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54화 (54/163)

< 이상한 마을 (2) >

“우리 미화리 산골 마을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하오-!”

하오-하오-하오-

장 이장의 우렁찬 목소리가 산골 마을에 울려 퍼졌다.

지잉-

덩기더덕쿵더쿵!

삐릴리-

환영 인사가 끝남과 동시에 뒤에서 풍악 소리 또한 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오······.”

낯선 이에게서 멍한 감탄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산나무 밑 평상에 앉아있던 남자였다.

평상에 앉아있는 남자의 뒤에서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아직까지도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었다.

“크흠.”

장 이장은 생각보다 괜찮게 나온 자신의 목소리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하긴 싫지만, 강순자의 닦달로 했던 연습이 빛을 발했다.

‘다 우리 집 앞으로 모이 봐라.’

지난주, 강순자는 갑작스럽게 온 마을 사람들을 자신의 앞마당으로 불러냈다. 참여 여부는 자유지만, 오지 않으면 섭섭할 거라며 손바닥 이모티콘이 5개나 붙어있는 문자에 모두가 서둘러 강가네 집으로 달려갔다. 전직 배구선수의 손바닥 이모티콘은 협박 그 자체였다. 오지 않으면 내 손바닥이 참지 않을 거라는.

서둘러 간 강순자네 앞마당에는 꽹과리와 장구, 징, 그리고 북 등이 놓여있었다.

‘이거 다 어디서 구했노?’

‘마을회관 창고에서 썩고 있길래 갖고 왔다. 다들 다룰 주는 알제?’

‘...’

마을회관 창고 열쇠는 분명 이장인 자신이 관리하고 있었건만. 도대체 어디서 창고 열쇠를 구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장 이장은 호기심을 해결하는 대신 침묵을 택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장애물 따위 모두 없애버리는 강순자의 성격상 열쇠공이라도 불러서 창고 문을 땄을 것이다.

‘자, 다들 예전 마을 연합 행사 때 다루던 악기들 가져가고, 옆에 있는 옷도 가져가라. 아, 장 이장 니는 내가 저번에 준 옷. 그거 입으면 된다. 악기는 안 가져가도 되고.’

특별히 자신을 제외하는 강순자에 장 이장은 안심은커녕,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와···?’

왜 나만? 다른 곳에서는 예외 되는 게 좋을지 몰라도, 방송국 출연을 위해 멧돼지까지 목욕시켜 리본을 둘러버리는 강순자가 자신만 제외를 한다? 이건 분명 무언가 다른 속셈이 있는 게 분명했다.

‘아이다! 나도 꽹과리 잘 친다! 내가 꽹과리 할끼다!’

‘쓰읍. 꽹과리랑 상투 돌리기 같이 할 수 있으면 해 보던가.’

꽹과리를 치겠다는 장 이장의 말에 콧방귀 뀐 강순자는 턱 끝으로 상모를 머리에 쓰고 턱 밑에 끈을 고정하고 있는 빨간장화를 가리켰다.

‘...’

장 이장은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사물놀이용 악기가 사라진 평상에 털썩 앉은 그는 손에 들린 띠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멧돼지한테 핑크로 빙빙 둘러싸더니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노인네들한테도 핑크를 주었다. 그냥 핑크면 그래도 우리 꽃분이가 얼굴이 환하다고 좋아하니 참고 입을만한데, ‘미화리 복돼지’라고 적혀있는 이 핑크 바탕에 금색 술로 장식한 띠는 도무지 걸칠 수가 없었다.

‘꾸엥···!’

그래도 몇 번 밭을 같이 갈았다고 친해진 건지, 예의 커다란 보석 박힌 왕 리본을 한 멧돼지가 옆으로 다가와 위로했다.

‘그래. 니도 고생이 많다.’

멧돼지에게선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 장 이장은 정말이지 머리털 나고 향기로운 냄새나는 멧돼지는 처음 봤다. 물론,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밭을 갈아주는 멧돼지도 처음이지만.

어쩌다 강순자에게 걸려서, 팔자에도 없는 리본을 메고 있냐며 멧돼지를 위로할 때였다.

‘역시. 우리 복돼지가 똑똑하네. 장 이장, 니는 오늘부터 대사 연습해라.’

한참을 바로 전에 결성된 사물놀이패에게 연주할 곡조를 설명하던 강순자가 고개를 휙 돌려 멧돼지를 쓰다듬는 장 이장을 보며 말했다.

‘대사 연습···?’

‘방송국 사람들 오는데 강렬하게 인상을 남겨야지! 내가 조사해 보니까, 요즘 방송국에서는 평범한 건 절대 취급을 안 한다더라!’

‘...’

그래서 시작된 ‘평범함을 거부한, 한 번만 봐도 뇌리에 박힐 수 있는 순박한 멧돼지와 마을 사람들’이라는 프로젝트. 멧돼지를 순하게 만들었으니 됐지 않냐는 다른 마을 사람들의 의견은 강순자의 미소 한방에 쏙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

미화리 산골 마을 사람들은 누구보다 더 진지하게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꽹과리를 맡은 주민은 정신없이 상모를 돌리며 방송국 사람들과 주민들 사이를 종횡무진 다니고 있었으며.

“얼쑤-!”

계속되는 엇박자로 인해 강순자에게 매번 면박을 듣던 심가는 오늘도 어김없이 끊임없이 엇박자를 생성해내는 자신의 연주에 심취해 있었다. 어지럽게 돌아가는 상모의 술과 엇박자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장구. 그리고 결연한 표정으로 각자 자신의 악기를 연주하는 마을주민들까지.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대환장 그 자체였다.

끝날 듯,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풍악 소리에 평상에 앉아 감탄하던 남자가 정신을 차리고 장 이장의 인사에 화답했다.

“...어,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멧돼지의 목욕을 시킨 곳이자, 미화리 산골 마을 사물놀이패가 탄생한 곳.

강 할머니의 집에서는 한창 방송국 사람들과 수고한 마을 사람들을 위한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김한울입니다.”

나는 마을 어귀서부터 혼이 쏙 빠진 채 선배로 보이는 사람에게 질질 끌려온, 임승훈으로 짐작되는 낀 남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 예. 안녕하세요! 임승훈입니다.”

내 인사에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바로 하는 임승훈의 모습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예능국 사람에게도 강 할머니의 프로젝트는 감당하지 못할 무언가인듯했다. 하긴, 멧돼지부터 온 마을 사람들까지 모두 핑크색으로 옷을 맞춰 입고 풍악을 울리면···. 나였더라도 도망가고 싶었을 거다.

핑크색 테러를 받은 나와 마을 사람들과는 다른 의미로 강 할머니의 희생양이 된 사회초년생을 안쓰럽게 볼 무렵.

“어이쿠. 안녕하십니까! 박경배라고 합니다. 김한울 씨라고요?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팽나무 밑에서 장 이장님께 인사를 건넸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네. 안녕하세요. 박경배 씨. 뭐 좀 많이 드셨나요?”

“어후. 아무렴요. 이렇게 환대해 주시고, 맛있는 음식까지 주시니 저희가 어떻게 갚아드려야 할지···.”

한 손에는 우윳빛 막걸리가 든 사발을, 다른 손에는 산적 꼬치를 든 박경배는, 아직도 적응을 못 하고 멍하게 있는 임승훈과 달리 당황했던 게 언제였냐는 듯, 강 할머니가 주최한 환영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갚기는 뭘 갚노! 마 우리 마을에서 촬영만 하면 된다니까!”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었는지, 강 할머니는 수고한 마을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던 강 할머니가 고개를 홱 돌려 박경배를 보았다.

“에이. 할머니. 걱정하지 마시라니까. 이렇게 맛있는 걸 먹을 기회를 놓치면, 제가 사람이 아닙니다!”

“참말로 걱정 안 해도 되제?”

“네! 제가 메인 피디님께 이미 말씀해 놨습니다!”

“그래. 그럼 됐다. 그 말, 필시 지켜야 할 것이야.”

날카로운 눈빛으로 박경배에게 경고하는 강 할머니의 모습은 마치 먹잇감을 앞에 둔 호랑이 같았다. 호랑이는 맹수의 왕. 강 할머니의 카리스마에 마을 사람들은 일제히 어깨를 쪼그라트렸다. 강 할머니의 카리스마는 우리 마을 사람이 아닌 임승훈에게도 통했다.

아직도 선글라스를 쓴 채 평상 위에 오도카니 앉아 잇던 그가 괜히 팔을 문질렀다.

“...?”

하지만 단 하나사람. 박경배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듯 눈을 끔뻑거렸다. 내뱉은 말을 지키지 않을 때 제 미래가 어떻게 될 줄 모르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미어캣 같았다.

묘하게 맹해 보이는 그 모습에 강 할머니는 옆에 있던 박준혁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자신이 다 설명하기엔 입이 아프니, 박준혁에게 대신 설명을 하라는 신호였다.

강 할머니의 신호를 받은 박준혁은 호박죽을 푸던 걸 멈추고 박경배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간단하게 말했다.

“강 할머니가, 소싯적 아주 잘 나가던 프로 배구선수였습니다.”

말을 끝낸 박준혁은 단단해 보이는 표주박을 강 할머니 옆에 놓았다.

강 할머니는 무심한 눈길로 표주박을 힐끔 쳐다보고는, 한 손으로는 음식을 나눠주면서, 남은 한 손으로는 배를 보이며 뒤집힌 표주박을 향해 손바닥을 내려쳤다.

쾅!

쩌저적.

손바닥으로 내리친 것뿐인데, 표주박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뭐, 이 정도입니다.”

바스스.

박준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표주박을 가루로 만들고 다시 마을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데 집중하는 강 할머니를 대신해 가루가 되어 손잡이만 남은 표주박을 박경배를 향해 들어 보이며 싱긋 웃었다.

박준혁과 강 할머니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지만,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은 저 의미가 무엇인지 알았다.

‘네 말이 거짓말이라면, 이렇게 된다.’

명백한 협박이었다.

**

MBS 방송국 예능 사무실 안.

예능5팀은 오랜만에 사무실에 출근한 메인 피디를 필두로 회의실에 옹기종기 앉아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유리문으로 이루어진 회의실은 바깥에서도 회의실 안 사람들의 표정이 훤히 보일 정도로 투명했다.

“어휴. 또 허탕인가 보네. 팀원들 얼굴이 팍 죽었어.”

“쯧쯧. 메인 피디가 또 푸닥거리 하나 보네.”

“난 정말이지 내가 예능5팀이 아닌 게 진짜 다행이라고 생각해.”

“나도. 아무리 국장님한테 신임받는 팀이면 뭐하냐고. 여기로 스카우트 되고 나서 확실하게 띄운 프로그램이 없는데.”

쑥덕쑥덕.

투명한 유리문 건너로 보이는 죽을상을 하는 예능5팀의 모습에 다른 팀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예능6팀의 메인 피디, 이박복.

박복하다는 이름과는 달리 손을 대는 프로그램마다 대박 히트한 탓에 이대복이라고 더 자주 불리는 이 피디는, 타 방송국에서 MBS로 어마어마한 연봉으로 스카우트된 사람이었다. 하지만 MBS로 이직 후 몇 개월 동안 아무런 실적이랄게 없어, 처음에는 모두가 부러워했던 예능5팀은 이제 모두에게 얍 잡혀 술자리에 안주처럼 여기저기서 까이는 신세가 되었다.

“자자. 다들 인상 팍 써. 더더더!”

하지만 회의실 안은 회의실 밖의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피디님, 저 주름 생길 것 같은데요?”

“보톡스 비용! 청구해!”

“피디님, 저는 눈을 하도 부릅뜨고 있었더니, 눈이 아립니다.”

“눈을 깜빡여!”

하도 인상을 찡그리고 있느라 미간에 주름이 질 것 같다는 미모의 작가에게는 통 크게 보톡스 비용을 내주겠다던 이박복 피디는, 눈을 부릅뜨다 못해 이제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박경배에게는 콧방귀를 뀌며 눈이나 깜박이라고 주문했다.

“아니, 피디님!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김 작가한테는 보톡스 비용 청구하라더니! 저도 라식 비용 청구하게 해 주십시오!”

“....나갈래?”

“아닙니다!”

박경배의 헛소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이 피디는 그렇지않아도 험한 인상을 더 험하게 구기며 팀원들에게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 절대 다른 팀들한테 흘러가면 안 된다. 무슨 말인지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죽을상을 지어보겠습니다!”

예능국.

아마존의 정글보다 더 아이디어 싸움이 팽배한 이곳. 이박복 피디는 자신이 몇 개월 동안 고심하며 생각했던 바를 이루어줄 수 있는 시골 풍경을 보며 히죽 웃었다.

“으으. 속이 안 좋아졌어.”

험악한 메인 피디의 인상에 절로 얼굴을 찌푸린 박경배가 또다시 헛소리를 장전했지만, 이박복은 신경 쓰지 않았다.

“흐흐흐. 촬영 바로 할 수 있게 출연진들 얼른 포섭해!”

그저 빠른 촬영을 할 수 있도록 팀원들을 닦달할 뿐.

흐뭇한 미소를 지은 이박복 피디의 앞, 노트북 스크린에는 ‘미화리 복돼지’라고 적힌 띠를 두른 사람들의 영상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