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44화 (44/163)

43. 그런 거라면 내 전문이다!

[선배님, 저 그만두겠습니다!]

이동민은 전화를 받자마자 이상한 소리를 하는 부사수, 박준혁의 말에 귀를 후볐다.

“뭐라고?”

박준혁의 전화에 신비농장 아르바이트와 관련된 소식인가 싶어 얼른 받았건만.

요즘 잠을 잘 못 잤더니 헛소리가 들리는 건가. 절대 부사수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소리에 이동민은 다시 한번 물었다.

[저, 그만두겠습니다! 연구실!]

“.....뭐?”

귀를 후벼 파던 이동민은 다시금 들리는 부사수의 말도 안 되는 발언에 모든 행동을 멈추고 말았다.

그만둔다니.

얼마 만에 들어온 막내였는데.

박준혁이 들어와 드디어 막내에서 탈출했는데.

나가지 말라고 자료 만들 때도 도와주고, 잡무도 도와줬는데···.

교수님이 막무가내로 가져온 오이의 탄생 비밀을 알기 위해 깡시골로 떠난 부사수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외로이 잡무를 맡았건만······.

뭐라고?

박준혁의 말이 믿기지가 않아 멍하니 있으려니, 수화기 너머로 그의 다짐이 들려왔다.

[...저는 이제 대학원이라는 철장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새가 되겠습니다! 미화리! 이곳은 자유로운 새가 된 저에겐 파라다이스! 아, 죄송하지만 아르바이트 건은 안타깝게 됐습니다. 한울 형님께서 대학원생들의 미래를 걱정하셔서···. 부디 선배님이라도 제가 못다 이룬 대학원의 졸업을 부디 이루시길 바랍니다! 그럼!]

-뚜뚜뚜

“뭐야? 지 할 말만 하고 끊었어?”

허.

어처구니가 없어 핸드폰 화면을 다시 봤지만, 화면에는 상대방과 전화가 끊겼다는 표시만 둥둥 떠 있었다.

“와. 진짜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친다 이거지?”

이동민은 오랜만에 분노가 끓어 오르는 걸 느꼈다.

악명높은 연구실이라 정말 오랜만에 들어온 막내를 위해 정말 많은 편의를 봐 주었었다.

물론, 박준혁 자체도 맑은 눈의 광인이라 모두가 꺼린 것도 있었지만, 아무튼 박준혁은 이 연구실에서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사람이었다.

“내가, 내가···. 지금까지 나가지 말라고 사준 커피만 몇 잔인데···!”

그것만 생각하더라도 이렇게 전화로 자신의 탈출을 통보할 수는 없었다.

“아르바이트도···.”

빠드득.

커피에서 이제는 아르바이트까지 뻗어 나간 생각에 이동민이 이를 빠득 갈았다.

“그놈의 서리태!!”

서리태에 금이라도 발라놓았는지, 한 알밖에 보내지 않은 서리태로 어찌어찌 분석한 성적표는 놀라웠다.

박준혁이 보내는 신비농장의 모든 작물이 보통 시중에 나와 있는 작물들보다 영양분 수치가 높았지만, 서리태의 수치를 확인한 이동민은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었다.

대학원을 들어오기 전, 풍성했던 머리로 돌아갈 수 있는 단서를 찾은 기분.

‘선배님! 제 머리 좀 보시죠?’

거기다 박준혁이 날마다 보고서와 함께 보내는 사진에 자신의 셀카 –머리를 중점적으로 찍은-를 추가해 보내기 시작했는데, 그 셀카를 보고 이동민은 확신을 가졌다.

‘너 요즘 뭐 먹냐?’

‘강 할머님의 밥! 을 먹습니다! 아, 한울 형님도 가끔씩 음식을 많이 하면 나눠주시기도 하는데 맛이 진짜 끝내줍니다!’

‘아니, 그거 말고. 머리카락.’

이 자식은 입만 열었다 하면 ‘강 할머니’라는 분과, 신비농장의 주인, ‘한울’에 대한 찬사를 하기 바빴다.

맛이 있어봤자 얼마나 맛있으려고.

이미 대학원에서 몇 년 동안 썩으며 편의점 음식과 김밥에 익숙해진 입맛은 식욕도 꺼지게 했다.

그러니까, 대학원 3년 차 이동민은 지금 인간의 필수 욕구 중 하나인 식(食)을 초탈하고야 말았다.

그렇기에, 1년이 겨우 되려는 박준혁이 미주알고주알 식(食)에 대해 떠들 때면, 그저 온화한 미소로 ‘그때 즐겨’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3년 동안 대학원에서 썩은 이동민조차 초탈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날이 갈수록 두피를 탈출하려는 머리카락.

“그럼 나도 콩물이라도 보내 주던가!”

원래 나이보다 20년은 늙게 보이게 만드는 이 헤어스타일에서만 벗어날 수 있다면···!

이까짓 대학원도 때려치울 수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설마···. 아르바이트 우리 중에 아무도 안된 건 아니지?”

콩물을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는 이동민의 모습에 맞은편에서 헤드폰을 끼고 자료를 만들고 있던 선배가 물었다.

“....”

선배의 질문에 이동민은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정말 안된 거야?”

박준혁은 셀카를 이동민에게만 뿌리지 않았다.

하긴, 나라고 했더라도 자랑을 여기저기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했어도 가족들에게만 했겠지.

맑은 눈의 광인은 여러모로 좀 달랐다. 자신의 머리숱 변천사를 담은 사진들을 이동민에게 보내다 못해 이 랩실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보낸 것.

“거기 사장님이 대학원생들을 걱정했다고 하네요.”

“...우리가 남들이 보면 걱정하게 할만하긴 하지.”

“그럼 우리의 계획은 실패인가?”

박준혁의 사진 때문에 처음에는 누구도 가지 않으려던 미화리라는 마을을 가기 위해 암투가 벌려졌을 정도.

박준혁의 소금 테러로 인해 금지됐던 커피를 사 받치며 읍소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동민을 통해 서리태 씨앗을 탈취하려 시도한 사람도 있었다.

전자는 교수님의 기겁으로 인해 미화리의 ‘미’자도 꺼내지 못했고, 후자는 정말 서리태가 하나만 있었는지 몰랐던 무지몽매한 이가 탈취를 위해 여기저기 뒤지다 잠을 더 못 잤을 뿐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안달이 날 때쯤.

박준혁의 전화가 왔다.

‘선배님, 혹시 아르바이트생 할만한 성실하고, 괜찮은 사람 없어요? 우리 한울 형님 첫 아르바이트생인데, 머리 아플 일 없이 똘똘한 애로 뽑아야 할까 해서요.’

‘아르바이트생······? 신비농장에?’

박준혁과 이동민이 전화를 한다 파악했던 대학원생들이 집단으로 의자 위에서 자축해댔다.

그리고 계획을 세웠다.

한 명이라도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가 박준혁의 콩물의 원재료가 되는 서리태를 찾아오자고.

간절한 이들의 지원서는 차곡차곡 쌓였고, 결국 한울의 손에까지 들어가게 된 것.

“어쩔 수 없다. 그럼 플랜B로 간다!”

앞에 앉은 선배의 말에 이동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추노꾼 중의 추노꾼. 대학원을 잡는 추노꾼이 얼마나 끈질기고 무서운지 보여주겠어.”

빠드득.

혼자만 이 지옥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가려 하다니.

천국으로 가려면 부스러기라도 하나 떨구고 가던지.

아무것도 없는 헛된 희망만 안겨주고 사라진 박준혁을 향해 갈 곳 잃은 분노가 조용히 불타올랐다.

“그전에, 자료는 다 만들고 가.”

격렬하게 분노하며 추노꾼을 하기에는 곧 돌아오실 교수님이 지시한 자료가 아직 다 만들어지지 않았으므로.

**

“호에···. 도망갔다!”

박준혁이 이력서를 들고 왔을 때부터 내 어깨에 위에서 고개를 빼고 같이 사진을 보고 있던 노을이 답을 내놓았다.

“그러게.”

계속되는 구매자들의 요청에 농장을 확장하려고 생각을 계속해서 해왔었다.

마동태의 사건은 그 생각을 더 확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충분한 땅이 있기에, 규모를 늘리는 건 언제든 가능했다. 사람만 있다면.

그래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려 했던 것.

하지만 농장을 확장하려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 녀석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진짜 괜찮겠어! 얘들아?”

“꽈악! 드디어! 비닐하우스에서 벗어나는 것인가!”

“컁! 그런가보다! 우리에게 비닐하우스는 좁다!”

비닐하우스가 좁다고 노래를 부르는 노을과 찹쌀이 덕분.

숲을 뛰어다니던 녀석들이라 그런지 언젠가부터 비닐하우스를 나가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고 싶어 했다.

와다다.

지금은 비닐하우스 한곳에서 작물을 재배하지만, 규모가 확장되면 힘들지 않겠냐는 나의 물음에 ‘좁다!’라는 한마디로 대답한 노을이 우다다를 시작했다.

“나는 산을 하루에도 몇 바퀴씩 돌던 위대한 여우 정령이다. 컁!”

“꽈아악!!”

그 뒤를 이어 찹쌀도 날개를 퍼덕거리며 거실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물건들을 용케 피하며 우다다를 하는 노을과 찹쌀에게서 눈을 뗀 나는 싱크대 위에 철퍼덕 앉아 볼록 나온 배에 손을 올린 포동이의 의사를 물었다.

“포동이는?”

내 질문에 포동이는 거실을 운동장처럼 뛰어다니는 노을과 찹쌀에게서 눈을 떼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고는 세상 저렇게 뛰어다니는 정령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투로 고개를 절레절레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아니, 말하려 했다.

“킁! 나는···. 비닐하우스가 좁지 않다고 생각···.”

“컁!”

“꽈악!”

“...하지 않는다···.”

분명 ‘좁지 않다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하려던 포동이는 노을과 찹쌀의 성화를 이겨내지 못했다.

귀가 쳐지고, 한숨을 푹 내쉬어 꿀렁거리는 포동이의 배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알바생을 뽑는다면, 포장 쪽 인원을 더 배치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작물들이 왜 빨리 자라는지에 대한 건데···.”

노을과 찹쌀이 저렇게 좋아하는 이상, 농장의 규모를 늘리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문제는 규모가 커지게 되면 지금 비닐하우스에서처럼 정령들의 능력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작물을 재배할 수 없었다.

노을과 찹쌀은 비닐하우스를 제외한 밭에서는 능력을 1/10로 줄이겠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보통 작물들이 자라는 시간에 비하면 빨랐다.

“음······.”

그래서 작물이 빨리 자라는 이유를 바로 비료 덕분이라고 할 계획이었다.

비료를 연구 중인 박준혁도 있으니, 그의 지식을 토대로 그럴듯한 비료를 만들어 두면 어떨까.라는 계획.

“하지만 말도 끝내기 전에 도망갔지.”

‘비료’라는 말을 듣자마자 꼬리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집을 뛰쳐나가는 걸 보니, 어지간히 비료에 관해 얘기하고 싶지 않는 모양.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비료를 제외하고, 작물의 생장을 빠르게 할 수 잇는 거라면···.

박준혁의 지식을 빌리지 않아도 될 그럴듯한 대체품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

“컁! 다시 왔다!”

급하게 울리는 대문 벨 소리에 인터폰을 들자, 화면에 비치는 박준혁이 속사포로 말을 뱉었다.

[형님! 형님! 물론 제가 도움이 아직 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저를 받아 주십쇼!]

“...?”

탁.

의미를 알 수 없는 박준혁의 외침에 대문을 열어주자, 순식간에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온 박준형이 말했다.

“사장님! 선생님! 아니, 한울 형님!”

“뭐 놓고 갔냐?”

현관문 근처에 서 있는 나를 보며 헐레벌떡 말하는 것이 꼭 중요한 소지품을 두고 간듯해 물었지만, 박준혁은 그게 아니라며 도리질했다.

“저! 대학원 그만뒀습니다!”

“뭐라고?”

그사이에?

대학원 그만두려고 집에 갔다 온 거였다고?

**

‘네! 그렇습니다! 제 꿈은 비료 왕! 세계 최고의 비료를 만들어 전 세계에 공급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박준혁의 주장은 이러했다.

대학원을 들어간 지 1년이 됐지만, 여태까지 이곳에 온 것 말고는 실험을 해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곳, 미화리 산골 마을의 온 것도 모두가 가기 싫어해 어쩔 수 없이 막내인 자신이 온 것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계속해서 연구실에 처박혀 연구 대신 자료 지옥에 빠질 뻔했다고.

‘이곳이라면, 아니! 형님네 신비농장에서라면 제가 꿈꾸던 비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뼈를 묻는 걸 허락해 주십시오!’

“허락이고 자시고. 애초에 대학원과 내 농장이 비교됐었나?”

‘당연합니다! 자료조사와 수집, 그리고 PPT 파일만 만드는 그곳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엔간히 연구실에 질린 모양.

어디서 자신이 다니는 대학원 실의 연구실처럼 누추한 것이 고귀한 신비농장과 비교할 수 있냐며 열성적으로 ‘타도! 대학원!’을 외치는 박준혁을 일단 내보냈다.

“대학원을 그만둔다고 하면, 거기에 있는 실험장비들을 사용 못 하게 되는 건데···. 그런데도 우리 농장에서 비료 연구를 한다고?”

박준혁을 돌려보내고 식탁에 앉아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우리 농장에는 대학원 연구실의 실험장비를 대체할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박준혁이 도와주지 않으면 시간이 조금 더 걸려서 그렇지, 비료는 대충 만들 수 있ㅇ르것 같았다.

생각을 마친 내가 힘들게 간 대학원을 그만두지 말고, 지금처럼 자유롭게 연구를 하라고 박준혁에게 전화하려던 차.

“컁? 비료가 뭐냐?”

박준혁이 오든지 말든지 하던 우다다를 하던 노을이 내 어깨에 폴짝 뛰어오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영양분이 빠진 땅에다 영양분을 넣어주는 역할은 하는 거라고 할까.”

“호에···. 영양분?”

“쉽게 말하자면. 노을이가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는 훨씬 못하지만, 작물들을 튼튼하게 자라게 하려고 뿌리는 거야.”

“알아들었다. 컁!”

내 설명을 알아들었다며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던 노을이 앞발을 내 볼로 더듬더듬 뻗더니 두 발로 일어섰다.

켕켕.

마이크테스트를 하듯이 목소리를 가다듬은 노을의 발언은, 박준혁에게로 전화하려던 내 손을 핸드폰에서 떼게 만들기 충분했다.

“캬항! 그런 거라면 내 전문이다! 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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