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30화 (30/163)

29. 제가 다 준비하겠습니다!

“께아아아아!!!”

소름 끼치는.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울음소리에 몸이 긴장 되는 것이 느껴졌다.

“허···.”

보지 않아도 정체를 알 것 같은 마음에 불안이 섞인 한숨을 내뱉자, 앞에서 몸을 낮추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던 노을과 찹쌀이 튀어 나갔다.

“기다렸다! 컁!”

“꽈아악!”

풀숲에서 튀어 나간 둘은 바로 앞에 나타난 원흉을 향해 저마다의 응징을 시작했다.

노을은 조막만 한 솜방망이로!

찹쌀은 하얀 날개를 휘둘러서!

파파팟!

전혀 타격이 없을 것 같은 응징에 멀뚱히 서 있던 원흉은 눈을 끔뻑거리더니 5초가 지난 후 비로소 반응했다.

“끼에에에엥-!”

수풀을 헤치고 드러난 고구마밭을 헤집어놓은 원흉은 바로.

고라니였다.

*

실컷 응징을 마친 둘은 고라니를 앉혀놓고 심문을 하기 시작했다.

“왜 그랬냐! 컁!”

“끼에에에!”

“배고파서 그랬다고? 꽈악?”

“컁! 거짓말이다 그저 우리 호박고구마가 맛있어서 먹은 거다!”

“끼엥? 끼에에엥! 께아아아악!”

“흥! 그래도 안 된다! 벌을 받아야 한다! 꽈악! 어떻게 생각하냐 한울?”

어떻게 생각하냐고 해도···.

너희들은 고라니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겠지만, 나는 아니란 걸 좀 알아주지 않겠니?

한바탕 푸닥거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거리는 노을과 찹쌀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포동아, 해석 좀 부탁한다.”

“킁. 그러니까, 저 고라니는 나무뿌리를 캐어 먹었을 뿐이라고 한다. 저 위에서부터 나무뿌리를 캐 먹다가 달콤한 냄새가 나는 나무뿌리를 발견해 파먹었다고 한다. 그러니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한다!”

포동이의 설명이 마음에 들었던지 고라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

멍청함의 대명사 중 하나인 고라니와 대화가 통하다니.

군시절, 어느 날 갑자기 화단에 꽂힌 행보관 때문에 화단에 꽃을 뭐 빠지게 심던 시절이 있었다.

부대가 칙칙한 이유가 꽃이 없어서라나 뭐라나.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행보관은 대체 휴가 기간 동안 뭘 봤는지, 화단에 꽃을 잔뜩 피우게 하면 이곳도 환하게 빛날 거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개소리였지만, 어쩌겠는가.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하지만 행보관과 우리 모두 간과한 부분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여느 군부대가 그렇듯 내가 속해있는 부대 또한 산과 맞닿아 있었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군대 안에 꽃이 없는 이유를 바로 그다음 날 바로 알 수 있었다.

애써 꽃들을 심어둔 화단이 마치 굴착기가 지나간 듯 온통 헤집어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뭘 잘못 먹었는지 행보관은 계속 화단에 꽃을 심으라고 명령했고, 의사결정권이 없는 병사들은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매일같이 화단에 꽃을 심어야 했다.

그러기를 몇 주.

드디어 화단에서 이삭 줍는 아낙네들처럼 온종일 허리를 구부리고 꽃을 심던 병사들의 불만이 극에 다다랐다.

‘잘 들어라. 우리는 오늘부터 고라니 이 개XX들이랑 전쟁을 선포한다.’

물론 행보관을 들이받을 수는 없으니, 병사들의 화는 모두 고라니에게로 향했다.

‘전쟁이다!!’

‘언제까지 저 X같은 화단을 가꿀 거냐! 벌써 몇 주째냐! 꽃피기 전에 내 허리가 아작나겠다! 허리 디스크 터지면 고라니 새끼한테 청구할 수도 없다!’

‘없다!!!’

‘우리를 뭣같이 아는 건방진 이 고라니 개XX들에게 우리의 무서움을 보여주고 다시는 이 근처에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하는 게 우리의 목표다!’

‘목표다!!’

‘그럼 오늘 밤, 작전을 시작한다.’

몇 주 동안 화단을 망쳐놓은 원흉이 고라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병사들은 하나같이 시벌 개진 눈을 하고선 ‘타도! 고라니!’를 외쳤고, 그렇게 고라니와의 전쟁이 선포되었었다.

“무슨 생각을 하냐? 꽈악?”

“별거 아니야.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그때도 이렇게 말이 통할 수 있었더라면.

뼈가 부러지는 병사가 생기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겠지···.

멀쩡한 사람도 군대만 가면 멍청이가 된다는 말을 증명하듯, 머리끝까지 고라니 척살이라는 목표를 가진 병사들은 조를 짜 교대로 삽을 하나씩 꼬불쳐 들고 고라니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고라니를 잡겠다고 화단 옆에서 위장한 채 몇 시간을 쪼그리고 앉아있던 병사 하나가 고라니를 발견하고 급하게 일어나다 뼈가 부러지고 말았다.

발에 쥐가 난 줄도 모르고 급하게 일어나다 제 발에 걸려 화단 밖으로 넘어진 것.

이후 그 사건은 각색되어 병사가 화단을 지키기 위해 고라니와 맞싸우다 뼈가 부러졌다고 전해지게 되고, 그로 인해 화단 가꾸기는 그날 이후로 우리 부대 안에서 없어졌다.

“바보 같았지···.”

결과적으로 다수의 허리를 지키긴 했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그때 당시 넘어져 끙끙대던 병사를 멀뚱히 쳐다보다 갑자기 ‘께에에아악! ’하고 울던 고라니를 잊지 못했다.

“바보? 바보 맞다! 어떻게 나무뿌리랑 고구마를 구분 못할 수가 있냐? 말도 안 된다! 컁!”

“꽈악! 노을의 말이 맞다! 한울, 내가 다시는 이 고라니를 우리 밭으로 오지 못하도록 하겠다!”

“킁. 일하지도 않았으면서 고구마를 탐내다니···. 잘못한 게 맞다.”

바보라는 내 말에 노을과 찹쌀이 방방 뛰자, 내 어깨에 있던 포동이도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잠깐.

일이라니?

그러고 보면 포동이도 밭의 작물을 몰래 먹다가 걸려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럼, 고라니도 일을 시키면 해결되는 일 아닌가?

생각을 정리한 나는 고라니의 엉덩이를 꾹꾹 밀어대는 찹쌀과 노을을 향해 말했다.

“얘들아, 잠깐만.”

“컁? 왜 그러냐? 잠깐만 있어라. 얘가 좀 무겁다!”

잠깐이라고 했더니, 더 힘을 주어 민다.

“그게 아니라. 저 고라니도 일을 시키면 되지 않을까?”

“꽈악? 어떤 일을 시키냐?”

고라니에게 일을 시킨다는 내 말에 찹쌀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수도 있다

고라니는 노을과 찹쌀, 그리고 포동이와는 달리 진짜 산짐승 그 자체니까.

하지만 산에서 하루종일 생활하는 산짐승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특히나 목청이 큰 고라니만이 할 수 있는 일.

“고라니, 너 우리 비닐하우스 경비할래?”

**

“니 어디 갔다 왔노?”

“어? 장 이장님이 어쩐일이세요?”

고라니와의 경비 계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집 앞마당에는 강지민과 박준혁, 그리고 장 이장님까지 셋이 나를 반겨주었다.

“어쩐일이긴. 뭣 좀 전해주려고 왔다”

“엥? 그게 고라니 울음소리였어요? 할아버지? 와···. 진짜 소름이 쫙 돋았네.”

“이곳이 고향이라고 하시던 분이 왜 고라니 울음소리를 모르시는 겁니까? 역시나 의심스럽습니다.”

장 이장님 손에 보자기가 들려있는 걸 보니 또 꽃분이 할머니께서 반찬을 만들어 주신 모양.

“어휴. 이장님, 이런 거 가지고 오시지 마시고 저 그냥 부르시라니까.”

“아이다. 나도 이러면서 산책도 하고 그라는 기제. 그나저나, 아까 고라니 소리가 나는 거 같더구먼. 니 비닐하우스 갔다면서? 괘안나?”

“네. 보다시피. 멀쩡합니다.”

“고라니 그거 멍청해 보여도 조심해야 한다. 그놈 발굽에 맞으면 뼈 하나 부러지는 건 예삿일도 아니다.”

고라니 말굽을 손으로 표현하며 진저리치시는 장 이장님.

저 리액션은 분명 고라니 발굽에 치인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하긴.

다른 나라에서는 멸종위기종으로 취급되는 고라니는 이상하게 한반도에만 아주 차고 넘쳐났다.

날이 추워질 때면 숲에서 내려와 농가를 습격하는 고라니로 인해 골치 썩는 농민들도 아주 차고 넘치는 건 당연한 일.

평생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장 이장님인 만큼, 정말로 고라니와 사생결단을 낸 경험이 있으실 수도.

“네. 걱정 마세요.”

하지만 나는 걱정 없었다.

노을과 찹쌀이 있는 한, 산짐승들의 공격을 받는 일은 없을 테니.

조금 전에만 해도 노을의 도움으로 고라니와 경비 계약을 맺은 터였다.

나와 정령들이 아닌 그 어느 누가 비닐하우스로 접근하는 게 발견되면 즉시 소리를 질러 알려주기로.

대가로 고구마를 준다고 하니, 마침 우리 밭 근처에서 살던 고라니는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래. 니는 똑똑하니까 걱정 안 한다. 그건 그렇고. 조만간에 농산물 엑스포 열리는데, 니도 참가할래?”

“농산물 엑스포요?”

“어. 매년 하는 행사 아있나. 외지인들도 그때는 많이 오니까 니 장사하는 거 홍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나 싶어서 말하는 거다.”

농산물 엑스포라.

회사에 갓 입사를 하고 몇 년간 원물과 새롭게 출시되는 식품 가공품 등을 조사하기 위해 다녔던 기억이 있다.

하나같이 서울과 떨어진 곳이라 엑스포만 다녀오면 파김치가 되곤 했었는데···.

불과 몇 개월 만에 엑스포 관람객에서 참석자로 바뀐 게 신기해 웃음 지을 때였다.

옆에 있던 지민이 의아한 표정으로 장 이장님께 물었다.

“다음 주에 하는 거 말씀하시는 거죠. 할아버지? 근데 그건 이미 참여 접수 끝난 거로 알고 있는데···. 지금도 신청 가능한가요?”

다음 주라면 지민의 말이 맞았다.

참가 신청은 최소 몇 개월 전부터 해야 하니까.

장 이장님도 지민의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암만. 당연히 끝났지. 그런데 내가 누꼬. 이장이다! 한울이가 한다고 하면 당연히 끼워 넣어줄 수 있다. 근데 니는 그걸 우예 아나? 니도 참석하나?”

“네. 저도 이번에 구름떡집 푸드트럭으로 참석하려고요.”

아하.

어쩐지 엑스포 일정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싶더니.

역시 몇 개월 더 빨리 왔다고 이곳 정보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빠삭했다.

그나저나. 지민이 참석하게 된다면, 떡집이 두 개일 텐데 괜찮으려나?

워낙 작은 도시라 외지인이 온다 해도 거의 현지인들의 축제와 비슷한 만큼, 같은 업종이 많으면 많을수록 손해였다.

장 이장님도 나와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아이고. 니네 부모님이랑 경쟁 좀 하겠네?”

“아뇨. 부모님은 그날 쉬시겠다고, 저보고 다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니 보고? 아이고. 고생하겠네.”

“아르바이트생 한 명 더 뽑아놔서 괜찮아요. 그나저나, 한울아 너도 참여할 수 있으면 해봐. 이번에 좀 크게 하던 거 같던데?”

걱정하시는 장 이장님께 괜찮다고 손사래를 친 지민은 고개를 돌려 나에게 엑스포 참여를 권했다.

예전과 달리 시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해 규모가 커질 거라며.

“크게?”

“어. 그 누구지? 요즘 엄청 뜬 솔로 가수. 그 사람도 온다던데? 예전에는 왜 마을 사람들끼리 노래자랑만 하고 끝났잖아.”

“솔로 가수?”

말만 엑스포였지, 아랫마을, 윗마을, 옆 마을들끼리 모인 축제나 다름없어 엑스포의 무대는 외줄 타기 공연단이나 마을 사람들의 노래자랑으로 채워지곤 했었다.

그런데 솔로 가수라니.

정말로 준비를 많이 한 모양.

“어. 여자 솔로 가수인데 왜 데뷔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차트 올킬한 사람 있잖아.”

“누구···?”

데뷔하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차트를 올킬한 사람이라.

지난 몇 년 동안 TV와 멀리했던 나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박준혁은 달랐다.

솔로 가수가 출연한다는 사실을 들을 때부터 눈을 반짝거리기 시작하던 박준혁은 지민의 단서를 듣자마자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헐. 설마···! 작곡, 작사도 스스로 하고, 만드는 곡마다 히트 치는! 보컬도 보컬이지만 외모도 천상계인 100년 만에 나올까 말까 한다는 싱어송라이터! ‘아라’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오! 맞아요! 아라!”

자신이 말한 아라라는 신인 솔로 가수가 맞는다는 걸 확인받은 박준혁은 고개를 나에게로 홱 돌렸다.

저렇게 세게 돌리다가 목 빠지는거 아냐?

하지만 내 걱정과 달리 박준혁은 우렁찬 목소리로 내게 제안했다.

“사장님! 이번 엑스포! 제가 다 준비하겠습니다! 가시죠!”

“판매도 해야 할 텐데···. 괜찮겠어요?”

엑스포에 참여하기 위해선 작물을 준비하는 건 기본이고, 영업까지 해야 했다.

학교에서 공부와 연구만을 했다던 박준혁에게는 어려운 일임이 틀림없어 보여 물었지만, 박준혁은 끄떡없었다.

“괜찮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아라 님의 라이브를 들을 수만 있다면, 하루종일 일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래요. 그럼 우리도 참석하는 거로 하죠. 이장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렇게 두 주먹까지 불끈 지고 말하는데, 어쩔 도리가 있나.

덕분에 마음 놓고 비닐하우스에 갔다 올 수 있었으니,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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