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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38화 (38/163)

37. 그럼 이제부터 얘기를 좀 해볼까요?

-꾸에에에엥!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빗소리를 뚫고 들린 고 경비의 울음소리에 급하게 비닐하우스로 가던 나는, 갑자기 들리는 멧돼지의 울음소리에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꽈악! 멧돼지가 놀랐다! 나 먼저 간다! 노을 이것 좀 받아줘라!”

휙.

고 경비의 목소리를 가장 먼저 알아채고, 날개를 파닥거리며 앞장서 뛰던 찹쌀이 입에 물고 있던 전을 노을에게 날렸다.

탁.

찹쌀의 행동에 이미 한 손에 쥐고 있던 전을 잽싸게 입으로 옮긴 노을은, 두 앞발을 뻗어 전을 잡아냈다.

나이스 캐치.

“잡았다! 한울! 우리도 얼른 가자! 컁!”

전을 잡아든 노을이는 전쟁에 승리한 개선장군처럼 가슴을 당당하게 내밀며 돌진 앞으로! 를 외쳤다.

두 발로 내 어깨에 선 노을의 배는 뿅 하고 튀어나와 있었다.

오래간만에 오는 비에 집에서 해물파전을 만들어 먹고 있던 터라 그러했다.

해물파전을 어찌나 잘 먹던지.

원래도 음식에 진심이라고 생각했지만, 고 경비의 울음소리를 듣고 급하게 뛰어나가는 와중에도 잊지 않고 전을 하나씩 들고 온 걸 보니, 확실히 입에 맞은 모양.

“풉. 어. 그래. 얘들아.”

토실한 배를 하고 재촉하는 노을에 나는 웃음을 삼키며 멈췄던 걸음을 옮겼다.

*

“참···.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찹쌀의 뒤를 따라 비닐하우스에 도착한 나는 비닐하우스 앞에서 대(大)자로 엎어져 있는 사람을 발견하곤 머리를 긁적였다.

“설마···. 너희가 막 들이받고 그러진 않았지?”

만약 비닐하우스 근처에 사람이 나타난다면, 쫓아내기만 하라고 한만큼 고 경비와 멧돼지가 직접적으로 가해를 가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하게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둘에게 물었다.

-끼에에엑!

-꾸엥!꾸에엥!

역시나.

내 질문에 고 경비와 멧돼지는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만국 공용어는 보디랭귀지라고 했던가. 정확히 고 경비와 멧돼지가 하는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저들의 고개 돌림에선 결백함이 느껴졌다.

그 결백함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옆에서 노을의 통역이 들려왔다.

“절대 아니라고 한다! 고 경비는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소리를 지른 것뿐이고, 멧돼지는 저 사람을 보고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컁!”

“놀라서?”

사람이 멧돼지를 보고 놀라 자빠졌다는 건 들어 봤어도, 멧돼지가 사람을 보고 놀라 소리를 질렀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보았다.

아. 멧돼지와 대화를 해본 사람이 없으니 당연한 걸지도.

의문을 내 나름대로 정리한 나는 다시 멧돼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놀라고 나서 들이받거나 그런 건 아니지?”

-꾸엥...꾸에엥.

“꽈악! 절대 아니다! 심지어 저 사람이 먼저 멧돼지를 건드려서 놀랐다고 한다! 저 사람이 나쁜 놈이다! 꽥!”

멧돼지의 두 번째 대답에 대한 통역은 찹쌀이 했다.

찹쌀은 비닐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멧돼지와 고 경비의 주변을 돌며 그들의 상태를 확인하던 차였다.

“뭐라고?”

저 사람이 먼저 건드렸다니.

하긴. 생각해보면 멧돼지는 고 경비에게도 공격하지 않았고, 찹쌀이가 날개로 푸닥거리를 할 때도 울상만 지었을 뿐,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었다.

그럼 저 사람이 간이 큰 건가? 하지만 저렇게 엎어져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거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뭐가 어떻게 됐든 저렇게 진흙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을 내버려두는건 아닌 것 같아, 나는 한숨 내뱉으며 엎어진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일단 일으켜서 물어보면 알겠지. 후. 얘들아, 나 좀 도와줄래?”

그래도 다행인 건 그렇게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쏟아지던 비가 그쳤다는 것.

그리고 고 경비에게 발견이 되어 내가 이곳으로 왔다는 것이었다.

비를 맞아 젖은 상태에서 장시간 이곳에 있었으면, 분명 어디 한군데는 고장이 났을 것이다.

산은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친절하지 않았으므로.

“꽈악!”

내 부탁에 찹쌀은 뒤뚱뒤뚱 엎어진 사람에게로 다가가더니, 노란 부리로 그 사람의 엉덩이를 깨물었다.

“찹쌀아?”

찹쌀의 터프한 모습은 종종 봐왔지만, 이렇게까지 터프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냥 문 것도 아니고, 문 다음에 비틀기까지.

보기만 해도 아플 것 같은 모습에 나는 뜨악한 표정으로 찹쌀을 보았다.

하지만 찹쌀은 당당했다. 가슴 깃을 부풀리며 고개를 쭉 빼 들었다. 멧돼지를 먼저 건드렸다는 소리에 어지간히 화가 난 모양.

그 순간, 엉덩이가 깨물린 사람의 발이 흔들렸다.

-움찔.

“컁! 움직였다!”

찹쌀이 엎어진 사람의 엉덩이를 깨물 때도 주시하고 있었던 노을이 어깨에서 방방 뛰었다.

“오? 찹쌀이 너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찹쌀이에게 엉덩이를 깨물리자마자 몸을 움찔거리는 걸 보니, 찹쌀의 당당함이 모두 이해됐다.

아마도 찹쌀이는 이 사람의 엉덩이를 깨물면 정신을 차릴 것을 알아차린 것 아닐까?

“꽈악!”

감탄하며 찹쌀이의 목덜미를 긁어주고 있자, 몸을 움찔거리던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어으···. 내···. 주···.”

“네? 뭐라고요?”

손발만 작게 움직였지 아직 바닥에서 들리지 않은 얼굴때문에, 엎어진 사람의 목소리가 끊겨 들렸다.

하지만 나에겐 작은 소리까지 모두 듣는 노을이가 있었다. 이제는 어깨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챱챱 거리며 파전을 먹고 있는 노을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노을이 입에 넣은 파전을 흘리지 않기 위해 입을 오므린 채 내용을 전달했다.

“‘어으···. 내 주머니···. 주문’이라고 했다! 쿙.”

입을 최소한으로 벌리며 말하느라 발음이 뭉개지긴 했지만, 노을의 해석은 정확했다.

노을의 말대로 남자의 왼쪽 주머니에 종이로 보이는 무언가가 튀어나와 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중얼거리는 걸 보니 아주 중요한 것 같아 종이를 주머니에서 빼냈다.

“많이 젖었네. 일단 말려야겠다······. 어? 이게 뭐야?”

이미 밖으로 나와 있는 모서리부터 시작된 물기로 흐물거리고 있는 종이를 말리기 위해 피던 나는 종이 안에 적힌 익숙한 단어에 눈을 크게 떴다.

‘신비농장 거래 목록’

우리 농장의거래 목록이라는 제목 밑에는 우리 농장 사이트에서 가져온 듯한 작물의 사진과 가격에 쭉 나열되어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가격 옆에는 x2, x3이라는 표시와 구매 인의 이름, 그리고 입금받은 금액이 적혀 있었다.

“오호라. 그러니까, 이 남자가 그냥 산에서 길을 잃어서 우리 농장에 우연히 들어온 게 아니다. 이거지?”

어딜 봐도 재판매 목적으로 보이는 종이를 든 나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절도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좀 알려드려야겠네.”

**

“아이고 한울아 너 괜찮나? 저 사람이 그 사람이냐?”

우리 고 경비와 멧돼지를 놀라게 한 남자가 서리 범이라는 증거를 확보한 나는 장 이장님께 가장 먼저 연락을 드렸다.

“네. 이것 좀 보시죠.”

“그게 뭔···. 아이고마. 이기이기 뭐꼬? 이거 다 니 농장에서 파는 거 아이가?”

신비농장 스토어의 단골이신 장 이장님은 종이에 프린트된 신비농장의 작물들을 단번에 알아차리셨다.

“네 맞습니다.”

“하이고. 간도 크다. 이 산골까지 와서 서리할 생각이나 하고. 서리가 얼마나 큰 절도죈 줄 모르나? 어데 면상이나 확인하자. 뭔 얼굴에 진흙팩을 했나? 와일노?”

“아까 오니까 엎어져 있더라고요. 일으켜서 앉히긴 했는데···. 이장님도 아는 사람입니다.”

“어잉? 아는 사람이라고?”

“네. 저 덩치에 핑크색 상의를 생각해 보십쇼.”

“핑크색···? 그게 뭔데······! 아이고! 인마 금마네!”

“네.”

내 말을 토대로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의 정체를 확인한 이장님이 펄쩍 뛰어올랐다.

“설마 니 작물이 잘 팔리는 거 알고 훔치러 온기가? 인마 이거 못쓰겠네. 한울아 쪼매만 기다려봐라. 내가 아랫마을 차 이장 부를 테니까!”

*

남자의 정체가 마동태라는 걸 알아차린 장 이장님은 그렇지 않아도 벼르고 있었다며, 아랫마을 차 이장을 불렀다.

“무슨 일인데? 뭔 급한 일이길래 나를 불렀나. 어휴. 하도 빨리 오라 캐서 달려왔더니 무릎이 나갈라 한다. 아이고.”

“니 무릎이 문제가 아니다! 쟈를 좀 봐라!”

“...? 누구? 어잉? 니가 왜 여있노?”

“...안녕하세요. 어르신.”

차 이장님이 도착하기 정신을 차린 마동태가 어색하게 인사했다.

마동태를 심문하기 위해 찹쌀이 그가 앉아있을 만큼의 체력만 회복시켜놓은 덕분이었다.

[꽈악···. 우리 작물을 훔쳐 가려고 한 것도 모자라 멧돼지를 놀래켰다!]

빠드득.

분노에 찬 찹쌀이 부리를 갈았다.

[괜찮다! 이제 저 사람은 벌을 받을 거다 컁!]

노을은 그런 찹쌀이 등을 토닥이며 찹쌀을 달랬다.

걱정 마라 찹쌀아.

내가 또 이런 건 전문이거든.

나는 장 이장님에게 간단하게 설명을 들은 차 이장님께 혼나고 있는 마동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내가 입은 피해 사항을 친절히 읊어주었다.

“어디 보자···. 사유지 출입금지 표지판을 저렇게 크게 붙여놨는데도 들어오셨으니, 사유지 침입죄가 적용되겠고. 거기다가···. 어이쿠. 제가 아주 아끼면서 키우던 나무들을 망가트리셨네요.”

고라니와 계약한 뒤로 혹시나 해 설치해둔 경고 표지판과 멧돼지를 위해 다져놓은 주변을 차례로 가리켰다.

“이, 이건 산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는···!”

마동태는 다져진 흙 주위에 쓰러진 작은 나무들을 보며 저건 자신이 한 게 아니라고 가슴을 퍽퍽 쳐댔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아니요. 제 사유지에서 제 돌봄을 듬뿍 받으면서 자라고 있던 나무죠. 거기다, 지금 이 종이. 제 농작물을 훔치려던 거 같던데···. 맞나요?”

“그 종이를 언제···! 그, 그건 내가 그냥 적어놓은 거야! 증거 있어? 내가 훔친 증거 있냐고?”

오호.

이렇게 나오시겠다.

“그렇게 나오시면, 이건 어떨까요? 제가 사기죄로 마동태 씨를 신고하는 거죠. 그리고 이 종이를 증거자료로 제출할 겁니다. 이미 이분들에게 돈을 받으셨죠? 그럼 제 변호사는 이걸 토대로 여기 적혀 있는 분들을 찾아가 증인 요청을 할 테고, 그러면···. 어이쿠. 죄명이 더 늘어나네요?”

조목조목 잘못을 짚으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얘기하자, 마동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사기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피해를 본 사람들이 직접 신고를 해야 하지만, 그건 자랑스러운 나의 변호사, 민준이 해결해 줄 터였다.

“워, 원하는 게 뭐야!?”

씩 웃으며 종이를 딸랑 흔들자, 그제야 정신이 든 마동태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잘못하신 분이 왜 이렇게 당당하실까?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잘못한걸 인정하면서도 당당하게 구는 마동태의 모습에서 옛 상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뭐야···?”

옛 기억을 떠올린 내가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반문하자, 그제야 사태파악이 된 듯 마동태가 다시 더듬거렸다.

“아니, 워, 원하는 게 뭡니까. 내가 잘못했어.”

이제야 좀 나아진 마동태의 태도에 나는 씩 웃었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얘기를 해볼까요?”

**

사건 다음 날.

마동태를 잡아낸 후 한울에게 칭찬받은 멧돼지는 행복한 울음소리를 내며 부상으로 받은 특별식을 음미했다.

-꾸엥!꾸엥! (특식은 더 맛있다! 좋다!)

-끼에에엑!(좋은 인간이다!)

-꾸엥! (맞다!)

고 경비의 말대로 저 비닐하우스의 주인인 한울은 정말 좋은 인간이었다.

동의한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멧돼지는 특식을 먹다 말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꾸에에에! 꾸엥! (착한 인간! 인간을 도와주면 상을 받는다!)

자신에게 이렇게 맛있는 상을 준 한울은 인간이었다.

자신이 한 일이라곤 인간인 한울의 부탁을 들어줬을 뿐이었다.

결국, 인간을 도와주면 상을 받는다는 결론을 내리며 멧돼지는 눈을 반짝였다.

-꾸엥! (나랑 가자! 고라니!)

-끼에에? (어딜?)

-꾸에에에! 꾸엥! (인간들을 도우러! 산 밑으로!)

-끼에에에에? 캭!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 안된다!)

-꾸에엥?(왜 안 되는 거냐?)

고 경비는 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멧돼지의 질문에 한숨을 푹 쉬었다.

덩치만 컸지, 아직까지 세상을 모르는 멧돼지.

-끼에에에! 끼에? (왜냐면 모든 인간이 여기 주인 같지 않기 때문이다! 넌 다른 인간을 본적이 있냐?)

-꾸엥? 꾸에 (다른 인간? 본 적 없다.)

-끼에에에 – 끼에에엑! 캬아악! (이 산 밑 마을은 아주 위험한 곳이다 – 나같이 경험이 많은 고라니만 내려갈 수 있는 곳이지! 저 밑에는 아주 무서운 사람들이 산다!)

-꾸엥? (무서운 사람?)

-끼에! (그렇다!)

사람이라곤 이곳의 주인밖에 만난 적이 없다는 이 순진한 멧돼지에게 산 밑 인간들의 무서움을 설명해 주기 위해 고라니는 제 일화를 얘기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끼에에... (그때는 산에 먹을 거라곤 한 톨도 없던 몹시 추운 겨울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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