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화 (1/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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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곡식과 과일들이 영그는 가을.

밀짚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은 남자가 끝이 보이지 않는 농장 위에 서 있었다.

남자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있는 과실수에는 탐스러운 과일들이 가득했는데, 그곳에는 남자보다 더 먼저 도착한 선객들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오늘도 시합이다!]

[내가 이길 거다!]

[이제 시작인가, 후훗.]

[다들 잘 지내야지 싸우지 마. 움···. 근데 난 벌써 끝냈는걸?]

[이거 먹어도 되냐?]

각양각색의 생김새를 가진 선객들은 외모만큼이나 성격이 달랐는데, 특이한 점은 모두가 새싹이 그려진 작업복을 입고 있다는 것.

“얘들아!... 응?”

-지이잉

남자는 그런 선객들을 부르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키다 진동 소리에 작업복 앞 포켓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남자의 작업복에도 선객들과 같은 새싹 로고가 그려져 있었다.

“어.”

발신자명을 확인한 남자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자, 수화기에서 너무한다는 음성이 튀어나왔다.

[김한울, 시골로 내려갔다더니 왜 연락이 없냐. 농사는 잘되고? 농사도 아무나 못 하는 거라던데. 뭐, 내가 한번 도와주러 가줘?]

“아니 괜찮아.”

김한울이라 불린 농부, 아니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왜? 농사짓는데 손이 많이 필요하다며? 너 인마 과로 판정도 받았던 놈이 하려면 얼마나 하겠냐, 이 형님이 가서 도와주마.]

과로라.

맞다. 한때는 그런 적도 있었지.

[그럼 시작!]

[와! 오늘 우리 이거 해내는 거야!]

[오늘은 내 승리다! 후훗.]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과로라는 단어만큼 어울리지 않은 단어는 없었다.

농장 곳곳을 종횡무진 다니는 저 선객들 덕분에.

[어? 주인이다!]

“일손 많아서 괜찮아 진짜.”

선객 중 하나가 나를 발견하고는 망설임 없이 나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도도도 거리며 달려오는 모양새가 세상의 귀여움을 가득 품은 것만 같았다.

[내가 너 농사한다고 해서 아이디어도 많이 찾아놨어! 요즘엔 특수작물이 대세야! 너 신비농장이라고 아냐?]

친구 놈의 말을 한쪽 귀로 흘리며 내게로 다가오는 선객들을 위해 서 있던 몸을 숙이던 나는 익숙한 단어에 핸드폰을 고쳐 들었다.

“신비 농장?”

[야! 농장한다면서 나보다 모르면 어떡해! 요즘엔 농장도 아이디어 시대라니까? 정글이야 정글. 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아. 안되겠다. 이 형님이 조만간 휴가 내서 갈 테니까 주소나 보내.]

“크흠.”

서울에서 나고 자라 거머리도 본 적도 없다는 놈이 말은 청산유수였다.

거기다 예를 드는 곳이 신비 농장이라니.

웃음이 안나올래야 안나올수가 없었다.

[헐. 지금 웃었냐? 너 걱정하는 사람 앞에서 웃어?]

하여튼, 귀는 밝아요.

친구의 호들갑에 서둘러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큼. 아니, 사레가 갑자기 걸려서. 그래. 한번 와 봐. 주소는···. 그냥 검색창에 치면 나올걸?”

[뭐라냐. 가자마자 뭐 회사라도 차렸어? 이 워커홀릭을 어쩐다냐. 참나. 그래서 뭐라고 치면 되는데?]

“네가 방금 말한 거기. 신비 농장. 그거 내꺼야.”

[오케이 신비 농장······. 어? 신비 농장??? 뭐라고? 너 지금 거짓말하는 거지?]

신비 농장의 소유주가 나임을 밝히자 마자 전화 너머로 우당탕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서 확인해 보던가.”

[헐! 야! 나 당장 간다! 딱 기다려!]

“그래.”

-뚝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친구와의 전화를 끊자, 그사이 내 품속에 들어온 선객이 고개를 쏙 들었다.

[손님? 손님이 오는 거야 주인?]

“응. 그렇다네.”

[그럼 선물 주자 선물!]

[남자냐?]

[먹을 거 주자! 먹여보자! 실험이다!]

품에 들어온 선객을 필두로 각각 내 어깨와 머리, 그리고 발치에 자리를 잡은 이들이 선물을 외쳐댔다.

“대체 뭘 주려고”

[남자한테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댔다!]

“환장하겠네.”

한때 유행했던 광고 문구를 들먹이는 모습에 나는 웃음 터트렸다.

그래.

이참에 신비 농장의 신비나 제대로 경험해 보고 가라지.

한번 오면, 떠나기 싫을걸?

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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