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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24화 (24/163)

23. 신비농장이 어딘지 아시는 분?

화창한 봄.

따스한 햇볕이 대지에 내리쬐는 가운데.

미화리 산골 마을 논두렁에서는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으하하하! 오늘도 내가 쏠 테니까 다들 많이들 들어!”

“무슨 소리고! 오늘은 내가 쏴야지! 내가 무려 2승을 해버렸어!! 강순자도 못 한 2승을 내가 했단 말이다!”

“하이고. 그게 그리도 좋나. 내나 같은 사람한테 져놓고서는.”

돗자리 위에 서서 막걸리를 번쩍 들어 올리며 어깨춤을 추는 장 이장님.

가만히 앉아있다 쏜다는 말에 벌떡 일어난 심 할아버지.

그리고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차는 강 할머니까지.

각자 말하는 바는 달랐지만, 모두들 어깨를 들썩이며 흥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좋으세요?”

어르신들의 웃음소리는 전염성이 있었다.

그저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웃음 짓게 만들 만큼.

웃음에 전염이 된 내가 신이나 덩실거리는 어르신들을 향해 묻자, 막걸리를 뚜껑을 따던 장 이장님이 대번에 목소리를 높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당연하지! 2년을 내리 지다가 이긴 건데! 좋고말고! 자자! 어서 구워서 먹자! 아이고 한울아 니는 아무것도 하지 마라! 그거 놔라!”

일이 한창인 논으로 고개를 돌려 한껏 승리의 미소를 지은 이장님은, 다시 고개를 내게로 돌리다 집게를 집은 나를 발견하곤 펄쩍 뛰었다.

“맞다! 우리 챔피언은 손 하나 까딱하지 마라! 우리가 다 할 거다!”

휙.

장 이장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게를 낚아채 가는 심 할아버지.

화들짝 놀래며 집게를 가져가는 폼이 물고기를 낚아채는 물총새처럼 재빨랐다.

“어제도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는데요 뭘. 제가 굽겠습니다.”

팔씨름 시합에서 이기고 난 뒤로, 내가 손 하나 까딱하면 큰일이라도 난 것마냥 호들갑을 떨어대는 모습에 나는 다시 집게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냥 앉아서 입 벌리고 받아먹는 건 하루로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집게를 가져간 심 할아버지가 바로 두껍게 썰린 삼겹살을 집어 불판 위에 올린 것.

“어제로 되나! 마 우리 챔피언님은 모내기하는 내내 그냥 앉아서 고기만 드시면 됩니다.”

치이익.

삼겹살이 불판과 만나 맛있는 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한울이 네 덕분에 올해는 아주 편안-하게 벼농사한다. 고맙다.”

척.

옆에서 비닐장갑을 끼고 파절이를 무치던 강 할머니가 내 앞접시에 완성된 파절이를 덜어주었다.

간장과 고춧가루, 그리고 식초를 메인으로 넣은 파절이는 새콤한 향을 풍기며 입맛을 돌게 했다.

“어르신들이 앞 라운드에서 힘을 빼 두셔서 수월했습니다. 다 같이 이긴 거죠.”

매실청을 넣어 단맛까지 더해진 파절이를 음미하며 공을 돌리자니, 어르신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왐마. 이 자슥! 말도 어째 이렇게 예쁘게 하노? 어디 학원이라도 댕기는 기가?”

“말만 잘하나? 남자답지! 힘도 세지! 아니 어떻게 저보다 덩치가 2배나 더 큰 사람을 그렇게 한방에 넘겨 버린대?”

꼴꼴꼴.

양은 잔에 뽀얀 막걸리가 따라졌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좋았기는! 내가 옆에서 봤는데 인상 한번 안 찌푸리고 넘기더구먼!”

“크으. 그때 대단했지. 다들 저쪽이 이긴다고 했는데!”

“이겨버렸지!”

“그것도 한 번에!”

짠!

만담 짝꿍처럼 환상의 티키타카를 선보이던 장 이장님과 심 할아버지가 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원샷.

“크으! 진짜 멋지다! 김한울! 니가 진짜 사나이다!”

“인정한다!”

양은 잔을 머리 위로 뒤집어 탈탈 터는 두 미화리 상남자의 모습에 강 할머니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논으로 돌렸다.

“그나저나 저기는 생각보다 트랙터 잘 모네? 아예 농사를 안 해본 사람은 아닌가 보네? 차 이장 사돈 팔촌의 동생 친구라면서?”

신이 난 논두렁 사람들과는 달리, 이앙기에 모판을 나르는 사람들의 분위기는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우리 마을에 젊은 사람 왔다 하니까 사방에 소문 해서 구했다 카드라. 지자마자 내빼려는 거 차 이장이 붙잡아 왔단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단연 덩치가 남들보다 배는 큰 마동태.

“하이고. 저 덩치 해가지고 튈라 그랬나 보네? 못났다 못났어.”

시합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다 잡혀 왔다는 게 사실인 듯, 똥 씹은 것마냥 표정이 썼다.

“이기라고 팔씨름하기 전에 소고기도 사줬다던데. 차 이장 속이 좀 많이 쓰릴 것이여.”

“속 쓰릴 게 뭐 있겠노. 지가 뿌린 대로 거둔 건데. 꼬시다!”

하지만 그건 산골 마을 주민들이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승자는 승자만의 기쁨만 누리면 될 뿐!

“그렇지! 우리는 고기나 먹자!”

쨘!

막걸리 잔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

하하하

호호호

산골 마을 주민들이 논두렁에 앉아 하하 호호 웃으며 고기 파티를 즐길 무렵.

모판을 이앙기로 옮기던 마동태는 며칠째 모내기에 투입된 자신의 처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대체 왜.

어째서.

힘이라면, 여태 살면서 그 누구에게도 밀린 적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남들보다 큰 덩치 덕분에 동네 대장을 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고, 힘으로 하는 모든 것들에 월등함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며칠 전 팔씨름 대회에서 만난 마지막 상대로 인해 깨져버렸다.

3초 컷.

인터넷에서 밈처럼 쓰이는 ‘3초 컷’을 당한 것.

‘어딜 도망가는겨! 내가 그러라고 소고기를 사준 줄 알어! ‘호의는 돼지고기까지!’라는 말도 몰러? 소고기를 먹은 이상 자네도 우리 마을 사람이여! 그러니 도망갈 생각하지 말고 모내기에나 동참해!’

‘차 이장 괜찮겠어? 그렇게 해도?’

‘당연하지. 봤잖아. 지보다 덩치 반만 한 한울이한테 힘도 못 쓰고 진 거.’

‘그건···!’

변명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졌단 건 자명한 사실이니까.

게다가 모내기 일정을 말하는 와중 도망가다 잡힌 만큼, 할 말이 없었다.

“마 총각, 거기 끝냈으면 여기 좀 도와줘.”

“...네.”

“그래도 총각 덕분에 수월해. 오랜만에 모내기하는 데도 힘이 들지가 않어!”

거기다 더 억울한 건, 팔씨름 경기를 할 때보다 모내기에 투입된 지금이 더 힘이 넘친다는 것이었다.

‘그때 컨디션만 좋았어도···!’

지금처럼 컨디션만 좋았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컨디션이 좋은 건 마동태뿐만이 아닌지, 일하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논두렁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자네도 그렇게 느꼈어? 이상하게 아침에는 힘든데 점심때만 되면 힘이 다시 생기는 것 같다니까. 새참으로 삼겹살을 줘서 그런가···.”

“아직 점심때 안됐댜? 슬슬 배고픈디···.”

왁자지껄한 논두렁에서는 아까부터 콧구멍을 벌렁거리게 하는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저짝에서 불판 올린 지 꽤 됐으니까 이제 곧 있으면 부를껴. 옳지. 이제 부르네.”

꼬르륵.

배에서 천둥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논두렁에서부터 기다리던 소리가 들려왔다.

“어르신들! 점심 드시고 하세요!”

**

“많이들 먹고, 또 소처럼 일해야제.”

“소처럼 일하게 시키려면 소를 구워주든가.”

장 이장의 말에 돗자리 밖으로 무거운 장화를 벗어 던지던 차 이장이 툴툴거렸다.

하지만 장 이장은 차 이장의 불만에 콧방귀를 뀌었다.

“허이고. 누가 들으면 니는 작년에 우리한테 소고기 구와 맥인 줄 알겠네. 우리 이치들한테 뭐 얻어먹었지?”

“소면.”

“들었나? 소면이란다. 소면! 밭일하면 힘이 얼마나 드는데 고기는 못 줄망정 소면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니네들은 옆에서 삼겹살 구워 먹으면서?”

와. 삼겹살을 먹으면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소면?

이건 좀 선 넘은 거 같은데.

하지만 이어지는 차 이장의 말에 내 생각은 바로 바뀌었다.

“말은 똑바로 해야제! 그게 그냥 소면이었나! 골뱅이 소면이었지! 그것도 입맛 없다면서도 한 사람당 몇 그릇씩 먹은 줄 아나?”

“그리 안 먹으면 면이라 배가 빨리 꺼지는데 어쩔건데. 많이 먹는 수밖에.”

“삼겹살 준다고 해도 배불러서 싫다고 한 게 어딘데!”

두 마을 모두 같이 먹을 양의 골뱅이 소면을 했는데 그게 전부 다 산골 마을 사람들에 의해 없어졌다고.

분명히 자신들은 삼겹살을 준비했었다며, 차 이장이 답답해 죽겠다는 듯 가슴을 퍽퍽 두드려댔다.

“커흠. 우리가 그랬나? 아무튼, 그럼 맛있게 드시게.”

그런 차 이장의 모습에 장 이장은 겸연쩍게 말을 흐리며 삼겹살이 담긴 접시를 차 이장 쪽으로 슬쩍 밀어주었다.

[컁! 골뱅이 소면? 그게 뭐냐? 삼겹살보다 맛있는 거냐?]

삼겹살보다 골뱅이 소면을 택했다는 말에 두 볼 가득 삼겹살을 넣고 눈을 감은 채 음미하던 노을의 눈이 반짝 떠졌다.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삼겹살을 먹고 있으면서도 다른 음식에 대해 말하는 노을의 식탐에 웃을 때였다.

삼겹살을 두 점씩 집어 먹던 차 이장님이 문뜩 생각난 듯, 고개를 들어 물었다.

“그런데, 한울아 니 비법이 뭐꼬? 언제 그렇게 힘이 세졌나?”

언제 이렇게 힘이 세졌냐라

사실 마지막 판은 노을의 도움이 컸다.

[비법은 나다! 컁!]

마동태의 힘을 파악한 노을이 내 손에 제 조막만 한 손을 얹어 힘을 보탠 것.

고백하자면 마동태는 2대 1의 경기를 한 셈이다.

“...글쎄요. 비법이랄게 없어서.”

그러니 비법이랄 것도 없었다.

차 이장이 만족할만한 답변은 내가 아닌 장 이장님에게서 나왔다.

“비법? 그건 한울이네 농작물이지. 연습 끝날 때마다 니가 준 즙 먹으니까 몸이 피로 확 풀리더라.”

“...즙?”

“장 이장도 그랬나? 나만 그렇게 느낀 줄 알았는데. 니 그거 뭐 넣고 만든 기고? 내 맨날 먹어야겠다.”

심 할아버지도 장 이장님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팔씨름 연습을 할 때마다 텃밭 채소와 과일들을 갈아 만든 즙이 아주 마음에 드셨던 모양.

“별거 없습니다. 그냥 텃밭에서 채소 좀 넣고, 과일도 좀 넣었습니다.”

“텃밭? 니 파 뽑아 먹은 데 말하는기가? 거기에 그런 게 다 있나?”

“뭐라카노. 한울이가 산 중턱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농사 크게 짓고 있는 거 모르나?”

“어잉? 언제부터?”

“아이고. 이 할배가 이렇게 정보가 늦다. 니 한울이가 키우는 게 얼마나 맛있고, 몸에도 좋은지 모르나? 우리가 키우는 거랑은 영판 다르다.”

“뭐가 다른데? 다 똑같은 거 아니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의 심 할아버지.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심가를 위해 장 이장이 턱을 치켜들었다.

“커흠! 그건 내가 설명해 주지. 우리 꽃분이 당뇨 완치 판정받았다는 건 알고있제?”

“하모. 그건 내가 알고 있지.”

“그게 다 한울이가 키운 작물 먹으면서 관리해서 그런다.”

“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농담이 늘었다며 혀를 내두르는 심 할아버지에 장 이장님의 목소리가 더 높아진다.

“진짜라니까? 꽃분이랑 같은 병원 다니던 사람들도 한울이 네 것 먹고 많이 좋아졌다고 난리다 난리.”

“그 정도가···?”

“고롬. 여 봐봐라. 댓글.”

그렇게 사람을 못 믿어서 어쩌겠냐며, 장 이장님이 핸드폰 화면에 신비농장 스토어에 달린 댓글을 띄워 내밀었다.

한껏 찌풀어지는 심 할아버지의 눈.

“뭐라고 적혀있는데? 내사 보이지도 않는다! 장 이장은 이게 보이나? 좀 키워봐라!”

하지만 아무리 찌푸려도 보이지 않는 댓글에 심 할아버지가 투덜거렸다.

“이게 왜 안 보이는데? 그러게. 이게 왜 보이지···?”

심 할아버지의 투덜거림에 핀잔을 주려던 장 이장은 기본 크기로 되어있는 글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끔뻑끔뻑.

놀라움에 눈만 깜박이자, 옆에서 잠자코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차 이장이 물었다.

“요새 영양제 먹는 거 있나?”

“없다. 요새는 한울이네에서 시켜 먹는 거밖에 없는데?”

“진짜가? 내도 시켜 먹어야겠네. 한울아, 니한테 직접 시켜도 되나······? 근데 니 귀는 왜 막고 있노? 귀가 아프나?”

장 이장님의 말에 눈을 반짝이며 내게 고개를 돌리던 차 이장님이 귀를 막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꽥! 꽤괘괘괘꽥! 꽥!꽥!꽥!]

아니요.

그저 그저 롹 감성이 충만한 오리가 노래를 부르고 있어서요.

여러분들의 컨디션이 좋은 것도 다 얘 덕분이랍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어 손을 슬쩍 내리며 그저 웃어 보일 때였다.

그늘 하나 없던 돗자리에 그늘이 지는가 싶더니, 피곤함에 찌든 목소리가 불쑥 들려왔다.

“저기, 혹시 여기 신비농장이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한 손에는 핸드폰을, 다른 한 손에는 오이를 손에 꼭 쥔 남자의 질문에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다.

“신비농장? 한울이 농장 이름이 신비 농장이라고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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