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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1) (무료 마지막)
“꾸엥!”
멧돼지는 노을의 당부대로 최대한 무해한 표정을 지으며 귀엽게 울었다.
'꽈악···. 그게 통할까?'
찹쌀은 노을의 의견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의하지 않았지만, 멧돼지는 믿었다.
누가 뭐래도 노을이 인간인 한울과 가장 오래, 가까이 있으므로.
“뭐꼬. 이 와이라노?”
하지만 멧돼지의 믿음은 산산이 조각났다.
장 이장님이 멧돼지의 소리에 펄쩍 뛰며 기겁을 한 것. 그의 반응에 멧돼지 위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찹쌀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반대했다. 꽈악···.]
찹쌀의 말에 내 어깨에 있던 노을도 꼬리를 당겨 잡더니 풍성한 꼬리 뒤로 제 얼굴을 숨겼다.
[멧돼지야, 전혀 귀엽지 않았다. 컁.]
“꾸잉···.”
장 이장의 반응에 충격받았던 멧돼지가 노을의 말에 풀이 죽었는지 애처로운 울음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털썩.
“뭐, 뭐꼬. 인마 지금 실망한기가?”
고개를 숙이다 못해 멧돼지가 자리에 주저앉자, 장 이장님이 놀라 한껏 올라갔던 어깨를 바로 하며 더듬거렸다.
멧돼지는 실망하여 침울해 있지만, 나는 장 이장님의 반응이 이해되었다.
그건 바로 농사하는 사람들에게 고라니와 멧돼지는 허리가 휘도록 지은 농사를 다 망쳐놓는 괘씸한 동물들이기 때문.
하지만 이제는 신비농장을 키워야 할 때.
“그···. 이장님, 얘가 그래도 좀 순해요.”
“뭐라꼬? 순하다고? 이 멧돼지가? 어디가?”
멧돼지가 땅에 털썩 주저앉은 뒤부터 눈에 띄게 흥분을 가라앉힌 장 이장님께 멧돼지의 편이 되어 조심스레 말해보았지만, 이미 멧돼지에 의해 경운기가 고랑에서 튀어 오른 걸 목격한 그는, 그렇지 않아도 크게 뜬 눈을 더 크게 뜨면서 반문했다.
장 이장님의 질문에 멧돼지를 보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제 앞다리에 머리를 턱 올려놓고 나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순했다.
“음···. 눈?”
이곳에 오기 전 어김없이 진흙 목욕을 하고 온 멧돼지의 털은 뻣뻣해 도깨비 풀 같았다.
그렇다고 위로 휜 커다란 송곳니를 보고 순하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나마 작지만 초롱초롱한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노을과 찹쌀이 난리가 났다.
[컁! 눈! 멧돼지야! 눈을 순하게 만들어봐라!]
[눈꼬리를 내리면 된댔다 꽉!]
[맞다 맞다! 컁! 아이라이너로 뒤꼬리를 조금 내리면 된다고 했다!]
[꽈악? 아이라이너···?]
[나도 잘 모른다! TV에서 그랬다! 컁!]
도대체 무슨 TV 프로그램을 봤길래 알아듣지 못할 용어들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번에는 노을과 찹쌀, 둘 다 동의를 하는 거 보니,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꾸잉!”
멧돼지도 이번에는 확신을 느꼈는지, 엑스자로 포갠 앞발 위에 늘어놓고 있던 머리를 발딱 들어 눈을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따라라- 따라라라란- 따라라라란-
빠르게 깜빡이는 눈에 속눈썹이 팔락거리는 게 오래전 TV에서 봤던 광고의 한 부분이 생각나려 했다.
그래, 이 정도면······.
“아이고! 한울아! 이 멧돼지 병 걸린 거 아니가? 눈을 왜 저렇게 떨어쌌노. 일루 온나! 퍼뜩!”
[컁. 실패다! 한울! 틀렸다!]
[꽈악···. 나는 안될 거라 생각했다.]
[아이라이너라는 게 없어서 그렇다! 컁!]
바로 전에까지만 해도 좋은 생각이라며 짝짜꿍을 쳤던 노을과 찹쌀이 삽시간에 입장을 바꾸었다.
“꾸엥···.”
멧돼지의 상심은 더욱 깊어졌다.
이번에는 송곳니로 땅을 파더니 그곳에 제 얼굴을 묻었다.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 이장님, 예전에 얼굴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고···.”
어린 시절, TV를 보던 내가 집으로 놀러 온 장 이장님의 얼굴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고는 ‘으악!’하고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TV와 장 이장님을 번갈아 보면서 울먹거렸다는데···.
그때부터 장 이장님은 내게 ‘얼굴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마음을 봐야 한다!’라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얘기하셨다.
그런데 지금 멧돼지의 필사적인 노력을 보고 그렇게 말씀하시다니···.
조금 너무한다는 시선으로 장 이장님을 쳐다보자, 그가 멧돼지를 검지로 척 가리키며 말했다.
“뭔 소리하노! 그건 사람이지! 멧돼지 저건 산짐승이다! 그것도 힘이 억수로 센! 저 눈매 봐라! 어이구 무서버라.”
장 이장님의 발언에 노을과 찹쌀이 앞다투어 멧돼지를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
[힘은 세지만 순한 멧돼지다! 컁!]
[동의한다! 비록 눈이 날카로운 건 사실이지만, 순하다! 꽈악!]
그러니까, 두둔하는 게 맞을 거다.
도무지 멧돼지를 칭찬 하는 것인지 장 이장님의 말에 동의를 하는 것인지 모호한 노을과 찹쌀의 대화에 멧돼지의 작은 귀가 쫑긋거렸다.
아직은 상심이 큰 듯, 파묻은 머리를 들지는 않았지만, 아직까지도 집중해서 대화를 듣고 있는 모양.
“이장님, 산짐승이 아니라 제가 키운 거라면요?”
[컁···?]
[그게 무슨 말이냐 꽈악···?]
산짐승이라 위험하다고 하시는 거면, 키운 거라면 어떨까?
사실 멧돼지의 순한 포인트를 더 찾아보려 했지만, 실패해 아무렇게나 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장 이장님의 반응은 달랐다.
“뭐라고? 진짜가? 니가 저 멧돼지를 키웠다고? 언제부터?”
장 이장님은 내가 키웠다는 소리에 눈에 띄게 밝아진 안색으로 여러 질문을 동시에 던졌다.
“어···. 비닐하우스에서······.”
“설마, 니 비닐하우스에서 예전부터 키웠던 기가? 그래서 비닐하우스 근처로 가지 말라고 했던 거고? 근데 그걸 마동태는 가버렸고. 하기사 누가 거기 멧돼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노. 니가 키웠다면 말이 다르지.”
“어, 네. 그렇습니다.”
이게 통하다니.
조금 양심이 찔리긴 하지만, 저렇게 안색이 밝아지시며 반색하는 걸 보니 아니라는 말도 하지 못할 지경.
그렇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을 무렵. 내 어깨에 앉아 있던 노을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컁! 멧돼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다! 그러니 괜찮다!]
[꽈악. 맞다!]
인간이라곤 나 밖에 못 봐 경운기에 몸통박치를 하는 사고를 쳤다고 하더니. 그게 진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랬을 줄이야.
찹쌀까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하는 걸 보니, 진짜인 모양.
이걸 보고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 격이라고 하는 건가.
“그럼 당연히 말이 다르지! 한울아! 그 줄 줘봐라! 함 해보지!”
반색하는 것도 모자라 장 이장님은 멀찍이 물러섰던 몸을 다시 가까이하며 줄을 가지고 있는 내게 손을 뻗었다.
“꾸엥?”
줄과 연결되어있던 멧돼지가 움직임에 고개를 발딱 들었다.
그러고는 줄을 들고 자신을 보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장 이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아이고. 이렇게 보니까 똘똘하게 생긴 거 같기도 하고! 니가 내 경운기 구해준 게 맞나? 고맙다.”
글썽.
장 이장님의 말에 멧돼지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꾸에엥!!”
드디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은 멧돼지가 길게 울었다.
키웠다는 한마디에 매서운 눈이 똘똘하게 생긴 눈으로 바뀐 게 못내 웃겼지만, 나는 순순히 줄을 건네주었다.
그래. 멧돼지 니가 좋으면 됐다.
**
오후 11시.
MBS 방송국 예능 사무실 안.
절반 이상이 퇴근해 빈자리가 가득한 가운데.
사무실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예능5팀의 자리는 모두 꽉 차 있었다.
드륵. 드르륵.
하지만 자리가 모두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간의 대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규칙적으로 마우스 휠을 굴리는 소리만이 이 직원들이 일하는 중이라는 걸 알리고 있었다.
“...”
조연출 임승훈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모니터를 뚫어지라 쳐다보며 기계적으로 마우스를 움직였다.
빠드득.
돌연 마우스를 굴리던 임승훈에게서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를 가는 소리. 누굴 대상으로 이를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지간히 원한이 있는 듯했다.
“아이고. 그러다가 이 다 나간다.”
“...”
옆에서 같은 꼴로 마우스를 굴리던 선배가 임승훈의 등을 툭툭 치며 말했다.
선배의 꼴은 임승훈보다 더 심했다. 머리는 까치가 집을 지어도 될 만큼 산발이 되어있었고, 집에서나 입을 것 같은 무릎 나온 회색 추리닝은 입은 지 얼마나 된지 모를 정도였다.
임승훈의 기억에는 어제도, 그제도, 저번 주도 선배의 옷차림은 똑같았다.
“어떻게 담배라도 한대 콜?”
“....아뇨. 괜찮습니다.”
“좀 쉬엄쉬엄하면서 해. 안 그러면 몸 상한다.”
“....”
임승훈은 이미 몸이 상한지는 오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까지 올라온 말을 내뱉는 대신, 침묵을 택했다.
위하는 것 같이 보였지만, 속으면 안 된다.
입사 초반에는 저걸 믿고 쉬면서 했다 피디님께 된통 깨졌다.
‘쯧, 또 희생자가 나왔네. 너도 쉬엄쉬엄하라는 말 믿었니?’
피디님께 깨지고 어질어질한 머리를 감싸 쥐고 멍하니 서 있으니 옆 팀에서 알려준 사실.
저렇게 노숙자 같은 사람이 사실은 알아주는 에이스라고.
‘에이스면 일 좀 빨리 해치우고 집에 좀 가게 해 주지···.’
임승훈은 언제나 저 에이스라는 선배가 일을 너무나 잘한 나머지 제 몫이 없어지기를 바랐지만, 그 바람은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어이쿠. 이게 뭐지? 우리 임 후배가 좋아하는 게 내 서랍에 있었네?”
임승훈은 자신을 미 취학생처럼 먹을 거로 관심을 끌려 하는 선배를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중에 먹겠습니다.”
벌써 야근을 한 지 나흘째. 오늘은 제발 날짜가 지나기 전, 집에 들어가고 싶었던 임승훈은 노이즈캔슬링이 되는 커다란 헤드폰을 머리에 뒤집어썼다.
“아이고. 우리 후배님. 어차피 탁 튀는 특종 같은 건 바로 나오는 게 아니야···. 시간을 들여야만 발견할 수 있는 거지. 심해를 탐사하듯이 어? 밑바닥부터 슬슬 훑으면···. 쩝.”
선배, 박경배는 헤드폰을 끼고는, 모니터를 노려보는 후배의 모습을 보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어디 보자···. 후보군은 이쯤에서 추려질 것 같은데···.”
지금 예능5팀은 새로운 예능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어디서 뭘 듣고 왔는지 모를 피디가 어느 날 갑자기 농촌 예능을 할 테니, 후보지를 몇 군데 찾아보라고 오더를 내렸었다.
이 땅덩어리 작은 대한민국에 시골이 얼마나 된다고 후보지까지 찾아야 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피디의 오더는 까다로웠다.
‘깡시골인데, 뭔가 특별한 게 있어야 해. 그냥 시골? 안 되는 거 알지? 우리는 예능 찍는 사람들이다. 무조건 특별한 걸 찾으라고. 알았지?’
그 ‘특별한’ 것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도 않은 체 무조건 특별한 걸 찾으라고 오더 내린 피디는 또 다른 할 일이 있는지 사무실에 등장하지 않은 지 나흘째였다.
메인 피디는 자료조사는 공을 들여야 한다는 소신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박경배는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피디가 원하는 특별함을 가진 깡시골은 첫날에 모두 찾아놓은 상태였다.
“그럼 이쯤에서 피디님한테 전화를 좀 해 볼까···.”
나흘째 집에도 제대로 못 들어가는 막내를 해방시켜줄 때였다.
-뚜르르.
박경배는 메인 피디의 번호를 누르고, 막내를 보았다. 아직도 열심히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해방시켜준다. 짜식아.”
연예인이 사는 깡시골, 마을에 집이라곤 하나밖에 없는 깡시골, 산삼이 자주 발견된다는 깡시골, 특별한 전설을 간직한 깡시골, 바닷가와 맞닿은 무인도 등등.
메인 피디에게 건네줄 자료는 충분했다.
[어. 무슨 일이야?]
귀에 댄 핸드폰에서 메인 피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다른 게 있나요? 말씀하신 곳을 찾아서 전화했죠.”
박경배가 능글거리자, 메인 피디가 익숙하다는 듯 껄껄 웃었다.
[그래. 어딘데?]
“그게···.”
자신이 후보군으로 찾은 53개의 후보군을 메인 피디에게 전달하려 하던 그때.
“으아아!! 선배님! 찾았어요!”
옆에서 괴성이 들려 고개를 돌리니, 막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야?]
메인 피디가 수화기 너머로 물었다.
하지만 박경배는 답을 해 줄 수 없었다.
막내의 화면에는 여태껏 자신이 찾지 못했던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헐.”
방송국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카메라에 담고 싶어 할만한 영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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