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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8: 또 하나의 대조국 전쟁 (6)
Episode 48: 또 하나의 대조국 전쟁 (6)
유럽연합군을 맞이한 러시아의 서부 전선은 피바다의 연속이었다.
신중한 성격의 제1군 사령관 나폴레옹은 아직도 차원문 한 개를 봉쇄하지 못한 반면, 저돌적인 성격은 제2군 사령관 바이런은 하루에 한 개 이상의 속도로 차원문을 정리해 나갔다.
매일 저녁 전략회의가 벌어질 때마다, 이들은 티격태격했다.
“하하하! 오늘도 차원문 한 개 정리했습니다. 모스크바 점령도 멀지 않았군요.”
“하, 그래요? 이제 병력이 40명도 안 될 텐데, 모스크바 점령은 누가 합니까? 언데드 군대라도 몰고 오시겠다는 거요?”
“이봐요, 나폴레옹! 부러우면 부럽다고 하시오. 그래, 오늘은 성공하셨습니까? 스타트 끊었냐는 겁니다. 마수걸이에 그렇게 힘들어해서야···”
“흥. 물밑 작업이 끝나는 대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일시에 우리 군의 수중에 떨어질 거요.”
“하! 그 말은··· 정말 어이가 없군. 아직도 차원문 한 개를 정리하지 못했다는 거죠?”
듣다 못 한 3군 사령관 반 고흐가 끼어들었다.
“자, 자! 바이런 님, 나폴레옹 님! 우린 연합군입니다. 우리끼리 싸우면 어쩌자는 겁니까? 총사령관님, 몬테 크리스토 백작님! 중재를 해주셔야죠.”
화면 속의 몬테 크리스토 백작 얼굴은 평온해 보이지 않았다.
가면을 썼음에도, 미간의 주름이 보였다.
눈과 코만 가린 가면을 쓴 것은, 이럴 때 표정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반 고흐가 총사령관을 다시 부르자, 그제야 몬테 크리스토 백작, 즉 아가타 하바로프스키는 입을 뗐다.
“좋아요. 제 생각을 말씀드리죠.”
반 고흐가 반문했다.
“의견요? 중재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만.”
가면 뒤의 몬테 크리스토 백작은 애써 거친 톤과 호흡을 가장하며 말했다.
“난··· 나 총사령관 몬테 크리스토 백작은 제1군 사령관 나폴레옹의 용병술에 대해 의문을 표합니다.”
제3군 사령관 반 고흐도, 제4군 사령관 엘 시드도 놀랐지만, 누구보다 놀란 건 당연하게도 나폴레옹 본인이었다.
“초··· 총사령관! 지금 편 가르기를 하는 겁니까?”
“바이런 경의 제2군의 진격 속도가 남다른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제가 요구하는 건 그 속도를 따라가라는 게 아니에요. 제1군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제1군과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와 있는 내가, 왜 이따위 지지부진한 꼴을 봐야 하는 겁니까? 말을 좀 해보세요.”
“지금까지 제1군에서는 사망자가 단 1명에 불과합니다. 바이런의 제2군은 어떤가요? 반 이상이 죽어 나갔습니다! 이게 전쟁입니까? 조폭들 사이의 패싸움도 이렇게 무식하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바이런이 탁상을 치며 일어섰다.
“야! 나폴레옹! 이름이 아깝다! 러시아를 정벌하고 싶어 그 이름을 고른 게 아니라, 러시아가 무서워서 그 이름을 고른 거냐? 1812년 나폴레옹의 흑역사를 200년 뒤에 다시 한번 재현해 보겠다는 거야?”
“뭐가 어째? 전쟁에 나오면서 시인 나부랭이 이름이나 쓰는 주제에···”
“코드명을 전쟁광으로 골랐으면,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해라. 너 프랑스놈 아니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이름에 먹칠하려고 그런 코드명을 고른 거 아냐?”
“하! 너야말로 영국 놈 맞냐? 그리스 독립 전쟁에 가겠다고 배 타고 와서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 죽은 놈을 별명으로 고르다니. 다 같이 죽는 게 네 전략이냐?”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던 제4군 사령관 엘 시드가 중재에 나섰다.
“자··· 잠깐! 일단 잠깐만 쉬시죠. 5분 동안 휴회를 제안합니다. 차라도 한 잔씩 들고 오세요. 전략 회의 아닙니까? 말싸움하러 모인 게 아닙니다.”
엘 시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총사령관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화면이 꺼졌다.
마이크가 꺼지기 직전, 아가타 하바로프스키가 분노를 삭이려고 내쉬는 한숨 소리가 모두에게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
미겔 산체스도 유럽연합군에 참여 중이었다.
빌바오에서 진행 중인 바스크 독립운동의 핵심 인물이지만, 혁명 지도부는 미겔을 러시아 전선에 다시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폴란드의 거대 길드, 솔리대리티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겔, 미안하지만 또다시 어려운 부탁을 하게 됐군.”
“아뇨, 그렇게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대장의 결정이라면 저는 뭐라도 따릅니다.”
“그래. 이해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배경 설명은 조금 해주세요. 폴란드에서 요청했다고요?”
“그래. 폴란드의 거대 길드, ‘솔리대리티’는 유럽 각지의 소수 민족 독립운동을 지지하고 있어. 그게 길드 정강에 명시되어 있지. 우크라이나 내전에 대대적인 지원을 했던 것도 그 정책과 맥이 닿았던 것이고.”
“따지자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건은 좀 성격이 다른 것 같은데요? 우크라이나 내전은 분명히 그런 성격이었죠. 러시아에 의해 우크라이나 민족의 자결권이 위협받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거꾸로 러시아에 쳐들어가는 것 아닙니까?”
“선제적 공격이라고 해두지. 위협을 사전에 봉쇄한다는···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폴란드는 러시아에 이를 가는 민족 중 하나니까, 다소 감정적인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일 거야. 하지만 러시아를 마피아가 장악하고 있는 것은 맞지 않나.”
“마피아가 국가를 장악하고 있는 것도, 구원자들이 마피아에 포섭되어 약자들을 핍박하는 것도 다 잘못된 일이기는 하죠. 하지만 그건 러시아인들이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혁명 사령관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미겔을 쳐다보았다.
“그건, 미겔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인가?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 것 같아서 말이야.”
“원래부터···라고 물으시면 아마 아니라고 대답해야겠죠. 하지만 지금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바스크인의 문제를 바스크인이 결정해야 하듯이, 러시아인의 문제는 러시아인이 결정해야죠.”
“무슨 책이라도 읽었다는 거야? 굉장히 교조적으로 들리는군.”
“교조적이라는 단어가 교조적으로 들리는군요. 그냥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서 토론하고 하다 보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이봐, 미겔 산체스. 자네에게 가장 중요한 이상은 뭐지?”
“물론, 바스크인의 독립 국가 건설입니다.”
“솔리대리티는 바스크의 독립을 도울 것이다. 우리도 그들을 도와야지.”
“휴우··· 알겠습니다. 대장님의 명령이시라면.”
지금까지는 혁명 지도부의 노선에 따라 충실히 맡은 일을 처리하던 미겔이었기 때문에, 사령관은 상당히 놀랐다.
하지만 미겔 산체스의 충성심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미겔을 러시아 전선에 투입했다.
폴란드 쪽에서 미겔 산체스를 거명하며 부탁해온 것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
미겔 산체스는 바스크 독립 전선이 보유한 최고 레벨 구원자다.
아가타 하바로프스키는 그 때문에 그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며 파병을 요청한 것이다.
미겔 산체스는 제4군에 지원했다.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와의 영토 분쟁이 있는 지방이다.
그곳이라면 침략 전쟁이라는 느낌이 조금은 덜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그는 제1군, 즉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야 했다.
미겔의 이동을 직접 명령했다는 유럽연합군 총사령관을, 미겔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났다.
눈과 코를 가리는 가면을 쓴 총사령관은 프레지덴셜 스위트에 묵고 있었다.
창밖으로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멀리 작게 보이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방이었다.
정상회담이라도 하러 온 모양이다.
러시아로 원정을 왔던 나폴레옹도 이런 사치를 부리지는 않았으리라.
총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앉아요.”
“감사합니다.”
“차는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얼그레이? 아이리시 몰트?”
“차는 됐습니다. 물이나 한잔 주시죠.”
“물은 냉장고에 있으니 얼마든지 꺼내 드시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다시 자리에 앉은 미겔을 향해 총사령관은 말했다.
“나는 유럽연합군 총사령관 몬테 크리스토 백작입니다. 여백작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그냥 원전을 살려서 백작이라고 해두죠. 남녀 가려서 명칭을 바꾸는 것도 성차별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안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미겔 산체스 님을 직접 요청한 게 접니다. 무엇보다, 산체스 님의 실력은 제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으니까요. 아시다시피, 모스크바를 제외한 러시아 전장은 현재 교착 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 특히 문제가 되는 곳이 바로 여기, 상트페테르부르크입니다. 도대체 진전이 없어요. 미겔 산체스 님이 가세해 준다면, 전황을 확 바꿔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저는 그저 과분한 칭찬으로밖에는 들리지 않는군요.”
“그렇게 겸손 떠실 필요 없어요. 우크라이나에서 엄청난 전과를 올리셨잖아요? 내가 모를 것 같아요?”
“네? 우크라이나요?”
“펠릭스 코왈스키에게 다 들었습니다. 지나친 겸손은 오히려 무례라고 생각될 수도 있어요.”
펠릭스 코왈스키는 폴란드인으로서 우크라이나를 도와 내전에 참가했던 사람으로, 아브람에 의해 억류되어 있던 것을 미겔이 구출해 왔다.
바실리사, 세르게이, 그리고 이준기와 함께.
코왈스키의 이름이 나오자, 미겔은 즉각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겸손이 아니라, 그건 정말로 제가 한 게 아녜요.”
“산체스 님이 끝까지 우기는 바람에 정식으로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모스크바 마피아의 대부이자 우크라이나 침략의 원흉인 아브람 쉬넨코를 척살한 것이 산체스 님이라는 것, 다 알고 있어요.”
“그게··· 동료들과 함께 한 일입니다. 제가 혼자 한 게 아녜요.”
“훗. 푸가초프 잔당 말인가요? 푸가초프에 무슨 인재가 있다는 겁니까? 많은 사람들이 푸가초프의 존재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는 마당에··· 참고로 말씀드리면, 저도 그들 중 하나라고 얘기해 두죠.”
“푸가초프는 실존합니다!”
“좋아요, 좋아. 아무튼 아브람 쉬넨코를 척살한 공격대에 미겔 산체스 님이 계셨던 것은 사실이잖아요. 그것도 부정하실 생각입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만, 저는 그냥 공격대의 일원이었어요. 아마 넷 중에 제가 한 일이 가장 작았을 겁니다.”
“넷···이라고요? 지금 공격대가 겨우 네 명이었다는 얘기를 하시는 겁니까?”
가면 뒤에 숨은 아가타의 눈이 놀라서 커지는 것이 보였다.
더 이상 정보를 흘리면 곤란할 것 같아서, 미겔은 즉각 수습하려 했다.
“아··· 아닙니다. 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산체스 님 거짓말은 얼굴에 다 드러나는군요. 공격대가 네 명인 게 맞군요?”
미겔은 얼굴이 잔뜩 붉어진 상태로 허리를 숙이고 속삭이듯 말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비밀로 해주세요. 푸가초프 그 사람들이 부탁한 겁니다.”
“푸가초프라는 게 실존한다고 계속 주장하시는군요? 그리고 아브람 쉬넨코 일당을 소탕한 것도 사실은 산체스 님이 아니고 푸가초프였다··· 그렇게 주장하시는 겁니까?”
“그게 사실이니 그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코왈스키 장군이 제 전과에 대해서 허풍을 많이 섞은 것 같군요. 제가 그렇게 당부를 했건만···”
“좋아요. 정말 흥미로운 얘기군요.”
“제 명예를 위해서라도 이 얘기는 비밀로 해주십시오. 그렇게 해주시지 못하겠다면, 저는 스페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몬테 크리스토 백작, 즉 아가타 하바로프스키는 크게 웃었다.
“하하하! 산체스 님은 정말 재미있군요! 하하하··· 알았어요. 오늘 얘기는 절대 비밀에 부치도록 하죠.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말씀하십시오.”
“미겔 산체스 님은 제1군 소속이지만, 저의 직속 명령을 받을 겁니다. 그건 설명을 이미 들으셨죠?”
“네.”
“제 명령에 절대복종해 주세요.”
“합리적인 선이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아요. 저도 합리적인 사람이니까. 저는 단지 지금 전황의 교착을 깨뜨리고 싶은 것뿐이에요. 생각 같아서는 제1군 사령관 나폴레옹을 몰아내고 산체스 님을 그 자리에 앉히고 싶지만··· 각 군 사령관 인선은 처음에 합의된 대로 유지하기로 했으니까, 약속은 지켜야죠.”
“그 정도로 안 좋습니까?”
“안 좋아요. 도대체 나폴레옹이라는 작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정말 프랑스인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고, 바이런 경 말대로 아마 사실은 나폴레옹을 대단히 싫어하는 사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신중한 성격이라고 들었습니다.”
“신중한 게 아니고 겁쟁이가 틀림없어요. 지금까지 우리측 구원자 사망자가 딱 한 명 나왔으니까, 말 다 했죠.”
“사망자가 한 명뿐이라면, 훌륭한 것 아닙니까?”
“러시아 쪽은 구원자 사망자가 아예 한 명도 없어요. 그래도 훌륭한 건가요?”
“러시아 쪽 사망자 통계를 갖고 계시다고요?”
“그거야 시체를 보면 구원자인지 아닌지 대강 알 수 있잖아요? 게다가 나폴레옹 본인이 적측 구원자를 한 명도 죽이지 못했다고 인정하고 있으니까, 더 조사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죠. 지금 우리가 일반인 마피아 나부랭이를 단속하자고 국경을 건너온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총사령관님 생각은 뭡니까?”
“제 직속 구원자 다섯 명과 한 팀을 짜세요. 거기에 1군 소속 구원자 여남은 명을 추가해서 내일 당장, 차원문 하나를 봉쇄하세요.”
“내일 당장이라고요? 이미 찍어두신 차원문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럼요. 저길 봐요.”
아가타의 손가락은 창을 통해 보이는 에르미타주를 가리키고 있었다.
에르미타주 앞 광장 한쪽 구석에, 희뿌연 소용돌이가 작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