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내 사람을 만들려면? 무조건 먹여라!
마을에서도 손맛 좋기로 유명한 할머니의 손자로 산 세월이 약 30여 년.
그리고 자취경력 13년.
이 산골 마을에서 유일하게 집에 오븐을 들인 할머니 밑에서 자란 만큼, 요리에는 제법 자신 있었다.
“고기 좋고.”
냉장고에서 꺼낸 투뿔등심은 밝은 선홍빛을 띠고 있었다. 거미줄처럼 퍼진 유백색의 지방층들이 모여 만든 마블링은, 보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을 고이게 했다.
꿀꺽.
침을 한번 삼킨 나는, 진공 상태의 포장을 벗겼다.
포장을 벗겨내자 모습을 드러낸 등심은 코팅이 된 것처럼 반질거렸다.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자 느껴지는 촉촉함.
“역시. 장 씨 아저씨네 고기가 제일 좋다니까.”
워터에이징된 고기를 파는 장 씨 아저씨네 고기는 집에서 따로 숙성하지 않아도 되어 편했다.
3.5cm 정도의 두툼한 두께를 가진 등심을 도마 위에 올린 뒤, 키친타올로 수분을 살짝씩 눌러 제거했다.
이렇게 겉의 수분을 닦아줘야 이따 시어링을 할 때 마이야르 반응이 잘 일어난다.
나는 수분을 닦아낸 고기에 소금간을 했다.
차르르! 살짝 거리를 띄워두고 뿌린 소금이 눈꽃처럼 고기 위에 내려앉았다.
고기 손질을 시작하자 도마 옆에 앉아있던 노을이 내 손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우우···. 짜다!”
켕! 작은 발을 뻗어 떨어지는 소금을 받아내 입으로 가져다 댄 노을이 혹평을 내뱉었다. 소금이 어지간히 짰던지 콧잔등을 잔뜩 찌푸린 채였다.
아이고.
누가 식탐 여우 아니랄까 봐.
“그거 먹지 말고, 다른 거 줄테니까 먹고 있어. 이건 요리하는데 시간 좀 걸리니까.”
그냥 뒀다간 요리하는 내내 양념만 먹을 것 같아 소금 뿌려놓은 등심을 한쪽 구석으로 밀며 말했다.
도마가 있던 자리에 오목한 접시를 놓은 나는, 장 씨 아저씨가 서비스로 준 육회를 냉장고에서 꺼내 담아냈다.
바로 먹을 수 있도록 미리 썰어준 덕분에 따로 손질할 필요는 없었다.
킁킁.
살짝 뭉쳐있는 고기를 손으로 살살 털자, 노을이 가까이 다가와 코를 씰룩였다.
“이건 아까 고기랑 다른 냄새가 난다!”
“오? 그런 것도 알아?”
“나는 냄새도 아주 잘 맡는다!!”
“대단한데? 그럼 이 고기 냄새는 어떤데? 맛있을 것 같지 않아?”
“평범하다! 그냥 고기 냄새다!”
“하하. 평범한 고기 맞지. 근데 잘 봐, 이거 진짜 맛있게 변할 거야.”
“으음···. 알았다.”
자신 있게 말하는 내 모습에 노을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앞발을 엑스자로 교차시킨 뒤 그 위에 머리를 털썩 올렸다.
이거 맛없으면 큰일 나겠는데?
기대라고는 하나도 하지 않는 듯, 하품까지 쩍 하는 노을의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작은 볼을 꺼내 빠르게 육회 양념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진 마늘과 쪽파 조금.
짭조름 맛을 위한 간장 두 스푼.
혹시 모를 비린내를 위해 맛술도 한 스푼 넣고, 단맛을 위한 꿀도 넣었다.
“소금은 약간만 더 넣고, 참기름은 넉넉히.”
모든 재료를 넣은 뒤 숟가락으로 저으니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주방 가득 퍼지기 시작했다.
킁킁.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눈을 반쯤 감고 있던 노을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꼴깍.
양념을 육회와 같이 버무리자, 배를 깔고 누워있던 노을이 자리에서 일어나 침을 꼴깍 삼키기 시작했다.
홀린 듯 다가오는 노을의 모습을 곁눈질로 확인한 나는, 육회 버무림을 마친 육회를 조금 집어 입으로 넣었다.
“음. 이거지.”
넣자마자 확 하고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함과 짭조름함. 거기다 탱글탱글한 고기를 씹으면 씹을수록 퍼지는 달큼한 감칠맛까지. 절로 소주가 생각나는 맛이었다.
“나, 나도 줘라!”
배를 깔고 누워 하품한 적이 언제이냐는 듯.
만족스러운 내 모습을 확인한 노을이 내 팔에 앞발을 올리며 재촉했다.
“잠깐만.”
아직 마무리가 덜 돼서 말이지.
노을의 재촉을 가볍게 제지한 나는 미리 배를 깔아둔 접시에 육회를 옮겼다.
톡.
마지막으로 계란 노른자를 위에 올리고, 전체적으로 깨를 솔솔 뿌려주면,
“완성! 자, 이제 먹어봐.”
먹음직스러운 육회가 완성된다.
“예쁘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먹는 거냐? 먹을 게 많아 어떤 것부터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노을은 먹어보라는 내 말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꼬리를 살랑거리며 물었다.
노을의 시선은 노른자와 양념과 잘 버무려진 육회, 그리고 제일 밑에 깔린 배 순으로 정신없이 움직였다.
“아, 이건 말이지, 노른자를 터트린 다음에 고기랑 섞어서 이렇게 배랑 같이 먹으면 돼. 아-.”
호기심 많은 아이와 같은 모습에 나는 노른자를 터트려 육회와 섞었다.
그러고는 달큼한 과즙이 가득한 배와 함께 노을의 앞으로 가져다줬다.
텁.
사각.
“어때?”
망설임 없이 입을 벌려 육회를 받아먹은 노을의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었다.
“너, 너무 맛있다!!!”
성공이다.
“좋았어. 그럼 그거 먹고 있어. 내가 더 맛있는 거 만들어 줄테니까.”
“이것보다···. 더 맛있는 거···?”
노을은 어떻게 그런 게 있을 수 있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육회는 메인을 요리할 시간을 벌기 위한 애피타이저였을 뿐.
“이걸로 좋아하면 안 되지.”
호박떡 따위는 생각 나지도 않을 정도의 요리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노을아.
육회가 그냥 커피라면, 메인요리인 스테이크는 TOP이니까.
**
맛있는 스테이크를 굽기 위해서는 약간의 기술과 수고가 필요하다.
우선 두꺼운 팬을 꺼내 센 불로 뜨겁게 달궈야 한다.
팬에서 아지랑이가 살짝 보일 정도로.
고기의 맛과 향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마이야르 반응은, 팬 온도가 180도에서 230도 사이일 때 가장 잘 일어난다.
팬이 두꺼우면 열을 잘 머금고 있어 시어링이 잘 되기 때문에 나는 주로 무쇠 팬을 사용하는 편이다.
스테이크를 굽는 팬의 사이즈는 넉넉한 편이 좋다.
고기 사이즈가 팬의 1/3을 넘지 않는 정도의 크기로 선택하면 적당하다.
아지랑이가 살짝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팬에 식용유를 적당히 두르고 한번 휘휘 흔들어본다.
팬을 흔들었을 때 식용유가 가볍게 물결친다면, 이제 고기를 구울 준비가 되었다.
-치이익.
소금간을 해 한쪽 옆으로 밀어두었던 스테이크를 집어 팬에 조심스럽게 올렸다. 이때는 기름이 튈 수 있으니 내 몸에서 바깥쪽으로 천천히 올리는 것이 안전하다.
팬에 올려진 고기의 중앙 부분을 집게로 살짝 눌러준 다음, 센 불에서 중 불로 줄여주었다.
-치이익
스테이크를 구울 때면 비가 내리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바로 그릴이 잘 되고 있다는 증거다.
“어디 보자···.”
오븐에는 이미 다른 재료가 들어가 요리되고 있으므로, 오늘은 팬으로 끝까지 스테이크를 구울 생각이다.
팬으로 스테이크를 구울 때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과 인내심.
팬에 고기를 올리고 약 20초에서 30초 사이에 살짝 고기를 들어 원하는 색이 나왔는지 확인해 본다.
“바로 지금.”
원하는 색이 나왔으면, 고기를 뒤집어 반대편을 굽는다.
고기를 뒤집을 때는 원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뒤집어야 한다.
일련의 과정을 거쳤다면, 이제는 원하는 고기의 굽기가 나올 때까지 고기의 상태를 보면서 30초에 한 번씩 뒤집어 주기만 하면 된다.
고기를 눌렀을 때 탱글하면 미디움. 그보다 살짝 꺼지면 미디움 레어다.
등심의 지방이 입안에 들어가 사르르 녹게 만들기 위해서는, 미디움 레어 보다는 미디움이 더 좋다.
“읏차.”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미디움으로 구워진 고기를 팬에서 꺼낸 나는, 미리 상온에 꺼내 따뜻한 볕 아래 두었던 접시 위에 올렸다.
그러고는 국그릇으로 고기를 덮어주었다.
“아 맞다. 버터.”
버터의 너티한 맛을 즐기고 싶다면 고기를 구울 때 버터를 끼얹으며 베이스팅을 해도 좋지만, 베이스팅을 할 경우 손이 많이 간다.
나는 본연의 버터의 본연의 맛을 느끼는 걸 좋아하기에 레스팅 할 때 버터를 따로 위에 얹는 편이었다.
고기의 잔열만으로도 버터는 충분히 잘 녹으니까.
“그럼 이번엔 사이드 요리를 해 볼까?”
레스팅까지 5분.
중간에 한번 뒤집어줘야 하긴 하지만, 사이드 디쉬를 마무리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스윽.
“냄새가 엄청 달콤하다! 그게 뭐냐?”
미리 오븐에 넣어둔 고구마를 꺼내어 반을 가르자, 달콤한 냄새를 맡은 노을이 도도도 달려왔다.
노랗게 잘 익은 고구마에 꿀과 섞은 버터를 넣자, 주방은 이제 고소함 대신 단내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어찌나 급하게 왔는지 노을의 입가에는 육회 한 조각이 달랑거리는 채였다.
“스테이크랑 같이 먹을 거. 이것까지 먹으면 떡은 생각도 안 날걸? 육회는 다 먹었니?”
“반만 먹었다. 다 먹고 싶었지만, 네가 먹을 것도 내가 남겨놨다! 꾹 참았다!”
“어이구. 이렇게 황송할 때가.”
저 식탐 여우가 음식을 남기다니.
그것도 나를 생각해서.
얼른 메인요리를 보여줄 시간이었다.
모름지기 음식은 끊기면 안 되는 법.
노을의 입가에 붙어있는 육회를 처리한 나는, 레스팅을 위해 엎어놓았던 국그릇들을 치웠다.
그러고는 팬 올려놨던 아스파라거스와 토마토를 꺼내 버터를 얹은 스테이크 옆에 플레이팅했다.
“홀그레인 머스타드도 한 스푼.”
겨자씨를 통째로 사용해 만든 홀그레인 머스타드 소스는 일반적인 머스타드와 달리 단맛이 없어, 스테이크와 곁들여 먹기 좋았다.
“그다음은, 명이나물이랑 와사비.”
첫 번째 접시에 있는 스테이크가 좀 더 서양적이라면, 후자는 우리의 입맛에 더 잘 맞는 조합이라 할 수 있다.
미리 장독대에서 꺼내 먹기 좋은 크기로 썬 명이나물을 와사비와 함께 남은 접시에 올린 뒤, 나는 완성된 스테이크들을 식탁으로 옮겼다.
“완성.”
“완성이냐? 이제 먹어도 되는 것이냐?”
“어. 이리 와서 앉아.”
내 허락에 식탁 의자로 와 앉은 노을은 황홀하다는 듯 두 접시에 담긴 고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초록과 빨강, 그리고 노란색을 사이드로 두른 투뿔등심은 눈으로 보기만 해도 입맛을 돋웠다.
“어떤 그것부터 먹어야 하냐···? 둘 다 맛있어 보여서 고르지를 못하겠다!”
선택 장애가 온 듯 연신 두 그릇을 번갈아 보는 노을을 대신해 나는 고기를 썰었다.
스윽.
부드럽게 썰리는 투뿔등심은 분홍빛 살결을 드러냈다.
“이야. 내가 구웠지만 진짜 잘 구웠네. 자, 먹어봐.”
텁.
홀그레인 머스타드를 조금 올린 등심을 한입에 넣은 노을은, 꼭꼭 씹으며 맛을 음미하더니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이게 뭐냐···?”
입을 살짝 벌린 노을은 충격받았다는 듯 몸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갑작스러운 노을의 변화에 당황스러운 내가 묻자, 이제는 눈물까지 글썽이는 노을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너무,”
“너무···?”
“너무···. 맛있다! 하지만 입에서 녹는다! 더 오랫동안 머물게 할 수는 없는 거냐···?”
“허. 나 참.”
순식간에 입안에서 녹아 없어지는 고기가 너무 아쉽다며 눈물까지 글썽이는 노을의 모습이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이제 호박떡 따위에게 빼앗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나는 홀로 승리의 기분을 만끽했다.
하지만 그 기분을 누리는 건 찰나에 불과했다.
“노을아, 천천히 먹어!”
무아지경으로 접시까지 흡입하려는 식탐 여우를 제지해야 했기에.
**
같은 시각.
“이게 뭐여?”
오전에 농장일을 마치고 점심을 먹은 장순택은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눈을 연신 비볐다.
“아니 오늘 새벽까지만 해도 이런 땅이 아니었는디···. 한울이 갸가 다 팠을 리는 없고···.”
트랙터를 끌고 한울의 밭에 온 이장은 새벽까지만 해도 딴딴해 보였던 밭이 모두 갈아져 있음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농사도 제대로 못 해본 한울이 저걸 다 팠을 거란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였다.
“아이고. 누가 한울이 온줄 모르고 쓸라 했나 보네. 안 되겠다. 마을 방송부터 해서 알려야겠네.”
밭이 개간한 사람은 트랙터가 있는 마을 사람일 거라는 결론을 내린 장 이장은 세워둔 트랙터에 시동을 걸고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몇 분 후.
[아아. 마이크-마이크- 테스트- 테스트. 친애하는- 친애하는-, 미화리- 미화리- 주민-주민- 여러분-여러분-,]
미친 에코를 자랑하는 마을 스피커가 한울의 귀촌 소식을 온 동네 구석구석 퍼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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