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밥 한 숟가락 더
해가 뉘엿뉘엿 지며 하늘을 주황빛으로 물들일 무렵.
끼익.
나무로 만든 대문의 경첩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조만간 기름칠을 해야 할 듯하다.
“와이고. 이게 다 뭐꼬.”
삐걱거리는 문을 밀고 들어온 앞집 강 할머니가 마당을 보고선 놀라움을 내뱉었다.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아직 약속한 시각에서 30분이나 일렀다.
시간을 확인한 나는 그릴 옆에 있는 평상을 턱으로 가리켰다.
“오셨어요?. 일찍 오셨네요? 저기 앉아 계세요.”
토치로 그릴에 있는 숯에 불을 붙이고 있는 터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도울 거 있으면 도와주려고 빨리왔제. 갑자기 잔치는 뭔 잔치고.”
오늘은 바로 노을에게 말했던 축제를 재현하기 위한 날이었다.
아. 규모가 크진 않으니,
축제가 아닌, 잔치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파’ 잔치라고 해야 하나.
“파가 아주 실하게 자라서요. 보시다시피, 양도 많고.”
어렸을 적부터 마을에서는 무슨 일만 있으면 잔치를 벌였다.
계기는 다양했다.
사소하게는 미꾸라지를 많이 잡았으니, 추어탕을 많이 끓이게 된 걸 기념하는 잔치.
소를 한 마리 잡았으니 소고기 잔치.
어느 집 아무개가 한 큰일을 기념하며 또 잔치.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는, 마을 어귀에 플랜카드 까지 걸어놓고 하루종일 어르신들이 춤추고 노래 부르며 잔치를 했다.
항상 기쁜 일이나 좋은 일이 있을 때면 나누는걸 당연시하는 마을에서 자란 만큼, 나 또한 실하게 자란 파를 보았을 때 바로 생각난 것이 바로 잔치를 여는 것.
여태껏 경험한 바로는, 맛있는걸 먹을 때는 혼자서 먹는 것보다 사람들이 북적북적 모여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며 먹는 것이 훨씬 더 그 음식의 맛을 좋게 만들었다.
그러니, 실한 파를 키워낸 사람으로서, 잔치를 여는 건 당연했다.
평상 한켠에 손질되어 쌓여있는 파를 본 강 할머니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파를 다 먹는다꼬? 매울낀데? 속 따갑지 않겠나?“
"에이 저거 금방 먹어요. 돼지고기도 조금 준비해 놨으니 파만 먹기 부담인 분들은 같이 드시면 될 거에요."
“안 그래도 왔다 갔다 하면서 파 억수로 잘 키웠네 했는데 어제 갑자기 없어져가 이상타 했다. 근데 파가 좀 이상하다. 위에는 어데 같노?”
“오늘은 파 밑동만 구워서 먹으려고요. 할머니 아직 파 구워 드셔보신 적 없으시죠?.”
“파를 구워 먹어? 밑동만?”
계속해서 의문을 표하는 강 할머니를 위해 나는 파를 한 움큼 집어 그릴 위에 올리며 씩 웃었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이게 진짜 별미거든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한번 드셔보시면, 계속해서 찾으실걸요?
센 불에 대파의 겉면이 새까맣게 탈 정도로 익을 무렵.
잘 익은 파를 꺼내려 집게를 들자,
“우리 왔다!”
끼익.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나무 대문이 새로운 손님들의 도착을 알렸다.
“으잉? 한울아! 대파 저거 다 탄다!”
**
파가 타고 있다며 서둘러 그릴 위에서 대파를 꺼내려는 심 할아버지 덕분에 잠깐 소동이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파’ 잔치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구운 파가 이리 맛있을 줄 누가 알았나? 한울이 네 덕분에 신기하게도 먹고. 고맙다.”
처음이 어려웠지. 탄 겉면을 벗겨낸 뽀얀 파의 밑동을 토마토와 파프리카를 베이스로 만든 소스에 찍어 맛을 본 동네 사람들의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잘 익어 매운맛은 사라지고, 특유의 단맛만 남아 부드럽게 넘어가는 구운 파의 맛에 모두가 반한 것.
“이제 파도 거의 다 먹었으니까, 밥을 좀 먹어야겠제?”
“예? 배 안 부르세요?”
부른 배를 하고 밥을 먹겠다는 어르신들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밥이 들어갈 자리가 남았다니.
파만 먹은 게 아니라 돼지고기도 같이 먹었다.
다들 배부르시다고 배 두드리던 분들은 어디에?
놀란 눈을 한 나를 본 강 할머니가 그럴 줄 알았다며, 미리 가져온 보자기를 풀었다.
분홍색 보자기에는 압력밥솥이 들어있었다.
“하이고. 요새 아들은 다 이런다. 내가 이럴 줄 알고 밥 가꼬 왔다 아이가. 다들 뭐 하나씩 가지고 온 것 같은데 다 꺼내 보이소.”
강 할머니를 선두로 어르신들은 하나둘 가져온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저 보따리들이 다 반찬이었다니.
보따리를 풀 때마다 나오는 반찬들의 향연에 입을 떡 벌릴 때였다.
“와이고마. 이게 뭐꼬? 게장 아니가?”
꽃분이 할머니가 가져오신 보따리가 열리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꽃분이 할매가 만든 게장이가? 이거는 진짜 귀하다.”
꽃분이 할머니의 간장게장은 마을에서 도둑으로 아주 유명했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그 맛!
먹다 보면 어느새 밥이 사라져있는 마술!
한번 맛보면 잊지 못해 게장이 숙성될 때만을 기다리며 돈을 꼬불쳐 들고 있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귀한 걸 가져오셨다니.
아무리 배가 불러도 저 게딱지에 밥은 비벼 먹어야 했다.
어느새 숟가락을 잡아 쥔 나를 본 꽃분이 할머니가 살풋 웃으며 말했다.
“한울이 야가 간장게장 좋아하잖습니까. 그래서 가져왔지. 자, 배불러도 딱 한 숟가락만 밥이랑 무봐라. 밥을 먹어야지 속이 편하다.”
“역시 꽃분이 할머니. 최고십니다!”
딱 한 숟가락이라뇨.
게딱지에 밥 한 공기는 국룰아닙니까!
**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떠나고.
움직일 때마다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배를 달래며 뒷정리를 할 때였다.
“그건 그렇고. 한울이 니 요새 운동하나?”
옆에서 나와 비슷한 포즈로 그릇을 한데 모으던 장 이장님이 날 쳐다보며 물었다.
“운동이요?”
“어. 옆에서 보니까 단단하네. 운동을 요새 좀 많이 하나보제?”
“밭일해서 살이 좀 빠졌나 봐요.”
“아니다. 이건 밭일만 해서 만들어진 몸이 아니여! 처음에 여기 올 때보다 얼굴도 훨씬 좋아졌고! 비결이 뭐꼬?”
“그 정도예요?”
“하모! 좀 알려줘 봐라. 내도 우리 꽃분이한테 좀 잘 보이게.”
사실 운동하냐는 소리는 장 이장님께만 들은 게 아니었다.
요즘 날 만나는 사람마다 하는 소리.
얼굴이 좋아졌다.
몸이 좋아졌다.
무슨 운동을 하냐.
영양제를 따로 먹는 것이 있냐.
따로 운동은 하지 않고 그저 정령들과 놀며 농사를 짓는 것뿐인데.
툭 튀어나왔던 뱃살은 어느새 쏙 들어가 있었고, 지방 대신 근육이 여기저기 자리 잡기 시작했다.
거기다 푸석했던 피부도 어찌 된 영문인지 매끈해진 게, 초등학생 이후로 이렇게 좋은 피부는 처음이었다.
자세도 발라지고, 다크서클도 없어진 게, 요즘 샤워하면서 거울 볼 맛이 났다.
“자급자족하면서 살아서 그런가 봐요.”
“그게 다가? 근데 나는 와일노.”
자급자족이라면 평생 하고 있는데 왜 자신의 몸뚱이는 이 모양이냐고 장 이장님이 툴툴거릴 때였다.
“이야. 곧 있으면 모내기 철인데 든든하네! 올해는 한울이 덕분에 우리가! 이기는 거 아니가?”
한쪽 구석에서 그릴을 치우고 있던 심 할아버지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예? 이기다니요?”
모내기 철이 다가오는 것과 이기는 것에 대한 상관관계를 찾지 못한 내가 묻자, 심 할아버지가 정리하던 숯불을 내려놓고는 내 옆으로 와 본격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다른 게 아이고. 이제 우리 마을이고 저 밑에 마을이고 사람이 없잖아.”
“그렇죠···?”
“젊은 사람들 다 떠나고, 이제 남은 건 우리 같은 늙은이들뿐이 없어.”
“에이. 이제 제가 있잖아요.”
“그래. 니같은 젊은 사람이 많이 오면 좋겠지만, 여서 할 게 뭐 있노. 땅 파먹는 거밖에 더 있나.”
“농사 짓는 게 어때서요. 흙도 밟고 몸도 움직이고 좋죠. 돈도 잘 버시면서.”
농사를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
1년에 억 단위로 버시는 분들이 수두룩한 게 농사짓는 분들이다.
괜히 시골에 부자가 많다는 소리가 나온 게 아닌 것.
하지만 심 할아버지는 내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셨다.
“뙤약볕에서 일하는 게 쉬운 게 아니라 그라제. 내는 우리 손주가 한다 하면 말릴끼다. 에어컨 바람 슝슝 나오는 데서 편하게 일해야지. 그라라고 내가 쎄가빠지게 고생해가며 뒷바라지 해주고 있다 아이가.”
말을 하다말고 심 할아버지가 한숨을 내쉬자, 옆에서 남은 반찬들을 정리하던 강 할머니가 대화에 참여했다.
“뭐든 내가 하고있는게 제일 힘든 거라. 사람마다 적성에 맞는 게 있는데 그걸 왜 니가 걱정하고 있노. 야 봐라. 처음에 여 왔을 때 몰골보다 지금이 훨씬 더 맨들하고 좋잖아.”
“글나?”
“하모. 안 그러나 한울아?”
“네. 전 아무래도 사무실보다는 땅 파먹고 사는 게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 주는 상사도 없고, 이렇게 어르신들이랑 맛있는 것도 먹고요.”
강 할머니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심 할아버지가 그렇냐며 손뼉을 짝하고 쳤다.
한숨 쉬던 것도 없어진 걸 보니, 내 대답이 꽤나 위로가 된 모양.
“아이고. 말하는 것 봐라. 청산유수다. 청산유수.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라. 알았제?”
“요리도 못하면서 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말하라 하노. 딴소리 말고 한울이가 물어본 거에 대답이나 해줘라. 아 목 빠지겠다. 한울아, 니가 좀 이해해라. 이 영감탱이가 늙어서 그렇다. 늙어서.”
“뭐라카노! 내 다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막 대답해 줄려고 했다!”
“웃기지 마라. 니 그러고 맨날 삼천포로 빠지는 거 내가 모르는 줄 아나.”
금방이라도 또 싸울 것 같은 두 어르신의 대화에 내가 얼른 끼어들었다.
“에이. 저도 그러는데요 뭐.”
“그제? 이건 늙어서 그런 게 아이다. 저 할매는 뭐 맨날 나가 말 좀 하려면 저런다. 떼잉.”
“하이고. 니한테 대답 한 번 듣다가는 숨넘어갈 것 같아서 글제. 답답해서 안 되겠다. 내가 대답해 줄게. 뭐가 이기냐면···.”
“모내기 배 시합! 거서 이긴다는 거다!”
모내기를 걸고 시합한다니?
처음 들어보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예?”
“사람이 없으니까 마을끼리 시합해서 진 마을이 이기는 마을 사람들 모내기를 다 줘야 한다!”
“진 마을은요?”
“진 마을 사람들은 알아서 하는 기고.”
“아···. 그래도 요즘엔 다 기계로 해서 편하지 않아요?”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모내기는 마을의 큰 이벤트 중 하나였다.
벼농사하지 않는 집이 없었고, 그때는 기계도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 모 하나하나 사람이 직접 심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판만 옮기면, 심는 건 기계가 다 알아서 해주는 거로 알고 있어 고개를 갸웃하자, 심 할아버지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며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옛날보다는 많이 편해졌지. 그래도 사람 손이 안 갈 수가 없다. 모심기 전에 트랙터로 로타리도 쳐야 되고, 약도 쳐야 되고···. 할 게 많다. 이양기로 모심어도 또 한 번씩 손 봐야 줘야 한다.”
“아···. 그럼 진 마을이 그걸 다 해주는 거예요?”
“하모. 이긴 마을은 그해 벼농사는 편하게 하는 거지.”
두 마을의 모내기를 한 마을에서 다 한다라.
이건 좀 컸다.
“그럼 시합은 뭐로 하는 거예요? 축구? 족구?”
역시 시합하면 축구와 족구 아닌가.
구기 스포츠라면, 군대스리가에서 MVP를 몇 번이나 받았던 만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심 할아버지는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우리 나이에 그거 하면 뼈 부사 진다.”
“하모. 그거 할 인원도 없다. 그리고 생각해봐라. 우리 마을에는···. 심가가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아···. 그렇네요.”
이어진 장 이장님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 이장님은 뒷말을 흐렸지만, 옆집 심 할아버지가 운동치라는 건 마을에서 유명했다.
아니, 운동치 보다는 몸치라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운동뿐만 아니라 몸을 쓰는 모든 것들에 엉성함을 자랑하셨다.
평생 농사일을 해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심 할아버지가 쟁기질을 할 때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일제히 할아버지 주변에서 도망치곤 했다.
눈먼 쟁기에 얻어맞을까 봐.
덕분에 심 할아버지는 우리 마을 사람 중 제일 많은 농사 기계를 소유하고 있다.
그런 심 할아버지에게 축구나 족구?
생각만 해도 어질어질했다.
“커, 커흠. 그래도 옛날만큼은 안 그런다. 많이 좋아졌다!”
“많이 좋아졌기는. 믿지 마라. 아무튼, 축구나 족구 같은 건 아니고···.”
“더 사나이다운 거제! 암!”
“...?”
왠지 모르게 비장해진 이장님과 심 할아버지에 침을 꿀떡 삼키자.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두 분이 동시에 말했다.
“시합 종목은 바로···. 남자라면 가슴이 끓어오르는!”
“사나이의 스포츠!”
“팔씨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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