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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54: 전쟁의 신 (4)
Episode 54: 전쟁의 신 (4)
가족을 반드시 찾아주겠다고 약속하고, 추이는 라이벌 길드의 조직원이기도 한 아론의 스파이에게 물었다.
동부 연합의 제안을 받았는지, 미국 내전에 개입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것까지 알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서 잘은 모릅니다. 하지만 동부 연합의 제안을 받은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킬러포니아 길드는 수락한 제안을, 우리는 왜 거부했냐는 여론이 파다합니다. 미국 내전에는 아직 개입하고 있지 않아요. 하지만 뭔가를 준비 중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 중인지는 모르고?”
“그것까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미국 공격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요. 그것도 다른 나라와 연합해서.”
전화를 끊고, 추이는 이준기에게 말했다.
“보··· 보스가 예측하신 대롭니다!”
“그렇다면 변수가 너무 많은데.”
“무슨 말씀이신지?”
“동부 연합과 킬러포니아가 힘을 합쳐서 일시에 캘리포니아를 침공하는 게 최선의 시나리오다. 심플하게 서부 전선, 그리고 101 길드를 상대하면 되니까. 웰링턴과 나폴레옹이 맞붙었던 워털루 전투 같은 거지. 한날한시에 양쪽 병력이 모두 집결해서, 자웅을 겨루는 것.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승패를 결정짓는 거야. 하지만 지금 상황이 그대로 전개된다면, 외부의 침략자를 상대해야 하는 미국 측은 그런 식의 결전을 치를 수가 없게 되지.”
“그렇군요.”
“상대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기습이라면, 영향을 주지 못하겠지만, 아마 그렇게는 되지 않을 거야. 진주만 기습도 미국이 사전에 포착했다는 것이 정설이니까. 더구나 연합군이라면, 입이 많으니 정보가 새 나갈 위험도 그만큼 높아지지.”
말 그대로였다.
2022년 3월 10일의 ‘플로리다 프로젝트’도 완전한 기습은 되지 못했다.
플로리다는 동부 연합의 원래 거점 중 하나.
동부 연합의 기습에 대비하는 것은 언제나 필요하다.
하지만 3월 10일 당시에는 평소보다도 더 많은 수의 구원자 병력이 플로리다에 대기 중이었다.
미리 정보를 입수한 서부 전선이 기습에 대비한 것이다.
그 대비조차도 부족했다는 것이 곧 밝혀지기는 했지만.
서부 전선 방어 병력은 완전히 궤멸되고, 공격한 쪽 역시 크나큰 피해를 입었다.
웃은 것은 동부 연합뿐.
동부 연합의 핵심 영역 중 하나였으나 내전 초기부터 서부 전선에 빼앗겼던 플로리다.
그곳에서 내전 중 벌어졌던 그 어떤 전투보다도 규모가 큰 전투가 벌어졌는데 정작 자신들은 구경만 하고 이득을 챙기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보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까 말했듯이 달라질 것은 없다. 문제는 그거야. 동부 연합이 이 공격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제안한 캘리포니아 회전(會戰)은 당연히 거부하겠지.”
“그··· 그렇겠군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미국 내전 전황은 매일 체크하고 있나?”
“네. 비공식적이지만 우리 길드는 미국 내전의 당사자 중 하나니까요.”
“그렇다면 일일보고를 받겠다. 아론 페르난데스에게 했던 것처럼, 나에게 보고해.”
“일일보고는 매일 저녁 8시였습··· 아··· 아닙니다. 지금 당장 가져오겠습니다!”
“아직 6시인데? 그게 그렇게 뚝딱 나와?”
“최대한 빨리 가져오겠습니다.”
“아니, 서두를 것 없다. 8시에 제대로 된 보고를 받지.”
*****
“저건··· 과카몰리?”
“네?”
이준기가 눈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푸르딩딩한 덩어리가 담긴 뚜껑 달린 그릇이 있었다.
개리는 성급히 달려가 그릇을 치우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보스가 직접 오실 줄은 모르고···”
“아니, 죄송할 건 없고. 과카몰리 남은 것 좀 있나?”
“아! 저녁 식사를 모시겠습니다, 보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음식 종류를 말씀하시면 곧바로 모시겠습니다. 아차, 그렇지. 한국 식당도 있습니다. 티화나에는 한국 식당도 많습니다.”
“그래? 한국 식당이라니 배려는 고맙지만, 난 로마에 가면 로마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주의라서. 늦은 아침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저녁은 가볍게 먹어도 좋을 것 같은데.”
“그··· 그럼, 고급 멕시코 레스토랑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개리는 곁눈질로 부하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준기가 말렸다.
“아니, 잠깐. 과카몰리가 급하게 당기는데. 과카몰리랑, 나초 좀 있음 되지 않을까?”
“말씀드린 식당으로 가시면 멕시코 음식은 뭐든지 다 있습니다. 메뉴에 없어도 만들어 드립니다!”
“흐음, 그것도 좋겠지만, 나가기 귀찮아서 말야. 그냥 과카몰리랑, 나초 좀 가져다주면?”
“당장 가져오겠습니다, 보스!”
개리 헌팅턴은 잰걸음으로 방에서 뛰어나갔다.
나가고 나서 문을 닫았지만, 말소리는 문틈 사이로 들어왔다.
바로 문밖에서 부하에게 이것저것 주문을 하는 개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타닥거리며 복도를 뛰어가는 발소리에 이어, 문이 열리고 개리가 다시 들어왔다.
“음료는 뭘로 하시겠습니까? 데킬라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은 어떠십니까?”
“알코올은 못 마셔. 그냥 물이나 좀 줘.”
“알겠습니다.”
10분도 되지 않아, 윤이 나게 닦인 은색 쟁반에 치즈를 녹여 얹은 나초 접시와 과카몰리가 담겨 들어왔다.
물은 무려 유리병에 담긴 에비앙.
마치 와인이라도 되는 듯, 옆에는 고급 와인잔이 놓여 있었다.
아니꼬운 걸 참지 못하는 이준기의 성격이 발동했다.
“이봐, 개리.”
“네, 보스!”
“넌 평소에도 이런 걸 마시냐?”
이준기가 유리병 에비앙을 흔들어 보이자, 개리는 식은땀을 흘렸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것이 표정에 다 드러났다.
“아··· 아닙니다. 저는 그냥··· 수돗물 마십니다!”
“그으래?”
“죄··· 죄송합니다, 보스! 저도 물을 사다 먹기는 합니다. 하지만 에비앙은 아니고요···”
“그럼 나한테는 왜 이런 걸 내놓는 거지? 이건 어디에서 사 왔어?”
“요··· 요 앞에 고급 식료품점이 있습니다!”
“그래? 사무실 위치가 오묘하네? 그래서··· 넌 이거 안 마시고 딴 거 마신다? 상표가 뭐야?”
“사··· 상표요?”
“그래. 네가 사 마신다는 물 상표.”
“그··· 그게···”
이마에서 식은땀이 연이어 흐르고 나서, 개리는 갑자기 바닥에 낮게 엎드렸다.
“보··· 보스! 죄송합니다.”
“그래서··· 이건 평소에 네가 마시던 거군?”
“그···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제··· 제발 목숨만은···”
“개리 헌팅턴.”
“넷!”
“너도 죽일 놈이겠지, 아마. 하지만 유리병 에비앙을 마시기 때문은 아니다. 유리병에 담긴 에비앙을 마시는 게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그런 이유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아. 내가 그 정도로 악마 같아 보이나?”
“아···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거다. 미국에서 경찰 할 때, 그때도 유리병 에비앙을 마셨나? 아니, 미국에서 유리병에 든 에비앙을 팔기는 하냐?”
“모··· 모르겠습니다. 미국에서는 그냥··· 수돗물 마셨습니다.”
“그렇다면, 출세했다고 생각해서 이런 걸 마시는 거네?”
“그···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네가 정직하게 번 돈이라면, 뭘 사 먹든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 하지만 넌··· 조직폭력배잖아. 이런 모습을 보면 말야··· 나는 네가 예전에 경찰이었을 때, 그때부터 이미 나쁜 놈이 아니었을까··· 그런 의심을 하게 된다는 말이야.”
“제··· 제발··· 용서해주십쇼.”
“그저 먹는 물을 유리병에 담아 파는 장사치도 문제지만, 그걸 사 먹는 놈들이 더 문제인 거지. 그놈들 때문에 이런 어이없는 ‘상품’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니까. 자본주의가 원래 그런 거니까 나도 뭐라고 할 입장은 못 돼. 하지만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아.”
“죄··· 죄송합니다. 다··· 다시는···!”
“그래. 일어나라. 그렇게 엎드려 있으니 내가 악당 같아 보이잖아.”
개리는 벌떡 일어섰다.
“죄··· 죄송합니다!”
“추이도 너도··· 나는 용서하지 않았어. 나중에 다 같이 경찰에 자수하는 거다. 알았지?”
“넵!”
“하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도 할 일이 있지. 저녁을 가볍게 먹는 것. 뭐해? 나초 접시 가져와. 다 식겠다.”
“네, 넷!”
개리는 접시를 들어 이준기의 앞 테이블에 놓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치즈를 나초에 둘둘 감아올린 이준기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뜨거워 보이는 치즈 나초를 호호 불어 입안에 넣고, 그는 시계를 보았다.
6시 30분이다. 미국 내전 전황 보고를 받기로 한 8시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많다.
“개리.”
“네!”
“이거, 한 접시뿐이야? 여기 사람이 몇인데···”
“더 만들어 오겠습니다!”
“그래, 다 같이 들자고. 그리고 생각난 김에 말하는 건데···”
“네, 말씀하십쇼!”
“생각해 보니까, 아무리 가볍게 먹더라도 나초에 과카몰리로는 요기가 안 될 것 같아. 퀘사디야 정도는 추가해야 할 것 같은데.”
“퀘사디야요? 네 알겠습니다. 치킨 퀘사디야로 할까요? 아니면 소고기를?”
“아니, 그냥 치즈 퀘사디야로 해줘. 대신 치즈를 한 서너 가지 넣어줘.”
“서너··· 가지라 하시면 뭘 넣을까요?”
“글쎄? 난 아무거나 넣어도 상관없는데···”
“네, 그렇다면 요리사에게 알아서 하라고 말하겠···”
“아냐. 생각해 보니,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 몬테레이 잭, 체다, 브리, 그리고 에멘탈··· 에멘탈 있나?”
“요··· 요리사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에멘탈 없으면 하바르티로 해줘. 그건 있겠지, 설마.”
“알겠습니다.”
“고기는 넣을 필요 없지만, 할라피뇨는 조금 넣었으면 좋겠는데. 블랙 올리브도 조금.”
“네, 넵.”
개리는 근처를 두리번거리다가 메모지를 찾아 손에 쥐고 적기 시작했다.
“몬테레이 잭, 체다, 그리고···”
“브리, 에멘탈. 에멘탈 없으면 하바르티.”
“거기에 할라피뇨와 블랙 올리브를 넣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이준기는 빙긋 웃어 보였다.
개리도 따라 웃었다.
개리가 메모를 들고 문을 나서려는 순간, 이준기가 불렀다.
“개리!”
“네?”
“다른 사람들도 주문을 받아야지.”
“아··· 그렇군요.”
“그리고, 생각해 보니까 퀘사디야는 두 장이 좋겠어. 하나는 좀 부족하지.”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멕시코 온 김에 타코도 좀 먹어야겠다. 아니 토르티야 피자로 하자. 치즈는 좀 넉넉히 올리고···”
“둘 다 가져올까요?”
“좋은 생각이야.”
“타코에는 뭘 올릴까요?”
이준기는 눈을 위로 굴리면서 턱에 오른손을 가져다 댔다.
“그건 또··· 행복한 고민이군.”
*****
결코 가볍다고 말하지 못할 저녁 식사가 끝나고, 7시 30분경 추이가 미국 내전 전황에 관한 일일보고를 가지고 왔다.
개리의 도움으로 컴퓨터를 대형 스크린과 연결한 추이는 보고를 시작했다.
각이 잡힌 폼이, 아론 페르난데스도 이런 식으로 프레젠테이션을 받은 모양이었다.
“지도상에 보이는 푸른 점이 현재 동부 연합 거점입니다. 도시 전체를 장악한 것이 아니라서 거점이라고 하기에도 조금 어색합니다만, 일단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그래.”
“보시다시피, 동부 연합 거점은 이제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뉴욕주 뉴욕시,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펜실바니아주 필라델피아, 테네시주 내슈빌,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즈, 그리고 텍사스주 휴스턴, 오스틴, 댈러스 정도입니다. 샌안토니오는 얼마 전에 다시 서부 전선에게 빼앗겼습니다.”
“텍사스주에는 거점이 많이 있군.”
“다른 동부 거점들과도 거리가 상당히 떨어진 이곳에서 선방을 하는 것은, 저희 길드, 킬러포니아의 공이 큽니다. 텍사스주 주요 도시들 중에 엘파소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서부 전선이 한 달 이상 점령을 유지한 도시는 없습니다. 그만큼 반격이 거센 거죠.”
“지금이라도 우리가 빠져버리면, 텍사스는 그냥 무너지는 건가?”
“그렇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게릴라전 방식으로 이곳저곳을 옮겨다니기는 하겠지만, 휴스턴, 오스틴, 댈러스 중 하나 정도는 지켜낼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텍사스주 최대 길드 ‘산타마리아’ 때문이죠. 101 길드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반대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산타마리아라면, 아까 네가 통화했던 베라 로페즈의 길드?”
“네. 길마는 마빈 브리검(Marvin Brigham). 상당한 실력의 구원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