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헉! 어떻게 아셨습니까?
“너무나 맛있었다 컁······.”
모든 접시가 깨끗이 비워진 평상 위.
노을이 만족스러운 소감을 내뱉으며 평상위로 발라당 드러누웠다.
“꽈아악-”
노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찹쌀이 뒤뚱뒤뚱 노을의 옆으로 걸어가더니 노을과 마찬가지로 배를 보이며 발라당 누었다.
“킁! 참 좋은 자세인 것 같다!”
끝까지 접시에 남은 국물까지 싹싹 핥아먹던 포동도 접시를 슬쩍 내려놓고 둘의 옆으로 가 드러누웠다.
꼬리를 살랑거리는 노을과 노란 발을 하늘을 향해 헤엄치는 팔랑거리는 찹쌀, 그리고 누웠음에도 여전히 볼록 튀어나온 제 배를 통통 두드리는 포동이.
나른한 셋의 모습에 나는 접시를 정리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들 옆에 같은 자세로 누웠다.
두 손으로 머리를 받히고 오른쪽 다리를 들어 왼쪽 다리에 올리니 자세가 만들어졌다.
“이야 역시 너희가 뭘 좀 아네.”
눈을 감고 왼쪽 다리에 올린 오른발을 까딱거리며 말하니, 옆에 있던 노을의 목소리가 들렸다.
“컁?”
의문이 가득 든 노을의 외마디에 한쪽 눈을 슬쩍 뜬 내가 말했다.
“밥 먹고 이렇게 누워서 휘파람까지 불면···!”
“꽈악?”
“...행복해진다. 이거지.”
휘휘-
입을 모아 휘파람을 불었다.
뜨뜻하게 먹어 든든한 배를 하고 따사로운 햇볕을 맞으며 눈을 감고 휘파람을 부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사아아.
내가 분 휘파람에 화답하듯 뒷마당과 산의 경계를 그어주는 대나무가 바람에 부딪혀 청량한 소리를 만들었다.
살랑
대나무 내음을 간직한 바람이 얼굴을 슬쩍 지나치더니 머리카락을 흩날리게 했다.
사락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감고 있던 눈을 뜨니, 노을이 나와 같은 자세를 만들고 있었다.
“컁! 나도 행복하다!”
팔다리가 짧아 어딘가 2프로 부족한 자세를 만들고 꼬리를 살랑거리는 노을의 귀여운 모습은 웃음을 절로 나오게 했다.
“푸흡.”
“호에? 왜 웃냐? 내 자세가 너무 완벽한 거냐? 그래서 더 행복해 진 거냐? 역시! 나는 위대한 여우 정령 노을이다!”
푸힛
내 웃음소리에 노을이 뒤로 뻗어 머리에 대는 시늉을 하던 앞발을 내려 입을 가리며 키득거렸다.
“끙···. 그 자세는 어떻게 하는 거야?”
끙끙대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드니, 포동이 짧은 다리들을 버둥거리며 내 자세를 따라 하려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꽈악! 포동 너는 거 경비 다이어트를 신경 쓸게 아닌 거 같다!”
옆에 있던 찹쌀이 포동에게 사실 폭행을 날리며 노란 부리로 푝 한숨을 내쉬었다.
“킁! 내 배는 원래부터이랬다!”
아···. 원래부터 그런 거였어?
당당하게 제 배를 두드리며 당당하게 말하는 포동이의 말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리고 다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캬하항!”
“꽥꽥꽥!”
-끼끼낑!
-꾸에엥!
포동과 나만 제외하고.
“무슨 일이냐? 왜 웃냐? 나도 같이 웃자 킁!”
약속한 듯 동시에 웃는 정령과 동물들에 포동이 자세 만드는 걸 포기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너무 감동적이라 그래. 그렇지 얘들아?”
“컁! 그렇다!”
노을이 모두를 대표해서 내 말에 동의하곤 다시 푸히히 웃었다.
“킁? 내 배가 그렇게 감동적인 거냐? 알았다 더 봐라!”
“푸흡······. 포동아, 네가 최고야.”
모두가 자신의 배를 보고 웃는다면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며 누웠던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당당하게 배를 쭉 내미는 포동의 모습에 나는 결국 참았던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걸 이제 알았나? 킁!”
“으하하-”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가 최고인 건 당연한 것’을 외치는 포동이에 배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하. 진짜 많이 웃었네.”
제 배를 당당히 내밀고 평상 위를 빙 도는 포동의 순회공연에 배를 잡고 웃었던 나는 너무 웃은 나머지 눈가에 고인 눈물을 검지로 닦아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정령들은 언제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
조그마한 것에도 감사하고, 칭찬 한마디에 뿌듯해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진짜 행복하네.”
요 작은 정령들이 뿜어내는 긍정 에너지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다시 평상위로 벌러덩 누웠다.
힐링이 따로 있나.
이런 게 바로 힐링이지.
**
찹쌀의 물대포로 빠른 설거지를 마치고, 포동의 능력으로 삽시간에 접시들을 주방으로 옮기니 불과 몇 분도 되지 않아 뒷마당이 파티를 벌이기 이전으로 돌아갔다.
“자, 그럼 고 경비와 멧돼지는 내일 또 보자.”
-끼에엑!
-꾸엥!
나와 찹쌀, 그리고 포동이 평상을 정리할 동안 노을이와 함께 여기저기 흩어진 낙엽들 물어 대나무 숲 쪽으로 옮기던 고 경비와 멧돼지가 만족스럽게 울며 대나무숲으로 사라졌다.
“컁! 멧돼지 기분이 다시 좋아진 거 같다!”
과연.
노을의 말대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축 처졌던 멧돼지의 꼬리가 경쾌하게 살랑거렸다.
“다 우리 노을이랑 찹쌀이, 그리고 포동이가 옆에 있어서 그런 거지.”
“한울 덕분이다 꽉!”
“맞다! 한울이 해 주는 음식은 내가 여태 먹어봤던 모든 것들보다 맛있다! 특히 오늘 먹은 건 최고최고였다 킁!”
“호에···. 포동이가 말을 저렇게 길게 하는 건 처음 봤다.”
“오. 그러게.”
평소에 말을 짧고 느리게 하는 포동이 저렇게 빠르고 길게 말하는 걸 보니 굉장히 만족스러웠던 모양.
“나는 한울이 해 주는 거면 다 맛있다! 그러니 찹쌀의 말대로 멧돼지가 기분이 좋아진 건 한울 덕분이다!”
오늘따라 컨디션이 최고조에 달한듯한 포동을 보며 감탄하자, 노을이 내 어깨로 폴짝 뛰어와 작은 발로 안마를 시작했다.
노을의 안마는 고양이의 꾹꾹이와 비슷했지만, 세기는 전혀 달랐다.
“억. 그래. 고마워 노을아.”
마치 피부를 꿰뚫어 보는 것처럼 뭉친 곳만 꾹꾹 눌러대는데, 그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노을의 꾹꾹이가 끝나고 나면 근육통이 언제 있었냐는 것처럼 시원해져 이 정도 아픔쯤은 참을 수 있었다.
“꽈악! 기념으로 난 노래를 하겠다!”
노을의 안마가 시작되면 꼭 뒤따라 오는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찹쌀의 노래.
“꽤애애애액! 꽥꽥꽥!”
찹쌀도 오늘의 요리가 만족스러웠는지 여느 때보다 더 격렬하게 목을 까딱거리며 노래를 시작했다.
“컁! 미안하다 한울! 나는 오늘도 막지 못했다!”
노을이 단말마의 외침과 동시에 꾹꾹이를 멈추었다. 그리고는 꾹꾹이를 멈춘 앞발들을 귀로 가져간 뒤 내게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내고, 내 어깨에서 뛰어내려 뒷마당에서 탈출했다.
“나는···. 생각해보니 아직 마치지 못한 일이 있는 것 같다! 킁!”
찹쌀이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눈동자가 흔들리던 포동은, 노을의 탈출을 보고는 당당하게 내밀고 있던 배를 집어놓고, 남은 일이 생각났다며 급하게 대나무 숲으로 달려갔다.
당연하게도, 비닐하우스에 남은 일 따위는 없었다.
“찹쌀아, 이제 괜찮아. 그만.”
들을 때마다 귀 고막을 때리는 것 같은 찹쌀의 노래에 이제 충분하다며 찹쌀을 말려보았다.
“꽥!꽥!꽥! 꽤개개개객!”
하지만, 찹쌀의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찹쌀만 두고 다른 정령들처럼 자리를 피할까 고민할 때였다.
“형님! 한울 형님! 저 왔습니다!”
앞마당 쪽에서 박준혁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어! 잠시만!”
박준혁의 목소리가 이렇게나 반가운 건 처음.
큰소리로 박준혁에게 대답을 해 준 나는, 찹쌀의 노래를 뒤로하고 앞마당으로 뛰어갔다.
찹쌀의 노래가 몸의 피로를 푸는 데는 최고였지만, 역시나 오래 들을 수 있는 류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이쿠. 손님이 와버렸네? 찹쌀아 미안!”
**
“형님, 이것 좀 보십쇼! 제가 최종으로 추려낸 아르바이트생 목록입니다!”
촤르륵.
식탁 위로 A4 용지가 부채처럼 펼쳐졌다.
“이게 다 뭐야···?”
“아르바이트생 이력서입니다!”
확실히.
박준혁에게 아르바이트생을 뽑으라고 하긴 했었다.
뽑으라고 지시한 후에는 박준혁을 믿기도 하지만, 여러 일들이 일어나는 바람에 잠시 잊고 있었다.
“이게 전부···. 아르바이트생 이력서라는 거지?”
나는 내 앞 펼쳐진 두꺼운 이력서들을 보며 물었다.
박준혁이 아르바이트생의 이력서라고 가지고 온 이력서들은 하나같이 클립이 집혀져 있었다.
쉽게 말해, 아르바이트생의 이력서라고 하기엔 두꺼운 두께였다.
“네! 맞습니다! 조건에 맞는 아르바이트생을 추리느라 조금 오래 걸리긴 했습니다만, 여기 제가 추려낸 10명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추려내서 10명.
그럼 대체 몇 명이 지원했다는 말인가.
시골 중 시골.
그것도 평지에 있는 곳이 아닌, 산 바로 밑에 있는 시골인 탓에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건만.
“이렇게나 많이? 왜?”
추려내서 10명이라는 박준혁의 말에 의문을 표하자, 박준혁이 당당하게 말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 그래. 모집 요강 좀 보여줄래?”
“네! 여기 있습니다!”
이런 깡촌에 이렇게 많은 지원자가 지원했다는 것에 의문이 든 나는 박준혁에게 모집 요강을 보여 줄 것을 요청했다.
박준혁이 아직 사회경험이 없어, 혹시나 사람들이 홀릴만한 조건을 내 걸은 건 아닐지 걱정이 되어서였다.
“네! 여기 있습니다!”
“땡큐, 어디 보자···.”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박준혁에게 건네받은 노트북에 작성된 모집 요강에는 내가 염려하는 부분은 없었다.
다만···.
“질문들이······.”
“네! 제가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질문들입니다! 원래는 그것보다 약 31배는 더 많은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아르바이트생 모집임으로 획기적으로 줄였습니다!”
“줄였다고···? 이게···?”
“네! 저희가 랩실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하는 발표에서는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이! 잠도 못 자고! 준비해야···!”
“어. 알았어. 이해했어. 잘했어. 수고했네.”
“네. 감사합니다.”
왜 이런 이력서가 나왔나 했더니···.
잠시 박준혁이 현역 대학원생이라는 걸 잊은 나 자신을 반성하며 그를 진정시켰다.
“그럼 한번 볼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긴 이력서를 모두 쓰고 지원한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 해소되는 건 아니었지만, 더 이상 물어보아도 박준혁에게서는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우선 이력서를 보기로 했다.
“학력, 한국대···?”
하지만 첫 번째 이력서부터 나는 말문이 막히는 걸 느꼈다.
한국대라 하면,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수재들만 갈 수 있다는 세계적으로도 명문인 대학교였다.
설마···.
탁.
혹시나 하는 생각에 두 번째 이력서를 들어보았다.
“이름, 이영대. 학력, 한국대···.”
탁,
탁,
타타탁.
설마설마했건만.
세 번째도, 네 번째, 다섯 번째도···.
마지막 열 번째 이력서까지 확인한 나는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서 싱글거리고 있는 박준혁을 쳐다보았다.
마지막 이력서에 있는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한국대임을 확인한 탓이었다.
“혹시···. 이분들 전부다···. 너희 랩실 사람이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헉! 어떻게 아셨습니까? 역시 형님이십니다!”
아무리 학력에 한국대가 쓰여 있어도 같은 랩실 사람인걸 맞춘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며, 박준혁이 눈을 크게 뜨며 호들갑을 떨었다.
박준혁의 호들갑에 나는 머리를 짚었다. 그러고는 손에 들린 이력서에 프린트된 지원자들의 사진을 다시 보았다.
사진 속에 지원자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증명사진의 포토샵에도 숨겨지지 않은 다크써클과, 축 처진 입꼬리, 그리고 왜인지 힘이 없는 머리까지.
어떻게 알긴 인마.
증명사진들이 전부 초창기에 너 같잖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