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사 후 귀촌 힐링라이프-61화 (61/163)

< 촬영 시작 (2) >

타다닥

아라는 피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마을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제한시간, 20분입니다!”

그런 아라의 모습을 멍하게 쳐다보고 있던 출연자 3명은 이박복 피디가 제한시간을 상기시키자, 정신을 차리고는 앞다투어 마을 안으로 달려갔다.

“어? 형님! 같이 가요!”

셋 중 선두를 달리는 강산을 뒤따라가며 이추성이 소리쳤다. 이추성은 격투기 선수에서 은퇴한 뒤 여러 예능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고 있는 운동계 출신 예능인 중 한 명이었다.

몸에는 근육이 가득해 강인해 보였지만, 울룩불룩한 몸과는 달리 맹한 성격을 소유한 반전매력을 가져 예능계의 블루칩으로 불리고 있었다.

“미안! 난 이제 밖에서 자면 뼈가 쑤셔!”

같이 가자는 이추성의 말에 뒤도 돌아 보지 않고 손을 휘저은 강산은, 아직까지는 예능 초보인 이추성과 달리 공채 개그맨부터 시작해 예능 판에서 잔뼈가 굵었다.

예능 판에서 구른 지 꽤 오래된 만큼, 이박복 피디의 성격을 잘 아는 그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를 냈다.

‘이박복 저 피디는 한다면, 한다.’

몇 년 전, 이박복 피디가 MBS가 아닌, 다른 방송국에 있던 시절. 출연했다 하면 무명도 유명으로 만든다는 이박복 피디의 예능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제한시간을 주고 미션을 시켰었는데, 이 피디는 미션에 실패한 출연자들에겐 그들의 나이가 많건 적건, 톱스타이던 아니건 얄짤 없이 자신이 말한 바를 지켰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밖에서 자면 얼어 죽어!’

집이 아닌 곳에서 자야 한다고 했으니, 저 피디는 탈락자들을 위해 집의 형상을 띈 모든 걸 제외한 잠자리를 준비했을 게 분명했다. 심지어 이 피디의 사전에는 봐주는 것이란 없었다. 밥을 주지 않는다고 했을 때는, 어떤 음식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아니 카메라 꺼졌는데 이거 하나만 먹겠네.’

‘죄송하지만, 시청자분들을 우롱하는 짓은 제가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막내야, 뭐해, 뺏어.’

리얼 예능이라고 하는 곳들에서도 탈락자들을 위해 빈약할지라도, 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었었다. 그런데, 이박복 피디는 씹을 수 있는 음식은커녕, 에너지 드링크만 하나 던져주고는, 몰래 숨어서 먹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찾아내 빼앗았다.

‘분명히, 학생 때 선도부였을 거야.’

원칙을 고수하는 데다, 힘까지 있는 피디라 누구도 항의할 생각조차 못 한 걸 얘기하자면, 3일 밤낮을 새도 모자랐다.

“으으.”

옛 생각에 잠긴 강산이 이박복 피디의 순한 얼굴 뒤에 숨겨진 악독함에 저도 모르게 부르르 떨 때였다.

“응? 뭐지?”

맹한 이추성의 목소리가 뒤편에서 들리나 싶더니, 곧이어 누군가 강산의 옆을 지나 추월했다.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살랑.

이추성을 추월한 건 바로, 개그우먼 김은비. 사실 개그우먼으로서의 경력은 사실상 평생 직장 같던 개그 프로그램이 폐지된 후부터는 전무했다. 하지만 개그 프로그램이 폐지된 후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너튜브가 큰 인기를 얻으며 그녀의 위상은 개그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보다 더욱 높이 올라갔다.

“선배님,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빠른 속도로 강산을 지나친 김은비가 강산이 이추성에게 그랬던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인사했다.

“그럼 나도···!”

김은비에게 추월을 당한 또 다른 한 명, 이추성이 승부욕을 보이며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가만히 있어도 근육을 자랑하던 허벅지가 크게 부풀었다.

파바밧!

진심이 된 이추성이 강산을 지나쳐 떠난 자리에는 움푹 파인 신발 자국만 남았다.

**

출연자들이 머물 집의 열쇠를 찾으려 마을을 종횡무진하고 있을 무렵.

“자자, 오늘 우리의 목표는 뭐다?”

“이기자! 이기자! 이기자!”

마을 회관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 사람들이 결연한 눈빛을 하고는, 마이크를 들고 앞에 선 장 이장을 보며 외쳤다.

“하하. 어르신들, 살살 해 주시면 됩니다.”

승부욕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마을 사람들의 눈빛에 카메라 렌즈 밖에 있던 박경배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살살하라는 그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홱 돌렸다.

“뭐라꼬?”

사전에 맞춘 듯, 동시에 고개를 돌린 마을 사람들은 불타오르는 눈으로 박경배를 쳐다보았다.

불타오르다 못해 서슬 퍼런 마을 사람들의 눈빛을 한 번에 받은 박경배가 왼손은 허리에, 오른손은 주먹을 쥐고 번쩍 들어 올리고는 외쳤다.

“어···. 이기자! 이기자! 이기자!”

“이기자! 이기자! 이기자!”

박경배가 마을 사람들이 말끝마다 구호처럼 외치며 하던 몸짓을 그대로 행하자, 마을 사람들이 그의 외침에 이어 ‘이기자!’를 외쳤다.

“오우. 저 이거 본 적 있습니다.”

“음. 나도.”

제작들과 함께 뒤편에 선 박준혁과 나는 어느새 어르신들의 틈에 껴 함께 승부욕을 불태우는 박경배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앞에서 누구보다 더 열정적으로 구호를 외치는 강 할머니를 발견한 박준혁이 걱정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그런데 어르신들 연습 더 안 하시고 이렇게 전의만 불태우고 계셔도 될까요?”

“아마도? 조금 전까지 연습하는 거 보니까 무조건 이기실 것 같던데?”

자세히 보면 마을 사람들은 4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앉아있는데, 그건 바로 제작진이 건넨 상자에서 제비뽑기로 정해진 총 4개의 팀이었다.

“하긴. 강 할머니가 손바닥으로 박 깨는데···. 앞으로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제비뽑기로 4개의 팀이 나뉘자, 제작진들은 각 팀에게 미션용 게임을 알려주었다. 곧 있을 촬영에서 연예인들과 대결을 할 게임들이었다. 그중, 강 할머니의 팀이 담당한 ’몸으로 박 깨기‘가 가장 살벌했는데, 누군지 모르겠지만, 강 할머니의 조와 붙게 되는 출연자는 오늘 밤, 집안에서 자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아무리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한 만큼 다음날 컨디션에 큰 영향을 끼칠 게 분명했다. 강 할머니의 팀과 붙을 누군가에게 애도를 보내는 그때.

“어르신들, 혹시 모르니까 다시 한번 설명해 드릴게요. 이거 서로 죽이는 게임 아니에요”

어르신들과 같이 구호를 외치던 박경배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금 게임의 취지를 설명했다.

“다치시지 않게, 몸을 제일 먼저 챙기면서 게임 참여 해 주세요. 아마 출연자들이 여기까지 오려면 최소한 8분은 걸리니까, 어르신들께서는 약 10분 정도만 버텨 주시면 됩니다. 아시겠죠?”

박경배는 촬영이 처음이신 어르신들에 걱정이 많은 듯 잔소리가 길어졌다. 하지만 그의 잔소리를 가만히 앉아서 들을 사람들은 여기 없었다. 잔소리해서 해결되시는 분들이었으면 진즉에 통제가 되었을 것이다.

“어. 알겠다.”

하지만 웬 인일지, 어르신들이 박경배의 잔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안 다치기만 하믄 되는거제?”

“뭐 하실 건데요?”

’다치지만‘ 않으면 되냐는 한 어르신의 말에 마을 사람들의 동의를 받아내 뿌듯해하던 박경배가 반문했다.

역시.

웬일로 고분고분 박경배의 말을 들으며 얌전해지셨나 했더니. 어르신들은 얌전해 지신 게 아니라, ’다치지‘만 않고, 어떻게 게임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 있을지 머리를 뱅글뱅글 돌리느라 조용한 것이었다.

“우리? 우리 뭐 안 해. 연습할 때 봤잖아. 안전하게 한다. 안전하게.”

“네. 어르신들, 부탁드립니다.”

뜨악한 박경배의 표정을 발견한 장 이장님이 달려와 다른 마을 사람들 대신 해명했다.

“그런데, 출연자들 언제 오는 기고?”

이곳으로 와 연습한 지도 약 40분. 연예인들은 준비할 것들이 많아 조금 걸릴 거라 했던 터라 조금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래도 기약 없는 약속보다는 언제인지 알고 기다리는 게 덜 지루했다.

“어···. 그게···.”

박경배가 장 이장님의 질문에 대답하려 무전기를 들던 그때.

삐빅!

무전기에서 수신음이 울렸다.

[출연자들 모두 출발했습니다.]

“확인했습니다. 이장님, 어르신들, 지금 출연자들 다 출발했다고 합니다. 준비하시죠.”

무전기에 대답한 박경배가 준비 요청을 하며 고개를 들자, 나란히 앉아 구호를 외치던 마을 사람들은 언제 움직였는지, 돌림판을 가운데에 놓고 돌림판을 기준으로 양옆에 2팀씩 나누어 앉아 그를 보고 있었다.

“어. 준비됐다.”

자신이 말하기도 전에 출연자들을 맞이할 준비가 모두 끝난 마을 사람들에게 두 엄지를 모두 추켜세운 박경배가 말했다.

“하지만 너무 봐주시면 안 됩니다. 재미없으면 방송에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가 막 연예인이라고 봐주고 그런 사람들 아니다!”

“네! 좋습니다!”

어르신들에게 확답을 받은 박경배가 히죽 웃었다. 웃는 모습이 아무도 모를 간계를 꾸미는 사람 같아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

“후아. 여긴가?”

이박복 피디의 휘슬이 울리자마자 냅다 마을 안으로 뛰어 들어갔던 아라는 아무리 둘러봐도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 집을 두드리던 걸 멈추고 마을 회관이 있을 만한 곳으로 달려온 참이었다.

“하아. 아라야, 너 왜 이렇게 빨라? 소리가 들리는 거 보니 맞네. 어서 들어가 보자.”

여기저기를 돌아다닌 탓에 이마에 솟아오른 땀을 닦고 있자, 마을을 뒤지다 말고 냅다 뛰는 아라를 쫓아온 김은비가 허리를 숙여 손을 무릎에 대며 말했다. 헉헉거리면서도 고개를 들어 여기저기를 살피더니, 단서를 찾은 모양.

끄덕끄덕.

김은비의 말에 아라는 고개를 끄덕이곤 마을 회관의 문을 밀었다.

“오메. 왔다! 왔어!”

마을 회관 문을 열고, 신발을 벗으며 중문을 옆으로 밀자, 중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손뼉을 짝짝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라야, 들어가 봐.”

복도가 꺾인 터라, 목소리만 들릴 뿐 아직 이곳에 몇 명의 마을 사람들이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여기 다 있으시면 좋겠는데···.”

“신발장 보니까 여기 다 계신 거 같은데? 너 안 들어가면 나 먼저 들어간다.?”

운동화 끈을 하도 꽉 조여 맨 탓에 아라가 신발 끈과 사투를 하고 있자, 슬립온을 신어 벌써 발뒤꿈치를 신발에서 빼내 까치발을 하고 있던 김은빈이 고개를 쭉 빼 신발장과 안쪽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아니. 다 풀었어. 먼저 들어갈게.”

이박복 피디는 꼴등을 위한 벌칙은 말했지만, 1등을 위한 혜택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찍 도착한 아라는 한울의 조언대로 피디에게 가 약간의 힌트를 들었던 참이었다.

그건 바로, 1등에게는 집주인의 자격을 준다는 것. 집주인의 권한을 가지면, 집에 대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되어 모든 걸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고 했다. 그 권한에는 삼시 세끼 차려 먹을 밥상에 대한 주재료 선택도 포함이 되어있었다.

마을에 있는 농산물이라면 뭐든 괜찮다고 했으니, 아라는 1등을 차지해 신비농장의 작물들을 메인 재료로 쓸 예정이었다.

“후. 할 수 있다.”

긴장 섞인 숨을 내뱉으며, 꺾어진 복도를 통과한 아라는 저도 모르게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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