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셧업앤 텍마머니!
누가 닭은 날지 못한다고 했는가.
꼬꼬댁!!
푸른빛의 검은 깃털을 가진 수탉이 날개를 퍼덕이며 높이 날아올랐다.
날아오르며 두 발을 앞으로 쭉 뻗는 모습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키보다 높은 허공에서 날카로운 발톱을 들이대는 수탉의 공격이 매서워 보일 법도 하건만.
이장님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마! 드루온나!”
날카로운 발을 들이미는 수탉의 위치를 확인한 이장님은, 가드 올린 손을 들어 휘둘렀다.
그리고는 외쳤다.
“야-이 닭대가리야-! 내-가 니 주인이다-!! 맨날 밥 주는 사람도 못 알아보나!”
울분에 맺힌 이장님의 외침이 허공을 가르고.
수탉의 날카로운 발톱과 이장님의 가죽장갑이 맞부딪혔다.
탓.
팔목까지 오는 두꺼운 가죽장갑은 수탉의 날카로운 공격을 정확히 막아냈다.
꼭꼭꼬!
회심의 공격이 막힌 수탉이 가까이 있는 횃대 위로 날아가 앉았다.
고개를 모로 기울이고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양새가 당장이라도 다시 공격할 것 같았다.
“니 패턴은 이미 내한테 다 읽혔다!”
그런 수탉의 모습에 다시 가드를 올린 이장님이 외쳤다.
가드 사이로 튀어나오는 이장님의 기세는 황소와 맞짱뜨는 최배달 못지않았다.
꼬꼬꼬꼬
수탉도 그런 기세를 느꼈는지 이번에는 바로 날아들지 않았다.
대신 경고 섞인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아래위로 흔들 뿐이었다.
꿀꺽.
이장님과 수탉의 팽팽한 대치에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킬 때였다.
“와라.”
장갑을 껴 두꺼워진 손가락을 이장님이 까닥이며 말했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수탉은 걸려온 도발을 피하지 않았다.
꼬꼬댁!!
날개를 힘차게 퍼덕이며 횃대를 박차 날아오르는 수탉의 움직임은 처음보다 훨씬 더 매서웠다.
직선으로 날아오나 싶더니 갑자기 날개를 휙 틀어 횡을 그리며 날아오는 수탉.
“어? 조심하세요. 이장님!”
몇 초 뒤 수탉에게 구레나룻을 뜯길 이장님이 그려지는 것 같아, 조심하라 외칠 때였다.
“요놈!”
부드럽게 몸을 튼 이장님은, 수탉이 날아오는 방향의 반대로 한 발짝 움직이며 옆에서더니, 그대로 순식간에 수탉의 날개를 낚아챘다.
“오.”
놀라운 움직임에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려 감탄사를 내뱉었다.
단 두 번 만에 수탉을 잡는 데 성공한 이장님이 의기양양하게 나를 돌아보았다.
“자, 이제 내가 단디 잡고 있으니까, 안심하고 들어온나.”
꼬꼬댁!!
이장님 손에 날개를 잡힌 수탉이 푸드덕거렸다. 솜털이 먼지처럼 흩날렸다.
“푸엣취!”
바로 지척에서 솜털 공격을 받은 이장님이 코를 씰룩거리며 재채기를 했다.
비록 두합 만에 이장님의 머리는 산발이 되고, 옷에는 닭털이 덕지덕지 붙어있으며, 재채기로 인해 코를 훌쩍이고 있었지만.
두 손으로 수탉을 붙들고 있는 이장님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뿌듯함이 서려 있었다.
“...아. 예. 괜찮으신 거죠?”
아무리 좋게 봐도 영화 나 홀로 집에서 비둘기 떼의 습격을 받은 도둑들과 비슷해 보이는 이장님의 몰골에 걱정스러운 시선을 건네자, 이장님이 큰 소리로 웃으며 수탉을 다시금 높이 들어 보였다.
“어. 괜찮다! 걱정 마라! 이봐라 내가 단디 잡고 있다. 얼른 들어온나.”
꼬꼭!
이장님께 손아귀에 잡힌 수탉이 분함을 감추지 못하고 퍼덕거렸지만, 날개를 잡힌 탓에 버둥거림은 무의미했다.
꼬꼬꼬꼬···.
몇 번의 버둥거림을 멈춘 수탉은 낮게 울기 시작했다.
“아이고. 요놈 우는 거 보게. 그래봤자 니는 내 못 이긴다. 날개를 이리 잡혔는데 우째 이길라꼬.”
마치 육식 동물이 으르렁거리는 것과 비슷한 그 소리에 이장님이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이장님의 코웃음에도 수탉의 울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꼬꼬꼬꼬···.
마치 이 치욕을 잊지 않겠다는 듯.
수탉의 울음소리는 더욱 깊어졌다.
**
“어디 보자. 나무는 이거면 충분하고. 오. 여기 철망도 있네.”
이장님 댁에서 병아리와 함께 귀가한 나는, 우선 상자에 담긴 병아리들을 집안에 들여놓고는 창고 문을 열었다.
망치와 못.
톱과 나무.
동그랗게 말린 긴 철망과 쇠파이프.
“뭐, 이 정도면 되겠지.”
시작은 이장님의 반강제적인 담긴 권유였지만, 이왕 데려온 거 제대로 키울 생각이었다.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마당 한켠에서 홀로 오랫동안 세월을 견뎌온 닭장 보수가 우선이었다.
오랫동안 방치한 닭장은 시간의 풍파를 제대로 맞은 듯 손 볼 곳이 많았다.
여기저기 튀어나온 거스러미들.
비바람을 맞아 자연스럽게 썩은 나무.
거스러미는 사포질하고, 썩은 나무는 교체가 필요했다.
“일단 나무부터.”
귀 뒤에 꼽고 있던 팬으로 대충 덧댈 나무의 크기를 표시한 뒤, 톱질을 시작했다.
쓱싹쓱싹
“후. 전기톱을 꺼낼 걸 그랬나.”
창고 깊숙한 곳에 처박혀 있기도 했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충전기를 충전하는 게 귀찮아 그냥 일반 톱을 가져 왔건만.
톱질 몇 번에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려는 땀을 소매로 닦고 있자.
탐스러운 꼬리를 가진 호기심 많은 여우가 나타나 고개를 쏙 내밀었다.
“뭐 하는 거냐?”
“병아리들 집 보수 중.”
“보수! 재밌어 보인다! 내가 도와줄 건 없냐?”
창고에서부터 신기하게 쳐다보더라니.
대뜸 도와준다고 하는 노을에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딱히 노을이 도울만한 일은 없었다.
보수라고 해봤자 기존에 있는 닭장에 나무와 철망을 교체하고, 못질하는 것뿐이라.
“음···. 글쎄. 지금은 딱히 없는데. 그보다 위험하니까 저기 찹쌀이랑 같이 있어.”
어딜 봐도 저 퐁실한 노을의 손을 빌려야 할 곳은 없어 보여, 일을 시키는 대신 병아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찹쌀이를 가리켰다.
“호에···. 진짜 없는 거냐···.”
도움이 필요 없다는 말에 노을의 귀가 실망한 듯 축 처졌다.
“아이고.”
살랑거리던 꼬리를 말고 쪼그라드는 노을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뱉었다.
“TV 프로그램이 애들 정서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더니···.”
정령한테까지 그럴 줄이야.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하기 하기 전.
필요한 서류와 자격들을 정리하기 위해, 농사일은 달밤에 노을과 모종을 심은 후로는 잠시 쉬고 있었다.
생각보다 바깥으로 돌아다닐 일이 많았기 때문에, 노을과 찹쌀은 집에 두고 다녔건만.
어느 날 집에 돌아와 요리하는 나를 보며 노을이 어깨 위로 폴짝 올라와 요리를 돕겠다고 했다.
‘하하. 괜찮아. 가서 찹쌀이랑 놀고 있어.’
얼굴을 비비며 돕는다는 노을의 행동이 그저 귀여워 괜찮다고 했지만.
노을은 내 거절에 화들짝 놀래며 컁! 하고 울었다.
‘그건 안된다! 아무것도 하는 거 없이 붙어있으면, 염치없는 식충이랬다!’
‘식충이? 누가 그래?’
‘저 반짝거리는 상자에서 그랬다! 나는, 나는···. 식충이가 아니다! 위대한 여우 정령 노을이다···!’
그놈에 막장드라마.
요즘 노을과 찹쌀이 심취한 TV 장르였다.
찹쌀이가 식구가 되기 전까지는 처음 내가 틀어줬던 채널만 보던 노을은, 찹쌀이 합류한 후부터는 찹쌀이와 함께 드라마 광이 되어 가는 중이었다.
첫날 집으로 온 찹쌀은 시시각각 화면이 변하는 TV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꽉꽉 거리며 궁둥이를 흔들어댔다.
띡.
그러다 채널 버튼이 눌렸는지, TV 화면이 바뀌었고.
‘꽉?’
바뀌는 화면에 놀란 것도 잠시.
리모컨의 사용법을 알아버린 똑똑한 두 정령은 그 이후로 틈만 나면 채널을 돌려 결국에는 모든 채널을 파악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이제는 TV 프로그램이라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면, 뭐. 말 다 했지.
인간 세상에 대한 지식을 쌓는 건 좋았지만, 문제는 순진한 이 둘은 아직까지 TV에서 쏟아지는 무분별한 정보들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
회상을 마친 나는, 꼬리를 말고 고개를 숙인 노을을 따라 쪼그려 앉았다.
“내가 저번에 뭐라고 그랬지? TV는···?”
그리고 노을의 앞으로 주먹 쥔 손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인기척을 느낀 노을은 고개를 빼꼼히 들더니, 내 주먹을 보고는 자신도 제자리에 앉아 솜털이 뽀송한 앞발을 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투쟁하는 전사처럼 앞발을 휘두르며 외쳤다.
“TV는! TV일 뿐! 몰입하지! 말자!”
“그렇지. 좋았어. 이야 역시 우리 노을이. 진짜 기억력 좋네! 하이파이브!”
퐁.
예전에 내가 한 말을 기억한 노을을 한껏 칭찬해주자, 제자리에 폴짝 뛴 노을이 펼쳐진 내 손바닥에 제 솜방망이를 가져다 댔다.
“캬항! 나는 기억력이 아주 좋은 위대한 여우 정령이다!”
칭찬 한 번에 기력을 회복하는 노을이라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도와준 것에 대한 대가’를 원했던 노을인 만큼, 나는 생각을 바꿔 노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럼, 이 모이통만 좀 씻어줄래?”
그건 바로 닭장 안에 있던 닭들의 모이통을 씻어달라는 것.
모이통 역시 야외에서 세월의 풍파를 정통으로 맞는 바람에 아주 더러웠다.
나중에 읍내에 나가 모이통을 하나 사 올 계획이긴 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노을에게 일거리를 주는 거니까.
“모이통 씻는 거? 그건 너무 쉽다. 컁! 찹쌀! 이리 와서 이거 좀 씻을 수 있겠냐?!”
“알았다. 꽉!”
노을의 호출에 한달음에 달려온 찹쌀은 노을이 가리킨 때가 가득 낀 모이통을 보더니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노을이가 찹쌀이를 시키는 거야?”
일이 생기자마자 바로 내리사랑을 실천하는 노을의 모습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원래 일은 더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면 된다고 그랬다! 나는 한울을 도와주겠다!”
“응? 나를?”
나를 도와준다는 노을의 말에 의문을 보이자.
팟칭!
노을이 날카로운 발톱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나무에 표시된 곳을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샥.
털썩.
“꽈아아아악-!”
노을의 뒤로는 찹쌀이 모이통을 향해 입을 벌리고 물대포를 쏘아대고 있었다.
“어떠냐? 컁!”
노을의 발톱에 맞은 나무는 매끈한 절단면을 보이며 바닥에 떨어졌고.
찹쌀의 물대포를 맞은 모이통은 언제 더러웠었다는 듯 깨끗해졌다.
모이통뿐만 아니라 그 옆에 자리한 녹슨 철망도 찹쌀의 물대포가 지나가자, 새것처럼 깨끗하게 변했다.
순식간에 진행된 닭장 보수의 현장에 나는 말 없이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짝짝짝.
“너희 정말···. 대단한 애들이구나?”
어떻냐니.
브라보다. 얘들아.
**
한울이 노을과 찹쌀의 능력에 감탄하고 있던 그 시각.
“아무리 생각해 봐도···. 원인은 그거밖에 없어!”
구름 떡집의 주인.
강지민은 테이블에 박고 있던 고개를 벌떡 들어 올리며 주먹을 반대편 손바닥에 가져다 내리치며 외쳤다.
유레카!
다크서클이 가득한 눈가에 눈빛만 형형하게 빛나는 모양이, 옆에 사람이 있었더라면 화들짝 놀랄 만큼 번뜩였다.
놀랄만한 건 지민의 눈빛뿐만이 아녔다.
항상 깨끗함을 슬로건으로 걸었던 구름 떡집의 주방은, 미친 과학자의 실험실 마냥 엉망이 되어있었다.
여기도 호박.
저기도 호박.
온 주방이 모두 멀쩡한 호박, 잘린 호박, 갈린 호박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그런 주방의 모습 따위 눈에 들어오지 않는듯.
지민은 위생장갑을 벗은 후 앞치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자신을 시험에 들게 만든 원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나야. 강지민. 다른 게 아니고. 한울아, 너 저번에 가져온 호박. 그거 집에 많다고 했지? 나한테 다 팔아. 내가 돈은 얼마든지 줄게!”
셧업앤 텍마머니!
매드 사이언티스트에 빙의한 지민이 전화기에 대고 따따블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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