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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7: 압도적인 힘 (4)
Episode 47: 압도적인 힘 (4)
저택으로 경찰차 십여 대가 몰려들었다.
호송용 버스도 두 대가 들어왔다.
경찰차들 사이에 SSF 로고를 박은 구급차도 끼어 있었다.
문아린과 레온 소바킨이 차에서 내렸다.
마피아와 구원자, 수십 명을 호송하느라 저택 안마당은 사람들로 붐볐다.
테이저건을 맞고 쓰러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구원자 제압을 위해 경찰은 테이저건을 대량으로 가져왔다.
저레벨 구원자라고 해도 일반인 경찰에게는 두려운 존재다.
SSF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블라디보스토크 경찰은 저택에 진입할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도와줘서 고마워.”
이준기의 말에, 문아린은 웃으며 대답했다.
“뭘. 이렇게 일하는 것도 괜찮네. 말하자면, 협력 업체인 건가?”
“러시아 경찰···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 거지?”
“저기 저 사람··· 러시아 사람이고, SSF 소속이야. 레온 소바킨이라고 하는데, 얼마 전에 야스다 겐지를 모스크바까지 데리고 가서 철창에 넣고 왔어. 이번에도 그렇게 해줄 거야.”
“SSF 소속인··· 러시아 구원자라고?”
“그래. 재미있지?”
“그런 사람도 있기는 하구나···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만 하겠어. 스위스에 본부를 둔 국제 조직 직원으로, 러시아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구원자, 문아린.”
“그건 오빠도 마찬가지잖아. 러시아 비밀 조직에 속해서 외침에 맞서 싸우는, 한국에서 온 신비의 구원자.”
“하하. 그런가. 같은 길드도, 같은 공격대도 아닌데 이렇게 함께 일하게 되니까 좋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오빠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도 기뻐.”
문아린의 소개로 레온 소바킨과 이준기는 통성명을 했다.
“레온 소바킨입니다. SSF 소속입니다.”
“이준기라고 합니다. 소속은··· 없어요. 길드는커녕 한국에서는 등록조차 말소된 구원자죠.”
“요즘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궁금한 건 많지만 캐묻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사건 관련해서, 전부 조사를 받으셔야 하는 게 원칙이지만, 이준기 님은 제가 직권으로 빼 드리겠습니다.”
“권력이 막강하시군요. 감사합니다.”
“SSF 소속이라서 그런지, 경찰도 마피아도 저는 그냥 놔두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제가 쪼렙이라서 그런 거겠죠.”
“별말씀을···”
“한국인 구원자분들, 그리고 쿠사나기 씨 같은 경우는 조사만 받고 나오시게 될 겁니다. 중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사실 러시아 경찰이 관할권을 가진 것도 아니라서요.”
“러시아가 아니더라도, 대개 그렇게 처리하겠죠. 그 어떤 나라 정부도, 구원자 일에는 깊숙이 개입하지 않으려고 하니까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에 중대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이 저택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도 그렇지만, 야쿠자를 데리고 들어와 원정 폭력을 휘두른 것은 절대 용납하지 못합니다.”
“경찰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 정도 극악 범죄라면 블라디보스토크 경찰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이들을 그냥 내보내려고 한다면, 제가 직접 모스크바로 끌고 가겠습니다. 카플론스카야 모스크바 경찰청장은 외국인 구원자 범죄를 엄정하게 처리하겠다고 공언을 한 상태니까요.”
“하바롭스크에 원정 간 야쿠자들이 조금 있습니다. 그쪽에는 제가 첩자를 심어놨으니까, 곧 잡아서 넘겨드리겠습니다. 수고스러우시겠지만, 그때 다시 또 부탁을 좀 드리겠습니다.”
“언제든지 협력하겠습니다. 저희가 감사하죠.”
유지호가 포승줄에 묶인 채로 바깥으로 끌려 나왔다.
포승줄을 잡고 그를 끌고 나오는 것은 세르게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레온이 말했다.
“아··· 한국인 구원자이기는 하지만, 저 사람은 재판을 받아야 할 겁니다. 성범죄··· 그것도 외국인의 성범죄에 대해서는 여론이 너무 안 좋아서요. 블라디보스토크 경찰이라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가해자가 구원자라고 하더라도 말이죠.”
“물론입니다. 죗값을 제대로 치르게 해주세요.”
“문아린 구원자님, 그리고 이준기 구원자님이 러시아를 위해 해주신 일들을 생각하면, 정말 죄송합니다.”
“한국 사람이라고 비호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역겨운 범죄를 저지른 저 사람, 꼭 중벌을 내려주십시오.”
“노력하겠습니다.”
유지호는 세르게이가 제압했다.
일본인 구원자 한 명과 함께 러시아 여자를 강간하는 것을, 현장에서 잡은 것이다.
피해자는 미성년자였다.
세르게이가 이를 가는 유형의 범죄다.
세르게이에게 이끌려 걸어가던 유지호가, 경찰들 사이에 서 있는 문아린을 발견했다.
문아린이라면 랭킹 20위권에 자주 올랐던 셀럽이고, 단정한 외모로 팬카페도 많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유지호는 문아린을 즉각 알아보았다.
외국에서 만나서 그런지,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더 반가웠다.
유지호는 울먹이며 외쳤다.
“문아린 구원자님! 저 좀 도와주세요!”
문아린은 소리가 나는 쪽을 한번 물끄러미 쳐다본 다음, 대화를 나누던 경찰과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문아린 구원자님! 저··· 한국 사람입니다! 잘 모르시겠지만··· 프라이드 길드 유지호예요! 한상태 협회장 길드, 프라이드요! 문아린 구원자님!”
유지호의 뒤통수로 세르게이의 손바닥이 날아왔다.
하늘이 노래지며 멍해지는 느낌에, 유지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다시 고개를 드니, 문아린이 앞에 와 있었다.
“유지호···라고요?”
“네, 네! 문아린 구원자님! 저 좀 도와주세요!”
“뭘 도와달라는 거죠?”
“겨··· 경찰이 절 잡아가려고 해요! 일본놈들은 몰라도, 왜 저를···”
문아린이 유지호의 뺨을 후려갈겼다.
유지호는 뺨을 붙잡고 울먹였다.
“하··· 한국에 가고 싶어요···”
“더러운 강간범. 게다가 미성년자라니.”
“아··· 아베가! 아베 신사쿠가 같이 하자고 꼬드긴 거예요! 저는 그냥 말려든 거라고요!”
문아린이 유지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난, 너 같은 악마는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날··· 더 도발하지 마라.”
싸늘한 시선에, 유지호는 곧바로 입을 닥쳤다.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구경하던 세르게이가 유지호를 다시 끌고 가면서 문아린에게 말했다.
“Thank you!”
문아린은 처음 배운 러시아어 표현으로 대답했다.
“스파시바(Спасибо)!”
*****
경찰차에 타기 직전에, 예브게니는 세르게이를 찾았다.
“세르게이··· 미안하지만···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옛정을 생각해서 말이야···”
“말해보세요.”
“마··· 마리아··· 얘기야.”
“마리아 보로닌?”
“그··· 그래.”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서 3주일이 가까이 지났지만, 마리아 보로닌은 만나지 못했다.
극동 마피아 잔당이 한일 연합군의 침략에 맞서는 현장은 몇 차례 마주쳤지만, 그 어디에서도 마리아 보로닌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바실리사의 허술한 변장이 먹혀든 것일 수도 있다.
진짜 마리아 보로닌이 목격되었다면, 바실리사와 그녀가 다른 얼굴이라는 것은 더 쉽게 드러났을 것이다.
“어디 있는지 안다는 거예요?”
“그··· 그래.”
“아니, 영감님··· 그걸 알면서 야쿠자 놈들에게 불지 않은 거예요? 이 지경이 되도록?”
“비··· 비밀을 지켜줘야 해.”
“네? 무슨 얘기예요, 그게? 비밀을 지키다니.”
“마냐는 지금 병원에 있어. 야쿠자를 막다가 크게 다쳤지.”
“네? 그렇다면··· 1차 원정대와 싸우다가?”
“그래. 1차 원정대를 괴멸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크게 다쳤어. 걷지도 못한단 말이야.”
“거··· 걷지도 못한다고요?”
“그래. 그 불쌍한 애를 두고 난 이제 감옥에 가겠지. 다시는 그 애를 보지 못할 거야. 이렇게 후회되는 일을 왜 했을까··· 그 애를 마피아로 이끈 것은 나야.”
“도대체 무슨 소리예요? 마피아로 이끌다니? 예브게니와 마리아가 서로 아는 사이였다는 말이에요? 전부터?”
예브게니는 눈을 깜빡여 눈에 고인 눈물을 짜냈다.
“그··· 그래. 그 앤··· 내 딸이야.”
“뭐라고요?”
“그 애가 태어나기 직전에, 갈리나··· 그 애 엄마가 사라졌어. 나에게서 도망친 거지. 마피아 조무래기의 딸로 키우고 싶지 않았던 거야. 하지만 경제적으로 쪼들리게 되자 어쩔 수 없었지. 갈리나는 내가 마냐를 만나는 걸 허락했지만, 난 내가 그 애 아버지라는 사실을 숨겨야 했지. 돈 많은··· 친척 행세를 했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좋았지.”
“그럴 수가···”
“마냐가 구원자로 각성하자 나는 고민을 많이 했어. 어차피 러시아에서 구원자는 마피아가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녀를 데려왔어. 여기··· 블라디보스토크로 말야. 돈 많은 친척이 겨우 마피아였다는 사실에 실망하기도 했지만, 마냐는 상황을 받아들였지.”
“아니··· 그래도 어떻게 딸을··· 마피아로 데려와요!”
“그래··· 어리석은 생각이었지. 곁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 구원자로 각성한 그 애를 군대가 가만히 놔두었을까? 우리와··· 마피아와 연결된 군부 윗선은 군인이 된 그애에게 결국 마피아 일을 시켰을 거야.”
“그건··· 비겁한 변명입니다!”
“그래, 맞아, 세르게이. 그렇게 말해주니 오히려 속이 시원해. 난··· 죗값을 치를 거야. 하지만 마냐는···”
“마냐도 범죄자예요! 저도, 예브게니도 모두 마피아고, 범죄자란 말입니다!”
“하지만··· 그 애는 죗값을 치렀어. 야쿠자를 막다가, 하반신이 날아갔단 말일세.”
그렇게나 다쳤다니.
세르게이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잠자코 있었다.
예브게니가 흐느꼈다.
“아··· 아버지를 잘못 만나서···”
“마냐의 어머니는요? 갈리나라는 분은 지금 어디 있어요?”
“갈리나가 있었다면 내 잘못된 결정을 막았겠지. 갈리나는 오래전에 죽었다네. 마냐가 아직 대학생도 되기 전이야. 가난해서 죽은 거지. 제대로 치료를 하지 못했으니.”
“그게 말이 돼요? 예브게니는 뭘 했어요?”
“갈리나는··· 내 돈을··· 마피아의 피 묻은 돈을 받기를 거부했어. 그리고 죽기 직전에 잠적해 버렸지.”
“그··· 그런···”
예브게니는 울먹이며 세르게이의 손을 잡았다.
포승줄이 매인 곳 근처에도 수많은 고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마냐를··· 그 애를 야쿠자로부터 지켜줘. 어딘가 다른 나라 병원으로 보내줄 수 있을까? 바하마에 비밀 계좌가 있어.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
고민 끝에, 세르게이는 이준기와 바실리사에게 예브게니의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끝내고, 세르게이는 조심스럽게 자기 의견을 덧붙였다.
“나도 알아. 마리아 보로닌은 범죄자라는 것. 하지만 예브게니의 말대로, 그녀는 죗값을 치른 게 아닐까?”
바실리사가 말했다.
“마리아 보로닌은 야쿠자에 맞서 자기 구역을 지킨 것뿐이야. 깡패들끼리의 영역 싸움이었다고. 그걸로 죗값을 치르다니··· 그게 말이 돼?”
“세르게이. 미안하지만 바실리사의 말이 맞아. 예브게니에게는 마냐의 싸움이 애국으로 보이겠지만, 그건··· 아니지.”
세르게이가 체념하는 투로 말했다.
“그래, 대장. 나도 알아. 예브게니가 불쌍해서··· 마음이 흔들렸어. 가족을 떠나보내는 게 어떤 기분인지··· 나는 아니까.”
이준기는 생각했다.
그건 바실리사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지만, 바실리사 역시 가족을 잃은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마피아의 범죄에 휘말린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녀에게 마피아를 동정하라는 것은 너무 가혹한 요구다.
하지만···
바실리사가 말했다.
“그렇지만··· 마리아도 알 권리가 있겠죠. 예브게니를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그녀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예브게니가 사실은 아버지라는 것.”
“바실리사!”
“일단 만나봐요. 이건 일이에요. 극동 마피아의 마지막 보루, 마리아 보로닌을 만나는 거죠. 야쿠자가 러시아에 들어온 이상, 그녀가 가진 정보는 중요해요.”
이준기와 세르게이가 거의 동시에 말했다.
“고마워, 바실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