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너, 힐러였니?!
미화리 신흥강자로 뜨고 있는 떡집.
구름 떡집 사장 강지민은 생각했다.
‘얜 도대체 뭐지?’
몇 주 전에 아예 서울을 정리하고 내려왔다면서 이사 떡을 사가더니, 농사한다길래 호박 모종을 줬더니 며칠 만에 호박을 한 아름 가지고 돌아왔다.
‘그것도 내가 여태 본 것 중에 제일 맛있는 호박.’
맛뿐인가, 수분함량도 남달라서 제2의 상품으로 생각한 호박 주스를 만들기에도 딱 이었다.
거기다 효능까지.
부기를 빼는데 한울이 재배한 호박만큼 효과가 좋은 게 없었다. 마치 약을 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혹시나 몰라 기관에 의뢰해봐도 그저 영양성분이 가득한 슈퍼 호박이라는 판정만 받았을 뿐, 그 흔한 농약도 검출되지 않았다.
덕분에 호박 주스 상세페이지에 해당 검사 증명서를 마케팅용으로 잘 사용하고 있었다.
‘호박 주스 매출도 떡 매출을 넘겼고.’
호박떡과 호박 주스에 사용되는 호박의 종류는 달랐다.
한울이 생산해 내는 호박으로만은 호박 주스의 수요를 따라가기가 버거웠기에.
게다가 시험 삼아 한울의 호박으로 호박떡을 만들어보기도 했는데, 세상에. 호박떡까지 이걸로 만들었다간 자신의 몸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았다.
‘맛있어도 너무 맛있었지.’
호박의 달콤함이 극대화되었고, 씹으면 씹을수록 깊어지는 감칠맛에 자신이 만들어놓고도 감동할 정도였다.
호박 주스는 그저 갈아서 진공 팩에 넣기만 하면 되지만, 호박떡은···.
지금 수량보다 더 많은 양을 생산하게 되면, 절대 혼자서 가게 운영이 불가능할 게 불 보듯 뻔했다.
지금도 구매고객들의 요청으로 워라밸은 가져다 버린 지 오래인 만큼 더 일을 늘리기는 몸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직장 근무시간이었던 9 to 6가 그리워질 지경이면 말 다 했지.
‘덕분에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오르긴 했지만.’
호박 주스 업로드 후, 매출이 호박떡만 판매할 때보다 약 3배가 더 늘었다.
재구매율 200%.
하루에 한 사람당 한정된 수량만 판매해서 이 정도.
만약 구매 제한 없이 팔았다면, 재구매율은 훨씬 더 뛰었을 테다.
그래서 그랬다.
한울이 인터넷으로 자신이 기른 작물을 판매한다고 했을 때 도와준다고 한 건.
‘이럴 줄 알았으면 도와준다고 안 했지.’
“대체 홍보를 어떻게 했는데 매일 완판이야?”
“글쎄. 내가 재배한 게 맛있어서?”
“아니 네가 재배한 게 맛있는 건 당연히 인정인데. 이게 기본 노출이라는 게 있거든. 스테비아 방울토마토가 특별한 키워드도 아니고, 경쟁자만 해도 당장 5천 명이 넘는데, 어떻게 올리자마자 주문이 들어올 수 있지? 대체 비법이 뭐야?”
호박떡을 1페이지에 띄우는 데만 해도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소비했던 저였다.
경쟁자가 고작 500명밖에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광고 노출 키워드를 분석하고, 키워드에 알맞은 광고비를 산출하기 위해 50원부터 10원씩 올리는 등.
이제는 1페이지에서도 5번째 안에 있어 ‘호박떡’이라고 검색만 해도 최상단에 뜨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꽤나 많은 트라이얼을 거쳤다.
하지만 한울은 그런 것 없이 그저 대충 찍은 사진 3장과 ‘깨끗한 미화리 산골 마을에서 재배한 스테비아 방울토마토’라는 문장 하나로 첫날부터 완판. 아니, 올리자마자 주문을 받는 기염을 토해냈다.
그런데 그게 그냥 ‘맛있어서’라니.
노하우를 알려주기는커녕, 도리어 자신이 배워야 할 판이었다.
어서 노하우를 알려주라고 무언의 압박을 하자, 한울이 입꼬리 한쪽을 씩 올리며 말했다.
“사실은, 장 이장님께 링크 드렸었거든. 사이트 오픈했다고.”
“장 이장님이···? 그럼 인정.”
사실 광고보다 더 강력한 게 있긴 하였다.
그건 바로 입소문.
아무리 며칠을 머리 싸매고 검색 키워드를 바꿔도 커뮤니티에서 도는 입소문 한 번이면 한방에 뜰 수 있다.
‘내 호박 주스도 그랬으니까.’
호박 주스도 먼저 샘플을 받은 구매자들의 주문으로 인해 첫 오픈 날부터 준비한 수량을 다 팔긴 했지만, 장 이장님의 구매가 시작되고 나고부터는 기존구매자와 새로운 구매자들의 경쟁으로 인해 품절되는 시간이 확 당겨졌다.
“아무튼, 고마워. 덕분에 첫날부터 안 헤매고 잘 보냈어.”
“아니, 내가 고마워해야지. 덕분에 택배비 더 싸게 됐으니까. 근데 너 혼자 이거 재배 다 한 거야? 매일 50팩씩이면···. 야, 너 잠 언제 자냐?”
아무리 돈 버는 게 좋더라도, 몸은 챙겨가면서 해야 했다.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매출과 건강을 바꾸기에는 아직 살날이 많이 남았다.
“잠? 충분히 자는데? 11시에 자서 7시 기상.”
“8시간이면 오케이···. 근데 농사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고 하던데···. 대단하다.”
“혼자 하는 게 아니거든.”
“응? 그럼 누구 고용해서 해?”
“고용이랄까···. 뭐, 비슷한 거야.”
“고용이면 고용이지, 비슷한 건 또 뭐야?”
“그런 게 있어. 인터넷 판매 시작하면서 새로 합류한 친구도 있어서. 훨씬 편해졌어.”
“친구?”
“어.”
혼자서 농사도 하면서 주문을 쳐내는 게 신기해 혹시나 스스로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까 싶어 물어봤더니.
친구들이라니.
점점 알쏭달쏭한 이야기만 하는 한울에 지민은 더이상 노하우를 캐는 것을 멈췄다.
뭐,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지금은 한울의 노하우를 듣는 것보다는, 얼른 택배차가 오기 전에 송장 작업을 끝내는 게 더 급했다.
“어우 조만간 포장 알바라도 구해야지. 아이고 삭신아.”
허리를 두드리며 다시 박스테이프를 든 지민의 앞에는 포장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아이스박스가 높이 쌓여있었다.
**
구름떡집에서 오늘치 인터넷 주문 발송을 완료한 나는, 간식거리를 사 들고 집으로 향했다.
“얘들아 나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도도도 뛰어와 내 목에 폴짝 뛰어오르며 반기는 노을이부터.
“컁! 왔냐? 그건 뭐냐?”
무거운 궁둥이를 씰룩이며 TV 앞에서 현관으로 걸어오느라 바쁜 찹쌀이.
“꽉!”
그리고 새로운 식구가 된 포동이까지.
“주인! 왔냐? 시킨 건 다 끝내 놨다! 이거 먹어도 되냐? 킁!”
모두가 뛰어나와 몸통박치기로 반겨주는 통에 몸이 휘청거리긴 했지만, 퇴근할 때마다 불 꺼진 집을 홀로 들어가야 할 때보다는 훨씬 더 나았다.
“하하. 잘 놀고 있었어? 당연히 먹어도 되지. 그치 노을아?”
“그렇다! 오늘치 할 일을 했으니 포동이도 먹을 자격이 있다! 컁!”
포동이는 최근에 새로 알게 된 너구리 정령이다.
인터넷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 스테비아 방울토마토가 있는 밭으로 갔다가 몰래 서리를 하는 걸 발견했다.
‘케, 케헥! 여기 밭 주인이냐···? 미안하다!’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방울토마토를 땅에 후드득 떨어뜨린 너구리의 배는 이미 포동포동하다 못해 빵빵해져 있었다.
너무나 달콤한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먹고 말았다며 미안하다고 하는 너구리의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우리의 군기반장 노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왜 훔쳐먹었냐? 여긴 산이 아니다! 컁!’
‘요즘 산에 열매도 없고···. 달콤한 열매를 맛본 지 너무 오래돼서 그만···. 미안하다! 킁!’
‘호에···. 그래도 나쁘다! 나한테 얘기를 하지 그랬냐!’
‘여우 니가 어딨는지 몰랐다 킁!’
호통을 치는 노을과 주눅 들어있으면서도 할 말은 하는 너구리의 모습은 누가 봐도 서로 아는 사이 같았다.
‘노을이 친구니?’
‘응! 정령들은 다 친구다! 너구리 쟤는 원래 식탐이 많아서 열매를 열게 하면 맨날 다 먹는 먹보다!’
‘그래···?’
보아하니 노을이 노래를 불러 열매를 만들면 옆에서 다 먹은 듯하다.
‘하지만 여우 네가 만든 열매들은 너무 맛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어···.’
‘여우 아니다! 대단하고 위대한 노을이다!’
‘노을······? 그게 무슨 소리냐?’
‘여기 우리 한울이 지어준 이름이다! 너도 여기서 일하면 한울이 이름도 지어주고! 맛있는 음식도 준다!’
‘그, 그럼 이 열매도 먹을 수 있냐? 킁!’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일하면 당연히 먹을 수 있다! 그렇지 한울?’
누가 들으면 나를 노동 착취하는 사람으로 의심할 게 뻔한 얘기를 당당하게 하는 노을에 나는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응 당연하지. 근데, 안 도와줘도 노을이 친구면 먹어도 돼. 당연히.’
원래는 산에 있어야 할 노을이 이곳에 있어 벌어진 일인 것도 같고.
‘그럼 나도 여기서 일을 하겠다! 뭘 하면 되냐?’
‘음···. 포장을 한 번 해볼래?’
조금 전 아주 야무지게 두 발로 서서 토마토를 들고 있는 모습이 아주 인상 깊었다.
‘포장? 알았다! 하겠다! 킁!’
그래서 그날부터 포동이는 우리 신비농장의 일원이 되었다.
포장은?
두말하면 잔소리.
작은 발로 하나씩 따 차곡차곡 포장할 줄 알았는데, 너구리 정령은 무려 염력을 사용할 줄 알았다.
포동의 의지대로 스테비아 방울토마토는 움직여 포장 팩에 들어갔고, 나는 그저 옆에 앉아 뚜껑만 닫아주면 포장 끝.
“난 병아리 밥을 챙겼다. 꽉! 같이 노래도 불렀다!”
포동과의 만남을 회상하고 있으려니 내 발치에서 찹쌀이 날개를 퍼덕이며 자신이 한 일을 자랑했다.
노래?
노을의 노래는 밭에서 많이 들어봤지만, 찹쌀이가 노래하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찹쌀아, 너도 노래할 줄 알아?”
“당연하다 꽉! 한울도 듣고 싶냐?”
듣고 싶냐고 물어봐 놓고서는, 얼른 노래를 시켜달라는 듯 찹쌀은 고개를 쭉 빼고 눈을 반짝이며 나를 연신 쳐다보았다.
“그래. 한번 해······.”
찹쌀이 이렇게 흥분한 모습은 TV를 틀어달라고 할 때를 제외하고는 처음이었다.
어쩐지 자신의 노래 실력을 뽐내고 싶어 어찌할 줄 몰라하는 찹쌀에게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컁! 안된다!”
어깨에서 고개를 밑으로 쭉 빼고 내 손에 있는 간식이 담긴 하얀 봉투를 요리조리 쳐다보고 있던 노을이 고개를 발딱 들며 다급히 말렸다.
“....봐? 응? 왜?”
갑작스러운 노을의 반대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미 찹쌀의 노래는 시작되고 있었다.
“꽥! 꽥꽥꽥! 꽤애애-액 꽉! 꽈애애액!!!”
“호, 호에···. 나는 막지 못했다. 귀, 귀가 아프다···. 컁.”
오. 마이. 갓.
세상에.
찹쌀이 노래를 시작하자 내 어깨에 있던 노을은 두 앞발을 들어 자신의 큰 귀를 접고는 도리도리를 하기 시작했다.
“호에엥- 컁!”
도리도리하다 내 어깨에서 바닥으로 떨어졌음에도 노을은 제 귀에 올린 앞발을 절대 내리지 않았다.
“킁! 입맛이 없어지는 노래다.”
포동은 무려 입맛이 없어진다고 한다.
입맛이 없어진다니.
주체못할 입맛 때문에 나와 계약까지 한 정령이 입맛이 없어진다라.
하지만 그만큼 찹쌀의 노래는 들어주기가 힘들었다.
아마 지옥에서 나는 악마의 이파리를 비틀어 짜면 저런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꽤애애애액!!! 꽉! 꽉!”
계속해서 이어지는 찹쌀의 노래에 나도 슬그머니 손을 들어 귀를 막았다.
“하하. 찹쌀아. 잘 들었어. 이제 그만.”
“꽉꽉! 꽤애액! 꽈꽈꽈꽈꽉!!”
하지만 찹쌀은 헤비메탈에 심취한 오리처럼 연신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 멋이란 걸 뿜고 있었다.
아니, 멋이 아니라. 털.
“퉤! 이제 그만해라! 컁!”
귀를 막고 괴로워하던 노을의 입에 털이 들어가고.
“나, 나는 나중에 다시 오겠다. 킁!”
입맛이 없어졌다며 자신의 배를 보며 우울해하던 포동이는 현관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가려 했다.
조금 전 내 귀가와 동시에 따뜻함과 웃음이 넘치던 집은 순식간에 서로 먼저 탈출하려는 곳으로 변했다.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찹쌀의 깃털을 계속해서 퉤퉤 하고 있던 노을도 직립보행을 하며 포동을 따라나서려고 했다.
두 앞발은 여전히 귀를 막고 있었다.
이러다가 다 가출하게 생겼네.
“꽤애애액! 꽥! 꽈아아아악! 꽤액!”
근데.
분명 노래는 구리다 못해 저 지옥에서 기어 나오는 것 같은데···.
아까부터 묘하게···.
힘이 솟는다···?
“어라? 왜 이러지? 아까 자양강장제를 먹어서 그런가.”
구름떡집에서 박스 포장을 할 때 지민이 죽겠다며 건네줘 먹긴 했는데···.
그게 그렇게 효과가 좋았나?
“꽈아악! 꽥! 꽥!”
“설마···? 찹쌀이 너···.”
지옥에서 끌어올린 미역의 멱을 딴 목소리 같긴 했지만, 일단 노래다.
그리고 그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비록 귀는 괴로우나 온몸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결론은 하나.
찹쌀이 너, 힐러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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