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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50: 트루 컬러즈 (3)
Episode 50: 트루 컬러즈 (3)
한상태가 돌아섰다고 판단하고, 후지와라는 용기를 얻어 외쳤다.
“한국 구원자님들! 적은 이준기 단 한 명입니다. 우리가 질 것 같아요? 정신들 차리세요!”
한상태도 호응했다.
“다들 내 뒤로 서! 내가, 탱커 한상태가 이준기의 공격을 막아내겠다! 우리가 이긴다!”
기겁하는 표정으로, 김범규는 한상태에게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뒷걸음질 쳤다.
한상태가 그를 돌아보며 호통을 쳤다.
“김범규! 뭐 하는 거야? 한국 랭킹 2위 김범규!”
“혀··· 형님, 이건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에요.”
“여기에서 물러서면 구원자 행세는 끝이야! 15대1에서 꼬리를 내렸다는 뉴스가 나온 다음에 얼굴이나 들 수 있을 것 같아?”
“초··· 총알을 멈추는 게 가능한 구원자가 몇이나 될 것 같아요?”
“얼마든지 있을 거야. 길수연! 길수연도 가능할 거야!”
총알을 멈추지는 못하지만, 길수연의 텔레키네시스 컨트롤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상태의 뒤에 길수연은 없다.
20위권 전체를 끌고 왔다고 큰소리치는 한상태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런 일에 낄 길수연이 아니다.
김범규가 작은 목소리로 한상태에게 외쳤다.
속삭이며 외치는 목소리에 절망감이 묻어났다.
“그렇다고 쳐요! 그럼 뭐가 달라져요?”
“겁먹을 필요 없다는 거야! 아까 그거··· 트릭일 지도 몰라! 마술 말이야!”
“형님이 쏜 총알이에요. 무슨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김범규!”
듣다 못 한 이준기가 입을 열었다.
“한상태 회장이 포기하면 여러분 모두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잘못 판단한 것 같군요. 한 분 한 분 의사를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무슨 수작이냐···”
한상태의 질문에, 이준기는 담담하게 답했다.
“뭔가 다른 생각으로 여기에 온 분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성범죄를 저지른 유지호처럼 말입니다.”
작게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구원자를 구금한 일이므로, 러시아 경찰은 유지호, 아베의 성범죄 사건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었다.
이준기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윤동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윤동직 형님··· 거기 계셨군요.”
“어··· 그래, 주··· 준기야.”
“저와 싸우고 싶으신 건 아니죠?”
“그··· 그래. 아냐. 내가 왜 너와 싸우겠어.”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혹시나 해서 여쭤봤습니다.”
윤동직과 짧은 대화를 마치고, 이준기는 군중을 향해 외쳤다.
“저와 승부를 가리고 싶으신 분은 한상태 회장 쪽으로,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윤동직 탱커 쪽으로 서주세요. 한상태 회장이 상황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좀 어색한 일이기는 하지만, 쓸데없는 싸움을 피하려고 그럽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한상태, 윤동직, 이준기를 번갈아 쳐다보기도 하고, 옆 사람과 작게 웅얼거리기도 했다.
그 사이에서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이준기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손을 들었던 최아람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외쳤다.
“주··· 준기 형님! 저 기억하시겠어요? 해운대 함께했던 최아람입니다.”
이준기는 최아람을 향해 웃어 보였다.
“그럼, 아람아. 기억하지. 오랜만이네. 따로 인사하지 못해서 미안해.”
“저··· 저야말로. 그런데 준기 형님! 뭣 좀 여쭤봐도 될까요?”
“이 상황에 관한 얘기겠지?”
“그렇습니다.”
“말해봐.”
“야··· 양쪽의 입장을 들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서요··· 한상태 회장의 얘기는 모두 들었으니까, 준기 형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준기 형님은 왜 이곳에 계신 거죠? 뭘 하고 계신 겁니까?”
“그래, 그렇겠군. 난, 한상태 회장만 설득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잘못 생각했어. 이럴 줄 알았다면, 최현 구원자와 함께 올 걸 그랬다.”
“최현 구원자님요? 준기 형님과 함께 있는 거예요?”
설마 하는 표정으로, 모두의 시선이 이준기에게 쏠렸다.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나 혼자 온 건데. 싸움이라도 나면, 평화주의자인 최현 구원자가 꽤 난감해할 테니까.”
“서··· 설마··· 한국인 구원자들만 살아남은 이유가···”
“한국인이라고 면죄부를 준 건 아니지만, 그들은 일본 협회의 강압에 끌려온 것이니까. 그래서 최대한 살리려고 한 거야.”
후지와라가 외쳤다.
“이준기! 일본인들만 골라서 죽였다는 얘기냐?”
“아니, 그것도 아니다. 일본 사람들 중에서도 자기 의사에 반해서 온 사람들이 꽤 되잖아. 항복할 기회는 모두··· 아니, 거의 모두에게 주었다. 심지어 하시바에게도 항복할 기회는 줬지.”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해졌군. 이준기, 넌 일본 전체의 적이다!”
“그게 너의 판단이라면 존중하겠다. 너는 한상태 회장 쪽으로 서면 되겠군.”
“좋다. 그 말은, 우리가 몇이 되든 너 혼자 상대하겠다는 말로 들어도 되겠나?”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난 일을 하는 중이다. 스포츠 경기를 하는 게 아냐.”
“그 일이라는 게 뭔데?”
이미 한상태의 바로 뒤에 서 있었지만, 후지와라는 윤동직에게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한 걸음을 더 움직였다.
“그래. 대답을 하겠다. 최아람 구원자가 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니까.”
“그래, 말해봐라.”
“구원자는 이미 특권층이다. 그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겠지. 그런데 거기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 역시 다들 이미 아는 사실이겠지만.”
이준기는 눈앞의 구원자들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교장의 훈시라도 듣는 표정이었다.
“야쿠자를 부리면서 이권 사업을 하던 하시바 세이이치로가 그런 경우다. 그걸 몰랐던 것은 아니겠지, 후지와라? 하시바는 구원자 각성 전 이미 야쿠자 일을 하던 사람이다.”
후지와라는 대답 대신 침을 삼켰다.
“야마토 연합 자체가 그런 조직이다. 일본 야쿠자의 거의 전부가 야마토 연합의 하부조직이라고 보면 된다. 러시아 원정의 실체는 그 야쿠자의 나와바리 확장이다. 후지와라, 말해봐라. 이게 너에게 전혀 새로운 얘기인 거냐?”
굳은 표정의 후지와라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준기를 응시하기만 했다.
“좋다. 침묵도 대답의 일종이지. 이야기를 계속하겠다. 야마토 연합의 원래 목표는 한국이었다. 야쿠자 나와바리로 한국은 대단히 훌륭하다. 폭력조직의 수준도 낮고, 게다가 구원자가 개입되어 있지도 않지. 물론, 야쿠자가 한국에서 활동하는 게 포착되면 이야기가 달라질 테니 한국 협회에 미리 손을 좀 쓰기는 해야 하지만 말야.”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오사카에서 시작된 한일 연합 공격대라는 건 바로 그런 차원에서 계획된 것이었지. 표면적으로는 성공한 것으로 보였지만, 오사카 도톤보리 던전 공략 결과는 일본에게 재앙과 같은 것이었다. 후지와라, 도톤보리 공격대의 실상에 대해 알고 있나?”
침묵을 지키던 후지와라가 이번에는 대답을 했다.
“시··· 실상이라니 무슨 얘기냐? 몹들이··· 오크들이 몰려서 인명피해가 컸던 거잖아?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어서, 다케다 시게히데 탱커는 죄책감에 사실상 구원자 활동을 은퇴했다.”
이준기는 저도 모르게 크게 웃었다.
“하하하! 뭐든지 포장을 잘하는 일본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그 일도 미담이 됐군. 정말로 모르는 것 같으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말해주겠다. 도톤보리 공격대의 진짜 목적은, 당시 박충기의 오른팔이었던 전용택 회장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사고를 위장해서 말이지.”
후지와라는 물론, 한상태를 비롯한 모두가 동요했다.
이준기에게 실상을 들어 알고 있던 윤동직과 김나리도 가볍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상덕이라는 사람에 대해 안다면, 당시 공격대 구성만 봐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지. 나는 차원문에 몰래 진입해서 그들이 하려던 일을 방해했다. 결국 공격대원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결과는 후지와라 당신이 아는 바와 같아. 다케다 시게히데를 제외하면 당시 음모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었다. 이도협과 고성하를 포함해서 말이다.”
“네··· 네가 전부 죽였다는 말이냐?”
“아니, 내가 직접 죽인 것은 이도협뿐이다. 다케다 시게히데는 목숨을 구걸해서 살아남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말이지.”
“뭐··· 뭐라고? 다케다 대장이 그럴 리가···”
“다케다는 나중에 전부 이야기했을 거야. 구라모토나 하시바 같은 야마토 연합 핵심 인물들에게 사실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을 거다. 구라모토는 사실을 은폐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덮은 거지. 당연한 선택이다. 생환자 4명 중 한국인은 세 명이나 되는데 일본인은 하나였다. 그게 패싸움의 결과라는 게 밝혀지면, 구라모토의 리더십에도 문제가 될 만한 상황이지.”
“그래서, 몹들이 몰려서 그렇게 됐다고 발표한 건가?”
“그래. 그게 내가 다케다에게 지시했던 시나리오다. 거기에 양심의 가책으로 은퇴한다는 꽃장식을 하다니, 인상적이군.”
“그··· 그럴 리가.”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테니 간단히 얘기하겠다. 오사카에서 고레벨 구원자 여럿을 잃고, 광주에서도 야마시타 시게루가 사망했지. 한국에 대한 공작이 계속 실패하자, 구라모토는 러시아로 눈을 돌렸다. 러시아는 마피아가 지배하는 무정부 상태. 마피아를 몰아낸다는 그럴듯한 핑계도 댈 수 있었지.”
“하지만, 우리는 정말로 마피아와 싸웠다!”
“이미 말했잖아. 마피아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야쿠자를 투입하는 것이 이 원정의 진짜 목적이다.”
후지와라의 침묵에, 이준기는 말을 이었다.
“너희 야쿠자는 사할린에서 시작해서 연해주를 공격했다. 왜인지 아나?”
“사할린은 원래 우리 일본의 영토니까!”
“예상 답안에서 벗어나지를 않는군. 좋아, 실상을 말해주마. 너희들이 사할린에서 시작한 이유는, 정탐을 통해 사할린 마피아가 거의 전멸했다는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극동 마피아의 사할린 지부를 관할하는 구원자가 사라졌기 때문이었지.”
“그래서? 그게 뭐가 잘못됐나?”
“처음에 얘기했지. 내가 싸우는 대상은, 이미 많이 가졌음에도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썩어빠진 구원자들이다. 그리고, 마피아가 되어 사람들의 생피를 빠는 러시아 구원자들이 바로 그런 녀석들이지.”
“뭐··· 뭐라고? 그 말은···”
“그래, 맞다. 사할린에서 마피아 구원자를 몰아낸 것은 바로 나다. 그다음에는 블라디보스토크의 극동 마피아, 그리고 그다음에는··· 아니, 그만두지. 내 전과를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니까.”
“블라디보스토크? 여··· 여기 마피아도?”
“후지와라, 너 같은 조무래기는 모르겠지만, 하시바 정도 되는 야마토 연합의 간부급은 러시아 마피아의 주요 인물 정도는 꿰고 있다. 극동 마피아의 원래 보스는 블라디미르 아쉬코프. 지난 1월, 부하 다섯 명과 함께 던전 안에서 사망했다. 그래서 서열 5위였던 마리아 보로닌이 새 보스가 된 것이지.”
“네··· 네가 죽였다는 말이냐? 극동 마피아 보스를?”
“숨을 끊은 것은 내가 아니고 내 동료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야겠지.”
“그··· 그럴 수가···”
“너희 야마토 연합, 아니 야쿠자는 지난 두 차례 원정으로도 극동 마피아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 서열 5위였던 마리아 보로닌이 이끄는 잔당에 불과한 극동 마피아를 말야. 그런데도 아직까지 포기를 하지 못하다니, 구라모토는 자신이 틀렸다는 걸 절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성격인가 보군. 어때, 너는 만족하나, 후지와라? 사람들이 우수수 죽어 나가서 랭킹이 급상승한 게 좋은 거야?”
후지와라의 얼굴에서 피가 반쯤 빠져나간 것 같았다.
도대체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총알을 멈추지 않았다면, 그냥 전부 헛소리라고 생각할 수준으로 허황된 이야기다.
사색이 된 얼굴로 머릿속에서 복잡한 계산을 하는 후지와라에서, 이준기는 최아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최아람 구원자님, 대답이 되었습니까? 제가 지금까지 여기에서 하던 일, 그리고 왜 그 일을 하는지 설명해 드리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