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12화 (12/163)

11. 설탕 토마토

점빵 식당을 나오고.

이장님의 포터 조수석에 앉은 나는 안전벨트를 매며 물었다.

“그런데 이장님.”

“어. 와?”

“진짜 뭐 제가 회비 안 드려도 될까요?”

“어? 뭔 회비?”

“뭐, 마을발전기금. 이런 거요.”

마을발전기금.

인터넷에 ‘귀촌 시 유의점’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올 만큼 의견이 분분한 주제였다.

“뭐라꼬? 마을발전기금? 니 아까 그 아지매 말 때문에 그런기가?”

“아뇨.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요. 예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던 거라.”

사실 마을발전기금은 할머니 때부터 이곳 미화리에서 산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르신들께 여태껏 도움을 많이 받은 만큼, 마을 스피커라도 하나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냥 스피커를 바꾸라고 돈을 주면 안 받으실 게 뻔할 뻔자니.

마을 어르신들은 여태 들어온 짬바로 때려 맞추시는 것 같지만, 나는 노을이 해석해 주지 않는 이상 도무지 내용을 알 수가 없었다.

‘그 미친 에코를 들을 바엔 내가 하나 교체 해 드리는 게 낫지.’

하지만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이장님은 콧방귀를 뀌었다.

“하이고. 한울아, 니 그 말 그대로 강가랑 심가 있는 데서 해봐라.”

모르긴 몰라도 등짝이 남아날 생각을 하지 말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까지 했다.

장담하건대.

돈을 준다는데 혀를 차는 사람은 아마 장 이장님 밖에 없을 것이다.

“마을회관 스피커 교체하는데 보태시죠?”

“보태긴 뭘 보태나! 스피커 교체하는데 한 두 푼 드는 줄 아나 보네. 그리고 그런 음향장비 비용은 다 군청에서 지원금이 나온다!”

“지원금이요?”

“그래. 지금 저 밖에 있는 스피커 말고, 집집마다 무선수신기 설치할라꼬 알아보는 중이다. 요즘 시대에 스피커는 무슨 스피커가.”

“무선수신기요?”

“하모. 회관에서 방송을 시작하면 라디오처럼 탁 켜져가, 들을 수 있는 기다. 녹음도 되고. 니는 젊은 애가 그것도 모르나?”

“...군청에서 뭘 지원을 많이 해주네요.”

괜히 스피커 얘기를 꺼냈나.

생색 한번 내려 했다가 본전도 못 찾게 생겼다.

“하모. 우리 마을처럼 코딱지만 한데는 지원금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니가 외지사람도 아니고. 니 콧물 질질 흘리면서 뛰댕길때부터 봐왔는데 있어도 안 받는다. 그 돈 있으면 니 맛있는 거나 사무라.”

하지만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하는 것.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플랜B를 꺼내 들었다.

“그럼 월 회비는 없나요? 할머니가 뭐 내시던 것 같던데.”

뭐 때문인지는 몰랐지만, 매달 초만 되면 할머니는 통장을 가지고 은행을 방문 하시곤 했다.

마을발전기금이 보증금이라고 한다면, 회비는 관리비 정도 아닐까.

어차피 서울에서 살면서 매달 10만 원씩 냈으니, 새롭지도 않았다.

“아아. 그거. 그거 여행계 하는 거다. 5천 원씩 모아가 놀러 다니는 거. 와? 니도 할래?”

하지만 회비일 거라는 내 추측은 또 틀렸다.

“여행계요? 아뇨. 괜찮습니다.”

“하기야. 노인네들 노는 데 와봤자 니가 뭐 재미가 있겠나.”

“아뇨. 그게 아니라. 제가 자신이 없습니다.”

그 텐센에 어울릴 자신이.

수확이 끝난 가을이면 동네 어르신들은 여행을 다니셨다.

국내 구석구석은 물론이거니와, 때때로는 한국과 가까운 해외까지 가시기도 했다.

할머니는 여행에서 다녀오신 후에는, 꼭 나에게 여행지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시곤 했다.

‘야야 들어봐라. 홍콩에서 빅토리아 피크? 아무튼, 산꼭대기 가서 야경 본다고 뭔 기차를 타러 갔거든?’

‘응.’

‘근데 그때 다들 하루종일 돌아다녀서 다들 다리 뿌사진다고 골골댔단 말이제. 그래가꼬 다들 기차 문 열리자마자 앉을라 카는데!’

‘했는데?’

‘뒤에서 뭐가 휙 날아오더니 의자 착 하고 떨어지는 거지.’

‘뭐가? 설마···. 아니지, 할머니?’

‘와. 내 그 첨 봤다 아이가. 들고 있던 가방을 휙 던져가 자리를 맡는데, 우리 다 모른 척 했다.’

‘누구였는데?’

‘거. 와. 내랑 같이 공치는 할매. 지도 모르게 던졌다는데. 지도 창피했는지 앉지는 못하고 다른 나라 사람인척하면서 사과하더라.’

‘헐.’

‘그리고 또 있다. 그다음 날 엄청 큰 불상 보러 간다꼬 케이블카를 탔는데···.’

말로만 듣던 가방 던져서 자리 맡기를 실천한 동네 사람이 일본인인 척을 했다는 이야기부터.

밑바닥 부분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는 케이블카를 타는 바람에 정상에 도착할 때까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을 뜨지 못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망고인 줄 알고 산 과일에서 발 냄새가 나는 바람에 서로 눈치만 보다가, 그래도 버리기는 아까워 가위바위보를 해 먹었다는 이야기까지.

여행 중 겪었던 에피소드들을 말하는 할머니의 표정은 못내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즐거운 할머니의 표정과는 별개로 동네 어르신들의 여행은 가히 체력훈련이라 불릴만한 수준의 무엇이었다.

분 단위로 쪼개진 여행 스케줄은, 혼자서 여유로운 여행을 즐기는 내 성향과는 정 반대 그 자체.

“하기사 우리가 한번 놀 때는 또 제대로 놀기는 하지! 가이드들도 우리 체력에 놀란다 아이가. 한번 가는 건데 즐겨야 하지 않겠나?”

“대체 그 체력들은 다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전문가이드까지 놀라는 체력이라니.

역시나. 저 여행계는 멀리하는 게 맞는듯하다.

“산 좋고 물 좋은데 살면 다 체력이 좋아지게 마련이다. 근데 아까 그 점빵 아지매가 뭐 줬드노?”

“달걀이요. 가져가서 할머니랑 드세요.”

“청란이네? 됐다. 집에 가면 널린 게 달걀이다. 토종닭이랑 청계 닭 다 있다. 우리 집 청계가 더 맛있을 거다.”

아직 건물주 할머니에게 삐치신 모양.

내 손에 있는 청란을 힐끗 보더니, ‘그건 니 무라’하신다.

“오. 달걀 걱정은 없으시겠네요.”

“아침마다 달걀 걷는 것도 일이다. 아니 꽃분이가 들어가면 얌전하면서, 내가 들어가면 그렇게 쪼아 쌌는다.”

어디서 들었다.

동물들도 사람 얼굴 가린다고···.

하지만, 진실만을 말하고 살 수는 없었기에, 나는 말을 골랐다.

“...나름의 애정표현 아닐까요?”

“애정표현은 개뿔! 쪼이면 얼마나 아픈 줄 아나? 요즘엔 병아리를 또 낳아가···. 아 맞다. 니 병아리 좀 갖고 가라.”

“병아리요?”

“어. 니 혼자 심심하지 않나? 그 큰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는 병아리라도 키우면서 사부작거리고 돌아다니는 게 좋다. 너희 집에 닭장은 있제?”

“네. 그렇긴 한데···.”

닭장은 있지만.

심심하지는 않았다.

심심하기는커녕.

똥꼬발랄하게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식구 둘이 있어 챙기기 바빴다.

“그라믄 됐다. 우리 집에서 병아리 몇 마리 가져가라. 혼자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키우는 게 좋다.”

아니, 이장님.

저 혼자 아니라니까요.

벌써 챙겨야 할 식구가 2명이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홍길동처럼, 식구를 식구라 말할 수 없었다.

‘하나는 식탐 많은 여우고요, 또 다른 하나는 TV라면 환장하는 오리입니다.’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

우리 마을 어귀에는 400년이 넘은 팽나무가 있다.

어떤 어르신은 400년이 아니라 500년도 더 넘은 나무라고 하는 마을의 당산나무.

성인 서넛은 모여 두 팔을 뻗어야 겨우 감싸 안을 만큼 큰 나무는, 마을의 자랑거리였다.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내려주고.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을 선사해주었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평안함을 주는 나무 밑 정자는, 우리 동네 공식 사랑방이기도 했다.

“이제 잎들이 슬금슬금 올라오는 거 보니까 봄은 봄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얼른 여름이 돼야 저 밑에서 수박을 먹을 건데. 안 그나? 내는 저 팽나무 밑에서 먹는 수박이 그리 맛있더라.”

“맞아요. ”

“여름은 영 더워서 싫은데, 내가 그 수박 때문에 저 이파리가 언제 파래지나 맨날 보고 있다. 자, 들어가자.”

이장님의 집은 마을에서 당산나무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항상 활짝 열린 이장님 댁의 대문을 넘자, 밖에서는 벽 때문에 다 모이지 않았던 마당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할머니는요?”

이장님 댁에 올 때면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 주셨던 꽃분이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 오늘 정기검진일이라서 큰아랑 같이 서울에 있는 병원 갔다.”

“병원이요? 어디 아프세요?”

“심각한 건 아니고. 당뇨라 하데.”

“아···.”

어린 시절.

학교에서 친구가 가지고 온 설탕 뿌린 토마토를 맛보곤, 집에서도 설탕을 뿌려 먹다 할머니에게 걸려 혼난 적이 있었다.

‘토마토 설탕에 찍어 먹으면 영양가 없어진다! 찍어 먹고 싶으면 소금에 찍어 무라.’

할머니의 말씀은 옳았다.

설탕은 토마토에 있는 비타민B를 손실시키는 반면, 소금은 칼륨의 농도를 낮출뿐더러 비타민C의 산화를 어느 정도 막아준다니까.

하지만.

어린 내가 뭘 알았겠는가.

거기다 이미 설탕과 토마토의 환상적인 맛을 본 나는, 그저 할머니의 제지가 못내 서러웠었을 뿐이었다.

소금에 찍어 먹은 토마토는 정말이지, 맛이 없었으므로.

그런 할머니가 미워 집 밖을 뛰쳐나와 당산나무 아래에서 얼마나 훌쩍였을까.

꽃분이 할머니께서 설탕을 잔뜩 묻힌 토마토 한 대접을 들고나와 내 옆에 앉으셨다.

그리고는 설탕이 묻어 반짝이는 토마토 한점을 집어, 내 입가에 대주며 말씀하셨다.

‘토마토는 설탕에 찍어 먹어야 맛있는 기제. 니 할매는 뭘 모른다. 그제? 그만 울고, 할미랑 이거 같이 묵자.’

그야말로 눈물 젖은 설탕 토마토.

그때 먹었던 설탕 토마토의 맛은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꽃분이 할머니가 당뇨라니.

“걱정 안 해도 된다. 약 먹으면 괜찮다더라. 원래 우리 나이 때쯤 되면 다 하나씩 고장 나는 거라.”

“이제 과일도 못 드시겠네요.”

과일을 좋아해 삼시 세끼 과일만 먹고 살고 싶다고 하셨던 분이셨던 만큼, 꽃분이 할머니의 병명은 가슴 한쪽을 무겁게 만들었다.

“단 거 먹지 말라고 하니까. 뭐, 건강하게 먹고 좋은 거제. 원래 단 게 몸에는 안 좋다 안카나! 걱정 그만하고 얘들이나 좀 봐봐라.”

그런 내 모습에 장 이장님은 서둘러 뒷마당으로 나를 데려가 닭장을 보여주었다.

삐악삐악

꼬꼬댁 꼭꼬꼬꼬

철망으로 만들어진 닭장은 사람 키만 했다.

그 안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닭들의 집도 있었는데, 몇몇 곳에선 암탉이 반쯤 눈을 감고 알을 품고 있었다.

“저기 까만 털이랑 회색 털 섞인 애들 있제? 걔들이 청계 닭이다.”

고운 모래와 왕겨가 가득 깔린 바닥에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병아리들이 모여 모이통을 연신 쪼아댔다.

“아직 작은 것 같은데 며칠 더 어미랑 같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안 그래도 된다. 따뜻하게만 잘 해주고, 사료만 잘 주라. 어릴 때부터 사람 손 타고 해야 나중에 내처럼 안 쪼인다. 자, 이거 좀 들고 있어봐라.”

저 정도면 다 큰 거라며, 이장님이 병아리를 담을 상자 하나를 안겨주었다.

내게 상자를 넘긴 이장님은, 한켠에 놓인 두꺼운 가죽장갑을 끼고는 결연한 눈으로 닭장 앞에 섰다.

“후. 오늘은 내 안 진다.”

장갑 낀 두 손을 팡팡 마주친 이장님은, 제자리 뛰기를 하며 목과 어깨를 풀었다.

마치 링 출전을 앞둔 격투기 선수 같았다.

“제가 할까요?”

결전을 치르러 나갈 것 같은 이장님의 모습에 슬쩍 대신해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아이다. 이건 사나이대 사나이의 승부다. 괘안타.”

이장님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사나이의 대결이라니.

의미심장한 대사와 함께,

철컹.

굳게 닫혔던 닭장의 문이 열리고.

이장님이 철망 안으로 들어서자.

푸드덕.

침입자를 발견한 수탉이 날카로운 부리와 며느리발톱을 치켜세우며 날아들었다.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수탉을 본 이장님은, 얼굴 앞으로 가드를 올렸다.

그리고 외쳤다.

“마! 드루온나!”

꼬끼오!

까만 가죽장갑을 낀 이장님.

그리고 묘하게 푸른빛이 나는 검은 깃털을 가진 청계 수탉.

흑과 흑, 결전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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