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25화 (25/163)

24. 도비가 되겠습니다!

박준혁.

대학교에서 잘못한 자들만이 간다는 대학원을 교수님의 꼬드김으로 인해 제 발로 들어간 사람의 이름.

멍청했다.

짠돌이로 유명한 교수님이 치킨을 사줬을 때부터 의심을 해야 했다.

‘그 치킨이 미끼인 줄 알았더라면···!’

4학년 막 학기 수업 때 돌연 고생했다며, 치킨을 냈던 교수님.

취업도 좋지만, 대학원으로 와 좀 더 배움을 추구하는 것도 아주 좋은 루트 중 하나라고 연설하셨던 교수님!

대학원 졸업 후에는 좀 더 좋은 조건으로 취업도 가능한 건 물론이거니와, 등록금을 내면서 다니던 대학과는 달리 연구비라는 용돈까지 받으면서 못했던 연구를 할 수 있는 파라다이스라는 감언이설에 홀라당 속아 제 손으로 대학원이라는 지옥문을 열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선배 말을 들었어야 했어!’

대학원을 간다고 주먹을 불끈 쥐는 나를 딱한 시선으로 보며 그 가시밭길을 가지 말라고 말리던 선배.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이미 청산유수와도 같은 교수님의 설득 스킬에 넘어간 상태였기에,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온 선배의 맥아리 없는 조언을 흘려듣고 말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곤 공허한 시선으로 하늘을 보며 말하는데, 그 당시에는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일에 치여 피곤함에 찌든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니.

지금 생각해 보자면, 분명 그때 나는 뭐에 씌어있었던 게 분명했다.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진학한 대학원의 꿈은 연구실에 입성하자마자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연구실 밖에서는 천사 같았던 교수님은 연구실에 들어오는 순간 뭔가에 씐 듯 사람이 바뀌었는데, 지킬앤하이드에 히스테릭한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섞고, 거기다 불 뿜는 용까지 더하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연구실만 들어오면 불을 내뿜는 교수님을 실시간으로 보며 기가 빨리는 느낌은, 겪으면 겪을수록 적응이 되기는커녕 탈출 욕구만 커졌다.

그래서였다.

‘...이 오이가 어떻게 자랐는지, 알아보고 오도록.’이라는 교수님의 명령에 누구보다 손을 먼저 든 건.

같이 있던 연구실 동료들은 ‘쟤가 드디어 미쳐서 제 무덤을 파는구나’라는 얼굴로 묵념을 해줬지만, 박준혁의 생각은 달랐다.

‘이걸 키운 사람이라면, 내가 하는 비료 연구에 분명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직접적인 도움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그저 흙 한 줌만 퍼 준다면, 그 흙을 낱낱이 분석해 제 것으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것을 토대로 대학원 탈출을 하고야 말겠다!

그것이 현재 박준혁의 원대한 목표였다.

“후···. 여긴가?”

미화리.

교수님이 던져준 미화리 신비농장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검색해 찾은 마을.

마을 입구에 있는 팽나무가 아주 멋진 곳이었다.

사아아.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며 내는 소리는 온종일 연구실에서 기계 소리만 듣던 귀를 어루만져주는 것 같았다.

지대가 높은 곳이라 그런지 다른 곳보다 온도가 조금 낮은 이곳의 공기는,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남다른 상쾌함을 선사하며 여기가 얼마나 청정지역인지를 가늠하게 했다.

“청정지역이라 농작물 품질이 그렇게 좋은 건가···.”

사실 이곳을 방문하기 전, 신비농장 온라인 스토어에서 다른 작물들도 구매하려고 시도했었다.

교수님이 표본으로 가지고 오긴 했지만, 어쩌다 걸린 오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업데이트되게 무섭게 동나 버리는 통에 구매는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덕분에 규모가 얼마나 큰 농장인지 알게 되었지.”

아주 비싼 설비가 필요한 작물부터 시작해 식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채소들까지 매일 업데이트되는 신비농장 스토어.

업데이트되는 품목이 매일 달라지긴 했지만, 상품에 대한 칭찬을 넘어 찬사에 가까운 리뷰들 덕분에 굳이 다른 작물들을 시키지 않아도 그 품질을 가늠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한정수량만을 업데이트해 선착순 판매하는 것은 아마도 품질에 대한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하는 판매 방법임이 분명했다.

“어쩌면 이 마을 전체가 신비농장 일수도.”

스토어의 규모로 보나, 판매하는 작물들의 가짓수로 보나, 품질로 보나.

절대 한 명이 운영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그러니, 이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밭을 찾으면 그곳이 신비농장일 것이 분명했다.

기필코 이곳에서 자신을 대학원에서 탈출시켜줄 무언가를 발견하고 말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며 팽나무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자.

“...하하하! 다들 마셔!”

기다렸다는 듯 저 멀리서 시끌벅적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서둘러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뛰어간 박준혁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물었다.

“저기, 혹시 여기 신비농장이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

장 이장님은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 신비농장에 관해 물은 청년이 신기한지 연신 질문을 하셨다.

“이야, 그러니까 지금 한울이가 키운 오이 때문에 그 먼 데서 여기까지 왔다는 소리가?”

“네. 맞습니다. 교수님이 꼭 이 오이를 키운 농가를 찾아서 비법을 알아내라고 하셨습니다.”

“그 교수가 누군지는 몰라도 눈이 참 좋네. 맞다! 우리 한울이가 키운 작물이 유명하다! 우리 꽃분이 당뇨도 한울이가 키운 거 먹고 싹 나았다 아니가.”

“당뇨요?”

반짝.

내가 키운 작물을 먹고 당뇨가 나았다는 말을 들은 청년의 눈이 빛났다.

묘하게 광기가 서린듯한 눈이 나를 향했다.

“반갑습니다. 전 한국농업대학교 대학원에서 비료를 연구하고 있는 박준혁이라고 합니다.”

한 손에는 오이를 꼭 쥐고 인사를 하는 모습에 내 어깨에 있던 노을이 킁킁거리며 반응했다.

[컁! 저 오이는! 우리가 키운 오이가 맞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로 우리가 키운 오이일 줄이야.

직접 방문해 대량으로 사겠다는 사람들의 전화는 받아봤어도, 이렇게 구매한 작물을 들고 여기까지 찾아온 사람은 처음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신비농장을 운영하는 김한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희 오이가 어떤 면에서 그렇게 교수님의 마음에 들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내가, 아니 우리 정령들이 키운 작물이 특별한 건 알고 있었지만, 다른 작물이면 몰라도 그냥 오이다.

약 95%가 수분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특별한 거라곤 크기밖에 없는 듯한데 굳이 이것 때문에 이 산골 마을까지 왔다고?

하지만 박준혁이라는 대학원생의 생각은 다른 모양.

“어떤···. 면에서 이 오이가 저희 교수님 마음에 들었는지 알고 싶으시다는 말씀이시죠?”

내 질문을 들은 박준혁이 아련한 표정으로 손에 쥔 오이를 들었다.

흡사 헤어진 연인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

“대답하시기 어려우시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련한 그 모습에서 왠지 모를 오싹함을 느낀 나는 질문을 철회했다.

하지만 박준혁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정확히 이틀 전! 저희 교수님께서는 이 오이를 들고 연구실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러고는 결연한 눈빛으로 오이를 내 눈앞으로 들이밀며 말했다.

“...이 오이와 저희가 키우던 오이를 나란히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가 키운 오이가 형편없다고! 어떻게 키운 오이인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극 정성으로 키운 오이인데! 그 오이를! 크흡.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안 그렇습니까?”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내 오이가 저 대학원생이 밤낮 정성으로 키운 오이가 형편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 말인데···.

이제는 훌쩍거리며 내 오이를 불천지 원수처럼 쳐다보는 박준혁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눈만 끔뻑일 때였다.

“아이고마. 정성 들여 키웠는데 그런 소리 들으면 속상하지. 그 교수가 잘못했네! 점심은 먹었는교?”

옆에서 박준혁의 독백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듣던 꽃분이 할머니가 안 됐다며 맞장구를 치셨다.

밥부터 챙기시는 모습이, 밖에서 한 대 맞고 들어온 아이를 챙기는 것 같았다.

“아뇨···. 교수님이 닦달하시는 바람에···. 새벽부터 연구실에서 쫓겨나서 여기까지 오느라···. 아무것도 못 먹었습니다.”

꼬르륵.

타이밍 좋게 배에서 나는 우렁찬 소리.

“아이고. 진짜 안 되겠네! 사람 일을 시키려면 뭐를 좀 먹이고 시켜야지. 여까지 오느라 고생 억수로 했제? 이거라도 좀 먹어보소.”

교수님을 원망하는 소리를 할 때만 해도 그저 안쓰럽게 보던 시선이 밥을 굶었다는 소리에 대번에 뾰족하게 변했다.

밥을 한 끼라도 굶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이곳에선 밥도 주지 않고 일을 시킨다는 건 꿈에도 생각 못 할 일.

대번에 천인공노할 교수의 밑에서 일하는 불쌍한 대학원생이 된 박준혁 앞에 고기가 가득 쌓인 접시가 놓였다.

“흑. 감사합니다. 제가 차가 없어서···. 여기까지 대중교통으로 왔는데, 이렇게 멀 줄은 몰랐습니다.”

사람들의 친절에 감동한 듯,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자신의 여정을 말하는 박준혁의 이야기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었다.

이곳까지 한 번에 오는 교통수단이 없어 새벽부터 시외버스를 타고 와 읍내에 내려 배차시간 정보도 없는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몇 시간을 꼬박 정류장에서 기다렸다고.

언제 올지 모르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느라 여태까지 굶었더랬다.

“아이고···. 음식은 많으니까 천천히 먹어요.”

허겁지겁 밥을 욱여넣는 박준혁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꽃분이 할머니가 종이컵에 물을 따라 건네주었다.

“크흡. 감사합니다.”

턱 끝까지 오는 다크써클을 매단 채 배가 고파 허덕이는 박준혁을 보고 있자니, 회사를 다닐 때의 내가 생각났다.

그놈의 실적이 뭐라고.

밤낮없이 일하느라 규칙적인 식사는커녕, 잠도 제대로 자지 않았던 시절.

“찹쌀아, 노래 좀 불러줄래? 저 사람한테.”

처음 알게 된 사람이었지만, 왠지 모를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찹쌀이에게 조용히 부탁했다.

[꽉? 알았다!]

부디 이곳에 있을 때만이라도 건강하길 바라며.

**

이럴 줄 알았으면 찹쌀이에게 부탁하는 게 아니었다.

“저 방해 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농장주님이 일하는 모습만 보겠습니다!”

졸졸졸.

배를 채우자마자, 박준혁은 어디선가 가져온 삽을 들고는 내 뒤를 따라다녔다.

“일하는 모습이라니···. 별로 하는 게 없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습니다! 혹시 일손이 필요하시다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도와준다고요?”

“네! 제가 이래 봬도 농대 출신이라 삽질 하나는 기똥차게 잘합니다.”

삽질을 아무리 잘해봐야 노을이를 이길 수 없을 터.

그래도 바로 비법을 알려달라고 하지 않고 뭐라도 하면서 도우려는 모습이 기특했다.

“그래요?”

“네! 농사도 하고! 연구도 하고! PPT도 만들고! 그림도 그리고! 비료 포대도 나르고! 밤도 새고! 다 합니다! 뭐든 맡겨만 주십쇼!”

“뭐든지요?”

“네! 뭐든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오호.

뭐든지 맡겨 달라라.

뭐든 잘한다는 대학원생에게 안성맞춤인 일이 생각났다.

“그럼 따라오시죠.”

뭐든 지라고 했으니···.

굳이 농사와 관련된 일이 아니여도 되잖아?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기합이 팍 들어간 박준혁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몇 시간 뒤.

박준혁에게 일을 맡긴 나는 비닐하우스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텃밭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박준혁이 인기척을 느끼고는 고개를 발딱 들었다.

찹쌀의 노래로 인해 없어졌던 다크써클이 다시 돌아온 걸 보니, 어지간히 열심히 내 부탁을 들어준 모양.

“사장님이라뇨. 그냥 편하게 불러주세요. 사진은 많이 찍었나요?”

박준혁에게 부탁한 일은 바로 작물들의 사진을 찍는 것.

별 다섯 개가 가득한 리뷰란에 꼭 빠지지 않은 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여기 작물은 상세페이지 보지 말고 그냥 구매하시면 됩니다. 사장님이 농사하신다고 사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에요.’라는 말.

처음 몇몇 리뷰에 달린 사진에 대한 코멘트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같이 달리는 사진에 대한 코멘트에 정말 지민에게 포토샵이라도 맡겨야 하나 했던 참이었다.

“네! 여기 있습니다!”

그러니 뭐든 잘한다고 말하는 대학원생에게 사진과 흙을 맞교환하자고 한 것.

“오. 괜찮은데요? 고생했어요. 그럼 약속했던 흙, 여기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봐도 내가 찍은 것보다 훨씬 작물의 특징을 잘 살려 찍은 사진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들고 있던 흙 주머니를 건넸다.

하지만 박준혁은 흙 주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 가져가지 않았다.

“아뇨. 괜찮습니다.”

“...혹시 흙이 모자라나요?”

그래도 한 포대는 넣었는데.

혹시나 모자란다면 더 줄 의향이 있다는 말을 하려 할 때였다.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던 박준혁이 결심했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고는 선포했다.

“아뇨. 저, 사진을 찍으면서 결심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작물! 하나같이 흠집 없이 완벽한 작물들!”

“...?”

“이곳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무상으로 일하겠습니다!”

도비가 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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