니는 참의원 아마쿠사 님의 외동아들이란 말이다! 네 목숨과 바꾸기라도 해서 살렸어야지!”

“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순식간?”

“네··· 네··· 하시바 님.”

“이렇게 말이냐?”

순간, 하시바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준기가 쿠사나기를 끌어당기며 소리쳤다.

“내 뒤로 서!”

이준기는 오감에 신경을 집중하며 방안을 주시했다.

과연, 하시바의 책상 뒤편에 장식되어 있던 일본도가 사라졌다.

‘귀검’을 발동하자마자 그걸 집은 것이다.

챙!

이준기의 손에 들린 30년식 총검이 뭔가에 부딪히며 불꽃을 튀겼다.

그리고 곧, 이준기의 맞은편에 일본도를 든 하시바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법이구나. 그걸 막다니.”

“결투 제안을 받아들인 건가?”

“큰소리칠 만하군. 좋다, 덤벼라.”

*****

바실리사와 세르게이는 작전대로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시바의 방으로 들어온 것은 이준기뿐.

단 한 사람, 쿠사나기 린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시바와 이준기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쿠사나기가 방문을 닫자, 이준기가 하시바에게 말했다.

“쿠사나기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라.”

“그년이 그렇게 중요한가?”

“너와 나의 대결이다. 다른 사람이 다치는 게 싫을 뿐이야.”

“좋아. 네놈을 죽이기 전에 쿠사나기를 죽이지는 않겠다.”

“훗. 너처럼 건방진 녀석들을 참 많이 봐 왔지.”

“나와는 다르군. 난 너처럼 건방진 녀석을 지금 처음 보는데.”

“좋아. 약속 지켜라.”

“사무라이의 약속이다.”

“그딴 건 취급하지 않지만, 이번만은 받아주마.”

“네놈이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재미있군. 동영상으로 찍어서 유튜브에 올려주겠다.”

이준기는 가볍게 코웃음을 친 다음, 하시바를 향해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좋아. 선수를 양보하마. 들어와라.”

“하하하! 웃기는 놈이군. 네가 들어와라.”

“미안하지만, 그랬다가는 단 한 방에 끝난다. 그건 너무 재미없잖아?”

하시바의 인상이 구겨졌다.

“반드시, 네놈이 목숨을 구걸하게 해주겠다.”

“그래. 한번 해봐라.”

“건방진 놈!”

하시바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준기는 침착하게 정신을 집중했다.

이렇게 조용한 방안에서 귀검이라니.

너무 쉽다.

치캉!

하시바의 일본도가 이준기의 30년식 총검에 막혔다.

칼날을 튕겨낸 다음, 이준기는 가볍게 뒤로 물러섰다.

거의 동시에, 맞은 편에 하시바가 나타났다.

“제법이군.”

“그 말은 아까도 했는데?”

“정말 창피하지만, 선수를 양보받고도 유효타를 기록하지 못했군. 자, 이제 네 차례다. 들어와라.”

이준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생각이 바뀌었어.”

“뭐?”

“열 번··· 너에게 공격권을 주겠다. 한 번이라도 성공한다면, 내가 진 걸로 하지.”

“뭐가 어째?”

“파격적인 제안 아닌가? 열 번 중에 한 번이라도 네가 나에게 ‘유효타를 기록한다면’··· 네 소원대로 내가 목숨을 구걸해 주마.”

하시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게··· 네 계획인 거냐? 내 부하 앞에서 날 망신 주겠다는 거야?”

“솔직하게 대답해주지. 바로 그렇다.”

“뭐가 어째? 네가 감히 어떻게 이 하시바 님에게··· 한두 번 내 칼을 받아냈다고 우쭐해 마라. 후회할 짓은 하지 말란 말이다.”

“훗. 내가 우쭐하든 말든··· 그건 내 자유잖아?”

“이 새끼가 정말!”

욕지거리를 내뱉은 하시바가 오른손의 일본도를 왼손으로 옮겨 쥐었다.

그리고 오른손을 책상 쪽으로 뻗으면서 말했다.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마. 잘 봐둬라. 두 번 볼 일은 없을 테니까.”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자수정 성모상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하시바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공중에 뜬 채로 성모상의 허리가 부러졌다.

또다시 손가락을 까딱하자 이번에는 성모상의 머리가 분리되었다.

세 개로 쪼개진 자수정 조각들이 공중에서 천천히 돌고 있었다.

“죽어라!”

하시바의 외침과 함께 세 개로 부서진 조각들이 이준기를 향해 날아왔다.

몇 미터에 불과한 거리를 무섭게 날아오던 자수정 파편들은 이준기의 바로 눈앞에서 정지했다.

하시바의 얼굴에 당혹감이 순간 떠올랐다 사라졌다.

표정을 고쳐먹은 하시바는 온 신경을 다해 정신집중을 유지했다.

그래도 자수정 조각들이 꿈쩍하지 않자, 하시바의 입에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끄응···”

이준기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 모자챙을 조금 올려 썼다.

“끄으으···”

팔을 앞으로 더 내밀면서 신음하는 하시바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애쓴다.”

이준기가 드디어 한마디 했지만, 하시바는 그 말에 대답할 여유도 없었다.

오른손에는 30년식 총검을 들고, 왼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 이준기는 눈빛으로 자수정 조각들을 제어했다.

이준기의 머리 앞에서 가만히 서 있던 자수정 조각들이 공중에서 조금씩 뒤로 밀렸다.

“흐억!”

하시바가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자수정 조각들이 빠른 속도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으아아!”

양팔을 교차해서 날아오는 조각들을 막으려던 하시바.

자수정 조각들은 그의 머리 위를 지나쳐 책상 위로 돌아갔다.

맨 처음에 성모상의 다리 부분, 그 위로 상반신, 그리고 맨 위에는 성모상의 머리가 차례로 포개졌다.

이준기가 웃음을 지으며 하시바에게 말했다.

“그래도 자른 단면이 깔끔해서 다시 잘 맞춰졌네.”

이준기는 뒤를 돌아보았다.

쿠사나기 린이 귀신이라도 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때요, 쿠사나기 상? 본드 좀 바르면 원래 모습대로 돌아갈 것 같지 않아요? 성모상을 부러뜨리다니, 신성모독이라고요. 남의 종교도 존중해야죠.”

이준기는 뜨악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하시바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안 그래, 하시바? 그게 바로 너희들이 말하는 엔료(遠慮) 아닌가?”

“죽어라, 이준기!”

하시바는 대답 대신 일본도를 앞으로 내밀고 이준기를 향해 돌진했다.

이준기는 옆으로 살짝 비켜서면서 30년식 총검으로 그걸 받아쳤다.

“귀검을 써도 안 되던 건데, 그냥 덤비겠다고?”

“이··· 이준기!”

몸의 균형을 회복한 하시바가 다시 칼을 앞으로 빼 들고 달려들었다.

이준기의 30년식 총검이 일본도를 정면에서 받아쳤다.

하시바는 흔들리는 일본도와 함께 뒷걸음질 쳤다.

“이걸로 다섯 번째 공격이다. 아니, 맨 처음 것은 빼줄까? 그럼 네 번인데.”

“이··· 이 자식!”

“여섯 번 남았으니 잘해봐.”

*****

씩씩거리며 숨을 내몰아 쉬는 하시바 세이이치로.

그를 쳐다보는 쿠사나기의 눈은 이미 동정의 기색을 띤 지 오래다.

아니, 이제는 동정을 넘어 경멸의 기색이 그녀의 표정에 섞이기 시작했다.

모자를 고쳐 쓰며, 이준기가 상대에게 말했다.

“이제 한 번 남았다.”

“이준기!”

“한 번으로는 모자라겠지? 다섯 번 정도 기회를 더 줄까?”

“이준기이이!”

이준기의 뒤에 선 쿠사나기의 눈빛을 흘끗 훔쳐본 하시바.

모멸감에 못이겨 이준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머리 위에서부터 일본도를 내리질렀지만, 이준기는 30년식 총검으로 가볍게 받아 채며 옆으로 반 발짝 움직였다.

“검은 창!”

뒤쪽으로 도약하면서, 하시바는 이준기를 향해 검은 창을 날렸다.

하시바의 손끝에서 그림자로 만든 기둥 같은 것이 발사되어 이준기를 향해 날아왔다.

“리버설!”

이준기가 모자를 벗어 손에 쥐면서 외쳤다.

날아오던 검은 기둥이 즉각 방향을 돌려 하시바를 향해 날아갔다.

“크헉!”

하시바가 검은 창을 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이준기가 그를 향해 외쳤다.

“그냥 비켜도 되겠지만, 그렇게 하면 너는 네가 뭔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다시 마법을 쓰려고 하겠지. 그래서 맞받아쳤다.”

“검은 창을 피할 수 있다고?”

“못 믿겠어? 꼭 보여줘야 하나?”

“거드름 피우지 마라!”

“방금 것은 내가 방어 스킬을 썼으니, 10번의 기회에서 빼주겠다. 다시 덤벼라. 한 번의 공격 기회가 남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 쿠사나기에게도 말했다.

“방안에서 뛰어다니니까 덥네요. 그래서 모자를 벗었어요.”

머릿속에는 지금 수많은 생각이 떠다니고 있겠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쿠사나기의 표정은 고요했다.

이준기가 오늘 본 그녀의 표정 중에서도 제일 평온한 느낌이었다.

피가 섞인 침을 바닥에 뱉고 일어서면서, 하시바가 쿠사나기에게 말했다.

“쿠사나기! 지금 당장 부하들을 전부 소집해라. 이준기 저 녀석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

쿠사나기는 대답하지 않았다.

“쿠사나기! 명령이다! 모두들 이곳으로 모이라고 전해! 내가 놈을 막고 있을 테니, 너는 나가서 지원 병력을 데려와라. 명령이다.”

“날 막고 있겠다고? 네가?”

“쿠사나기! 내 명령을 들어라!”

여전히 움직이지도 대답하지도 않는 쿠사나기.

하시바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쿠사나기! 나한테 아직 너 정도는 죽일 힘이 남아 있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내 말을 들어라!”

이준기가 30년식 총검을 만지작거리면서 대답했다.

“무리야, 무리. 쿠사나기는 말야, 네가 정말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너를 따랐던 거라고 말했어.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 지금 네 말이 그녀에게 설득력이 있을까?”

“이준기! 내가 너를 과소평가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너부터 제거했어야 했어···”

“지금 하기에는 너무 늦은 얘기지.”

“왜냐? 왜 나를··· 우리를 막아서는 거냐?”

“악행을 싫어하는 것뿐이다.”

“악행이라고? 마피아에 신음하는 러시아 사람들을 구하러 온 거다.”

“흠. 우리 사이에 그런 거짓말이 필요할까?”

“난··· 정러파다. 일본에는 한국을 정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한파, 그리고 러시아를 쳐야 한다는 정러파, 이렇게 두 개의 파벌이 존재한다. 난··· 정러파란 말이다! 한국에는 해를 끼치지 않아! 오히려 한국에는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지! 한상태 회장에게 물어봐라. 내 말이 맞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와 손을 잡자.”

“너희의 악행을 거들라는 말이냐? 그건 너무 모욕적이군.”

“악행이 아냐. 세상에 선악이 어디 있나? 한국과 일본이 손을 잡는다면··· 세계에 우뚝 서는 강대국이 될 수 있다! 동양을 무시하는 백인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잔 말이다!”

“대동아 공영권인가 뭔가 그거 같이 들리는군. 21세기에, 그런 구닥다리 망언을 들을 줄이야.”

“이준기! 넌 강하다! 내가 인정하는 남자야! 나와 손을 잡자!”

30년식 총검의 날을 살펴보면서, 이준기가 말했다.

“이거, 레플리카라고는 하지만 너무 좋은 무기다. 악인을 상대로 이 무기를 써보고 싶어.”

“이준기! 내가··· 이 하시바 세이이치로가 너에게 상석을 양보하겠다! 나와 손을 잡자!”

“하시바··· 너에게 딱 한 번의 공격권이 남아 있다. 그 다음에는··· 이 장난감 칼날의 맛을 보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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