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35화 (35/163)

34. 비법은 과연...?

“끼에에에에엑!”

비닐하우스로 가까이 갈수록 고 경비의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꾸에에엑!”

고 경비 소리 뒤로 들려오는 또 다른 소리.

농사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산짐승의 소리였다.

쫑긋.

노을의 귀가 소리에 반응했다.

“컁! 이 소리는! 내가 아는 소리다!”

“설마···. 멧돼지는 아니지 노을아?”

“호에? 어떻게 알았냐? 맞다! 멧돼지! 욕심이 많아서 얼른 가서 말려야 한다!”

“하, 하하···.”

고라니에 이어서 멧돼지라니.

그래도 고 경비는 해가 떴을 때 만나 충격이 덜했건만, 이 껌껌한 밤중에 멧돼지와 조우를 한다라···.

쉽지 않네.

“뭐라도 들고 왔어야 했나···.”

고라니도 송곳니가 있긴 하지만, 멧돼지의 송곳니와는 비교가 안 된다.

고라니가 작물을 엉망으로 만든다면, 멧돼지는 작물은 물론이거니와 시설, 그리고 그 특유의 냄새까지 흙에 묻히고 가 여간 골치가 아니었다.

게다가 덩치는 얼마나 큰지.

섣불리 제압하려 했다간 크게 다칠 수도 있는 만큼, 멧돼지를 쫓기 위해선 만만의 준비가 필요했다.

“한울! 얼른 와라! 컁!”

지금이라도 다시 집으로 가 뭐라도 가지고 와야 할 것 같은 기분에 멈칫거리자, 앞서가던 노을이 뒤돌아보며 외쳤다.

“...”

찹쌀이는 얼마나 빨리 갔는지 이제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고, 노을의 꼬리 또한 재밌는 놀이를 할 때처럼 살랑거리고 있었다.

그래.

자신들보다 몇 배는 더 큰 고라니도 한 방에 제압했던 둘이었다.

노을과 찹쌀, 포동이 그리고 고 경비까지 차례로 떠올린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노을에게 말했다.

“그래. 얼른 가자.”

얼른 가서, 우리의 비닐하우스를 노린 멧돼지의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

노을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 도착한 비닐하우스 앞.

-꾸에엑!

“꽈악! 변명은 받지 않겠다!”

파파팟!

나는 말 그대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멧돼지를 타격하는 찹쌀에 입을 떡 하니 벌렸다.

“헐.”

찹쌀의 타격 대상은 바로 멧돼지. 그것도 거짓말 조금 보태 덩치가 집채만 한.

살면서 멧돼지를 본 적이라곤 군대에서, 그것도 저 멀리 지나가는 걸 본 게 다였던 만큼, 이렇게 지척에서 멧돼지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가까이에서 본 멧돼지의 위압감은 대단했다.

덩치도 덩치지만, 쉬익거리며 내뿜는 더운 공기와 뻣뻣한 털, 그리고 특유의 노린내까지.

“와···. 노을아, 찹쌀이가 원래 저렇게 빨랐었니?”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멧돼지의 덩치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운 건 찹쌀의 무력이었다.

매일 집 안 거실에서 TV를 보며 뒹굴뒹굴하던 찹쌀의 모습이 익숙한 터라 지금처럼 찹쌀이 날렵하게 움직일 때마다 적응이 되질 않았다.

더군다나 찹쌀의 날개가 퍼덕거릴 때마다 돌아가는 멧돼지의 고개를 보고 있자니, 조금 전까지 가슴을 뛰게 했던 긴장감이 언제였냐는 듯 삽시간에 사라졌다.

내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노을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귀를 쫑긋 세우며 찹쌀에게 다가갔다.

타박타박 찹쌀에게 간 노을은 퍼덕거리느라 정신없는 찹쌀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찹쌀! 미란다 원칙 고지는 했냐?”

-꾸에엑?

-끼에엑?

“응?”

노을의 입에서 나온 생소한 단어에 모두가 의문을 표했다.

찹쌀만 제외하고.

노을의 말을 들은 찹쌀은 날갯짓을 멈추더니 바닥으로 내려와 고개를 끄덕였다.

“꽉! 깜빡했다! 고맙다 노을!”

“미란다 원칙을 안 하면 안 된다고 TV에서 그랬다! 컁! 중요한 건 잊지 말라고 했다!”

미란다 원칙을 어디서 알았나 했더니···.

TV 프로그램의 바운더리가 아주 넓어진 모양.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찹쌀이 날개 한쪽을 멧돼지를 향해 펼치고 미란다 원칙 고지를 하기 시작했다.

“꽈악! 멧돼지, 너는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모든 진술은 추후 법정에서···.”

-꾸에엑?

“법정이 뭐냐고? 나도 모른다! 꽈악! 그냥 들어라!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꾸에....

말하는 찹쌀도, 듣는 멧돼지도 이해하지 못할 미란다 고지가 끝없이 이어질 무렵.

“쟤는 왜 혼나고 있냐? 킁”

수풀을 헤치고 포동이가 나타나더니 내게로 쪼르르 와 물었다.

“그러게. 그 이유를 안 물어봤네. 찹쌀아, 잠깐만. 멧돼지가 우리 하우스에서 뭘 망쳤는지 먼저 알려줄래?”

비닐하우스 앞에 도착하자마자 본 충격적인 비주얼의 멧돼지와 날렵한 찹쌀 때문에 정작 중요한 작물이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한 확인을 하지 않았다.

고 경비에게 물어보는 것이 제일 정확하겠지만, 아쉽게도 고 경비의 말은 내가 알아 들을 수가 없다.

“꽤액?”

미란다 원칙의 마지막 부분을 읊던 찹쌀이 얼어붙었다.

그리고는 얼어붙은 상태에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기 시작했다.

당당하게 멧돼지에게로 치켜들었던 고개도 천천히 내리더니, 터벅터벅 걸어 고 경비 뒤로 숨었다.

“설마···.”

안 물어보고 바로 때린 거니?

설마 하는 마음에 고개를 옆으로 빼자, 고 경비 뒤에서 목을 빼고 이쪽을 살피던 찹쌀이와 눈이 마주쳤다.

푸드덕.

“꽤액!!”

나와 눈 마주친 찹쌀이 화들짝 놀라며 날개를 퍼덕거렸다.

“진짜네···.”

-꾸에엥

갑자기 불쌍해진 멧돼지를 안쓰러운 눈으로 보자, 멧돼지가 억울하다는 듯 꾸엥거렸다.

얼마나 억울했는지 순하게 끔뻑거리는 눈에는 눈물이 대롱 달려있었다.

“...노을아, 부탁 좀 해도 되겠니?”

쯧.

“컁! 내가 보고 오겠다!”

혀를 찬 내가 노을에게 부탁하자. 노을이 기다렸다는 듯 비닐하우스 안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비닐하우스 안에서 나온 노을이 도도도 달려와 내 어깨 위로 점프해 올라왔다.

그러더니 비밀을 말해주는 것처럼 속삭였다.

“한울···. 아무리 봐도···. 망가진 작물들이 하나도 없다. 컁.”

“오케이. 알았어. 고마워 노을아.”

“컁! 말만 해라! 이런 건 식은 죽 먹기다!”

“그래? 그럼 고 경비한테도 왜 울었는지 물어봐 줄래?”

“당연하다! 잠시만 기다려라! 고! 왜 울었냐?”

내 부탁에 바로 고 경비와 대화를 하기 시작하는 노을이.

고 경비는 노을의 질문에 아주 성실하게 답변을 하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에- 끼에에- 끼에!

“호에?”

-끼에엑! 끼에!

“캬항! 알았다.”

몇 번의 대화가 오가더니, 노을이 다시 내 어깨로 돌아와 미션을 완료한 첩보원처럼 은밀하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고 경비는 평소처럼 우리가 내놓은 고구마를 먹고 있었다고 한다!”

고 경비와 계약 후, 우리는 일정한 양의 고구마를 매일 저녁 비닐하우스 밖에 내놓았었다.

고 경비의 주된 임무는 비닐하우스 관리였는데, 고 경비와 계약 후부터 비닐하우스 주변이 눈에 띄게 깨끗해져 조만간 고구마 협상을 다시 하려던 참이었다.

“어. 그래서?”

“컁! 평소처럼 일을 끝내고 고구마를 먹으려던 그때!”

“그때?”

“옆에서 부스럭거리던 소리가 나더니 저 멧돼지가 고 경비의 고구마를 뺏어 먹었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고 받은 대가를 빼앗는다면 열 받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고 경비의 알람은 비닐하우스에 무슨 일이 생길 때만 울리기로 한 만큼, 나는 노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오. 그리고?”

“이게 다다! 컁!”

“응? 그게 다라고?”

“멧돼지를 밀었는데 안 밀려서 도움이 필요했다고 한다!”

“아···.”

그러니까, 고 경비는 비닐하우스를 걱정해서가 아닌, 자신의 고구마를 지키려고 알람을 울린 것.

확실히. 고라니가 멧돼지를 이길 수는 없다.

그러니 고라니가 자신의 고구마를 지키려고 알람을 울린 것에 대해 뭐라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월급을 뺏으려고 한다면, 그리고 월급을 빼앗으려는 사람을 자신이 당해 낼 수 없다면, 당연히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게 본능일 테니 말이다.

생각을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고 경비의 뒤에서 쭈뼛거리며 나온 찹쌀이 멧돼지 앞으로 가더니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잘 알지도 못하고 날개부터 펼친 것에 대한 사과였다.

“꽉! 미안하다!”

-꾸에엥?

“미안함의 표시로 내가 노래를 불러주겠다. 꽉!”

-꾸엥꾸엥!

갑작스러운 찹쌀의 사과에 당황스러운 듯 뒷걸음치던 멧돼지가 노래를 불러준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멧돼지가 노래를 좋아하는 동물이었나?

노래를 부르려 숨을 가득 들이마시는 찹쌀을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귀를 막았다.

내 옆에 있던 노을 또한 급하게 조막만 한 손으로 귀를 막았다.

뾱.

자신의 귀부터 막은 노을은 아무것도 모른 채 싱글거리며 찹쌀의 노래를 기다리고 있는 멧돼지에게 경고했다.

“호엥? 멧돼지야! 귀 막아라!”

-꾸에엥?

하지만 노을의 경고는 늦었다.

“꽤애애액! 꽥꽥꽥! 꽤개개개개꽥꽥!”

이미 찹쌀의 노래가 시작된 것.

미안함이 큰지 찹쌀의 노래는 평소보다 더 열정적이었다.

“컁! 귀를 막았는데도 들린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찹쌀의 노래는 귀를 덮은 손을 뚫고 들려왔다.

“하하.”

찹쌀의 노래가 시작됨과 동시에 회복되는 몸.

듣기 괴로운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하루종일 밖에 있느라 피곤했던 몸이 회복되는 걸 느끼며 나는 웃었다.

-꾸에에에엑!

처음 찹쌀의 노래를 듣게 된 멧돼지는 깜짝 놀라 펄쩍 뛰었지만, 이내 회복되는 제 몸을 느낀 것인지 혼란스러운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댔다.

아마도 탈출구를 찾는 모양.

“꽥꽥꽥! 꽤애애액!”

하지만 찹쌀은 멧돼지가 움직이는 대로 바짝 붙어 노래를 불러댔다.

그러니,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그저 찹쌀의 노래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할 뿐.

“호에에!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기냐! 컁!”

**

QBS 라디오 방송국 안.

“자, 광고 끝나기 30초 전···. 20초 전···. 10초 전···. 스타트!”

‘On Air’에 불이 들어온 라디오 부스 밖에서 큐 사인이 떨어졌다.

“잠 못 드는 밤, 청취자님들의 귀를 힐링해줄 음악방송 ‘나잇힐링’ 2부 시작하겠습니다.”

감독의 큐 사인과 동시에, 부스 안에 있던 DJ가 매끄러운 어조로 라디오의 시작을 알렸다.

라디오의 인트로를 자연스럽게 끝낸 DJ는 한 박자 쉰 다음, 2부의 초대가수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청취자님들! 지금 제 옆에 누가 오신 줄 아세요? 저도 실제로 뵙는 건 처음인데요, 와···. 같은 여자인데도 너무 설레네요. 자! 그럼 얼른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누구보다 바쁘게 지내고 계신 싱어송라이터! 아라님! 안녕하세요!”

오늘의 소개 가수로 라디오방송에 초대된 아라는 자연스럽게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대며 인사했다.

벽 쪽에 달린 카메라를 향해 손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나잇힐링 청취자 여러분. 가수 아라입니다.”

초대가수인 아라의 인기를 입증하듯, 청취자들의 문자가 읽기 힘든 속도로 올라갔다.

“와. 목소리가 아주. 녹는데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신 거로 알고 있는데, 피부가 왜 이렇게 좋으시죠? 청취자분들도 보이시죠? 자 다들 비법이 궁금하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비법 좀 알려주시죠!”

올라가는 반응 중 밖에 있는 스태프가 띄워준 반응을 재빨리 스캔한 DJ가 아라에게 물었다.

“하하. 비법이라면···. 바로, 팬분들의 사랑?”

“에이. 아라씨, 여기서 그러시면 안 됩니다. 봐봐요. 지금 청취자님들이 사실을 알려달라고 난리잖아요! 자자, 그러니 비법 좀 알려주세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는데도 불구하고 얼굴에 빛이나는 비법은?”

“아···. 사실은 진짜 저만 알고 싶었던 건데···. 나잇힐링 여러분들께만 특별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머! 여러분, 들으셨어요? 저희한테만 특별히 알려주신대요! 자자 다들 귀 쫑긋 세우시고, 볼륨 높이시고! 스탠바이! 큐!”

청취자와의 밀당하는 아라가 만족스러운지 연신 밖에서 오케이 사인을 보내는 PD를 확인한 DJ가 다시 한번 청취자들의 집중을 끌어냈다.

반응창도 비법을 기다리는지 조금 뜸해진 그 순간.

아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건 바로···.”

“바로?!!”

“매일 아침 갈아먹는 야채주스 덕분이에요.”

“에이. 그건 비밀이라고 할 수 없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청취자 여러분?”

“하하. 아주 특별한 야채들로만 간 주스랍니다. 이거 진짜 구하기 힘들어요.”

마치 한국의 최고 대학을 간 학생이 제 비법은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습니다’라고 한 것과 같은 아라의 대답에 실망이라던 DJ가 다시 한번 물었다.

“예? 아라씨가 구하기 힘들다고 하면···. 대체 누가 구할 수 있습니까? 어? 청취자님들께서 대신 구해준다고 하네요! 대체 뭡니까 그게!”

“아···. 광고 같을까 봐 다는 못 말하는데···. 제가 요즘 특별히 시켜 먹는 농장이 있어요. 그곳 야채가 아니면 안 됩니다. 자, 제 비법은 여기서 끝!”

“아니, 여기서 끝내면 어떡해요! 무슨 야채인지, 어디서 사는지 좀···. 저한테만 알려주세요. 얼른요.”

DJ는 귓가에 속삭이라고 했지만, 여기는 라디오 방송국. 아무리 속삭여도 성능 좋은 마이크는 아라의 목소리를 잡아낼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아라는 DJ에게 속삭이는 대신, 자신의 비법을 조금이나마 공개하기로 했다.

“어···. 그럼 힌트 드릴게요. 신비로운 곳! 여기까지.”

신비로운 곳이라는 힌트를 준 아라가 이제 정말 안된다며 고개를 흔들자, 밖에 있던 PD가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PD의 사인을 본 DJ는 아라의 비법을 묻던 걸 멈추고 광고 멘토를 하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아라씨의 비법은 다음에 이어서 듣는 거로 하고, 광고 들은 뒤 저희는 아라씨의 신곡 라이브로 돌아오겠습니다.”

라디오의 광고가 시작됨과 동시에, ‘신비한 농장’이라는 검색어가 각종 포탈을 달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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