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빼놓으면 안 되는 것
-꾸에에?
-끼에에?
집으로 들어오지 말고 있으라는 내 목소리에 현관문으로 다가오던 발소리가 멈췄다.
-컁! 무슨 일이냐?
의문 어린 노을의 목소리가 현관문 밖에서 들려왔다.
“음···. 노을이랑 찹쌀이, 그리고 포동이만 일단 들어와 볼래?”
-컁! 알았다! 고 경비, 멧돼지 잠깐만 기다려라!
달칵.
노을의 말에 대답하는 고 경비와 멧돼지의 소리에 현관문을 열었다.
“한울! 다 데리고 왔다! 컁!”
노을이 제일 앞에 서서 앞발을 올리며 말했다.
어서 칭찬해달라는 몸짓에 나는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 고마워 노을아.”
“캬항!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쓰다듬을 받은 노을은 눈을 초승달로 만들며 만족스러운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기분이 좋은지 풍성한 꼬리가 살랑거렸다.
“꽈악! 나는 멧돼지를 달랬다!”
“고생해서 찹쌀아.”
멧돼지의 머리 위에 앉아있는 찹쌀이 날개를 퍼덕거리며 자신의 한 일을 어필했다.
“고생하지 않았다! 이건 당연한 거다 꽉!”
“오 그래? 우리 찹쌀이 정말 착한걸? 대단해.”
멧돼지를 위로해 준 건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친구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가슴을 한껏 부풀리는 찹쌀의 행동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꽈아악!”
가슴 깃털과 마찬가지로 한껏 치켜 올라간 턱을 긁어주니 찹쌀이 만족스럽게 울었다.
꼬꼬곡?
찹쌀의 힘찬 울음소리에 마당을 돌아다니던 닭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찹쌀을 쳐다보았다.
찹쌀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기며 키운 병아리는 어느새 보송한 솜털을 벗고, 푸른빛의 깃을 가지며 병아리의 모습에서 벗어나 닭의 면모를 보이었다.
인간으로 치면 청소년기에 접어든 닭 중 하나는 이제 목이 트이기 시작했는지 아침마다 ‘끄끄끅!’ 하고 울며 기상 벨 역할을 톡톡히 하는 중이었다.
아직은 덜 트인 목 탓에 울음소리가 탁하긴 했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단련이 되는지 소리가 그럴듯해 지고 있다.
“꼬꼬들한테서 다른 요청사항은 없고?”
“없다! 이번에 바꾼 바닥이 좋다고 한다 꽉!”
노을이 나에게 붙어 내가 하는 일을 도와준다면, 찹쌀은 알아서 자신의 할 일을 찾아서 하는 편이었다.
고 경비의 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도 찹쌀이었고, 비닐하우스를 가기 전, 그리고 돌아온 후에는 꼭 닭장을 기웃거리며 닭들의 불편사항과 개선해야 할 점들을 나에게 보고했다.
“오케이. 좋았어. 다른 건의사항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라고 하고.”
찹쌀의 덕분인지 우리 집의 닭들은 아직 다 큰 닭이 아닌 중닭 정도 되지만, 몸집은 마을의 그 어떤 닭보다 컸다.
“꽈악! 나만 믿어라!”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칭찬하자, 찹쌀이 만족스러운 울음소리를 내며 날개를 다시 한번 파닥거렸다.
‘어디 보자, 오늘은 얼만치나 컸다. 한울아! 한울아! 이 닭들, 우리 집에서 가져간 닭 맞나? 왜 날마다 덩치가 더 커지는 거 같노? 니 뭐 특별한 거 맥이나?’
장 이장님은 우리 집에 방문할 때마다 닭장을 체크하셨는데, 닭장을 확인할 때마다 눈을 크게 뜨고 의문을 표했다.
‘아니 우리는 갈고리 괴물 자식들이 아닌가? 뭐 이치로 사람 손을 안 피하나. 혹시나 해서 어제 닭장에 들어갔다가 머리 뜯겼다 아이가! 이 썩을노무닭시키!’
며느리발톱이 인상적이었던 수탉과는 아직도 잘 지내시는 모양.
장 이장님은 항상 의문과 분노를 표출하셨다.
‘이 아들 커서, 병아리 낳잖아? 내 딱 3마리만 도. 아무래도 니가 골라간 야들이 그 성질 더러운 수탉한테서 나온 유일한 순둥이들 일끼다. 이 유전자는 널리 널리 퍼뜨려야 한다. 아이고 때깔도 이치로 곱고. 한울이 니가 진짜 정성스럽게 키우나 보네. 고맙다.’
눈을 반짝이며 아직 다 크지도 않은 닭들의 2세를 요구하면서도 마지막에는 꼭 이 말씀을 하셨다.
‘그래 애정을 가지고 키워야 뭐든 이렇게 잘 큰다.’
“그때 찹쌀이 뭐라 그랬더라?”
찹쌀은 항상 그런 이장님을 경계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곤 했는데, 저 말이 끝나면 항상 하는 말이 있었다.
‘애정 가지곤 안 된다! 말을 알아들어야 한다 꽉!’
그때 찹쌀의 표정을 봤으면 아마 장 이장님은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한쪽 부리의 입꼬리만 올리고 한숨을 푹 쉬는 모습은 마치 ‘니가?’라고 하는 표정 같았다.
“푸흡.”
“꽉?”
“찹쌀이 대단하다고.”
이름을 언급하더니 갑자기 웃는 나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찹쌀에게 다시 한번 더 엄지손가락을 들어주었다,
“맞다! 나는 대단하다! 꽈악!”
기쁘게 울며 날갯짓하는 찹쌀의 턱을 한 번 더 긁어준 나는, 고 경비의 옆에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주고 있는 포동이를 보았다.
“포동아, 뭐하니?”
“고 경비 다이어트 중이다! 킁!”
“응? 다이어트···?”
갑작스러운 다이어트 선언에 고 경비를 보았다.
포동이에게 무언가를 받아먹다 내 시선을 느낀 거 경비가 고개를 들었다.
-끼에에!
“어?”
분명 고라니 소리였지만, 나는 왠지 고 경비의 말의 뜻이 해석되는 것 같았다.
마치······.
“맛없다! 맵다! 다른 거 먹을 거다! 컁!”
이런 것처럼.
“어. 맞어. 정확해. 노을아.”
머릿속에 맴도는 내 생각을 정확하게 해석해준 노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다시 시선을 포동이에게 돌렸다.
“포동아 갑자기 웬 다이어트야?”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들이 다이어트를 해 본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산짐승이 다이어트를 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였다.
“고 경비가 운동하지 않아서 살이 쪘다. 킁. 살이 찌면 여러모로 불편하다.”
“아···. 그럼 포동이도 같이 하는 거야?”
살이라고 하면 여기 있는 모든 이들중 포동이 제일이었다.
이름이 괜히 포동일까.
“킁? 나는 완벽한 몸매를 가지고 있는다! 그러니 다이어트는 필요 없다 킁!”
포동이의 포동포동한 배를 보자, 내 시선을 따라 눈을 내린 포동이 배를 통통 때리며 말했다.
너구리에게 완벽한 몸의 기준은 조름 다른 걸까?
당당하게 자신의 배를 통통 두드리는 포동의 모습에 대충 고개를 끄덕인 나는 본론에 들어갔다.
“오케이. 알았어. 그럼 노을이랑 찹쌀이, 그리고 포동아 나 좀 도와줄래?”
“컁! 언제든지!”
“꽈악! 맡기기만 해라!”
“킁. 아직 덜 먹였는데···. 그래도 한울이 부탁하는 거니, 하겠다!”
“고마워. 그럼 고 경비랑 멧돼지는 밖에 잠깐 있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정령을 현관문 안으로 들인 나는 밖에서 멀뚱히 서 있는 고 경비와 멧돼지에게 말하자, 정말 맛없는 표정으로 포동이 준 것을 씹고 있던 고 경비가 입안에 든걸 퉤! 뱉었다.
그러고는 경쾌하게 대답했다.
-끼엑!
-꾸엥!
**
“다른 게 아니라 날도 좋은데 밖에서 먹으려고. 요리 옮기는 것 좀 도와줄래?”
모두에게 스탑을 외친 이유는 고 경비와 멧돼지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노을과 찹쌀, 그리고 한울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움직인다고 해서 털이 흩날리는 것도 아니고, 설사 흩날리더라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아무 생각 없이 정령들과 같이 앉아 먹던 것처럼 하려던 찰나, 거실 창으로 보이는 멧돼지와 고 경비 뒤로 피어오르는 흙바람에 스탑을 외쳤던 것.
흙바람의 출처는 멧돼지의 털이었다.
진흙에서 뒹구는 걸 좋아하는 멧돼지의 털 한 올 한 올에는 진흙이 엉겨 붙어 있었는데, 날이 좋아 햇볕이 내리쬘 때면 엉겨 붙은 진흙이 말라 멧돼지가 움직일 때마다 흩날리곤 했다.
거기다 고 경비도 뭘 했는지 여기저기 기다란 풀을 대롱대롱 달고 있어 실내에 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킁! 옮기는 거라면 내가 가장 자신 있다!”
요리 옮기는 걸 부탁하자, 주방에 들어오자마자 식탁과 싱크대 상판 가득 놓여있는 음식들을 보고 침을 꼴깍거리던 포동이 제일 먼저 손을 들고 외쳤다.
“역시. 포동이. 그러면 저기 가스버너랑 그 위에 있는 냄비 좀 부탁해도 될까?”
“당연하다! 킁! 어디로 가져다 두면 되냐?”
“뒷마당에 있는 평상으로 부탁해.”
“킁! 알았다!”
포동은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능력을 사용해 가스버너와 냄비를 한꺼번에 띄워 뒷마당으로 총총 걸어갔다.
“호에에 한울! 도와줘라!”
포동의 모습을 본 노을이 랍스터가 든 스탠볼을 두 앞발로 힘겹게 들며 외쳤다.
랍스터가 든 스탠볼이 노을의 몸보다 더 큰 데다, 미끄러운 탓이었다.
“잠깐만, 노을아.”
“꽈악! 내가 도와주겠다···.!”
노을의 비명에 팔을 뻗었지만, 찹쌀이 더 빨랐다.
날개를 파다닥 거리며 노을에게로 뛰어가던 찹쌀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노을이 위태롭게 들고 있는 스탠볼 밑으로 슬라이딩했다.
밑으로 들어가 받쳐 중심을 잡아줄 요량인 것 같았다.
하지만 미처 물이 떨어져 미끄러운 식탁을 예상하지 못한 찹쌀은 그대로 스탠볼 밑을 통과했다.
“꽤액! 한울!”
스탠볼 밑을 스쳐 지나간 찹쌀이 외마디 소리를 남기고 식탁 밑으로 사라졌다.
식탁을 향하고 있던 나는 걸음을 빨리했다.
“읏차. 세이프!”
서둘러 식탁으로 간 나는 식탁에서 떨어지는 찹쌀을 낚아챔과 동시에 노을이 위태롭게 들고 있던 통을 들었다.
“컁! 멋지다 한울!”
제 몸보다 큰 통이 제게서 사라진 걸 확인한 노을이 최고를 외쳐댔다.
“꽤액······. 살았다.”
찹쌀은 놀란 듯 내 손에 제 부리를 턱 올리며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이 둘이 음식을 옮기는 건 무리라고 판단한 나는 다른 부탁을 하려 입을 열었다.
“노을이랑 찹쌀이는 이거 옮기지 말고···.”
“컁! 있어봐라! 할 수 있다!”
“지금 건 연습이었다 꽥!”
음식을 옮기지 말라는 소리에 노을과 찹쌀이 강력하게 할 수 있음을 피력했다.
뭐라도 옮기겠다며 낑낑대는 둘의 모습에 나는 미소지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지.
“...대신 뒷마당에 평상 좀 깨끗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비가 오고 나면 작물들이 쑥쑥 자라기도 하지만, 흙이 섞인 빗방울은 자국을 남기기도 한다.
“컁! 청소는 내 전문이다!”
“꽈악! 물은 내가 뿌리겠다! 가자 노을!”
자신들도 할 수 있다며 팔딱거리던 둘은 내 부탁이 끝나기도 전에 쌩하고 주방에서 사라졌다,
“천천히 가. 다칠라.”
**
"이게 마지막이다 킁!"
포동이 마지막 접시를 평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음식이 가득 놓인 평상은 깨끗하다 못해 반짝거릴 정도였다.
노을과 찹쌀의 손길이 닿은 덕이었다.
"포동아 고마워. 노을이랑 찹쌀이도 고마워. 고생했어."
"별거 아니다! 컁!"
"청소는 맡겨만 줘라! 꽈악!"
노을과 찹쌀은 무엇을 옮기는 데만 별 재능이 없었지, 깨끗하게 하는 것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노을이 풍성한 꼬리로 나뭇잎과 흙 자국 등을 슥슥 쓸어내면, 찹쌀이 그 뒤를 따라 물대포를 쏘았다.
물대포는 노을의 꼬리로 해결하지 못한 얼룩들을 깨끗하게 닦아내고는, 찹쌀의 의지에 따라 다시 뒷마당에 뿌려졌다.
청소도 하고 물까지 주니 일석이조가 따로 없었다.
모두의 힘으로 만들어진 식탁을 보며 손바닥을 짝하고 쳤다.
"자, 모두들 고생했어. 고 경비랑 멧돼지도 기다리느라 고생했다. 어서 와."
-끼에에!
-꾸에엥!!
깨끗한 평상 위를 가득 채운 해산물을 본 두 동물의 눈은 튀어나올 듯 커졌다.
특히나 마을 어르신들에게서 거부 아닌 거부를 당하고 우울함에 빠져있던 멧돼지는 그게 언제였냐는 듯 음식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꾸엥! 꾸엥! 꾸에엥!!
평상 옆, 노을과 찹쌀이 청소하는 세 포동이 비닐하우스에서 가져온 자신의 그릇 앞에 선 멧돼지가 눈물을 글썽였다.
“이런 건 처음 본다고 한다! 멧돼지가 감동했다! 컁!”
“그래? 그런데 지금 여기서 감동하면 안될 텐데···.”
“꽈악? 왜냐?”
찹쌀을 필두로 왜냐고 묻는 이들을 향해 나는 조용히 평상 옆에 있는 바비큐 그릴을 끌고 와 뚜껑을 열고 안에 있는 숯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꺙! 놀랬다!”
청소를 끝내자마자 지정석인 내 어깨에 앉아있던 노을이 펄쩍 뛰었다.
말없이 구석에 놓아두었던 접시를 들자, 노을이 고개를 쑥 빼고 접시 위의 재료들을 요리조리 살피던 노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컁! 이건 요리가 안된 것 같다!”
“정확해. 이건, 여기서 바로 해 먹을 거거든.”
내 손에 들린 커다란 접시에는 한 마리가 통째로 꼬치에 꽂힌 오징어, 달큰한 파를 일정한 크기로 송송 썰어서 만든 대파 꼬치, 그리고 살아 꿈틀거리는 전복까지.
야외 해물파티에서 빠질 수 없는 조합들로 만들어진 그릴용 해산물을 든 나는, 접시 위에 있는 꼬치들을 하나씩 그릴 위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아직까지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보는 이들을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야외에서 먹을 때는 숯불구이를 빼놓으면 안 되거든.”
치이익.
맛있는 소리와 연기가 뒷마당에 퍼지기 시작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