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한 마을 (1) >
“어···.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찾아온 것 같습니다.”
고개를 이리 돌려고, 저리로 돌려도···.
정상으로 보이지 않은 광경에 지석호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지석호의 앞에 있는 숱이 많은 남자는 만만치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주 잘 찾아오셨습니다. 성함이 지석호씨 맞으시죠? 면접 보러오신.”
박준혁은 자신의 모습을 보자마자 도망가려고 하는 아르바이트 지원자, 지석호가 물러난 만큼 다가가며 말했다.
움찔.
“마, 맞긴 하는데···.”
지석호는 미칠 것 같았다.
분명 간단한 농장일이라고 해서 지원한 자리였다. 아르바이트를 구인하는 것 치고는 상당히 많은 양의 질문과 요청사항들이 있었지만, 근무조건과 월급에 혹해 열과 성을 다해 질문에 답했었다.
‘이런 시골에 이렇게 꿀인 알바가 생기다니!’
수도권과 달리 지석호의 고향인 미화리에는 그 흔한 카페 아르바이트도 찾기 힘들었다.
아침에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알람을 대신해 잠을 깨웠고, 점심 즈음에는 앞집에서 키우는 소가 여물을 먹으며 만족스럽게 ‘음머’-하고 울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읍내에서 놀다 막차를 타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올 때면 ‘찌르르-’ 우는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곳.
자연과 아주 친밀한 이곳에서, 아르바이트생에게 4대 보험은 물론이고, 연차수당과 퇴직금을 챙겨주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간혹가다 있다 하더라도 죄다 아르바이트생을 노예처럼 부리는 곳들이라 구인란의 붙박이 업체들밖에 없었다.
이런 곳에서 발견한 주5일, 일 6시간 근무에 월 250씩이나 주는 업체는 아무리 그곳이 신생이라 후기가 없더라도 무조건 지원부터 해 봐야 하는 곳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원 안 했지···.’
지석호는 돈과 근무조건에 눈이 멀어 그 어렵던 지원서를 밤까지 써가며 제출했던 과거의 자신을 원망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면 지원을 하지 말았어야지!’
어쩐지 조건이 너무나 좋다고 했다.
여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조건에, 지원자들도 많았던지라 면접을 보러오라는 연락에 그 자리에서 몇 번 뛰기도 하였다.
“맞긴 한데?”
“아무래도,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눈이 아릴 정도로 화려한 핑크색의 의상을 입고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짓는 남자의 모습은···. 아무리 조건이 좋고,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오래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역시. ‘세상에는 공짜란 없다’라고 하시던 할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났다.
“제가 봤을 때, 이 일은 지석호씨를 위한! 일입니다!”
“네? 저를···. 위한···. 일이요?”
“자기소개 1페이지, 17번째 줄에 ‘저는 동물을 사랑하고, 자연을 아끼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에···?”
도대체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아끼는 마음과 매일 삽질과 기타 노동이 일상인 농장일의 연관성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1페이지에 17번째 줄이라니. 아무리 봐도 남자의 손에는 종이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손에 들린 거라곤 흙이 잔뜩 묻은 모종삽뿐. 설마···. 다 외운 건 아니겠지?
한편 박준혁은 자신과 마주치자마자 놀라는 것도 모자라,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허옇게 질려가는 아르바이트 지원자의 모습에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이 지원자를 무조건 붙잡아야 한다!’
원래는 한울에게 자신이 이제 대학원을 그만두고, 정직원이 되었으니 당분간 아르바이트생은 없어도 되지 않겠냐는 말을 하려고 했었다. 누가 뭐라 해도 한울 형님은 머리카락의 구세주이시니, 괜히 자신이 모두 다 커버 칠 수 있는데 아르바이트생을 구해 추가적인 지출을 막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그것도 아주 급진적으로.
갑자기 멧돼지가 어딘가에서 나타나더니 방송국에서 사전 조사를 나온다고한다.
그 멧돼지를 한울 형님이 비닐하우스에서 키웠다던 걸 들었을 때는 진실로 그의 말을 철석같이 따랐던 과거의 자신에게 칭찬했다. 만에 하나라도 한울 형님의 막역지우라고 주장하는 구름떡집 사장, 강지민을 따라갔었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 자신은 없을 것이었다.
하늘나라라면 몰라도.
거기다 방송국에 출연할지도 모른다니, 정직원으로서 부하직원 한 명 정도 있는 것이 방송국 그림에도 보기 좋을 것이다.
“동물을 사랑하고, 자연도 아낀다고 했으니, 멧돼지 목욕을 시키는 건 식은 죽 먹기겠네요!”
그래서 박준혁은 멧돼지 목욕담당 자리를 아르바이트생에서 흔쾌히 넘기기로 했다.
“네? 멧돼지라고요?”
“아. 멧돼지라고 해서 그냥 멧돼지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애가 아주 순하기 그지없어요.”
“멧돼지가···. 순하다고요?”
지석호는 핑크색 꽃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의 말을 아까부터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설마 같은 한국 사람이 아닐까? 아니다. 사투리가 심하지 않은 걸 보니 아마 이곳 토박이가 아닌 모양.
그렇지 않고서야 멧돼지보고 순하다고 할 수가 없었다.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고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이곳에서 벗어나려 두 손을 들 때였다.
“아. 마침 저기 오네요.”
“...?”
“멧돼지요. 이제부터 지석호씨가 매일 관리할 멧돼지!”
“꾸엥!”
박준혁을 향해 서 있던 지석호는 뒤에서 들리는 돼지의 울음소리에 긴장했던 어깨를 내렸다.
제가 아는 멧돼지는 입가에 거품 낀 침을 질질 흘리며 ‘꾸에에에엑!’하고 울지, 저렇게 귀여운 소리로 울지 않는다.
아마 자신을 놀리려고 장난을 치는 듯한 눈앞의 농장 정직원에게 인사를 한 지석호는 몸을 빙글 돌려 뒤를 보았다.
그리고.
“으, 으, 으아아아아악!”
뒤를 돌아 귀여운 울음소리의 주인공을 발견한 지석호는 엉덩방아까지 찧으며 소리를 질렀다.
“꾸, 꾸엥···?”
예의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는 멧돼지는 저 머리숱 많은 정직원이 입은 패션보다 더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있었다.
**
“으아아아-”
“컁! 한울! 새로운 사람이 아주 잘 뛰고 있다!”
“오. 준혁이가 체력테스트 중인가 보네.”
나는 창가에 앞발을 대고 밖의 상황을 알려주는 노을에게 여상히 대답하며 핸드폰에 뜬 대화에 집중했다.
-MBS 임승훈 : 안녕하세요! 사전답사 일정이 정해져서 스케줄 공유해 드립니다. 다음 주 월요일, 오전 11시 정도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혹시 일정이 맞지 않으시면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최대한 조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한울 : 스케줄 괜찮습니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대화의 상대는 MBS의 조연출 임승훈이었다. ‘멧돼지와 춤을’이라는 영상을 올린 지 10분도 되지 않아 촬영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방송국 사람.
“일을 똑 부러지게 하네.”
아직 얼굴은 보지 않았지만, 나는 임승훈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알 수 있었다. 빠른 연락은 물론이거니와, 일정을 잡는 것도 아주 매끄럽다. 내 일정을 먼저 확인한 후 잡은 일정임에도 다시 한번 괜찮은지를 묻는 걸 보면, 누가 사수인지 몰라도 아주 제대로 배운 것 같아 보였다.
“우리 애들은 잘 있으려나···.”
오랜만에 이런 사무적인 문자를 받으니 불현듯 같이 일했던 직원들이 생각났다.
‘과장님···! 가시려면! 저도 같이 데려가십시오!’
‘나가려면 서팀장이 나가야지 왜 과장님이 가십니까! 제가 사장님께 당장 가서···!’
‘과장님, 어디로 가신다고요···? 하하. 아마 저도 그곳으로 곧 가지 않을까 해서요.’
서 팀장과 담판을 짓고 회사를 나온 직후부터 미화리로 내려오기 직전까지 아주 날마다 전화기를 붙들고 징징거리던 팀원들.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짓고 살 거라는 말에 나를 놔주긴 했지만, 만약 내가 다른 회사로 간다고 했으면 어떻게든 같이 따라오려던 사람들이었다.
“요즘엔 잠잠한 걸 보니 잘 살고 있나 보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단톡방에서 ‘서 팀장 개XX’, ‘서 팀장 죽어버려’, ‘우리를 버리신 김 과장님···. 잘 살고 계시는가요···?’ 따위를 마구마구 올리더니, 요즘 들어 잠잠해졌다.
“방송국일 끝나고 나면 한번 연락해 보지 뭐.”
애들은 조용하면 사고를 친 거니 주의 깊게 살피라는 말이 있지만, 다행히도 전(前) 팀 원들은 모두 성인이었다.
“그것보다 지금은 강 할머니께 연락드리는 게 더 급하지. 암.”
방송국에서 멧돼지에게 관심을 가지고 촬영을 하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들은 엊그제부터 온 마을을 다니며 ‘미화리 산골 마을 유명하게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셨다. 온 마을이라고 해 봤자, 20가구도 채 되지 않아 그 어느 누구도 강 할머니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후···.”
나는 거실까지 길게 들어온 햇살을 따라 꼬리를 살랑이며 창문에 딱 붙어있는 노을을 보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에 한숨을 내뱉었다.
‘순하게’ 프로젝트는 멧돼지뿐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적용되었는데, 특히나 멧돼지의 주인인 나와, 나와 같이 일하는 박준혁, 그리고 멧돼지와 함께 영상을 찍은 장 이장님은 멧돼지와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죄로 방송국이 촬영을 확정 지을 때까지 이 화려하기 짝이 없는 핑크색 맞춤옷을 입고 있어야 했다.
평소 무채색 옷을 즐겨 입던 나에게는 고역이 따로 없었다.
“나만 이렇게 입고 있을 수는 없지.”
흐흐흐.
어릴 적, 마을 어르신들도 못 말리던 악동 시절 때의 미소를 오랜만에 꺼내 입가에 장착시킨 나는 핸드폰 스크린을 터치해 비교적 최근에 등록해 놓은 단축키를 길게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채 2번 울리기도 전, 기다렸다는 듯이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오냐. 한울아. 결정됐나?
“네. 강 할머니. 다음 주 월요일입니다.”
-월요일? 알았다. 내 그럼 바빠서 이만 끝는데이.
“네. 들어가세요.”
-오냐.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부산스러운 소리에 나는 입꼬리를 더욱 만족스럽게 올렸다.
“뭐든 단체로 하면, 수치심이 없어지기 마련이지.”
후후후.
“컁?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
월요일 아침 11시.
“와, 한국에 이런 곳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네요.”
“그러게. 나도 여기저기 많이 다녀봤지만 여긴 이야-. 당산나무부터가 크으-. 그림이 나온다 그림이!”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포개어 카메라 앵글을 만드는 선배를 외면한 임승훈은, 고개를 돌려 마을 입구에 자리한 나무를 바라보았다.
아름드리를 넘어 마치 거대한 차양막처럼 비산하는 늦봄의 햇볕을 막아주는 나무 앞에는 작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팽나무···. 400년이 넘었다네요.”
안내판에서 눈을 뗀 임승훈은 고개를 들어 푸른 잎을 가득 단 팽나무를 보았다. 어디 하나 꺾인 곳 없이, 가지마다 푸른 잎들을 빼곡히 매단 팽나무를 보고 있자니 아직 만나지도 못한 이곳 마을 사람들의 성정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분명, 진중하고, 섬세하며, 정이 많은 사람이겠지.
“400년이라. 그럼 이 마을도 오래됐다는 소리인데···. 오호라. 그럼 이 마을만의 전통 음식도 있겠는걸? 크흐. 술은 당연히 있겠고! 키햐- 우리 병아리! 잘 찾았다!”
“...”
400년 된 당산나무를 보고 술이나 찾는 선배와는 아주 다른. 아마도 이 마을 사람들은 입가에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무채색 옷을 입고 차분하게 농사를 짓겠지. 멧돼지와 함께 밭을 갈던 어르신이 아마도 이 마을에서 가장 문명과 가까운 사람이 아닐까?
“그나저나, 어디로 가면 돼?”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곳으로 온다고 하셨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됩니다.”
임승훈은 자신의 상상을 깬 선배를 조용히 째려보며 대답했다. 도대체 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하는 것인지.
선글라스 쓰고 오길 잘했지. 다음부터는 마스크도 함께 써서 째려봄과 욕을 동시에 하겠다며 소심한 반항을 다짐하던 찰나. 마을 안쪽을 바라보던 선배의 입이 떡 벌어졌다.
“헐.”
“...? 왜 그러십니까?”
임승훈은 입사 후 처음으로 보는 선배의 충격받은 모습에 의아해하다 갑자기 귓가를 꿰뚫는듯한 풍악 소리에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고는 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선배와 똑같은 자세로 입을 떡 벌렸다.
“헐.”
얼마나 입을 벌리고 있었을까.
분홍색과 반짝이, 그리고 왕 리본을 단 멧돼지를 타고 그들의 앞에 등장한 어르신이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말했다.
“우리 미화리 산골 마을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