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찾았다! (2) >
너튜브 새로 고침의 망령이었던 임승훈은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영상을 보고 유레카를 외쳤다.
“으아아!! 선배님! 찾았어요!”
임승훈은 직감했다. 이것이 메인 피디님이 그토록 찾으시던 ‘특별한’ 시골이 분명하다고.
“헐.”
노이즈캔슬링이 완벽한 아주 두꺼운 헤드폰을 벗어던지자, 선배의 당황한 목소리가 아주 잘 들렸다.
“예쓰!”
선배님의 ‘헐’은 그냥 헐이 아니었다. 좋게 보면 모든 것에 해탈한 도인 같기도 하고, 나쁘게 말하면 노숙자 같은 비주얼의 선배가 내뱉는 ‘헐’은 아주 특별했다.
“대박인데?”
아주 마음에 들었을 때나 내뱉는 말.
선배의 입에서 ‘헐’이 나왔다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
“그렇죠? 대박이죠?”
야호!
임승훈은 확신의 ‘헐’에 주먹을 불끈 쥐고 나이스를 외쳤다.
이제 사흘간 이어졌던 야근 끝!
집에 간다면 며칠 동안 제대로 못 놀아준 반려견 감자부터 마구마구 쓰다듬어 줄 계획이었다. 방송국에 입사하고 나서부터 감자와 날이 갈수록 어색한 사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간식을 주다 물렸는데도 감자는 그저 눈을 힐끔거리고 엄마에게 총총 가버렸다.
‘아이구. 우리 감자, 오빠가 낯설어서 물었어. 잘했어.’
‘아 엄마!’
엄마까지 무슨 회사가 그렇게 사람을 퇴근시키지 않냐며 감자가 얼굴을 잊을 만하다고 역정을 내시는데 반박할 수 없어 더욱 억울했다.
“선배님! 전 찾았으니 집으로 가겠습니다!”
“어? 지금?”
“네! 지금 메인 피디님이랑 통화하시는 거 맞죠? 제가 링크 보내드릴 테니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피디님!”
“알았어. 일단 진정 좀 해봐.”
박경배는 주인이 숨긴 간식을 찾아내고는 기뻐서 어찌할 줄 모르는 강아지같이 제자리를 방방 뛰는 임승훈을 진정시켰다.
덩치는 산만 한 게 사무실 데스크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협소한 공간에서 뛰니 심히 시야가 거슬렸다.
“네! 알겠습니다! 지급으로 전달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님!”
“어어. 알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병아리 시절이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지급’이라는 단어까지 쓰며 자신을 재촉하는 임승훈에 박경배는 피식 웃었다.
“이래서 피디님, 링크 좀 빨리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 방금 받았어. 잠깐만 있어 봐. 멧돼지와 함께 춤을? 제목 이거 맞아?]
수화기 너머로 혼잣말이 들리고, 곧이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메인 피디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영상에 집중한 모양.
몇 초의 시간이 흐르고.
[어? 이게 뭐야? 내가 지금 보는 게 맞아? 이거 한국인 거지? 어디야??]
“어···. 잠시만요.”
흥분한 피디의 음성이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피디의 질문에 답하기엔 박경배도 정보가 없어 스피커폰으로 돌리려 할 때였다.
“아직 거기까진 못 알아봤습니다! 다만, 말투를 들어보니 남쪽 지방일 것 같습니다. 피디님!”
스피커폰 모드로 돌리지도 않았는데 옆에서 임승훈의 대답이 들려왔다.
언제부터 얘가 소머즈였지?
바로 뒷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말을 걸 때는 매번 못 듣기에 귀가 안 좋은 줄 알았건만. 다 선택적 리스닝이었다는 말이지?
“...네! 벌써 계정에 연락을 넣어뒀습니다. 오늘 처음 올린 계정인 걸 보면 곧 연락이 올 것 습니다. 네!”
하지만 임승훈은 박경배가 먹잇감을 노리는 매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얼른 보고를 끝내고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듯했다.
[오. 그래. 잘했어. 연락 오면 바로 내려가서 진짜인지 확인하고 와!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얼른 퇴근하고.]
“네!! 알겠습니다!!”
씩씩하게 메인 피디에게 대답한 임승훈은 뿌듯한 미소를 짓고는 박경배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선배님! 전 이만 퇴근해 보겠습니다!”
“어어. 그래. 일은 다 끝내고 가는 거지?”
박경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예?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 건지···.”
의미심장한 선배의 미소에 임승훈은 데스크 사물함에서 가방을 꺼내던 걸 멈추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삐걱삐걱.
일은 ‘다’ 하고 가는 거지.
그저 지나가는 인사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무실 지박령인 저 선배에게서 나오는 인사말이라면 안심할 수가 없었다.
선배의 말이 끝난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그 짧은 찰나, 자신이 맡은 온갖 일들이 머릿속을 파도처럼 스치고 지나갔지만, 임승훈은 박경배가 정확히 어떤 일을 말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글쎄···?”
당황해 얼어붙은 막내 삐약 이를 본 박경배의 눈이 호선을 그리며 눈꼬리를 접었다.
“...”
어딘가 의뭉스러운 눈빛을 한 박경배와 눈이 마주친 임승훈은 갑작스럽게 온몸에서 소름이 쫙 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그럼 우리 같이 한번 빼먹은 일을 한번 찾아볼까?”
역시나. 본능은 정확했다.
어떻게든 자신을 붙잡아 같은 사무실 망령이 되게 만들려는 선배를 향해 명확한 거절 의사를 밝힌 임승훈은 가방을 꺼내기 위해 숙였던 허리를 펴며 말했다.
“아, 아니요. 제가 혼자 찾겠습니다. 혹시 뭐 잃어버리신 거 있으세요? 얼른 찾아 드리겠습니다!”
“나야 없지. 우리 병아리가 있지 않을까?”
어떻게든 얼른 일을 끝내려고 가기 위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노트북을 켜는 임승훈을 보며 박경배가 실실 웃었다.
그러고는 병아리를 놀리기 위한 말을 내뱉었다.
“...에이, 걱정하지 마. 얼른 찾을 테니까.”
사실 특별히 급한 일이 없는 시즌이라 급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일이란 긁어서 만들면 만들어 지는 것.
더군다나 일이 많기로 소문난 예능국에서, 아직 덜자란 병아리를 놀리기 위한 일을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
자신의 말에 뜨악한 표정을 지은 임승훈을 보고 박경배가 다시 한번 진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 그럼 한번 일을 찾아볼까?”
선택적 리스너에 대한 소심한 선배의 복수.
그건 바로 퇴근하는 사람 바짓가랑이 잡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분만!’
흐흐흐.
선배의 음침한 웃음소리가 사무실을 메웠다.
오소소.
후배는 그 음침한 웃음에 닭살이 돋은 팔을 슥슥 문질렀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오. 그렇게 좀 웃지 마세요!”
“응? 뭐라고?”
“....제가, 설마···. 지금 밖으로 말했나요?”
“글쎄. 근데 오늘 남은 일이 아주 많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하.
하하.
능글거림 속에 날카로움을 품고 있는 선배의 눈을 마주한 임승훈이 웃었다.
‘미안. 감자야. 오늘도 난 야근 각이다.’
속의 말을 막 내뱉는 주둥이를 탓함과 동시에 아무래도 감자와 다시 친해지는 건 머나먼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
미화리 산골 마을.
아직 갈리지 않은 어느 밭에 마을 주민들이 잔뜩 모여 손뼉을 치고 있었다.
“아이고 잘한다!”
“힘이 억수로 세네? 막 지가 알아서 밭을 갈아뿌네. 똑똑하다! 똑똑해!”
“내가 뭐랬노! 이 멧돼지는 그냥 멧돼지가 아니라 했제!”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 장 이장의 어깨가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내가 뭐라 캤나. 다 걱정돼서 한 말이지. 안 그러나?”
“맞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장 이장 니도 멧돼지 잡아달라 신고했으면서 뭔소리고. 맞다, 니 그거 취소는 했나?”
“당연히 했지! 그, 너튜브에 내가 올린 영상 봤나? ”
장 이장은 며칠 전 ‘멧돼지와 함께 춤을’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너튜브에 올렸었다.
“당연히 봤제! 그거 보고 방송국에서 연락도 왔담서? 어떻게 그걸 찍을 생각을 했노? 너튜브? 나는 생전 처음 들어봤다 아이가.”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멧돼지가 밭을 가는 광경을 마음 놓고 구경하는 이유도 장 이장의 영상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험악하게 생긴 멧돼지의 모습 때문에 기겁했지만, 영상에서 장 이장과 한울의 말을 알아듣고 꾸잉 거리는 멧돼지의 모습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인식을 바꾸게 되었다.
“아이고. 너튜브를 모른다꼬? 니 손주들이랑 대화가 되나? 요새 아들은 테레비대신 너튜브 본다안카나! 니도 내처럼 공부 좀 해라. 커흠!”
“뭐라카노. 내는 우리 손주랑 게임한다! 그 뭐시기냐! 동물 얼굴 맞춰서 터트리는 거 있다! 맨날 우리 손주가 ‘할아버지 최고예요!’하는데 얼마나 이쁜 줄 모른다. 장 이장 니 영상 한울이가 찍어준 거 내 모를 줄 아나? 안 그러나 한울아?”
장 이장의 잘난 체에 코웃음을 친 빨간장화를 신은 어르신이 한울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하하. 뭐, 전 이장님이 찍어달라는 대로 찍었을 뿐입니다.”
“봐라!”
한울의 대답에 장 이장의 어깨가 다시 한번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그게 참말이가?”
“뭐꼬.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한울이가 맞다 하는데 뭘 자꾸 물어쌌노. 게임보다 이게 훨씬 그, 뭐냐. 하이-퀄러티. 이 말이다. 안 그러나 한울아?”
이번에는 장 이장이 한울을 바라보며 물었다. 한쪽 눈을 찡긋거리는 게 얼른 편을 들어달라 재촉하는 모양새였다.
장 이장님의 재촉을 들어주기 위해 대답을 하려고 하자, 그의 뒤로 빨간장화를 신은 어르신이 고개를 빼꼼 내밀며 간절한 눈빛으로 한울을 보았다.
“....음. 사실 애들은 게임도 좋아하죠. 너튜브도 게임도 모두 어르신들 손주가 좋아할 것들입니다.”
한울은 차마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는 없어 장 이장님의 편도, 빨간장화 어르신의 편도 아닌 어중간한 대답을 하였다.
“봐라! 게임도 요새 아들이 좋아하는 거라니까!”
“한울이 저놈아가 착해서 그렇다! 너튜브가 요즘 아들한테는 더 잘 통한다!”
투닥투닥.
어르신들의 2차전이 시작되었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어르신들의 다툼을 슬그머니 외면하자, 강 할머니가 혀를 차며 한울의 옆에 섰다.
“니가 고생이 많다.”
“아뇨.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뭐가 괜찮노. 나이는 먹을 대로 먹어가 하는 짓은 손주들보다 못한 거 봐라. 나이가 들면 중후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아이고. 저게 뭐꼬. 그나저나, 방송국에서 연락 왔다는 건 뭔데?”
관심 없는 척을 했지만, 강 할머니도 방송국의 연락이 궁금하셨던 모양.
“그게,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는데 우리 마을에서 찍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멧돼지가 밭을 가는 게 신기하다고요.”
“하모. 여태 멧돼지가 밭을 가는 마을은 없었제. 그래서, 언제부터 촬영한다 카든데?”
“그건 아직 저도 잘···. 일단 방문해서 사전 조사부터 하고, 그다음에 내부 회의를 거쳐서 촬영지를 정한다고 하더라고요.”
“뭐꼬? 그럼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게 아니라는 말이가?”
“그렇죠.”
방송국에서 연락은 왔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다는 말에 강 할머니가 돌연 입을 다무셨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입을 꼭 다무신 모습에서 어쩐지 전쟁을 나가기 전의 장수 모습이 보였다.
“한울아.”
얼마간이 지나고, 강 할머니가 결연한 어투로 나를 불렀다.
“네. 할머니.”
내가 대답하자, 뒷짐을 진 강 할머니가 큰소리로 전방을 향해 선포하였다.
“오늘부터, 우리 마을은 프로젝트에 들어간다.”
“으잉? 그게 뭔 소리고?”
갑작스러운 강 할머니의 선포에 모두가 어리둥절했지만,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뒷짐 진 손을 풀고 검지로 멧돼지를 가리켰다.
“제일 먼저는, 저 멧돼지다.”
“꾸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