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4화 (4/163)

3. 내가 보이는 거냐?

“거기 누, 누구여?”

꺾어지는 길 저편에서 흙을 밟는 발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나이든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귀에 익은듯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배낭을 멘 어르신이 기다란 나뭇가지를 들고 서 있었다.

“거, 누구 냐니까?”

수상한 사람이라면 당장이라도 휘두를 요량인지, 마치 야구선수처럼 나무 지팡이를 쥐고 있는 어르신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이장님.”

아는 얼굴에 꾸벅 인사를 하자, 노인이 목을 쭉 빼며 눈을 가늘게 떴다.

“누고···? 하이고. 저 기와집 할매 손주아녀! 한울이 니가 여긴 어쩐 일이고?”

해를 등지고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며, 내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야 하늘 높이 들고 있던 지팡이를 땅으로 내린 노인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이장님. 그때는 감사했습니다. 잘 지내셨죠?”

장순택.

이 작은 산골 마을의 이장이자, 할머니의 장례식 내내 정신없는 나를 대신해 주변에 연락하고, 상을 치르는 내내 묵묵히 식당 한켠에서 자리를 지켜준 고마운 분.

백발이 성성할 만큼 나이가 드셨지만, 비상시에는 나무 지팡이를 배트처럼 휘두를 만큼 정정하셨다.

“당연하제. 내 건강은 걱정 하덜덜 말어! 지금도 봐봐라. 우리 꽃분이 줄라꼬 내가 저 가서 물도 길어 왔다 아이가. 을매나 건강한디. 여 알통도 있다.”

거기다 아내를 향한 사랑은 이 산골 동네를 넘어 저 읍내까지 퍼져있을 만큼 유명한 사랑꾼이기도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을 이장직을 오랫동안 하는 이유가 아내의 멋지다는 말 한마디 때문이라면 말 다 했지.

“할머니도 건강하시죠?”

“우리 꽃분이? 우리 꽃분이는 날이 갈수록 고와져서 문제여. 문제. 근데 니는 왜 또 애빈거 같노···.”

살이 빠졌다뇨.

제 뱃살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며칠 전에도 덕을 너무 많이 쌓은 것 같다며 친구 놈이 놀렸습니다만.

“그러게요.”

하지만 나는 굳이 이장님의 말을 정정하지 않았다.

어르신들의 건강함의 기준은 천하장사였으니까.

암.

나는 마른 게 맞다.

“어릴 때는 볼도 통살하고 귀여웠는데 지금은 영···.”

아니 이장님.

그래도 혀를 끌끌 차시면 어쩌십니까.

어렸을 때만 못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이장님의 입에서 더한 말이 나오기 전에 나는 주제를 돌렸다.

“그렇지 않아도 이장님 찾아뵈려고 했는데, 이렇게 딱 만났네요.”

“으잉? 나는 왜?”

“저 여기서 살려고요. 이사 왔으니, 마을 어르신인 이장님께 보고드려야죠.”

“어? 니 여기서 살겠다고? 언제부터?”

“오늘부터요.”

“으잉···?”

여기서 살겠다는 내 말에 이장님은 입을 떡 벌린 채 굳었다.

그 모습이 마치 진짜냐고 묻는 듯해, 고개를 끄덕였더니, 이장님의 입에서 노성이 튀어나왔다.

“이 깡촌에 뭐 할 게 있다고 니처럼 똑똑한 사람이 여서 살라 하나. 국가적 손실이다. 국가적 손실!”

“아니 이장님, 지난번에는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오면 좋겠다고 하셨잖아요.”

분명 만날 때마다 한숨을 푹푹 쉬면서 젊은 사람들이 없다고 걱정하시더니.

이곳에서 산다고 말하면 레드카펫까지는 아니더라도 환영받을 줄 알았건만.

열을 내는 이장님의 모습에 내가 아쉬움을 숨기지 않자 그가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니가 내 손자 같으니까 하는 말 아니가. 할매가 얼마나 니 자랑을 했는데···. 젊은 사람이 여서 뭐하겠노. 니 결혼도 안 했다 아이가? 애인은 있나?”

“...”

이장님도 참.

아까부터 무표정으로 뼈를 치신다.

“봐봐라. 애인도 없고, 여서 뭘 하겠다고. 됐다고 본다. 다시 서울로 가서, 어디 예쁜 짝이라도 만들어가 온나!”

괜찮다는 표시로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이장님께는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잔소리가 더 심해졌다.

그래서 말했다.

이장님의 잔소리를 피할 수 있는 마법의 단어를.

“여자친구한테 차였습니다. 며칠 전에.”

“.....”

마법의 단어가 제대로 통했는지,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장님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뭐, 괜찮습니다.”

이장님의 표정을 힐끗 확인한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우수에 찬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침묵.

어딜 봐도 상처 입은 내 모습에 몇 번이고 입을 달싹거리던 이장님은, 천천히 내 쪽으로 걸어와 들고 있던 지팡이를 손에 쥐여주곤 어색하게 내 어깨를 토닥였다.

“그···. 원래···. 첫사랑은 잘 안 이뤄지는 거다. 이건 비밀인데, 내도 우리 꽃분이가 첫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사람 사는데 사랑이 다가 아닌 거라. 돈만 잘 벌면 된다. 돈 벌려면 서울 아이가.”

“저, 직장도 없습니다.”

“...직장도···?”

“네.”

다시금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속절없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이장님은, 주머니에서 박하사탕을 하나 꺼내 내게 건네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테레비에서 단 게 스트레스에 좋다고 하더라.”

“감사합니다.”

“고맙기는···. 그래! 잘 왔다! 그 뭐시기냐. 웰콤이다. 웰콤! 혼자면 뭐 어떻노! 괘안타! 여기 노총각들 많다! 그리고 먹고사는 거? 여기 니 이뻐하는 할매들 을매나 많노. 니 여서 산다카면 먹을 거 광주리로 이고 올끼다. 걱정하지 마라!”

“오. 그거 좋네요.”

순식간에 이장님에게 나는 여자친구도, 돈도 없는 불쌍한 노총각이 되어버렸다.

전자는 사실이었지만, 후자는 사실과 달랐다.

하지만 나는 굳이 정정하지는 않았다.

돈은···. 원래 있어도 없는 척. 없어도 없는 척하는 거라고 하지 않나.

거기다 때때로는 불쌍한 포지션이 유리할 때도 있다.

예를 들자면,

“니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라. 알제? 내 이장이다!”

굳이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먼저 손을 내민다는 것.

“그럼 이장님, 조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당연하제! 뭐 도와줄까?”

그렇지 않아도 민준이 당부했던 말이 있었다.

‘시골에서 살겠다고 해서 하는 말인데, 가면 농업인 자격부터 취득해.’

‘농업인?’

‘어. 할머니가 남기신 땅이 대부분 농지랑 임야라 필요해.’

‘오케이.’

그래야 땅에 대한 권리를 완전히 행사할 수 있다고 했다.

“할머니께 물려받은 땅 관련해서 여쭤볼 게 있어서요.”

“아아. 그거 내 전문이다. 가만있어 보자, 네 할매 땅이라카면, 저 산이랑 옹달샘 근처에 있는 밭 말하는 거제?”

“네.”

“그거 관리할라카면, 농업인 등록하는 게 좋다.”

“농업인이요?”

“어. 니 지금 직장도 없다매. 이걸 해야 니가 나중에 땅도 마음대로 처분할 수도 있다. 내가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걱정 마라.”

‘다 알아서 해준다.’니.

도대체 얼마 만에 들어 보는 든든한 말인지.

농업인이 될 경우, 농사에 필요한 비료와 물품 등을 할인과 대출, 교육 등 농업인들을 위한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침을 튀겨가며 설명하는 이장님의 모습은 마치 뉴비를 어떻게든 끌어들이려는 고인물같았다.

“네. 그럼 이장님만 믿겠습니다.”

믿는다는 내 말에 스위치가 눌렸는지 이장님의 눈이 부담스럽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래! 내만 믿으라! 농업사 박 씨한테 영수증 하나 끊어달라고 하고, 서류 받아가 내 사인하고 하면 농업인은 금방 될 거다. 작물은···. 우리 집에 모종 많으니까 그거 심어라!”

농업인을 신청하기 위한 절차들을 속사포처럼 내뱉은 뒤 마지막으로 가슴을 쫙 펴는 포즈까지.

고인물의 스피치를 감명 깊게 들은 나는 감사의 손뼉을 치며 한 가지 걸렸던 부분을 물었다.

“감사합니다. 근데 모종을 심는다는 건···?”

남은 모종을 가져다 쓰라고 하는 거 보면, 경작 범위가 그리 넓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확인이 필요했다.

평생 농사를 지어오신 분과 일반인의 기준은 엄연히 다르므로.

이장님도 내 걱정을 정확히 꿰뚫었는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아. 그거. 그거는 뭐냐, 형식적인 거다. 나라에서 진짜 농사를 하는지 확인할 때 보여주는 거라 시늉만 하면 된다. 걱정 안 해도 된다!”

“시늉만이요.”

“어. 맞다. 텃밭 수준으로만 심으면 된다.”

시늉만 하면 된다는 이장님의 말에 안심하고 있던 나는, 텃밭이라는 말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마을 어르신들의 텃밭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까닭이었다.

“텃밭이라고 하면 크기가 얼마나 될까요?”

마을 산책로 시작점부터 끝까지 이어져 있는 앞집 할머니의 텃밭.

집의 3배는 되는 면적의 옆집 할아버지의 텃밭.

남아도는 게 땅인 만큼, 마을 사람들의 텃밭 크기는 도시의 주말농장과는 차원이 다른 만큼 확인이 필요했다.

“크기? 우리 텃밭 봤제? 그거에 딱 반만 하면 된다. 별로 안 크다.”

그리고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

고향으로 돌아온 지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집 바로 옆에 있는 밭으로 향했다.

“여기가 300평이라니···.”

이장님 말에 의하면, 농업인이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한다.

약 300평 되는 밭을 경작하거나, 1년에 90일 이상을 농사하거나, 혹은 농사로 연간 120만 원 이상을 번다거나.

이외의 방법도 있었지만, 이 중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밭을 경작하는 것.

‘300평이라고 해봤자 얼마 안 된다. 내가 트랙터로 싹 갈아엎어 줄테니까, 니는 그냥 심기만 하면 된다.’

“확실히, 생각보다는 작네.”

300평이라는 숫자에 놀라긴 했지만, 이 밭은 어릴 적 할머니가 마당 텃밭에 심지 못했던 작물들을 심던 곳이었다.

“이 정도면 할만하지. 햇볕도 딱 적당하고, 삽질하기 좋은 날이네.”

이장님이 트랙터로 갈아준다고는 했지만, 운동도 할 겸 어느 정도 파 놓을 생각이었다.

창고에서 꺼낸 삽으로 흙을 툭툭 두드리던 나는 본격적으로 삽질을 위해 자세를 잡았다.

“땅파기는 식은 죽 먹기지.”

자고로, 이런 깡시골 출신에게 삽질이란, 숨 쉬는 것과 비슷했다.

무엇을 하든 삽질이 꼭 동반되었으니까.

어릴 때부터 체득한 삽질은 군대에서 절정에 이르렀었다.

“내가 군대에서는 산도 옮겼다 이거야.”

장갑 낀 손으로 삽을 잡자마자 내 몸이 기억하듯 삽질하기에 최적화된 자세를 만들었다.

“이거지. 그럼 읏쌰.”

초보라면 딱딱한 땅을 팔 때 당황하겠지만, 요령만 알면 쉬웠다.

45도로 삽을 꽂아 발뒤꿈치로 밀어줌과 동시에 체중을 실어 앞뒤로 흔들면 끝.

그런데.

팅.

“..어?”

캉.

“이거 왜 이래?”

분명 순두부를 가르듯 땅으로 부드럽게 들어가야 할 삽이 바위를 만난 듯 튕겨 나왔다.

“...여기 원래 돌이 있었나?”

고개를 숙여 삽을 튕겨낸 땅을 확인하자 삽질을 하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돌이 보였다.

“너무 오랜만에 삽질해서 그런가.”

내 땅 파는 실력은 군대에서도 알아줬었다.

한번 팔 때마다 남들의 두세 배는 퍼내며 기어코 산을 옮겼던 사람이 나였다.

그런 내가 이런 텃밭에 굴복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해 보자.”

손에 침을 탁 뱉은 나는 삽을 다시 거머쥐고 무아지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 30분 뒤.

“...헉헉.”

하나도 못 팠다.

“이게···. 말이 돼?”

아니. 파긴 팠다.

30분을 죽어라 팠는데 고작 코딱지만 한 구덩이 하나만을 파서 그렇지.

땀을 뻘뻘 흘린 나는 그대로 텃밭 위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드러눕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 머리칼을 살랑거리며 스쳐 지나가는 봄바람.

어느새 생긴 하얀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있어, 하늘을 바라보아도 눈이 시리지 않았다.

“그래. 급할 거 뭐 있냐. 천천히 하면 되지···.”

이 속도라면, 뭐, 1년이면 다 파겠네.

텃밭에 드러누워 살랑이는 봄바람을 맞으며 30분 동안 만든 결과물을 바라보니···.

“.....1년?”

예전과는 현저하게 달라진 체력에 대해 씁쓸함과 함께 억울한 기분이 동시에 들었다.

“아니 근데 이게 이렇게 안 될 일이야?”

다시 벌떡 일어나 삽을 들어 땅에 메다꽂는 찰나.

[캬하항]

부드럽게 땅에 박히는 삽질 소리는 들리지 않고, 웬 이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응?”

잘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삽을 내려치려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푸힛.]

이상한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으억! 누구야?!”

내 귀에 바로 속삭이는 듯한 소리에 주위를 둘러봤지만, 내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배가 고파서 그런가···? 이제는 헛것도 들리네···. 뭐라도 좀 먹자.”

일어나자마자 삽질을 했으니 힘들만도 했다.

상태를 깨닫자마자 급격히 몰려오는 피로에, 삽을 대충 텃밭에 던져놓고 집으로 들어가려 몸을 돌렸을 때였다.

-툭

눈앞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나 싶더니 폭신한 무언가가 내 다리에 부딪혔다.

뭐지?

흐릿한 앞에 눈을 비비며 밑을 내려다보자.

“내, 내 말이 들리는 거냐?”

까만 두 발을 모은 웬 여우 한 마리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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