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6화 (6/163)

5. 거스름돈은 넣어둬.

“나야. 강지민. ”

“강지민···? 네가 왜 여기 있냐? 서울에서 회사 다니던 거 아니었어?”

강지민.

전교생이 50명도 채 되지 않았던 미화리 초등학교 출신의 몇 안 되는 동창 중 한 명.

대부분의 동창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서울로 상경해 이제는 각자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강지민 또한 대기업에 취직한 뒤 승승장구하며 잘 나가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만뒀지! 그러는 너는? 평일 아침부터 여기는 웬일?”

나처럼 중소기업도 아니고, 대기업을 박차고 나왔다는 지민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굳이 캐묻지 않았다.

저마다 사정은 있는 법이니.

대신 고마움을 전했다.

“나도 그만뒀어. 이제 여기서 살려고. 저번에는 와줘서 고마웠다.”

할머니의 부고 소식에 이장님 다음으로 제일 먼저 장례식장에 도착한 5명의 동창.

평소에는 그렇게 바쁜 척을 하더니 3일 내내 장례식장에서 멍하니 있는 날 챙겨줬었다.

“에이. 당연한 건데 뭘 또. 야, 민망하니까 고맙다는 소리 하지 마. 그나저나, 여기서 산다니? 아예 내려온 거야? 뭐할 생각인데?”

고마움을 표하자 지민은 손사래를 치며 주제를 돌렸다.

하여튼 어릴 때나 지금이나 동창들은 하나같이 생색이라곤 낼 줄 몰랐다.

“별 생각 없었는데, 일단 쉬엄쉬엄 작게 농사 한번 지어보려고.”

“농사? 좋지. 그거 잘만 하면 돈 어마어마하게 번다더라. 요즘 인터넷 쇼핑몰에 검색하면 청년 농부들이 어? 막 어깨 딱 벌어진 남정네가 이렇게 호박을 안고 있는데 근육이 아주 그냥, 크으- 죽여.”

“...”

분명 내 앞에 있는 인간의 생물학적 성별은 여성이 분명할진대···. 어째 아침부터 약주 한 병 얼큰하게 들이킨 아재의 바이브가 느껴지는 건 뭐지?

아. 얘는 그냥 성별만 여자였지.

잠깐 깜빡했다.

“크흠. 내가 그런걸 좋아한다는 건 아니고. 요즘 대세가 그렇다는 걸 알려주는 거야. 유노왓암쎙?”

“됐다. 말을 말자. 근데 떡 진짜 없어? 누가 여기 떡이 그렇게 맛있다고 해서 이사 떡도 돌릴 겸 오긴 왔는데... 네가 주인이라니까 그 친구가 착각한 것 같기도 하다.”

[아니다! 여기 떡이 맞다! 저기 노란떡이다! 여자 사람아, 나한테 떡 하나만 주면 안 되겠냐···?]

아니라는 내 말을 부정한 노을은, 내 어깨에서 연신 침을 꼴깍 삼키며 지민을 향해 애절한 목소리로 떡을 요구했다.

“어허. 무슨 소리야.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난 떡집 딸내미로 산 지가 30년이 넘었다. 30년! 내가 새벽마다 일손 도우면서 배워서 차린 거니까 걱정 말고 잡솨봐.”

콧방귀를 뀐 지민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을 하나 내밀었다.

하기야.

미화리의 유일한 떡집의 딸이었으니, 아저씨의 기술을 물려받았다면, 최소한 맛에 대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지민에게서 건네받은 떡은 찹쌀떡같이 반원 모양을 띠고 있었다.

떡에는 카스텔라같이 포슬한 고물로 덮여있었는데, 고물 사이로 보이는 속은 잘 익은 호박색을 띠고 있었다.

“오. 괜찮은데?”

“보기에도 좋은 떡이 맛도 좋지. 한입 먹으면 기절할걸?”

생각보다 먹음직스러운 떡 모양에 감탄을 내뱉자, 지민이 어서 먹어보라고 재촉했다.

“오···?”

재촉에 못 이겨 떡을 입안에 넣자, 단맛과 향긋함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포슬한 고물이 사르르 녹으며 단맛을 선사하나 싶더니, 쫀득한 식감이 입안을 즐겁게 만들었다.

이 떡의 하이라이트는 한입 베어 묾과 동시에 입안을 가득 채운 필링이었는데, 크림같이 부드러운 필링안에 작게 썰려진 단호박과 밤 등으로 인해 씹는 맛이 있었다.

필링은 부드러움과 각종 재료의 단맛과 고소함, 그리고 약간의 짠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게 과연, 노을이 홀딱 반해 찾아다녔다는 게 이해가 될 정도.

“어때? 맛있지?”

“어. 인정.”

인정하기 싫지만, 지민의 솜씨는 진짜였다.

노을의 만족도는?

말할 것도 없이 좋았다.

[너무···. 너무 맛있다. 바로 이 맛이다!]

건네받은 떡을 한입 베어 물고 슬쩍 옆으로 넘겨주자 쏜살같이 입에 물더니 두 앞발로 야무지게 잡아 챱챱거리며 먹는 중이었다.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눈에는 눈물까지 고인 상태였다.

“내가 잘 다니던 대기업 때려치우고 떡집 차린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거야. 이 맛을 널리 알려야 하지 않겠어?”

과연.

이 정도 맛이라면, 카운터 뒤로 쌓인 택배가 이해가 된다.

“진짜, 내가 회사만 안 그만뒀어도 바로 협업 제안할 수준인데?. 필링은 크림치즈랑 생크림 섞은 거 맞지?”

제대로 마케팅만 때린다면 지금 쌓여있는 택배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수량을 판매할 자신이 있었다.

입안에 남은 떡의 맛을 굴리며 재료를 분석하자, 지민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진짜 너도 너다. 쉬엄쉬엄 작게 농사짓는다더니···. 쉬엄쉬엄은 개뿔. 회사 그만둔 지 얼마나 됐다고 바로 일 얘기 하냐? 난 하루에 정해진 수량만 판매하고, 나머지 시간은 내 시간 보내면서 살 거야. 협업? 일 없네요.”

맞다. 나 회사 그만뒀지.

6년을 매일같이 식품 개발에 매달리며 분석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뭘 먹을 때마다 분석하는 버릇이 생겼다.

“뭐, 차차 나아지겠지. 그래서 이 떡 이름은 뭔데?”

“하긴. 나도 아직 영어가 입에 붙었으니까. 이거? ‘크림치즈와 생크림을 감싸 안은 달콤 말랑 쫀득 꿀 호박떡’. 어때? 이름 죽이지?”

...진심인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해괴한 떡 이름에 다시 직업병이 튀어나오려 했지만, 애써 참아냈다.

“넌···. 됐다. 호박떡 한판만 줘.”

하지만 지민은 예리했다.

찰나의 내 표정 변화를 캐치해 내고는 입꼬리를 삐뚜름하게 올리더니 장사꾼의 모습으로 돌변했다.

“어머 고객님, 제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완판됐는데 어쩌죠?”

“내가 널 모르냐. 더 있는 거 다 알아.”

“쳇. 이래서 눈치 빠른 놈들은···. 근데 진짜 없는걸?”

무슨 일을 할 때면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계획 A뿐만이 아니라 B, C, D까지 세우는 게 강지민이었다.

그러니, 저렇게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입어 생글거리면서 하는 말은 거짓말이라는 소리.

하지만 나는 기분 상한 강지민을 풀어줄 방법을 알고 있었다.

“여기. 거스름돈은 필요 없어.”

장사하는 사람에게 현금보다 더 좋은 건 없는 법.

제품가격보다 더 많은 현금을 내며 잔돈은 필요 없다고 하자 단번에 지민의 태도가 바뀌었다.

“...어머, 감사합니다. 고객님! 정성을 다해 포장해 드리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노란 지폐를 낚아채 앞치마에 집어넣은 지민은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호박떡을 포장하여 종이봉투에 넣더니, 잠시만 기다리라며 주방으로 사라졌다.

주방에서 나온 지민의 손에는 뭔가가 가득 든 천 주머니 두 개가 들려져 있었다.

착.

테이블에 올려놓은 천 주머니에는 제법 무거운 소리가 났다.

“이건 뭐야?”

“호박떡 만들 때 호박에서 파낸 건데, 진짜 여기 호박이 예술이야. 이쪽 건 밤 호박, 이건 늙은호박. 아, 그리고 우리 가게 뒤에 보면 내가 모종 몇 개 만들어 놓은 거 있거든? 그것도 가져가. 농사해 본다고 하니까, 이건 서비스.”

“오. 땡큐. 엄청난데?”

그렇지 않아도 호박떡에 사용한 호박의 출처를 물어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먼저 주면 땡큐지.

호박은 호박 자체만으로도 여러 맛있는 요리들을 할 수 있지만, 호박잎 또한 별미인 만큼, 버릴 게 없는 작물 중 하나였다.

“혹시 더 필요하면 말해. 모아놓을 테니까.”

“아니. 이 정도도 차고 넘쳐.”

열린 주머니 사이로 보이는 호박씨들은 어림잡아도 몇백 개는 돼 보였다.

잘 말려진 씨앗을 꺼내 들어보고 있자니, 턱을 괴고 내 모습을 보던 지민이 문뜩 생각난 듯 물었다.

“근데 너 농사는 할 줄 알아?”

농사짓겠다고 하는 사람한테 그게 무슨 질문일까 친구야?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하는 친구를 향해 나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

“모르지.”

“...어? 뭐라고?”

식품을 개발해 브랜딩하고, 마케팅해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누구보다 더 자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상품의 핵심이 되는 작물을 심고 키우는 방법에 대한 지식은 많이 쳐줘봤자 서당 개가 풍월을 읊는 정도였다.

“몰라.”

그러니까, 잘 모른다는 소리다.

농사할 줄 모른다는 내 대답에 벙쪄있던 지민이 손을 뻗어 씨앗들을 빼앗으려고 했다.

“야! 내놔! 내 호박 씨앗!”

하지만 이미 난 가게 문을 열고 몸을 반쯤 몸을 빼낸 상태.

“근데 내가 농사 잘하는 친구를 좀 알고 있으니까 걱정 마.”

[내가! 내가 하겠다! 내가 심을 거다! 내가 잘 키울 수 있다!]

사람이 아니라 동물···. 아니, 정령이긴 하지만.

내 어깨에서 농사를 대신에 해 주겠다고 아까부터 노래를 부르는 친구가 있어서 말이지.

**

구름떡집에서 호박떡과 씨앗, 그리고 모종까지 챙긴 나는 간단히 장을 본 뒤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호박씨를 심으러 가는 거냐?”

차에서 짐을 내려 집에 내려놓을 때까지 내 어깨에서 호박씨가 든 주머니가 없어질세라 뚫어지라 쳐다보던 노을은, 내가 마지막 짐을 마루에 내려놓자마자 호박씨를 심자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왜인 거냐···?”

자못 이해가 가지 않는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노을을 향해 내가 설명했다.

“노을아, 혹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을 아니?”

“식후경···? 그게 무슨 말이냐···?”

“아무리 좋은 풍경도 배를 든든히 채우지 않으면 즐길 수 없다는 뜻이지.”

다 잘 먹고 잘살려고 하는 일인데, 뭘 하기 전엔 배부터 든든히 채우는 게 우선.

사실 아침 일찍 일어나 마신 셰이크와 구름떡집에서 한입 먹은 호박떡을 제외하고는 먹은 게 없어 배가 고팠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기도 했고.

“나는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은 위대한 여우 정령 노을이다! 그러니 어서 호박씨를 심으러 가면 안 되는 거냐···?”

“음···. 그것참 안타깝네. 위대한 여우 정령인 노을이랑은 달리 평범한 인간인 나는 먹지 않으면 쓰러지거든.”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다니.

이제 놀랍지도 않다.

그저 먹지 않아도 됨에도 불구하고 고작 한번 맛본 떡을 찾아 돌아다녔다는 게 더 신기 할 뿐.

“컁! 쓰러지면 안 된다! 얼른 먹어라! 난 혼자도 잘 할 수 있다!”

“혼자 한다고?”

“나는 위대한 여우 정령 노을이다! 씨앗을 심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캬항!”

“그렇게 심어서 뭐 하려고 그래?”

“다 심고 나면 다시 그 떡집 주인한테 호박떡을 달라고 할거다!”

역시나.

그러니까, 이 털 뭉치는 내게 밭을 갈아 업어주고 떡을 얻어 낸 것처럼, 호박씨를 심고 지민에게 떡을 달라고 할 작정이었다.

이러다 걔한테 여우 뺏기는 거 아냐?

그건 좀 곤란한데···.

“근데 어쩌지. 그 떡집 주인은 수확물을 원하는 것 같던데. 호박이 크는데 몇 달은 걸리는데, 괜찮겠어?”

“몇 달 아니다! 내가 옆에서 노래를 부르면 식물들이 빨리 자란다!”

“어···?”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땅도 잘 파, 말도 해.

거기다 작물을 빨리 자라게까지 한다고?

우리 노을이는 참 재주도 많지.

열매를 맺는데 몇 달이 걸리는 호박에 신경을 그만 쓰라고 하려 했던 내 작전은 실패했다.

우회 작전 실패.

그럼 남은 건 직구다.

“아쉽네. 나는 노을이랑 맛있는 걸 먹으려고 했는데.”

작전을 바꾼 나는 노을을 설득하는 대신, 냉장실 문을 열며 최대한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맛있는 거?”

“저 이름 요상한 떡이랑은 비교도 안될 만큼 환상적으로 맛있는 요리가 될 건데.”

먹지 않아도 되지만, 한번 먹어본 떡의 맛을 다시 느끼기 위해 찾고 다닌 식탐 여우, 노을이.

“호에······. 비교가 안되는 거냐···?”

‘맛있는’ 요리라는 말에 자연스럽게 늘어져 있던 노을의 귀가 번쩍하고 들렸다.

“비교하는 게 죄지. 아마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지 않을까?”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상대방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가 원하는 바를 제시하면 된다.

“호에에... 그 정도로 맛있다는 거냐아······.”

그리고 나는 노을을 이미 다 파악한 상태였다.

“당연하지, 근데 노을이는 안 먹고 밭에 간다니까, 아쉽지만 나 혼자 먹어야겠네. 그럼 노을이는 나가봐.”

“아, 아니다! 나도 먹을 거다!”

“안 먹어도 괜찮다며?”

“아니다! 나도 배가 좀 고···픈 것 같다!”

“그래?”

“그런 것 같다! 근데, 뭘 만드는지 물어봐도 되냐?”

호박떡보다 ‘더 맛있는’ 요리라는 소리에 노을이 홀린 듯 내게로 다가오며 물었다.

“당연하지. 오늘은, 메인재료는 이거다.”

-턱

침을 꼴깍이는 노을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뒤를 돌아 냉장고에서 꺼낸 진공 포장된 고기를 들어 보였다.

한번 맛보면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는 1++ 등급의 눈꽃처럼 아름다운 마블링을 자랑하는 한우!

들어는 봤나.

입에서 살살 녹는 투뿔등심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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