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1화 (11/163)

10. 새로운 친구

빽빽하게 자라있는 수풀을 헤치고 들어서자.

눈부신 연못의 모습이 두 눈 가득 들어왔다.

그 위를 유유히 유영하는 오리 한 마리를 보고 있자니, 한 발자국 앞에 있던 노을이 신이 난 목소리로 오리에게 말을 건넸다.

“인사해라! 내 친구다!”

“꽈악?”

눈처럼 흰 몸에 노란 부리를 가지고 있는 오리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내가 당황스러움을 느끼는 만큼, 오리의 얼굴에도 황당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친구를 소개해줄 생각에 신이 난 노을에겐 그런 표정 따위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여기는 한울! 여기는···. 그냥 오리 정령!”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고 컁!

다시 오리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컁!

스스로를 소개할 때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던 것과는 달리, 오리를 소개할 때는 조금 고민하나 싶더니 ‘그냥’ 오리 정령이라고 한 노을이 만족스럽다는 듯 키득거렸다.

“꽈악?”

그런 노을을 보며 ‘그냥’ 오리 정령이 다시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빠드득하고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지만, 기분 탓이겠지.

나는 어딘가 심기 불편해 보이는 노을의 친구에게 인사를 건넸다.

노을과는 달리 말 대신 울음소리만 내뱉는 모습이 영락없는 오리 같았지만, 우선 노을이 친구라고 하니 어색하게나마 손을 들고 흔들었다.

“안녕···? 네가 노을이 친구구나.”

뻘쭘하게 손을 흔드는 내 모습은, 민준이나 지민이 지금 내 모습을 봤다면 두고두고 놀릴 만큼 어색했다.

낸들 살면서 오리한테 인사하게 될 거라고 상상이나 해 봤겠냐.

노을이를 처음 만났을 때는 워낙 놀라기도 했었고, 처음부터 말을 걸어왔기에 얼렁뚱땅 넘어가긴 했지만.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그냥’ 오리 정령은 유난히 폭신해 보이는 하얀 깃털을 가진 것을 제외하고는 영락없는 평범한 오리 같아 보였다.

그때였다.

어색한 손 인사를 하는 나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친 오리가 깜짝 놀란 듯 날개를 퍼덕거렸다.

“꽈악? 저 인간이 방금 나한테 말을 걸었다!! 여우야! 저 인간의 정체가 뭐냐?”

오.

그래도 얘도 말을 하긴 하네.

말하는 모습을 보며 안심하고 있자니.

‘여우’라고 불린 노을이 오리의 말을 부정하며 컁하고 울었다.

그리고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아니라 한울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냥 ‘위대한’ 여우 정령이 아니고 ‘위대한 여우 정령 노을’이다! 컁!”

“노을···?”

“한울이 지어준 내 이름이다!”

“이름?”

“응! 한울이 나에게 지어준 이름이다! 그러니 난 더 특별한 여우 정령이다! 푸힛.”

“특별해···?”

오리 정령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노을의 자랑 아닌 자랑이 신기한지, 연못의 중앙에서 가장자리로 슬금슬금 헤엄쳐 오기 시작했다.

그런 오리 정령의 모습을 본 노을의 코는 더욱 하늘로 치솟았다.

“한울의 집에는 신기한 것들도 많다! 쉴 새 없이 반짝거리는 네모난 상자도 있다!”

가장자리에서 콧대를 높이 세우고 자랑을 하던 노을의 모습을 빤히 보던 오리 정령은, 반짝거린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날개를 펼쳤다.

파다닥.

“정말로 계속 반짝거리는 거야?”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노을의 코앞까지 온 오리 정령.

그런 오리 정령의 목에 노을은 제 까만 앞발을 올리며 말했다.

“그렇다! 너! 내 동료가 돼라! 컁!”

노을의 입에서 나오는 익숙한 대사에 나는 숨죽여 웃고야 말았다.

어제 티비에서 본 투피스가 어지간히 아주 감명 깊었나 보다.

하지만 웃음을 참는다고 힘든 나와 달리, 오리 정령은 다르게 받아드린 것 같았다.

“동료···?”

어딘가 몽롱한 오리 정령의 표정에, 논리왕 노을이 이때다! 하며 오리 동료에게 마지막 제안을 했다.

“동료가 되면 한울이 이름도 지어주고 맛있는 것도 줄 거다! 한울이랑 있으면 쓰담쓰담···. 아니다. 이건 내꺼다.”

혹할 만한 점이라는 게 고작 이름과 음식, 그리고 쓰담쓰담이라는 게 못내 귀여웠다.

하지만 오리 정령은 노을의 제안이 부족한지,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져왔다.

“반짝거리는 건?”

“그건 너 가져라!”

반짝거리는 거.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꽉! 좋다!”

노을의 입에서 가지라는 승낙이 떨어지자, 오리 정령은 날개를 퍼덕거리며 고개를 아래위로 흔들었다.

뭐야.

반짝거리는 거면 다 좋은 거였어?

식탐 여우에 이어.

반짝거리는 걸 좋아하는 오리까지.

나는 그렇게 두 번째 정령을 식구로 맞이하였다.

**

새로운 식구 맞이한 직후.

나는 본격적으로 농업인이 되기 위해 농지 대장과 농업경영체 등록을 진행했다.

“한울아. 이제 니도 어엿한 농사꾼이네. ‘신비 농장’ 주인! 축하한다!”

이장님의 도움을 받은 덕분인지, 등록은 아무런 잡음 없이 진행되었다.

현장답사는 언제 왔다 갔는지 모르게 통과가 되었고, 농업인 등록 완료 후 가입할 수 있는 농협 조합원도 일사천리로 마무리되었다.

조합원 등록을 마치고 농협에서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장 이장님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노을이와 이제는 찹쌀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오리 정령은 집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노을이 말하던 쉴 새 없이 반짝이는 네모상자의 정체는 바로 티브이였다.

집으로 오자마자 그걸 보고 얼마다 흥분하며 파다닥 거리는지.

이튿날 밤새 티브이를 본 여파로 눈이 빨개진 채 돌아다니는 찹쌀의 몰골을 보고 노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다.

“감사는. 당연한 거제. 아직 밥 안 묵었지? 내가 니 농사꾼 된 기념으로 한턱 쏜다! 가자!”

“아뇨. 점심은 제가 사겠습니다.”

노을과 찹쌀의 귀여운 해프닝들을 생각하던 나는, 점심을 산다는 이장님의 말에 정신을 차리며 얼른 손사래를 쳤다.

여태 주신 도움을 생각하면 어떻게 봐도 자신이 밥을 사야 할 판국이었다.

하지만 이장님의 고집은 강력했다.

“뭔 소리고! 어른이 사준 다카면 ‘예 감사합니다’ 하고 그냥 먹으면 된다안카나. 짬뽕 괜찮제?”

“예. 감사합니다.”

결국, 나는 장 이장님의 고집을 꺽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장 이장님은, 비밀을 알려주겠다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 얼마나 좋노. 요 앞에 점빵에서 파는데 맛이 죽인다. 근데 더 죽이는 게 뭔 줄 아나?”

“뭔데요?”

“짬뽕 한 그릇에 5천 원뿐이 안 한다!”

“진짜 죽이네요.”

요즘 같은 고물가시대에 짬뽕 한 그릇에 5천 원밖에 하지 않다니.

이 정도라면, 마음 편히 얻어먹어도 될 것 같았다.

“우리 꽃분이가 매운 걸 못 묵어가. 이럴 때 아니면 못 먹는다. 얼른 가자! 좀 이따 점심때 되면 거기 자리 미어터진다!”

“네. 가시죠.”

**

점빵식당 안.

땀을 뻘뻘 흘리며 앞에 놓인 빨간 국물을 크게 한 모금 들이킨 장 이장이 감탄을 내뱉었다.

“크으. 이 맛이제! 어떻노? 국물 죽이제?”

“쓰읍. 네. 맛있네요. 해물도 많고.”

5천 원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짬뽕 속 해산물은 다양했고, 게다가 양도 많았다.

“내 말이 그 말이다. 여가 가격만 5천 원이지, 퀄러티는 따봉이다. 따봉.”

“그렇네요. 근데 이렇게 팔면 남는데요 여기?”

가성비를 떠나 맛이 최고라는 장 이장님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술이라도 팔아줄까 싶어서였다.

“아이고. 걱정 마라. 여기가 바로 뭐다? 건물주가 하는 가게라. 이 말이다.”

“아아. 그래서.”

건물주라면 모든 게 다 이해가 됐다.

“이해가 되제? 그래서 배짱장사한다 아이가. 여기 점심때만 잠깐 열고 문 닫는다.”

불쑥.

어디선가 나타난 깐깐해 보이는 할머니가 역정을 내며 커피믹스와 종이컵 두 개를 테이블 위로 얹었다.

“이런 촌구석에 사람들이 얼마나 돌아다닌다고 저녁까지 여노!”

“아따. 아지매. 아쉬워서 하는 소리 아닙니까.”

“아쉽기는. 다 먹었으면 커피나 처무라.”

“처무라가 뭐꼬 손님한테.”

“그래서 안 먹겠다고?”

“...물 낭낭하게 타서 주소.”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순식간에 장 이장님을 제압한 건물주 사장님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꿀꺽.

뾰족하게 솟은 아지매의 눈매에 침을 꿀꺽 삼킬 때였다.

“거기 우리 잘생긴 총각은?”

이장님을 대할 때와 확연히 다른 친절한 목소리.

순식간에 지옥에서 올라온 야차에서 자애로운 마더 테레사로 변모한 할머니가 내게 물었다.

“왐마. 저 아지매 차별하는 거 봐라. 내 한테는 처무라고 해놓고! 이거 내가 사는긴데!”

그런 할머니의 변화에 장 이장이 소름 돋는다는 듯 양팔을 문질러 댔지만, 할머니는 강력했다.

“그라믄 니도 이 총각처럼 잘생기기나 하든지.”

“와. 이 나이 먹고도 내가 생긴 거 때문에 설움을 받아야 하나···. 됐다! 내는 꽃분이 있다!”

타도 외모지상주의를 외치는 장 이장의 모습에 귀를 한번 후비적거린 할머니가 다시금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라카노. 오랜만에 젊은 사람 보니까 좋으니까 그라제. 자주 오래이. 저놈은 빼놓고.”

“내도 단골 취급해주소!”

단골한테 이러는 게 어딨냐며, 장 이장이 항의했지만.

장 이장의 요구는 가볍게 묵살되었다.

“아이고. 니같은 단골 천지삐까리다. 여기도 이래 젊은 사람들이 많아야 발전을 한다. 아이가. 이렇게 촌구석에 산다고 내려온 젊은 사람들한테는 잘해주고 그래야 된다.”

건물주 할머니의 이유는 나름 타당했다.

할머니의 설명에 장 이장의 서운함은 일단락되었다.

“아이고. 걱정 마이소. 우리가 야를 얼마나 챙기는데.”

“당연히 챙기야제. 뉴스에 보니까는 시골 텃세라카고 뭐라 시부리던데 다 부질없는 거다. 알제? 아나. 이건 싸비쓰다. 가면서 무라.”

아니 되는 듯하였다.

할머니가 내 손에만 달걀 두 개를 쥐어지기 전까지는.

“감사합니다.”

방금 삶았는지 아직도 따뜻한 달걀을 쥐고 있자니, 옆에서 세상 억울함을 다 끌어놓은 얼굴을 한 장 이장님이 물었다.

“내는요 아지매?”

누구라도 저 표정을 보면 뭐라도 하나 쥐여줄 것 같았지만, 할머니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장 이장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한 할머니는 나에게만 인사를 건넸다.

“일 없다. 니는 잘가라이. 자주 오고.”

“이제 안 올 거다.”

“니 말고. 저 총각.”

“야도 안 올걸요? 의리가 있어가.”

끝까지 자신은 논외로 치는 할머니의 열이 받은 이장님이 나를 끌어들였지만.

“...”

이장님의 등 뒤에 있던 나는 할머니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이장님.

그러기엔 여기가 너무 맛있는걸요?

**

한울이 이른 점심을 끝낼 무렵.

서울 어딘가.

어딘가 몸이 좋지 않아 보이는 여성이 아파트 현관문 앞에 섰다.

“아 맞다. 이거 도착했다고 했지.”

부쩍 나빠진 컨디션에 조기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여성은, 문 앞에 있는 택배를 한쪽 손에 들고 도어락을 눌렀다.

띠리리릭.

“어휴. 힘들다. 씻기 전에 떡 하나만 먹고 좀 자자.”

[구름 떡집]

구름 떡집이라는 로고를 확인한 여자가 잘되었다는 듯, 서둘러 아이스박스의 포장을 풀었다.

“어? 이게 뭐야? 서비스?”

아이스박스를 열자마자 ‘서비스’라는 스티커가 붙여진 노란색의 팩이 가장 먼저 보였다.

“오. 안 그래도 호박즙 하나 시킬까 생각했는데. 그래. 호박떡 대신 이거 먹고 자라는 계시네.”

오래 서 있는 일을 하다 보니 다리가 붓기 일쑤였다.

오늘도 팅팅 붓는 다리 때문에 일찍 퇴근한 참이라 자고 일어나면 호박즙이라도 시킬까 생각 중이었다.

“오호. 100% 갈아 만든 호박 주스. 맛도 나쁘지 않은데?”

어쩐지 반가운 마음에 단번에 들이킨 호박 주스에서는 왠지 날 것 같다고 생각한 비린내 대신 달콤하고 시원함만이 가득했다.

“배도 안 고프네?”

거기다 쉐이크같은 호박 주스를 마시고 나니 조금 전까지 꼬르륵거렸던 배도 어느 정도 찼는지, 딱 좋았다.

“이거 괜찮은데? 일단 자고 시켜야지.”

그렇게 여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단잠에서 깨어난 여자가 습관처럼 다리를 주무르려 손을 뻗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평소와는 다른 감각에 탓이었다.

그리고 경악했다.

“헐 대박.”

얼마 만에 본지 모르겠는 얄쌍한 다리.

자고 일어나기만 하면 봤던 띵띵한 다리 대신 얄쌍한 다리를 확인한 여자는, 핸드폰을 잡아 들었다.

“구름 떡집. 구름 떡집.”

재빨리 구름 떡집 스토어까지 들어갔지만, 안타깝게도 여자가 찾는 제품은 없었다.

“어? 왜 없어?”

스토어 메인 페이지에는 여느 때와 같이 호박떡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딸칵.

‘역시. 공지를 안 할 리가 없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박떡을 클릭하자, 바로 제일 상단에 뜨는 이탤릭체로 쓴 호박 주스 공지.

문의가 잦은 호박 주스의 경우 생산 일정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공지였다.

”감질나게 한입만 주고 이렇게 출시일 미정이라는 건 법으로 막아야 하지 않을까?“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여자는 미정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호박 주스의 효과를 알아버렸기에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지. 문의 글이라도 남겨서···. 어?“

문의 글이라도 남겨, 추후 재입고 일정에 대해 받아보려 했지만.

이미 문의 탭에는 저처럼 상품 재입고 여부를 묻는 글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와. 미쳤네. 이렇게나 다들 진심이라고? 잠깐. 나도 남겨야지.”

산을 이룬 탓에 자신의 문의는 바로 묻힐 것 같았다.

그래도 여성은 간절했다.

“사장님. 재입고 알림 부탁드립니다···. 저 완전 단골이에요···.”

이렇게 즉각적으로 효과를 보이는 호박 주스라니.

재입고가 되더라도 순식간에 완판이 되어버릴 것 기분에 여자는 제 사연을 꾹꾹 담아 썼다.

그렇게 노을이 쏘아 올린 작은 씨앗들이 싹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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