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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45화 (45/163)

44. 설마...?

“캬항! 그런 거라면 내 전문이다! 컁!”

설마.

비료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인 건가?

“비료를 만들 줄 알아?”

“머리가 폭신한 인간이 만드는 걸 봤다! 컁!”

머리가 폭신한 인간이라 하면, 박준혁을 말하는 게 분명했다.

매일 아침 노을은 박준혁의 머리 위에서 텃밭의 경치를 구경하곤 했으니까.

그렇다면 텃밭에서 비료를 만들었던 걸까?

“비료를 만드는 걸 본 적이 있다고?”

“텃밭에서 매일 열심히 뭘 만드는 걸 봤다!”

“오···.”

노을의 말대로라면 박준혁이 비료를 계속 만들고 있었긴 한 모양.

“하지만 작물들이 싫어했다! 그래서 그게 영양분인지 몰랐다! 컁!”

“어···?”

잠깐만.

노을이가 작물을 쑥쑥 키우는데 능력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작물들이 싫어하는 걸 알 정도인 줄은 몰랐다.

“따라와라! 보여주겠다! 컁!”

놀라워하는 내 모습에 뿌듯한 표정을 지은 노을이 내 어깨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풍성한 꼬리가 살랑거리는 걸 보니 기분이 아주 좋은 모양.

살랑거리는 노을의 꼬리를 따라 밖으로 나가니 어느새 해가 산 중턱에 걸려있다.

“밥 해 먹다 보면 하루 다 간다더니. 그 말이 맞네.”

특별한 행사를 제외하시고는 항상 이곳, 산 밑 기와집과 텃밭을 오갔던 할머니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할매, 안 심심해?’

머리가 굵어지고, 한창 작은 시골 마을을 벗어나 읍내로, 다른 동네로 쏘다니던 나에게는 할머니의 반경이 굉장히 좁아 보였다.

답답했던 것도 같다.

나처럼 다른 곳도 다니면 좋을 텐데.

괜히 나 때문에 할머니가 이곳에서 매여있는 것 같은 생각에 괜히 축담에 앉아 발끝으로 죄 없는 마당의 흙을 툭툭 차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눈을 반달로 접고 흘흘 웃으시며 말했다.

‘심심하긴. 여기가 얼마나 재밌는 곳인지 아나? 가만있으면 대나무 소리도 들리고. 새소리도 들리고, 옆집 누렁이 소리도 들린다.’

‘그게 뭐가 재밌다고···.’

‘니도 나이 들어봐라. 시끌벅적한 건 이제 언선시릅다. 그리고 할매가 여간 바쁘나? 밭에 갔다 왔다가, 밥하려면 시간이 모자란다. 밥 해 먹다 보면 하루 다 간다 아니가.’

그때의 나는 할머니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의 나는 할머니의 말에 백번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오래 있다 가시지···.”

조금만 더 있었다면 말 안 통하는 손주와 말이 통하는 걸 보고 갈 수 있었을 텐데.

너무하시네.

석양과 함께 훅 밀려 들어오는 아쉬움에 한숨을 내뱉자, 앞서가던 노을이 고개를 획 돌리며 말했다.

“컁! 한숨 소리를 들었다! 무슨 일이냐?”

큰 귀를 쫑긋거리며 묻는 노을의 표정 덕분에 나는 아쉬움을 다시 가슴 깊은 곳에 조심히 묻었다. 이제는 얘네 때문에 한숨도 조심히 쉬어야 했다.

걱정스럽게 나를 쳐다보는 노을을 향해 씩 웃어 보인 나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노을아, 그렇게 미간 찌푸리면 주름 생긴다던데?”

슥슥.

노을이 집중을 할 때면 미간에 세로줄들이 생겼다.

지금도 어김없이 생긴 미간의 주름을 슬슬 만져주자 노을이 화들짝 놀라며 두 앞발로 자신의 미간을 가렸다.

“컁! 주름은 적이랬다!”

“그래.”

“안티에이징 광고에서 그랬다! 주름은 적! 위대한 여우 정령인 나는 적과 싸워서 져본 적이 없다! 컁!”

내가 주름 얘기를 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요즘 노을과 찹쌀의 TV 관심사는 바로 ‘안티에이징’ 이었으므로.

무늬만 TV 애청자인 노을과 뼛속까지 진정한 TV 애청자인 찹쌀은 TV를 보고 난 후 꼭 조잘거리며 의견을 나눴다.

참고로 안티에이징 전의 주제는 ‘별이 다섯 개!’ 였다.

어떤 침대 업체 사장이 나와 이마에 별 5개를 붙이고 ‘별이 다섯 개!’를 외치는 광고에 완전히 매료된 노을과 찹쌀은 초록색 은행잎을 노랗게 만든 다음, 별 모양으로 잘라 이마에 해당하는 부위에 붙이고 다녔었다.

결국, 보다못해 내가 사다 준 금빛 별 스티커를 붙이고 나서야 ‘별 다섯 개’에 대한 집착이 멈췄다.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멈추려나.

“박준혁이 만든 비료가 어디에 있다고?”

어느새 나에게 노화를 막는 법에 대해 줄줄 읊기 시작하는 노을에게 고개를 대충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집 밖으로 나온 목적을 상기시켰다.

“...아! 여기다! 컁!”

그제야 안티에이징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난 노을이 다시 몸을 돌려 텃밭 구석, 비닐이 덮인 곳으로 안내했다.

하얀 비닐을 통해 갈색의 무언가가 보이는 걸 보니, 낙엽 등 자연의 재료들로 비료를 만들고 있었던 모양.

차락.

꼼꼼히 덮인 비닐을 살짝 걷어 올리자, 그 틈으로 가스 냄새가 훅 올라왔다.

“윽.”

아직 발효가 덜 된 모양.

정겹다면 정겹고, 낯설다면 낯선 비료의 냄새를 맡고 나니, 노을과 찹쌀에게 새삼 참 고마워졌다.

“여기에 대체 뭘 넣은 거야?”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온갖 자연의 산물들이 갈색으로 변해있어, 정확히 뭐가 들어갔는지는 가늠을 할 수 없었다.

거기다 아직 발효가 덜 된 거름에서 새어 나오는 냄새가 심각해 들었던 비닐을 얼른 놓았다.

비닐 옆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하나 주어 살짝 다시 덮고 있으려니, 노을이 그 주변을 맴돌더니 코를 킁킁거렸다.

“이건! 작물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컁!”

노을은 마치 대법관과 같이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코가 하늘로 솟구쳐 있는걸 보니, 무언가를 아는 모양. 얼른 자신에게 물어봐달라는 듯, 얼굴을 하늘로 높게 치켜든 채 나를 흘끗거리는 노을에게 내가 물었다.

“오 그래? 왜 뭐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데?”

만약, 노을이 내가 생각한 대로 비료에 들어가는 성분들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박주혁이 대학원을 그만두고 이곳에 뼈를 묻는다고 하더라도 말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농촌에도 인재는 필요했으니까.

“크 흥! 그건 바로···!”

그런 면에서 지금 노을의 답은 아주 중요했다. 스스로 도비를 자처한 이를 놓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잠시 후! 60초 후에 공개됩니다’에 물들었는지, 뜸을 들이는 노을을 향해 호응해 주었다.

“바로?”

내 호응에 높이 치켜든 턱을 내린 노을이 콧김을 킁! 하고 내뱉으며 말했다.

“똥을 너무 많이 넣어서 그렇다! 컁!”

“....”

어쩐지.

냄새가 고약하더라니.

**

아무리 머리 위에서 알려주어도 박준혁이 알아듣지 못했다는 노을의 말을 토대로 그가 만드는 비료에 관한 정보를 정리할 때였다.

“한울아. 나와 있었나? 아이고. 이 냄새는 뭐꼬?”

한 손에 삽을 든 장 이장님이 텃밭을 가로질러 내게로 다가왔다.

“아. 준혁이가 비료를 만든다고 해서 좀 보고 있었어요.”

“뭐라카노? 이걸로 비료를 만든다고? 닭똥을 억수로 넣었나 보네. 준혁이 갸 대학원생이라 안 했나? 준혁이한테 이거 밭에다 바로 쓰면 안 된다고 단디 알려줘라. 알았제?”

절대 이건 안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장 이장님 옆에서 노을이 동의한다며 같은 포즈로 도리질했다.

역시. 백번 보는 것보다 실행 한번 하는 게 더 낫다더니.

평생을 농사일하신 장 이장님에게도 문제점이 단번에 보이는 모양.

이제는 코를 막은 채 뒷걸음치는 장 이장님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래서 좀 알려주려고요.”

노을의 설명에 의하면, 거의 똥을 우리 집 앞에 쌓아놓은 것과 같은 양이라니, 우선 이것들을 산속에 있는 땅으로 옮기는 게 최우선이 돼야 할 듯했다.

이미 알고 있다는 내 대답에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장 이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장 이장님은 텃밭의 끝에 다다라 있었다.

“그래. 니 작물들 키우는 거 보면 니도 니만의 비법이 있겠지. 잘 갈키봐라.”

“네. 그런데 이 시간에 여기는 어쩐일이세요?”

곧 있으면 산자락에 걸친 해가 얼굴을 숨길 터였다.

가로등이 드문드문 있는 마을이라, 이맘때쯤이면 모두들 집 안에 있을 시간.

특히나 꽃분이 할머니와의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 장 이장님이 이 시간에 이렇게 마을을 돌아다닌다는 건, 무슨 일이 났을 때나 있는 일이었다.

내 질문에 정신을 차린 장 이장님은, 똥 냄새가 너무 독해서 깜빡했다며 당신이 있는 곳으로 나를 손짓했다.

박준혁이 만든 비료를 가장한 똥 덩어리에 결코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었다.

나도 계속해서 맡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장 이장님과 함께 텃밭에서 나갔다.

“아, 맞다. 한울아, 내 말 잘 들으래이.”

“네.”

“아까 우리 마을에 멧돼지가 나타났었다!”

“...네?”

뭔가 했더니.

하긴. 멧돼지가 아니라면 장 이장님이 삽을 들고 이 시간에 돌아다닐 필요가 없지.

그렇지 않아도 찹쌀을 통해 멧돼지가 한 일을 들은 터라, 앞으로 장 이장님의 입을 통해 나올 말이 예상되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멧돼지에게 절대 비닐하우스 주변을 벗어나지 말라고 해야겠다.

괜히 돌아다니다가 사람들에게 걸리면,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으니.

“아까 못 들었나? 하긴. 니네 집이 저 아래랑 좀 떨어져 있어서 못 들었겠다. 아니, 아까 집채만 한 멧돼지가 침을 이리 질질 흘리면서 뛰어오는데···!”

[호에에. 실감 난다!]

[꽈아악!]

장 이장님은 경운기가 고랑에 빠진 뒤 멧돼지가 등장하고, 모두가 혼비백산해 도망쳤다는 설명을 굉장히 역동적으로 설명했다.

집에 있던 찹쌀도 역동적인 장 이장님의 설명에 쪼르르 나와 구경할 정도였다.

“으잉? 이 병아리들은 언제 이치로 왔노?”

설명을 마친 장 이장님이 자신의 주변에 동그랗게 원을 그려 앉아있는 병아리들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삐약!삐약!

-꺼꺼꺼!

병아리, 아니 이제는 중닭으로 불러야 할 닭들은 찹쌀이 집에서 밖으로 나오자, 마당을 돌아다니던 걸 멈추고 찹쌀의 옆으로 와 철퍼덕 앉아버렸다.

“이장님이 반가운가 보네요.”

정확히는 TV보다 더 생동감 있고, 역동적으로 마임을 하는 장 이장님이 반가운 것일 테지만. 아무튼.

자신의 주변을 빙 둘러 앉아있는 병아리들을 손주 보듯 뿌듯한 눈빛으로 보던 장 이장님이 내 말을 듣고는 크게 웃었다.

“으하하 그러나?”

“네. 애들이 이장님 좋아하는 것 같네요.”

“맞다 맞다. 그 말 알제? 어린애랑 동물들만큼 사람 잘 보는 게 없다고. 이게 다 내가 좋은 사람이다는 증거다 증거! 으하하!”

병아리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는 말에 더욱 크게 웃음 지은 장 이장님은 가까이에 있는 병아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매일 집에서 며느리발톱을 치켜들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수탉만 보다 이렇게 순한 병아리들을 보니 감동하신 모양.

하지만 찹쌀은 냉정했다.

더는 장 이장님이 TV보다 더 역동적이지 않게 되자, 미련 없이 꽁지깃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꽈악. 이제 끝났나 보다. 난 다시 들어가겠다!]

-삐약!

-꺼꺼!

“뭐꼬? 다 어디가노? 야들아!”

찹쌀이 집으로 들어가자, 병아리들도 일제히 이장님 주변에서 일어나 일사불란하게 닭장으로 향했다.

-끄끄끅!

다른 병아리들이 모두 닭장에 들어가고, 제일 마지막에 닭장에 들어간 수탉이 머리로 열려있는 문을 닫고는 울었다.

문을 잠가 달라는 뜻이었다.

아직까지 목이 다 트이지 않아 특이하게 우는 수탉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나는 닭장 앞으로 갔다.

탁.

문을 잠그고 뒤를 돌자, 언제 왔는지 장 이장님이 바로 옆에서 나를 신기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한참을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보던 장 이장님은, 망설임을 가득 담고서 내게 물었다.

“설마···. 니, 동물들하고 말할 줄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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