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선물하는 기쁨
힘이 솟는 건 좋다.
피곤함에 찌들어 흐느적 되는 것보다는, 활기가 넘치는 것이 여러모로 좋았으니.
하지만.
“꽤애애액! 꽉! 꽈아아악!”
몸에 활기가 넘치면 넘칠수록, 찹쌀의 노래는 듣기가 힘들어졌다.
청력도 최상의 상태가 되어서 그런가.
이제는 귀를 가린 손을 뚫고 들리는 듯한 찹쌀이의 노래.
이제는 모두의 청력을 지키기 위해 내가 나서야 할 때였다.
서프라이즈로 보여주려던 선물을 꺼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찹쌀아. 이것 봐라?”
나는 왼쪽 손목에 달랑거리는 검은 비닐봉지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손잡이를 뽑아 들었다.
뾰로롱!
아래에 있는 전원 스위치를 켜자마자 요란한 노랫소리와 함께 휘황찬란한 오색 빛을 뿜어내는 기다란 막대.
막대 위에는 날개가 달린 공모양의 크리스탈 구가 돌고 있었다.
“꽤애액···. 꽤···. 액?”
노래와 빛을 뿜다 못해 크리스탈구까지 회전하는 요술봉에 홀린 듯, 어느새 노래를 멈춘 찹쌀이 입을 벌린 채 뒤뚱거리며 다가왔다.
“자, 이건 찹쌀 이한테 주는 선물. 요술봉이야.”
“요술봉···? 이, 이렇게 반짝이고 빛나는 것이 정말로 내거냐 꽉?!”
“어. 찹쌀이 거야.”
“마음에 무척 든다 꽉!”
마음에 든다니 나도 안심이 되었다.
앞으로는 정말 죽을 것처럼 녹초가 되지 않는 이상 찹쌀에게 노래는 시키지 않으리.
나는 씩 웃으며 날개를 파다닥 거리는 찹쌀을 향해 요술봉 밑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퐁
그러자 발사되는 날개 달린 크리스탈 구.
봉에서 떨어지자 크리스탈 구에 붙은 날개가 움직이며 짧은 비행을 하기 시작했다.
퉁.
점점 현관 쪽으로 가는 날개 달린 발사체.
“꽉? 날아간다! 내가 잡아 오겠다!”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발사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쫓아가던 찹쌀은, 그대로 마당으로 나갔다.
휴.
미션 클리어.
모두의 청력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호에엥-! 나는? 내 것은 없는 거냐?”
찹쌀의 노래에 귀를 막고 탈출을 시도하던 노을이 어느새 내 곁으로 돌아와 두 앞발을 모으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비록 찹쌀의 노래를 막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한 노을이었다.
그런 노을의 선물이 없을 리가.
당연히 사 왔지.
“우리 노을인 것도 당연히 있지.”
“호에에-!!”
기대로 반짝이는 눈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검은 비닐봉지에 손을 넣었다.
“여기. 짜잔!”
길이는 찹쌀이의 요술봉보다는 짧았지만, 부피는 더 컸다.
호기심 많고 식탐도 많은 노을을 위한 맞춤 선물.
바로 알록달록한 땅콩 초코 볼이 채워놓은 미니 사탕 뽑기 기계.
“호엥? 이게 뭐냐?”
기계를 꺼내자마자 미니 사탕 뽑기 기계의 윗부분인 투명한 통에 찰싹 붙은 노을이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투명한 원형 통 안에는 미리 넣어둔 땅콩초코볼이 잔뜩 들어있었다.
“자, 이걸 이렇게 돌리면···.”
침이 고이다 못해 흐르려는 노을의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아래쪽에 달린 레버를 돌렸다.
드르륵
탁.
레버를 탁 소리가 날 때까지 빙 돌리자, 원형 통 안에 있던 주황색 초코볼이 아래쪽에 있는 입구로 툭 튀어나왔다.
“호, 호에!!! 초코가 튀어나왔다!”
아무것도 없던 입구에 생긴 초코볼에 펄쩍 뛴 노을은, 다시 황급히 달려와 미니 기계를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꼬리를 붕붕 흔드는 걸 보니 적잖이 마음에 든 모양.
“이걸 이렇게 돌리면 저 안에 있는 게 나오는 거야. 어때?”
새로운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이처럼 이리저리 살피는 노을에게 묻자, 노을이 고개를 발딱 들었다.
이미 초코 볼은 노을에 입에 들어가 있었다.
“사탕도 넣어도 되는 거냐···. 컁?”
“응. 이제 사탕 숨겨놓지 말고 여기 두고 필요할 때 꺼내먹어. 알았지?”
노을은 다른 간식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먹었지만, 사탕이나 초콜릿처럼 동그란 간식은 자신의 비밀공간에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여우 구슬 모으는 것도 아니고.
유독 동그란 것들만 모아두는 이유가 궁금해 하루는 물어봤더니,
‘동그란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컁!’
그저 동그란 것들을 좋아하는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단다.
동그란 것들을 가득 쌓아놓고 보다가 하나씩 쏙쏙 빼먹는 게 재미도 있다 했다.
그래서였다.
시장에서 이 작은 사탕 자판기를 보자마자 사고 만 이유가.
투명한 보관함도 위에 뚜껑을 제외하고는 완벽한 원 모양을 갖췄기에, 보다 위생적으로 노을의 동그라미들을 모을 수 있을 테다.
참고로 지금 노을의 비밀장소는 소파 밑이었다.
“좋다! 한울이 최고다! 고맙다!”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노을의 머리를 긁어주자,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캥! 하고 울었다.
골골거리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자, 제 배를 두 손으로 감싼 포동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킁. 주인, 호, 혹시 내 것도 있나?”
없을 리가.
운 좋게도 오늘이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라 읍내 시장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먹을거리로 넘쳐났다.
넉넉한 기름에 튀겨 설탕과 견과류로 가득 채운 뜨끈하고도 달콤한 호떡, 큰 솥에 김을 풀풀 풍기며 쪄낸 옥수수, 감자 옷을 입은 커다란 핫도그와 한입에 넣다 보면 어느새 없어지는 호두과자.
뻥-! 하는 소리와 함께 무쇠 기계에서 바로 그 자리에서 튀겨지는 뻥튀기.
그리고 그 앞에 자리한 알록달록한 옛날 젤리와 알사탕들.
찰칵찰칵 경쾌한 가위 소리를 내며 엿을 파는 엿장수와 그 옆에서 어깨춤을 신명 나게 추며 주전부리를 파는 각설이까지.
그중 가장 맛있어 보이는 간식을 포동의 선물로 가져왔다.
“당연하지. 포동이 선물은···. 짜잔!”
그건 바로 풀빵.
“킁! 아까부터 달콤한 냄새가 난 걸 느꼈다! 이거였다니! 좋다! 그런데 이게 뭐냐?”
“아, 이건 풀빵이라고 하는 건데, 먹어봐. 아주 맛있어.”
동그랗게 생긴 풀빵은 밀가루 반죽이 얇아 가운데 있는 팥이 밖으로 비취기 십상이었다.
그 색이 꼭 얼굴의 중간만 진한 색상의 털을 가진 포동이의 모습과 닮기도 했다.
“후하! 맛있다! 킁!”
진득한 밀가루 반죽에 팥을 아낌없이 넣은 풀빵은 붕어빵과는 또 다른 달콤함이 있다.
좀 더 예스러운 맛이랄까.
요즘 붕어빵의 속은 슈크림이니 피자니 다양해졌지만, 아직까지 풀빵은 팥으로만 속을 채워 그 맛을 유지하는 것이, 어릴 적 먹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드륵 드륵 드륵.
옆에서 레버를 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초코 볼을 잔뜩 가져온 노을이 호동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포동, 내 것도 먹어봐라! 컁!”
용케도 그 작은 앞발에 초코 볼을 옹기종기 가져온 노을이는 아직까지 김이 폴폴 나는 풀빵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말했다.
손은 분명 포동을 향해 있는데, 눈은 풀빵에 고정되어 있는 게 적잖이 먹고 싶은 모양.
“알았다! 같이 먹자! 킁!”
노을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이며 풀빵이 담긴 하얀 종이봉투를 노을의 쪽으로 돌리는 포동이.
둘 다 식탐은 많지만, 그것보다 서로를 챙기는 모습이 못내 예뻐 보였다.
그런 둘의 모습에 나는 씩 웃으며 제일 큰 비닐봉지에 있는 것들을 꺼내 식탁 위로 펼쳤다.
“이게 다면 섭섭하지? 간식타임이다 얘들아?”
호떡과 옥수수, 뻥튀기와 사탕 그리고 엿까지. 먹거리가 보일 때마다 집에 있는 요 녀석들이 생각나 하나씩 사다 보니 이렇게나 많이 사 오게 되었다.
식탁을 한가득 채운 먹거리는, 어느새 모여 각자의 지정석에 앉은 정령들 몸집의 몇 배는 되는 양이었다.
“오늘 저녁은 이걸로 퉁! 어때?”
잘하면 저녁을 스킵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자연스럽게 제안해 봤지만, 정령들의 반응은 단호했다.
“호엥? 이건 간식이다! 밥은 밥!”
“킁! 동의한다.!”
“....꽉.”
너희 이걸 다 먹을 수 있어? 라는 말이 턱 끝까지 올라오면서도, 식탐 없는 찹쌀이까지 내 요리를 먹고 싶다며 동의를 하는 걸 보니, 문득 행복함이 느껴졌다.
요리를 인정받았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이게 바로 부모의 마음이랄까.
그저 내가 준 것들을 맛있게 먹으며 행복함을 표현하는 모습들을 보자니 그들의 에너지가 나에게도 전해지는 듯했다.
“그래. 많이 먹고, 맛있게 먹고 건강만 해라!”
“컁? 우리는 아프지 않다!”
“킁, 아픈 게 뭐냐? 먹는 건가?”
“한울이 제일 약하다! 내가 노래 불러주겠다 꽉!”
많이 먹고 건강하라는 내 말에, 고개를 동시에 갸웃거리는 정령들.
“하하. 그래그래. 알았어. 나만 건강하면 되네.”
그러니까 찹쌀아, 노래는 당분간 하지 않는거다?
언제 해도 되냐고?
음. 아마···. 피곤함에 몸부림치다 내가 기절할 때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
다음날.
나는 챙이 넓은 모자와 호미를 챙겨 집 밖을 나섰다.
몸 상태는 최상.
발걸음이 이렇게 가벼웠나 싶을 정도였다.
“얼마나 자랐으려나~”
흥얼흥얼.
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부르며 대문을 넘었다.
목표지는 바로 집 옆에 위치한 텃밭.
“진짜 여기는 우리가 도우면 안 되는 거냐? 컁?”
내 어깨 위에서 어김없이 질문을 던지는 노을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응. 지금은 안돼. 하더라도 해가 진 후에. 사람들이 없을 때. 알았지?”
“켕···. 알았다! 그럼 옆에서 구경만 하겠다!”
“그래. 얼마든지.”
비닐하우스에 있는 작물들과는 달리, 텃밭은 자연스럽게 가꾸는 중이었다.
“이건 뭐냐?”
“그건 명이나물. 저번에 스테이크 먹었을 때 살짝 짭조름하고 달았던 잎 있지? 그거야.”
“많이 키워야겠다! 컁!”
대외적으로 농사를 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제는 마을 어르신들도 내가 산 중턱에 있는 비닐하우스 안에도 무언가를 재배하는 중인걸 알고 있었지만, 어떤 작물을 키우는지는 정확히 모르고 계셨다.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그건 다 이 텃밭 덕분이었다.
상추와 명이나물은 초록색 잎을 싱그럽게 보이며 무성히 자라는 중이었고, 한켠에 심은 딸기도 넝쿨을 뻗으며 자리를 넓혀가고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작물들로 빼곡한 내 텃밭에는 그 흔한 시든 잎 없이 파릇했다.
“원래 모범생한테는 참견하지 않지.”
그야말로 텃밭의 교과서. 그 자체.
그러다 보니, 그저 잘하고 있나 가끔씩 확인하며 응원만 할 뿐, 별다른 참견은 하지 않으셨다.
작물이 잘 되는 이유는 다 노을과 찹쌀 덕분이었다.
노을이 한번 뒤엎은 땅은 언제 황폐했었냐는 듯 영양이 가득했고, 찹쌀이 밤마다 뿌린 물 덕분인지 작물들은 하나같이 모두 쑥쑥 자라는 중이었다.
“이야. 이거 엄청나게 컸네. 보통 대파 세 개 합친 크기만 한 데?”
특히나 밑동은 하얗고, 윗부분은 초록색을 가진 이 대파의 성장은 텃밭 작물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많이 컸네. 구이 해 먹기 딱 좋은 크기야.”
“구이? 저 매운 파를 먹는 거냐···?”
“그럼. 이걸 숯불에 구워 먹잖아? 그럼 매운 건 사라지고 달콤함만 남는데, 또 그게 별미지. 저 멀리 나라에서는 대파 구워 먹는 거로 축제도 열어.”
정확히 말하자면, 대파가 아니라 칼숏이라는 작물이지만, 지난번 시험 삼아 대파를 하나를 구워 먹었더니 칼숏과 비슷한 맛을 냈었다.
축제라는 내말에 노을의 꼬리가 살랑거리기 시작했다.
“호에···. 축제···? 그럼 우리도 축제를 여는 거냐?!”
“축제라···.”
눈을 들어 앞을 보니 밑동이 굵은 대파가 빽빽하게 자라있다.
못해도 몇십 명은 먹을 수 있는 양.
수량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도 양이면,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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