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40화 (40/163)

39. 잠깐! 스톱!

“메, 멧돼지!!! 으아아아아악!!”

자신과 눈이 마주친 사람들이 모두 혼비백산하며 도망가는 걸 본 멧돼지는 의아했다.

“꾸엥?”

왜 도망가지?

도와준다고 하는 소리를 못 들었을까?

그러면 다시 한번 말해줘야겠다.

“꾸에에에엥!”

“퍼, 퍼뜩 다 도망가라!”

“으아아아아!”

“꼬르르···.”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조금 전보다 더 격렬했다.

멧돼지는 생각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저 반응을 어디서 많이 봤나 했더니, 자신이 낯을 가릴 때 저렇게 펄쩍 뛰었던 것도 같았다.

처음 보는 동물들이 자신에게 적대적인지 호의적인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저 사람들에게 자신은 위험한 멧돼지가 아니라는걸 알려줘야 하는 게 급선무.

위험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주려는 걸 보게 된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180도 달라질 거라 멧돼지는 생각했다.

“꾸엥!”

얼른 저 쇳덩이를 고랑에서 올려주고 사람들의 호의를 얻기로 한 멧돼지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으아아아아!”

사람들의 반응은 더 거세졌지만, 멧돼지는 확신했다.

자신이 저 쇳덩이를 올려주고 나면, 사람들의 시선이 바뀔 거라고.

“꾸에엥!”

세차게 달려 경운기가 빠져 있는 지척까지 도착한 멧돼지는 고개를 살짝 밑으로 숙였다.

그러고는 정확히 고랑에 빠진 경운기에 몸통박치기를 했다.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고랑에 빠졌던 경운기가 다시 논길 위로 안착했다.

“꾸엥!!!”

성공적으로 쇳덩이를 논길 위로 올린 멧돼지가 기쁨의 포효를 내질렀다.

쇳덩이와 부딪힌 살갗이 살짝 아프긴 했지만, 이쯤은 진흙에서 한번 뒹굴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다.

“꾸엥”

이 정도면 저 사람들도 나에 대한 경계심이 풀렸겠지?

세 사람이 낑낑거리며 올리려던 경운기를 성공적으로 올린 멧돼지는 당당한 표정으로 저 멀리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달려와 칭찬과 함께 포상을 줄 것을 기대하며.

하지만 멧돼지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가까이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털썩.

“아이고! 내 경운기!”

가까이 오기는커녕 흙바닥에 주저앉아 아이고를 외쳐댔다.

멧돼지는 예상과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기대감에 쫑긋 섰던 귀가 축 늘어지고, 쇳덩이를 올린 뒤 사람들을 보기 위해서 발딱 들었던 고개도 스르륵 내려갔다.

고 경비의 말을 들어야 했었던 것일까.

그래도 사람들이 싫어하는 건 하지 않았는데···.

쇳덩이와 부딪힌 몸이 조금 아려오는 것 같았다.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었던 멧돼지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들에게 시무룩한 눈빛을 보내고는 뒤로 돌아섰다.

“꾸엥···.”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멧돼지는 산속으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위로가 필요했다.

*

멧돼지가 산속으로 자취를 감추자,

얼어붙어 논길에 주저앉아 있던 어르신들이 하나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이고 다행이다. 이제 갔다. 심 영감 정신 차리라. 경운기 저리 냅둘끼가?”

제일 처음 일어난 데 성공한 밀짚모자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아직도 바닥에 철퍼덕 앉아있는 심 할배에게 물었다.

담담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다리는 아직도 갓 태어난 새끼노루처럼 달달 떨리고 있었다.

“어? 어···.”

평소라면 단박에 반박했을 심 할배는 아직 정신이 돌아 오지 않은 듯, 멍하게 대답했다.

“....근데, 아까 멧돼지 눈빛이······. 구슬프게 느껴졌는데···. 내가 미친 기가?”

두 번째로 일어서기에 성공한 빨강 장화가 말했다.

다리는 멀쩡했지만, 흙이 묻은 바지를 터는 손은 달달 떨리고 있었다.

“니도 그렇게 느꼈나?”

“그제 내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제?”

밀짚모자와 빨강 장화가 서로 ‘야! 너도?’를 외치는 사이 논길에서 일어나 경운기로 향한 심 할배는, 고랑에서 건져 올려져···. 아니, 멧돼지의 몸통박치기 때문에 다시 논길로 올라온 경운기를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멧돼지의 몸통박치기를 받고도 멀쩡한 경운기의 외관을 확인한 심 할배는 말없이 시동 핸들을 꺼내 축에 결합했다.

탁.

악셀을 올리고, 결합한 시동 핸들을 돌리자 탕! 탕! 하며 엔진이 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경운기 특유의 달달 거리는 소리를 내며 정상적으로 시동이 걸렸다.

“....”

“잉? 뭐꼬 경운기 멀쩡하네?”

경운기의 시동이 걸리는 소리를 듣고 다가온 빨강 장화가 놀랍다며 손뼉을 쳤다.

“이야. 심 영감, 이 경운기 어디 거고? 멧돼지한테 부딪혀서 날았는데도 멀쩡하네? 저 멧돼지 아파서 도망간 거 아니가?”

“...”

밀짚모자의 호들갑에도 심 영감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뭐고. 어디 다쳤나?”

옆에서 아무리 난리를 쳐도 반응이 없는 심 할배의 모습에 빨간장화가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한참을 경운기만 쳐다보며 침묵을 유지하던 심 할배의 입이 열렸다.

“그 멧돼지 말이다···.”

“어. 멧돼지가 왜?”

진지한 심 할배의 말에 밀짚모자가 고개를 숙이며 집중했다.

밀짚모자와 빨간장화를 차례로 본 심 할배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실은 내를 도와주려고 온 산신령 아닐까?”

“.....”

갑자기 멧돼지를 산신령이라 말하는 심 할배에 논길 위는 순식간에 침묵에 휩싸였다.

탈탈탈탈탈···.

시동 걸린 경운기만 애처롭게 침묵을 채우는 가운데, 어이없는 심 할배의 주장에 말문이 막혔던 밀짚모자가 빨간장화에 물었다.

“...뭐라카노?”

지금 자신이 들은 게 맞냐는 투였다.

“몰라. 충격받아서 정신이 훼까닥했나?”

빨간장화가 오른손 검지를 올려 관자놀이 부근에 뱅뱅 돌렸다.

“어. 미쳤네. 가자.”

밀짚모자가 빨간장화의 의견에 백번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괜히 걱정했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심 할배는 그런 그들을 잡으려고 했지만, 더는 들을 생각이 없다며 귀를 막아버렸다.

점점 멀어져 가는 그들을 쫓아가기 위해 경운기에 올라탄 심 할배가 외쳤다.

“아니 들어봐라. 어떤 경운기가 멧돼지한테 받쳤는데 멀쩡하드노! 그러니까 그 멧돼지는 내를 도와주러 온 산신령이라니까! 어? 어디 가노! 들어보라니까!”

탈탈탈탈탈···.

듣는이라고는 없는, 외로운 외침을 하는 심 할배의 뒤로 경운기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캬항!”

큰 창으로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주방 안.

싱크대 옆에 서서 안을 보고고 있던 노을이 펄쩍 뛰었다.

어찌할 줄 몰라고 하며 제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리던 노을은, 몸을 돌려 한울에게로 달려갔다.

“꺙! 한울! 한울! 저게 싱크대를 탈출하려고 한다!”

“어이쿠. 노을아 조심. 어깨로 올라와.”

끓고 있는 냄비를 보고 있던 나는 가스레인지 바로 옆에서 내 옷을 잡아당기는 노을을 향해 팔을 뻗었다.

도도도

내 팔을 타고 어깨 위에 올라온 노을은 흥분한 어투로 내게 종알거리기 시작했다.

“한울! 당장 저 게들을 단속시켜야 할 것 같다! 아무리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컁!”

“어이구. 그랬어?”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다 택배를 두고 갔다는 배송문자에 평소보다 빨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택배 명이 ‘신선-모둠 해물’이라고 적혀있어 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다! 컁! 어서 저 게들을 무찔러줘라!”

항상 쉬운 돈벌이를 찾아다니며 이기적으로 굴었던 마동태와는 달리, 그의 가족들은 완전 다른 류의 사람들이었다.

비닐하우스 앞에서 진흙을 덕지덕지 묻힌 우비를 입고 있는 마동태를 보자마자 사태 파악을 한 그의 가족들은 바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혹시 동태로 인해 피해 본 금액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바로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어찌나 정중한 투로 말하는지, 그들의 빠른 사과는 잔뜩 열이 올라있던 모두를 가라앉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가만두지 않을 거라던 장 이장님과 차 이장님도 마동태의 머리를 누르며 사과하는 그들에 마동태를 미화리에서 쫓아내는 거로 만족할 정도였다.

나도 별 피해가 없었기에 보상은 괜찮다고 거절했다.

처음엔 마동태에게 쓴맛을 좀 보여주려고 했었지만, 가족들을 보고 바짝 얼어붙는 그의 모습을 보니 공권력을 이용한 벌보다는 그의 가족들의 손에 맡기는 것이 훨씬 더 마동태에게 효과적일 것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게들을 한번 무찔러 볼까?”

벌써 손질되어 싱크대 위 접시에 가득 담긴 가리비와 각종 조개, 아직 손질이 필요한 활개와 그 옆에 있는 전복. 그리고 싱크대에 놓을 곳이 없어 식탁에 있는 집게발이 묶인 랍스터까지.

갑각류들만 이만큼이었고, 문어나 오징어, 그리고 각종 생선은 이미 너무 많아 이미 따로 보관해 둘 정도였다.

이 모든 것들은 마동태의 가족들이 감사의 표시로 보낸 해산물이었다.

바다 만큼 통이 큰 감사 덕분에 당분간은 해산물 파티를 해야 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컁! 어떻게 무찌르냐? 나도 도와주겠다!”

노을은 처음 보는 갑각류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물고기는 봤어도, 이렇게 딱딱하고 무섭게 생긴 건 처음이라며, 게와 랍스터를 아이스박스에서 꺼냈을 땐 깜짝 놀라며 내 등 뒤로 숨기도 했다.

“게는, 이렇게 배를 따야 해.”

솜방망이 같은 앞발을 휘두르며 게 손질을 도와준다는 노을에게 게 손질하는 걸 보여주었다.

집게발에 물리지 않게 잽싸게 등딱지를 잡아 뒤집은 다음, 세모 모양으로 생긴 배를 딴 뒤 그곳에 손을 넣어 등딱지와 분리 후, 아가미와 등딱지에 붙어있는 모래주머니를 제거하면 끝.

“호에에···. 대단하다 한울!”

순식간에 게 한 마리를 손질한 나를 보며 노을이 콩콩 뛰었다.

“자, 이제 노을이도 해봐.”

“컁! 기다리고 있었다!”

파칭!

다치지 않도록 집게를 제거한 게를 노을의 앞에 놓아주자, 게가 움직이지 않게 한발로 꾹 누른 노을이 발톱을 꺼내 들었다.

“캬항!”

신들린 듯 게 손질을 하는 노을에게 따봉을 날린 나는,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냄비로 다시 돌아갔다.

보글보글.

디포리와 다시마, 그리고 새우를 넣어 만든 육수에 무와 얼큰함을 선사해줄 양념장을 집어넣기 위해서였다.

스윽.

육수를 만드는 소임을 다한 육수 재료들을 건져 내고, 미리 큼직하게 썰어둔 무와 양념장을 넣자, 붉은 색상으로 바뀐 육수가 바르르 끓어 올랐다.

“음···.”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해물탕을 숟가락으로 조금 덜어 맛을 보았다.

약간 싱거웠다.

“한울! 내가 게를 다 무찔렀다! 컁? 혼자 먹는 거냐?”

“하하. 노을이도 간 좀 볼래?”

“나는 간을 잘 보는 위대한 여우 정령이다!”

내가 간을 보자마자 자신도 달라며 방방 뛰는 노을에게 새 숟가락을 꺼내 국물을 조금 떠 줬다.

“.....호엥? 한울, 이거 이상하다.”

노을은 숟가락에 있는 국물을 맛보더니 몸을 파르르 떨었다.

“어떻게 이상한데?”

“마, 맛이 없다! 컁!”

얼마나 놀랐는지 꼬리를 파르르 떨며 노을이 나를 배신감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크흡. 진짜 간 잘 보내?”

화가 나도 귀여운 노을의 모습에 낄낄거리며 간을 잘 봤다고 엄지를 들어주자, 세상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던 노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호에···? 이 맛이 맞는 거냐?”

“응. 해물탕이니까. 조금 싱거워야지.”

해물을 요리할 때는 처음에는 조금 싱겁게 해 줘야 한다.

지금은 짠맛이 조금 모자라는 듯해도, 해물을 넣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주 맛이 좋아질 테니까.

“음···. 이건 이 정도면 됐고. 노을아, 밖에 나가서 다들 밥 먹으러 오라고 불러줄래?”

양념장과 같이 넣은 무가 반쯤 익은 걸 확인한 내가, 냄비에 텃밭에서 따온 야채들을 와르르 쏟아 넣으며 노을에게 부탁했다.

“컁! 알았다!”

경쾌하게 대답한 노을이 뒷마당에 있을 찹쌀과 포동, 그리고 우울함에 축 처져 있는 멧돼지를 부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탁.

끓고 있던 냄비를 식탁 위에 있는 가스버너 위에 조심스럽게 올린 뒤 불을 켰다.

차르륵.

다시 끓어 오르기 시작하는 냄비에 손질한 조개와 오징어, 새우, 그리고 미더덕을 넣고 뚜껑을 덮은 나는 싱크대로 몸을 돌렸다.

머리에 혹을 하나 달고 오더니 우울에 빠진 맷돼지를 위로하기 위해 노을을 제외한 모두가 뒷마당에 있었다.

“자, 그럼 골뱅이무침을 끝내볼까?”

노을이 모두를 데리고 돌아오기 전에 요리를 끝내기 위해 나는 서둘러 미리 고추장 양념을 해 놓은 골뱅이에 어슷썬 파와 오이, 양파, 그리고 식초를 넣고 슥슥 비볐다.

“음, 역시 맛있어.”

골뱅이를 비비던 손으로 하나를 집어 입에 넣자, 상큼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좋았어.”

이 정도면, 우울함에 빠진 멧돼지를 위로하기 충분했다.

양념을 끝낸 골뱅이를 소면이 담긴 접시에 옮겨 담자, 현관문 밖에서 멧돼지와 고라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들어올 모양.

모두를 집에 들이기 위해 현관문으로 향하던 나는 불현듯 무언가를 놓친 기분이 들어 멈춰 섰다. 찜찜한 본능은 무언가 잘못됐음을 알리고 있었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잘못된 무엇을 깨달은 나는 현관문으로 급히 달려갔다.

그리고 외쳤다.

“얘들아 잠깐! 스톱! 들어오지 마!”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